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9월 18일 ‘만주 사변’을 일으킨 뒤 일제는 중국 침략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조선총독부는 군국주의적 정책을 강화하면서 갈수록 언론 탄압을 강화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민족지’를 자임하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일제를 비판할 엄두도 못 내는 채 온순한 신문으로 연명하기에 급급했다. 1936년부터는 그런 경향이 훨씬 더 강해졌다.

  유독 ‘문화’를 강조한 1936년 신년사설

동아일보는 1936년 1월 3일자 1면 머리에 「일꾼들은 나오라」는 신년사설을 올렸다.

  새해는 수성(守成)에 꾸준한 노력이 있기를 바라는 동시에 창시(創始)의 뜨거운 성의가 있기를 우리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수성이 없는 곳에서 열매를 딸 수 없는 것 같이 창시가 없는 곳에서는 꽃조차 볼 수 없는 것이니 창시에 무종(無終)함보다 창시의 결여함이 더욱 저어할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매양 넉넉지 못하고 도움이 적은 우리의 창시에는 위험성을 선험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나 그렇다고 인순고식(因循姑息)하여 창시하기를 힘쓰지 않는다 하면 이 사회의 진보 발달을 무엇으로 기약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수성을 찬앙(讚仰)하는 것 같이 창시를 찬미하여야 할 것이다.
  살펴보건대 문화 방면으로만 할지라도 우리가 창시하지 않으면 안될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조선인의 총명한 두뇌는 씻은 듯한 그 빈곤 속에서도 발명의 싹이 피어올라 연년이 놀랄 만한 업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들을 위하여 무슨 기초 공고한 후원단체가 있느냐. 그리고 문화과학 방면에 있어서도 그들을 길러주고 도와주는 그 무엇이 있더냐. 이러고서 학자 없는 탄식만을 연발하는 것은 도리어 어리석은 일이라 하겠다. 조선에서도 한두 가지쯤은 이러한 발명가, 학자 양성의 온상적 기관이 있음직도 한 일이나 돌아보매 뉘 하나 그것을 꿈꾸는 자 있느냐. 우리는 이 창시가 있기를 선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횡적인 지식 보급에 있어서는 실비의 출판기관이 있어서 ‘읽을거리’ 없는 조선 농어산촌에 실익 있고 값싼 출판물을 배급함직도 한 일이건 만 이것을 위하여 일하는 자 누구냐. 농촌문화를 계발하여야 되겠다는 것은 누구나 동감일 것이로되 농촌문화를 위하여 실비의 양(良)출판물을 배급하였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하였나니 이 어찌 저어한 일이 아니며 부끄러운 일이 아니리라 할까. (···) 우리는 문화의 질적 비약을 희망하여 학자 양성의 급(急)을 말하였거니와 그 양적 보급을 희망하여 희생적 ‘읽을거리’ 배급의 필요를 더 고조(高調)치 않을 수 없다. (·····)
  그러나 민족사회에 바칠 거룩한 사업을 꾀하려는 자 어찌 주도한 용의가 없을 것이냐. 스스로 타당한 목표를 세워 실력에 부합하는 사업을 획책하여야 될 것이니 이는 증전(曾前)의 모든 실패를 그 귀감으로 삼는 까닭이다. 간판보다 일을 앞세우고 타방적 원조보다 자력적 분투를 밑천 삼아 가는 곳에 광명이 있고 이루어짐이 있을 것을 우리는 또 다시 한 번 깨닫고 나아가야 될 줄 안다.

1936년은 일제가 조선을 병탄한 1910년으로부터 27년째가 되는 해였다. 그동안 조선반도는 일제의 무단통치, 그리고 ‘문화정치’를 가장한 교활한 식민지 지배 때문에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황무지로 변해버렸다. 거기에는 나라의 주인이 누려야 할 주권이 없음은 물론, 언론·결사·집회·사상·표현의 자유가 전혀 없었다. 농민들은 ‘동양척식회사’를 앞세운 일제의 농지 약탈과 착취 때문에 고향을 버리고 등짐을 꾸려 도시나 만주 등지로 유랑할 수밖에 없었고 노동자들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저임금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그런 민중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조선사회를 향해 동아일보는 한가하게도 ‘문화 창시’에 관해 고상한 담론을 펼쳤던 것이다.

동아일보가 자랑하는 ‘일장기 말소 사건’

동아일보는 1920년 4월 1일 창간 된 이래 한결같이 한국의 ‘대표적 민족지’라고 자랑해왔다. 그 뒤 90년이 넘도록 창간 기념 특집호에는 ‘민족지의 화려한 업적’이 어김없이 나열되곤 했다.

동아일보가 민족지의 대표적 ‘거사(擧事)’로 내세우는 것이 바로 ‘일장기 말소 사건’이다. 먼저 <동아일보사사 권1>을 보기로 하자.

  1938년 8월, 베를린에서 제11회 올림픽대회가 개최되었다. 당시 독일은 히틀러가 집권하던 때로, 한 해 전인 1935년 3월에는 베르사이유조약의 군사조항을 일방적으로 폐기, 재군비를 공식 선언하는 폭탄선언으로 세계를 불안 속으로 몰아넣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히틀러는 새로 일어나는 독일의 국위를 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하여 올림픽사상 그 유례가 없는 규모의 크기로 대회를 벌였다. (·····)
  우리 한국에서는 나라 없는 설움을 딛고 마라톤을 비롯, 축구, 농구, 권투 등의 많은 선수가 일본대표단의 일원으로 이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 중에서도 마라톤에 큰 기대가 걸리어 민족의 이목이 이에 집중되고 있었다. (·····)
  이리하여 제11회 베를린올림픽대회 마라톤경기에 손기정, 남승룡 양 선수가 참가하게 되었다. 본보에서는 이미 임원으로 대회에 참가하게 되어 있던 이상백을 비롯하여 재독유학생, 선수 등에서 10명에게 위촉, 보도진을 편성하여, 올림픽대회에서의 우리 선수의 활약상을 신속히 보도하였던 것이다. (·····)
  8월 9일, 대망의 마라톤경기가 있게 되었는데, 경기시간은 한국시간으로 밤 11시였다. 본보 편집국에는 본사 사원뿐 아니라 사회유지들이 철야로 이제 들어올 소식에 대비하여 호외 준비를 위한 만반 태세를 갖추고 대기하던 중 8월 10일 효두(曉頭), 세계 인류의 꿈이었던 2시간 30분의 벽을 깨고 2시간 29분 19초 2로 우리 손기정 선수가 당당 1위로 골인하였다는 보도에 접하자 본사 내의 인사와 본사 앞 광장에 운집한 민중의 만세 함성이 일시에 폭발, 서울의 밤하늘에 메아리쳤다. (·····)
  1936년 8월 25일자 본보 제2면에는 일본의 주간지 <조일스포츠>에 실렸던 월계관을 쓰고 수상대에 오른 손기정 선수의 사진을 전재하였는데, 그 유니폼 가슴에 그려진 일장기를 교묘히 말소하여 실렸던 것이 끝내 소위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말썽을 빚어 본보 제4차 무기정간으로 번지게 되었던 것이다(361~364쪽).

동아일보사의 이 공식 기록에는 왜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지운 사진이 그가 우승한 날부터 15일이나 지난 8월 26일자 지면에 나타났는지에 관한 설명이 전혀 없다. 사진을 구하지 못해서 일본 주간지에서 옮기느라고 그랬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면 그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조선중앙일보가 먼저 감행한 ‘일장기 말소’

베를린 올림픽 메인스터디움의 시상대에 월계관을 쓰고 올라선 손기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말소한 사진을 맨 처음으로 실은 신문은 조선중앙일보였다. 조선중앙일보는 민족운동가 몽양 여운형이 1933년 2월 16일 중앙일보(1931년 11월 27일 창간)를 인수해서 사장을 맡고 있던 진보적 언론이었다. 그 신문은 동아일보보다 13일이나 앞선 8월 13일자 지면에 과감하게 그 사진을 올렸던 것이다. 조선중앙일보의 인쇄시설이 열악해서 사진이 총독부 검열관의 눈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 사건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동아일보사사 권 1>은 그런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도 않은 채 ‘일장기 말소’가 동아일보의 ‘선구적 단독 거사’인 듯이 자랑하고 있다.

  그 당시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세계 제패는 이겨본 일이 적은 우리민족을 흥분케 했고, 이 승리의 영광을 우리의 것으로 가지지 못하고 일본의 것으로 주기에는 너무나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런 민족의 아픈 가슴을 달래기 위하여 민족대변지를 자임해온 본보 동아일보가 그냥 무심히 넘길 수 없었던 것은 누구의 지시도 아니요 명령도 아닌 거의 자연발생적인 본보의 체질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이길용 체육부 기자가 조사부 소속 본보 전속화가 이상범 기자에게 일장기 처리를 논의하였는데, 그때 둘이는 그저 빙그레 웃었을 뿐, 별다른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이심전심, 내민 자도 받은 자도 서로의 의사가 소통되었던 것이다. 일장기 말소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1932년 김은배 선수가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대회에서 마라톤 6위로 입상했을 때도 눈에 거슬리는 가슴의 일장기를 기술적으로 말소했던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총독부측의 트집 없이 넘어갔던 경험도 있어 그들의 의사가 이번 일장기 말소에 합의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이 크게 문제가 되어 1936년 8월 29일자로 본보는 무기정간 처분을 받았고, 관계인사의 구속에까지 이르렀다. 사진부의 백운선·서영호, 그 사진을 실은 사회부 편집자 장용서·임병철, 사진과장 신낙균, 조사부 전속화가 이상범, 체육부 이길용 그리고 사회부장 현진건 등이 차례로 연행되고, 그 후 이 동판을 <신동아>가 실었다 하여 잡지부장 최승만, 사진부의 송덕수가 추가되어 당시 경찰부 유치장 여섯 방이 모두 동아일보 기자로 초만원을 이루어, 동아일보를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한다(364~365쪽).

동아일보가 조선중앙일보를 훨씬 늦게 따라 가서 ‘일장기 말소’를 실행했다고는 하지만 그 일에 앞장선 기자들의 용기는 높이 평가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동아일보사 경영진이 그 사건 처리를 위해 음양으로 드러낸 태도에 있었다. 오늘날도 동아일보는 ‘일장기 말소’가 ‘거사적 결단’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달랐다. <일제하 민족언론사론>의 기록을 자세히 보자.

  보전(보성전문:고려대의 전신-인용자) 이사실에서 이 사실을 전화로 연락받은 인촌은 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 급히 동아일보사로 오는 자동차 속에서 인촌은 히노마루(일장기) 말소는 몰지각한 소행이라고 노여움과 개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 신문사에 도착하니 밖에는 수많은 정사복 경관들이 지켜 섰고 사내는 마치 독립만세를 부르고 난 것 같은 흥분에 싸여 있었다. (···) 고하(송진우-인용자)도 (···) “성냥개비로 고루거각을 태워버렸다”고 이길용 기자를 크게 꾸짖으면서 흥분을 가누지 못했던 것이다. 인촌은 더 말이 없었다(<인촌 김성수전>, 동아일보사, 1976, 387~391쪽).
  일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아첨과 굴종을 서슴지 않던 경영진에게 이 사건은 청천의 벽력이었으며 노여움과 개탄을 금할 수 없는 몰지각한 행위였던 것이다. 거기다가 실제 몰지각한 한 기자의 행위였다 하더라도 그 보도에 대한 책임은 공적으로, 대외적으로는 편집국장, 사장 등이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장 송진우는 조속한 정간 해제 요청을 위해 미나미 총독 및 조선총독부 고관을 지낸 일본인들의 모임인 ‘조선중앙협회’의 줄을 찾아 동경에까지 손을 쓰는 과정에서 “회사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 기자의 독단으로 저질렀다는 것이 조사에 의해 분명해진 일 가지고 정간을 장기간 끌고 가는 총독부 처사에는 명분이 없다”고 학무국장을 지낸 세카다마(關玉正三郞), 정무총감을 지낸 미즈노(水野鍊太郞) 등에게 호소하였다. 어디까지나 이 사건은 회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저질러진 몰지각한 행위라는 것이 그 당시 사장, 사주 등 경영진의 논리였다. 그럼에도 그 당시 ‘몰지각한 행위’는 일 기자의 단독처사로 되어 있고, 오늘날에 와서 그 수난의 상처, 항일투쟁의 경력은 회사가 대신 차지하는 몰염치를 보인다(222~223쪽).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동아일보사 주필 김준연, 편집국장 설의식이 즉시 사임했고, 12월에는 조사부장 이여성, 지방부장 박찬희가 회사를 떠났다.

  구속된 8명은 40일 간에 걸쳐 준열한 문초를 받은 끝에, 총독부가 문안을 작성한 소위 서약서를 제출하는 일로 사건이 일단락되었으나, 이 서약으로 이 사건의 직접 책임자로 인정된 이길용, 현진건, 최승만, 신낙균, 서영호 등 5명은 다음과 같은 사항이 포함된 내용의 서약에 서명, 겨우 석방되었던 것이다.
  1)언론기관에 일체 참여 안 할 것 1)시말서를 쓸 것 1)만일에 또 다른 운동이 있을 때에는 이번 사건의 책임에 가중하여 엄벌 받을 것을 각오할 것 등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전기 유능한 5명의 기자가 신문계에서 물러났고, 그밖의 많은 사원이 사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총독부의 요구로 본사에서 제출한 사직자에 관한 보고서는 다음과 같다.

‘일장기 말소 사건’은 동아일보사가 총독부에 백기를 들고 투항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회사는 무기정간을 감수하면서 사장부터 평기자까지 13명을 강제해직함으로써 ‘민족지’라는 자랑이 허세였음을 입증했다. 그 사건은 이 총서의 제3권에 나올 동아일보사 언론인 대량해직의 ‘원형’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1975년 3월 초부터 중순까지 동아일보사 경영진이 박정희 정권의 압력에 굴복해서 자유언론실천운동의 주역인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등 113명을 강제해직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총독부의 정간 해제에 ‘황공무지로소이다’

동아일보는 1937년 6월 2일 무기정간에서 풀려났다. 무려 279일 동안이나 신문을 내지 못한 것이었다. 동아일보사는 6월 2일자 ‘호외’를 통해 아래와 같이 알렸다.

  금일, 본보 해정(解停) / 금일 석간부터 발행

  작년 8월 27일 총독부 당국으로부터 무기발행정지의 처분을 받은 본보는 이래 달로 열한 달, 279일 간을 기다려 오던 중 금일(6월 2일) 해정의 지령을 받고 금일 석간(6월 3일자)부터 발행을 계속하게 되었다.

동아일보는 정간에서 풀려난 뒤 처음 나온 6월 3일자 1면에 아래와 같은 ‘사고( 社告)’를 내보냈다.

  낭자(曩者) 본보에서 일장기 마크 말소 사건을 야기하여 당국의 기휘(忌諱)에 촉하게 된 것은 실로 공축불감(恐縮不堪)하는 바이다.
  이제 당국으로부터 발행정지 해제의 관대한 처분을 받아 금후부터 일층 근신하여 경(更)히 여사한 불상사를 야기치 않도록 주의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면을 쇄신하고 대일본제국의 언론기관으로서 공정한 사명을 다하여서 조선통치의 익찬(翼贊)을 기하려 하오니 독자 제위께서는 특히 조량(照亮)하시와 배전 애호하여주시기를 바라나이다.

  같은 날자 신문 1면 머리에는 ‘속간에 임하여」라는 글이 실렸다.

  본보는 금일로써 속간케 되었습니다. 만천하 형제자매가 일념으로 갈망해오던 이 희보(喜報)는 오늘에야 다시 귀 익은 방울소리로 여러분을 찾게 되었습니다. 회고컨대 본보는 작년 8월 27일 발행정지의 처분을 당하고 흘금(迄今) 만 9개월 6일 동안 전 기능이 정체되었으니 여러분은 그 얼마나 적막하고 지루하였으리까. 이 9개월 6일 간이라는 것은 우주의 전전부주(輾轉不住)하는 역사에 있어서는 극히 짧은 시간이라 하겠으되 우리사회의 발전 존속과 불가분의 맥락을 가진 본보의 존재의의를 다시금 인식할 때에 본보의 1일의 수면도 삼추와 같은 적막과 지루의 느낌을 여러분에게 드렸으리니 하물며 그 너무도 장구한 수면이었음에 상급(想及)할 때 다만 망연함을 금치 못할 뿐입니다. 더욱이 사회의 정형(情形)은 나날이 착잡다단의 도를 가하고 있는 이때에 있어서리이까. 이제 당국의 관대한 양해에 의하여 다시 발행하게 되었으니 속간 제1일에 있어서의 우리의 흉중에는 실로 지필로 다할 수 없는 정서가 배회하고 있습니다. (·····)
  (···) 돌이켜 생각하노니 본보의 갱생 부흥에 있어서는 본보 관계자의 힘도 힘이려니와 더욱 중대하고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만천하 형제자매의 간곡한 동정과 열렬한 성원이라는 것을 우리는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동정과 성원만 있다면 그 동정을 초석으로 삼아 능히 갱생의 거탑을 쌓을 수 있을 것이요 그 성원을 교량으로 삼아 능히 부흥의 피안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자매여, 이미 여러분의 요구로 본보는 탄생되었고 또한 여러분의 열정적인 지호(持護)만이 본보를 이제까지 성육(成育) 발전시켜온 것이니 이 ‘여러분의 동아일보’의 성쇠를 여러분이 어찌 월인(越人)의 비척(肥瘠)으로 여기시리까만 본보 갱생의 제1보에 있어서 우리는 다시금 사회 각 방면의 경일층의 애호를 기대하며 희구하는 바입니다.

동아일보가 내보낸 이 글을 읽은 많은 독자들은 그 신문이 ‘일장기 말소’ 때문에 총독부의 극심한 탄압을 받아 오랜 기간 ‘수면’에 빠져 있다가 다행스럽게도 ‘갱생’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사건 당시 사주인 김성수와 사장 송진우가 동아일보의 구구도생을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일제의 전직 고위관료들에게 목숨을 부지하게 해달하고 간청한 사실 따위는 순진한 독자들이 알 리 없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총독부의 ‘관대한 처분’으로 다시 신문을 낼 수 있게 되었는데도 위의 글에서는 “본보의 갱생 부흥에 있어서는 본보 관계자의 힘도 힘이려니와 더욱 중대하고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만천하 형제자매의 간곡한 동정과 열렬한 성원” 덕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창간 당시 ‘국민주주 회사’를 표방하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김성수 일가의 사유물처럼 되어버린 동아일보가 ‘만천하 형제자매’의 동정과 성원을 호소하는 것은 참으로 염치없는 짓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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