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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전체 318건)
‘동아일보 사람들’의 친일 행적 - 김성수
‘국민주주’를 모아 주식회사로 출발한 동아일보사가 김성수 일가의 사유물로 바뀐 과정은 앞에서 살펴본 바 있다. 2014년 현재까지 동아일보사 경영권은 1대 김성수, 2대 그의 장남 김상만, 3대 김상만의 장남 김병관...
관리자  |  2021-06-1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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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폐간 직전까지 동아일보의 ‘진충보국’
1939년 9월 2일자 동아일보 1면 머리에는 짤막한 기사가 실렸다. 인류의 앞날에 엄청난 재난을 가져올 세계 제2차 대전의 서막이 올랐다는 소식이었다. 독파(獨波) 양군 수(遂) 개전(開戰) / 히 총통 실력 행사...
관리자  |  2021-06-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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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국민총동원’에 앞장서다
1939년에 접어들자 일제는 국민생활 전반을 통제하는 ‘전시체제’를 더 강화하기 시작했다. 동아일보 1월 1일자 1면 머리에 실린 ‘천황’의 새해 동정에 그런 경향이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황공하옵시게도 황군을 어...
관리자  |  2021-06-0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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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후 보국’의 나팔수로 나선 동아일보
상해와 남경을 점령한 뒤 침략전쟁을 화북지방으로 확대하고 있던 일제는 조선인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지우는 예비적 조치인 육군 지원병 제도를 실시하는 한편 ‘국체명징(國體明徵)’이라는 미명 아래 조선인들을 ‘황국신민화’...
관리자  |  2021-05-2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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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국’의 ‘거룩한 사명’
1936년 8월 26일 미나미 지로가 조선총독으로 새로 부임했다. 그는 바로 그 이튿날 ‘유고(諭告)’를 통해 조선 통치의 ‘5대 지침’을 발표했다. ‘국체명징(國體明徵)’ ‘선만일여(鮮滿一如)’ ‘교학진작(敎學振作...
관리자  |  2021-05-1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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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의 길로 더욱 치닫다(2)
사설 ‘거국 일치의 요’ 동아일보는 ‘대일본제국’이 중국에서 거두고 있는 ‘승전보’를 적극적으로 전하다가 8월 20일자 신문에 「거국 일치의 요(要)」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올렸다. 북지사변은 국지적 소충돌로 시작하여...
관리자  |  2021-05-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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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의 길로 더욱 치닫다(1)
동아일보는 복간된 지 사흘째인 1937년 6월 5일자 1면 머리에 ‘고노에(近衛) 내각 수(遂) 성립」이라는 일본 통신사의 기사를 실었다. 일본의 개각을 보도한 ‘용비어천가’ 「금일 각원 명부 봉정 / 오후 1시 반...
관리자  |  2021-05-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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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기 말소 사건’의 진상
1931년 9월 18일 ‘만주 사변’을 일으킨 뒤 일제는 중국 침략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조선총독부는 군국주의적 정책을 강화하면서 갈수록 언론 탄압을 강화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민족지’를 자임하는 동아...
관리자  |  2021-04-2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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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실상 왜곡하고 매도하기
1933년 8월 19일자 동아일보 석간 2면에는 「이청천 만주에 잠입 / 모종 중대 획책설」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모처 정보에 의하면 작년 9월 아성현(阿城縣)방면 일대에 뻗히어 반만(反滿) 반일의 단체를 규합하여 ...
관리자  |  2021-04-2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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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침략’ 이후 일제의 ‘홍보지’로 전락한 동아일보
1931년 9월 18일 일본군이 만주 침략을 시작했다. 일제는 그것을 ‘만주 사변’이라고 불렀다. 일본 군부와 우익은 일찍부터 만주의 이권을 차지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위해 일본 관동군 참모 이타가키 세...
관리자  |  2021-04-1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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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대한 소극적 저항
조선총독부는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조선어 신문사들에 일왕의 새해 동정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보냈던 것 같다. 1931년 1월 2일자 동아...
관리자  |  2021-04-07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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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동
1926년 6월 11일자 동아일보 1면 머리에는 「철옹성 같은 경계망리에 각처에서 조선 00 만세 고창(高唱)」이라는 기사가 크게 실렸다. 제목 안의 ‘00’은 ‘독립’일 텐데 총독부 검열에서 삭제된 것 같다. 작일...
관리자  |  2021-03-3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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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선기자대회와 동아일보
1925년 2월 2일자 동아일보 2면에는 전조선기자대회를 예고하는 기사가 올랐다. 신문사와 잡지사 등 언론기관에 재직한 조선인 기자로서 조직된 무명회(無名會)에서는 재작일 오후 7시 반부터 시내 돈의동 명월관에서 다...
관리자  |  2021-03-2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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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한 논조’로 급변한 동아일보
1924년 10월 초 김성수가 사장 겸 전무로 취임한 직후부터 동아일보 지면에는 진보적 성향이 강한 과격한 논설과 기사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선 사회의 대표적 자본가이자 보수적 인물로 꼽히던 그가 발행인으로...
관리자  |  2021-03-17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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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용인한 한계 안의 ‘진보적 보도’
동아일보가 창간 이래 국내외의 독립투쟁이나 세계의 사회주의 운동에 관해 보도한 내용을 보면, 1924년 9월 중순까지는 조선일보보다 훨씬 진보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독립운동가 신석우가 조선일보 판권을 인수한 때까지...
관리자  |  2021-03-1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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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금 협박 사건’과 동아 기자들의 개혁운동
동아일보 사주 김성수와 사장 송진우가 앞장서서 1923년 가을에 만든 연정회에 대해 최민지는 과는 전혀 다른 해석을 했다. (···) “지금 정세 하에서는 직접적인 독립운동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인도의 국민회의 ...
관리자  |  2021-03-03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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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과 해방을 부정한 사설 ‘민족적 경륜’
동아일보는 1924년 1월 2일자부터 6일자까지 5회에 걸쳐 「‘민족적 경륜」이라는 제목의 연속사설을 1면 머리에 실었다. 이 사설은 나라 안팎의 독립운동가들은 물론이고 언론계, 그리고 나아가서 전 조선사회에 엄청난...
관리자  |  2021-02-2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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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 대지진’ 보도
1923년 9월 1일 정오 가까운 무렵 일본 간토(關東)지방의 가나가와현 사가미만을 진앙지로 대규모 지진이 일어났다. 당시 조선에서는 그것을 ‘관동 대지진’이라고 불렀다. 5분 간격으로 세 차례나 터진 지진으로 10...
관리자  |  2021-02-17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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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성’ 헐뜯기
‘일본인 친구’에게 보내는 형식의 사설에서 일본제국주의들과 조선총독부를 극찬한 동아일보는 자신의 민족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었을까? 창간 4개월 남짓 뒤인 1920년 8월 9일자부터 23일자까지 동아일보가...
관리자  |  2021-02-1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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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지면
동아일보 창간호인 1920년 4월 1일자 신문은 3월 31일 저녁에 발간되었다. 일제의 조선 병탄과 식민 지배를 에둘러 간 ‘창간사’ 1면 머리에는 「주지(主旨)를 선명(宣明)하노라」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다. 창천...
관리자  |  2021-02-0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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