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는 1924년 1월 2일자부터 6일자까지 5회에 걸쳐 「‘민족적 경륜」이라는 제목의 연속사설을 1면 머리에 실었다. 이 사설은 나라 안팎의 독립운동가들은 물론이고 언론계, 그리고 나아가서 전 조선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동아일보가 “우리는 조선 내에서 허하는 범위 내에서 일대 정치적 결사를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일제의 강점과 수탈에서 벗어나려고 싸우는 독립운동가들이나 만주와 시베리아 등지에서 무장항일투쟁을 펼치던 전사들의 노선을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 연속사설은 한국 현대언론사에서 악명 높은 반민족적 문필행위 가운데 아주 두드러지는 것이므로 그 내용을 상세히 보기로 하자.

· 제1회(「민족 백년대계의 要(요)」)

  (···) “조선 민족의 장래에 대한 계획이 무엇이냐”하고 누가 우리에게 물을 때에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하랴. 가령 교육과 식산(殖産)의 진흥으로써 우리의 목적을 삼노라고 대답한다 하고 다시 아까 묻던 사람이 “그러면 너희는 교육은 어떤 방법으로 산업은 어떤 계획으로 진흥하려느냐” 할 때에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
  우리는 단결의 필요를 수십년래로 논하였고 또 단결하자는 의사도 그만큼 역설하여 왔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까지도 추상적 이론이었었고 실행 즉 구체화의 시기에 달하지 못하였었다. 이 모양으로 가는 동안에 우리의 민심은 날로 환산(渙散)하고 우리의 민력(民力)은 날로 쇠미하여 갔다.
  우리는 이러고 있을 수 없는 절박한 시기를 당하였다. 더욱이 신년을 당하여 과거를 회고하고 장래를 전망할 때에 위급의 감과 “시급히 무슨 운동을 해야겠다”는 전율할 만한 내적 요구가 치열함을 자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전 정력을 경주하여 차제에 민족 백년의 대계를 확립하고 그것이 확립되는 날 부터 그 계획의 실현을 위하여 전 민족적 대분발을 하여야 할 것이다.

· 제2회(「정치적 결사와 운동」)

  (···) 자유의 사상이 보급이 될수록 정치는 민중화하여 농민이나 노동자까지도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게 된다. 이리하여 사람은 더욱더욱 정치적 동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 민족은 지금 정치적 생활이 없다. 아마 2천만에 달하는 민족으로 전혀 정치적 생활을 결(缺)한 자는 현재 세계의 어느 구석을 찾아도 없을 것이요 또 유사 이래의 모든 사기(史記)에도 없는 일이다. 실로 기괴한 일이라 할 것이다. (·····)
  그러면 왜 지금에 조선 민족에게는 정치적 생활이 없나. 그 대답은 가장 단순하다.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 이래로 조선인에게는 모든 정치적 활동을 금지한 것이 제1인이요 병합 이래로 조선인은 일본의 통치권을 승인하는 조건 밑에서만 모든 정치적 활동 즉 참정권, 자치권의 운동 같은 것은 물론이요 일본 정부를 대수(對手)로 하는 독립운동조차도 원치 아니하는 강렬한 절개 의식이 있었던 것이 제2인이다.
  이 두 가지 원인으로 지금까지에 하여온 정치적 운동은 전혀 일본을 적국시 하는 운동뿐이었었다. 그러므로 이런 종류의 정치운동은 해외에서나 만일 국내에서 한다면 비밀결사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무슨 방법으로나 조선 내에서 전 민족적인 정치운동을 하도록 신생면(新生面)을 타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조선 내에서 허하는 범위 내에서 일대 정치적 결사를 조직하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
  그러면 그 정치적 결사의 최고 또는 최후의 목적이 무엇인가. 다만 이렇게 대답할 수 있도다. 그 정치적 결사가 생장하기를 기다려 그 결사 자신으로 하여금 모든 문제를 스스로 결정케 할 것이라고.

· 제3회(「산업적 결사와 운동」)

  (···) “먹어야 살겠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다.” 이것이 연래로 점점 격렬의 도를 가하는 우리의 절망적 절규다.
  그러면 어쩌나?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의견이 가장 많은 것 같다. 첫째는 맨체스터식 자유주의니 산업의 발달은 오직 각 개인의 자유투쟁에 일임할 것이요 결코 국가 혹은 단체가 간섭하고 좌우할 바가 아니라 함과 둘째는 보호주의라 할 만한 것이니 이것은 총독부의 정치가 비보호적이기 때문에 조선의 산업은 진흥될 수 없다는 의견의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두 편이 다 “어찌 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는 일치한 모양이다. (·····)
  조선의 산업은 (···) 산업적 대단결의 힘이 아니고는 결단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비록 이것이 완만한 듯하더라도 그것이 유일한 길인 이상에는 그것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 산업적 결사와 작일 본란에 말한 정치적 결사와는 비록 그 공업의 성질이 다르다 하더라도 또한 그 사업을 행할 자는 지도자 측으로 보거나 일반 민중으로 보거나 동일한 자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운동에 선후(先後) 완급(緩急)이 있을 것이 아니요 동시에 함으로 서로 기세를 보익(補益)할 것이다.

· 제4회(「교육적 결사의 운동」‘)’

  (···) 조선 고대의 교육은 첫째 전 민중도 아니었거니와 둘째 피적포이(避敵捕餌)의 이용후생적도 아니었었고 대부분 장식적이었으며 근년의 교육도 아직 이 구투를 탈(脫)치 못하였다. 대개 일반 민중이 아직도 구식적인 교육의 목적의 잘못됨과 교육의 진의를 깨닫지 못한 까닭이다. (·····)
  (···) 전 민중에게 과학적 지식을 보급하는 대운동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그리하고 이 운동은 민중 독물(讀物)의 간행과 민중(특히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강습소의 설치로 얻을 것이요 또 이 일을 하려면 거기 필요한 자금과 인물을 얻기 위한 민중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대결사를 조직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고 지금이 그때다.

· 제5회(「교육 산업 정치의 관계」‘)’

  (···) 우리는 이상에 4회에 긍(亘)하여 정치적 결사와 산업적 결사와 교육적 결사가 조선 민족을 구제하는 3위1체의 방안인 것을 말하였다. (·····)
  정치적 결사는 전 조선 민족의 중심세력이 되기를 기약하여야 할 것이니 이 결사의 의견이 곧 조선 민족의 의견이요 이 결사의 행동이 곧 조선 민족의 행동이 되기를 기약하여야 할 것이다. (·····)
  산업적 결사도 그 최후의 목적은 전 조선 내의 모든 산업의 통어에 있을 것이니 그리 하려면 거액의 자본이 필요하고 거액의 자본을 득하려면 수백 만의 회원이 필요하고 수백만의 회원을 얻으려면 역시 농민에게로 가야 할 것이다. 아마 이 대산업조합의 기초는 도시의 주민에보다도 농촌의 주민에 있을 것이요 또 있어야 할 것이다. (·····)
  교육적 결사는 농민에게 과학적 지식을 보급할 때에 경제학적 지식도 보급할 것이요 특히 농촌의 경제적 자치와 조선의 경제적 생활에 관하여 가르칠 바가 있을 것이니 각 농촌에는 반드시 대산업조합의 지점이 있어 그 농촌의 경제생활의 중심이 될 것이다. (·····)
  조선인으로 누구든 조선인의 운명을 근심하지 아니 하는 이가 있으랴. 또 조선인의 운명을 근심하는 이는 반드시 조선인의 생도(生途)를 궁구(窮究)할 것이다. 그러하거늘 지금까지에 조선의 민중적 경륜이 확립하지 못하여 전 민족이 거취를 찾지 못함은 심히 개탄할 일이다. 이에 우리는 우리의 확신하는 바를 피력하는 것이니 이것이 기회가 되어 민족적 경륜에 관한 열렬하고 심각한 토구(討究)가 생기고 아울러 금년 내로 그 경륜에서 나오는 제 사업이 서(緖)에 취(就)하기를 바란다.

  ‘경륜(經綸)’은 “일정한 포부를 가지고 일을 조직적으로 계획함 또는 그 계획이나 포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동아일보가 연속사설의 제목으로 내건 「민족적 경륜」은 “조선 민족을 위해 일정한 포부를 가지고 일을 조직적으로 계획함”을 뜻할 것이다. 그런데 5회에 걸쳐 연재된 사설에서는 ‘민족적 경륜’은 일제의 압박과 수탈에 시달리는 조선 민족이 실천할 수 없는 경륜이라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이 연속사설에서 민족의 현실을 가장 도외시하고 ‘구두선(口頭禪)’을 외치는 부분은 제2회(「정치적 결사와 운동」)이다. 동아일보는 “자유의 사상이 보급될수록 정치는 민중화하여 농민이나 노동자까지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게 된다”고 전제한 뒤 “조선 민족은 지금 정치적 생활이 없다”고 단정한다. “2천만에 달하는 민족으로 전혀 정치적 생활을 결한 자는 현재 세계의 어느 구석을 찾아도 없을 것이요 또 유사 이래의 모든 사기에도 없는” ‘실로 기괴한 일’이라는 것이다. 1924년 1월 초 전 세계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네덜란드, 벨기에 등 서구 여러 나라가 ‘경영’하는 식민지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 많은 식민지들 가운데 유독 조선에만 정치적 생활이 없다고 단언한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동아일보는 그 원인을 이렇게 풀이한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 이래로 조선인에게 모든 정치적 활동을 금지한 것”이 첫 번째 원인이라는 것이다. 서구의 제국주의·식민주의 세력은 식민지에서 정치활동을 금지하거나 방해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두 번째 원인은 조선인이 “독립운동조차도 원치 아니하는 강렬한 절개 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연속사설이 나오기 3년 전에 터진 3·1 독립투쟁은 독립운동이 아니고, 1920년 중국 상해에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을 원하는 정치결사가 아니었다는 뜻인가?

연속사설 「민족적 경륜」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허황한 주장과 공상적(空想的) 관념에 사로잡힌 ‘책상물림’의 탁상공론으로 ‘치장’되어 있다. ‘산업적 대단결의 힘’으로 조선의 산업을 일으키자고 외치는데, 일제의 하부구조에 편입된 조선의 ‘매판자본가들’을 어떻게 ‘산업적 대단결’로 끌어들일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이나 날품팔이로 연명하는 노동자들을 모아 ‘산업적 대단결’을 이루겠다는 것인가?

게다가 농민에게 과학적 지식과 함께 경제학적 지식도 보급할 수 있는 ‘교육적 결사’를 통해 농촌에 반드시 ‘대산업조합의 지점’을 만들어 ‘농촌 경제생활의 중심’으로 만드는 일은 누가 주도할 것인가? 총독부의 예산 지원을 받아 동아일보사가 책임지고 할 일인가?

‘민족적 경륜’ 사건에 대한 동아일보사의 주장

사설 「민족적 경륜」을 내보낸 이유와 그 이후의 사태에 관해 <동아일보사사 권1>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 사설은 민중의 백년지대계의 필요를 역설하고, 그 실천방향으로 정치, 교육, 산업 등의 결사를 주장하는 글이었으나, 글 가운데 특히 정치적 결사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조선에서 허하는 범위 내에서 일대 정치결사를 조직하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라고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 ‘조선에서 허하는 범위 내에서’가 특히 물의를 일으켰던 것이다.
  이 사설의 집필자인 이광수는 이 글을 발표하기 전에 북경으로 가 안창호를 만난 일이 있었는데, 그의 영향이 「민족적 경륜」으로 나타난 것이 사실이나, 안창호의 국민적인 실력배양으로 내일을 기약해야 한다는 생각을 ‘조선에서 허하는 범위 내에서’라는 부분의 삽입으로 표현상의 오류를 저지른 것도 사실이었다. (·····)
  (···) 「민족적 경륜」에 안창호의 영향이 반영되었다고는 하나 그것은 역시 이광수의 사견(私見)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한편 이 무렵 물산장려와 민립대학 설립의 양대 운동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좌절, 그 직접적인 원인은 총독부의 방해에 있었다고는 하나,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민족 자체의 취약성에 있다고 보고 민족운동의 신생면을 열기 위하여 지도층의 단합이 필요했던 것이다. 더구나 공산주의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는데 비하여 민족주의자들은 위축되어 있던 터이라 그 통합체를 꾸준히 모색, 김성수·송진우·최원순·신석우·안재홍·최린·이종린·이승훈·박승빈·조만식·서상오 등 16, 7명이 한 자리에 모여 이를 거론, 이 모임을 가칭 ‘연정회(硏政會)’라 명명하고, 거국적인 민족운동의 조직을 논의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무렵에 ‘민족적 경륜’이 나가게 된 것이 화근이 되기도 하였다. 이 사설을 연정회와 의식적으로 관련시키려는 사회주의계열에서는 표현상의 착오를 들어 공세를 폈던 것이다(229~231쪽).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의 ‘민족적 경륜’ 비판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펴내던 독립신문은 1924년 4월 26일자 사설을 통해 동아일보사 연속사설 「민족적 경륜」 가운데 특히 ‘정치적 결사’에 대한 대목을 준엄하게 비판했다.

  금년 1월에 동아지가 소위 「민족적 경륜」이라는 제목을 다일(多日)을 두고 논문을 게재한 바 그 보(報) 자체로는 일시의 느낌으로 일시의 논술한 것이 아니요 자기로는 계통 있게 사고(思考) 있게 또는 유일한 견지가 심착(深着)한 포부를 보인 것이요, 결코 일일 일설(一說)의 임사(臨事) 위문(爲文)한 것이 아님은 스스로 밝힌 바이라 그 전체의 논문이 과연 우리 민족적으로 당연히 받들 경륜인가 아닌가는 아직 말할 것도 없고 따라 그래야만 되고 안되는 것도 논평할 것 없이 제3일에 게론(揭論)한 소위 정치적 결사라는 문자에 지(至)하여는 실로 요외(料外)요, 소망하든 그 보지(報紙)의 것으로라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라, 우리가 오늘에 여러 가지 형세가 그 처경(處境)을 따라서 드러나는 동작은 자연히 같을 수 없다. 그를 인연하여 비록 그 취하는 바에만은 용서와 순회(諄會)를 부치고 그 잘못됨은 교정하도록 구하는 것은 또한 우리의 일꾼의 당연한 바이라. (···) 적어도 그 일보가 창간 당시 선언한 바에 의하여 더욱 우리는 애호하며 보석(保惜)하여 정신과 육체로 진보 또 명결(明結)되어 어두운 길에 한 자루 촛불을 기대하였으며 쓰러진 수풀에 한 가지 소나무로 길을 인도하여 주며 느낌을 끌어주는 것이 되라고 하고 따라 된 것이라 하여 무슨 일일(日日)의 다른 말은 하지 아니할 망정 그 마음과 그 기망(期望)이야 거의 다름이 없으리라. 종전(從前)으로 여러 가지 불만한 점이 적지 않다. 그러나 많은 순회를 부치며 또 조용히 용서하였다. (···) 그런즉 그 사역자들의 처리 불선(不善)이 당연한 책임을 인수하여 그 주체를 손상케 아니 하겠거늘 도리어 자기의 교정에 저어하여 말하는 이를 도리어 취구(吹求)하는 것은 방일자횡(放逸姿橫)한 기분이 자기의 과오뿐이 아님을 보이는 것이니 이와 같은 경우에 엄준(嚴峻)한 책문(責問)이 당연히 그 주체에까지 생각을 미치게 되는 것이니 심상한 토론 비평 등으로 볼 것이 아니며 더욱 무슨 자황(雌黃) 같이 생각하는 서기(恕忌)에 어둡지 말고 적어도 사(社)의 대표자는 먼저 자인(自引)의 의(義)를 먼저 일반에게 선(宣)하며 돌이켜 보구(補求)할 바를 생각함이 정당하다 하노니 이는 그 자체의 기(基)를 고(固)케 함이며 그 과오를 순회케 할 수 있는 것이거니와 그 길로 향하지 아니한다 하면 이는 유심(有心)한 동작이 어느 날이고 자명키 난(難)하니 그럴진대 어찌 다만 그 사의 불행일 뿐이랴(<일제하 민족언론사론>, 129~130쪽에서 재인용).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가 동아일보의 「민족적 경륜」을 점잖게 꾸짖고 사주의 책임을 묻기 전인 1924년 2월 10일, 동경유학생학우회는 10여 단체 대표들을 모아 동아일보 배척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한 뒤 「성토문」을 국내 여러 곳으로 보냈다. “국내에선 ‘그러한 일본 국체의 테두리 안에서의 어떠한 형태의 자치론도 반대한다’는 이른바 천도교 구파 등 민족진영을 비롯해 조선노농총동맹, 그리고 강한 항일논진을 펴고 있던 개벽지 등이 성토에 가담하였다. 조선노농총동맹은 4월 20일에 창립총회를 가진 사회운동의 집결체였는데 임시총회를 열어, 동아일보를 방해자로 지목, ‘그 신문의 주요간부와 옹호파를 사회에서 매장할 일’과 비매(非買)동맹을 여행(勵行)할 일, 그리고 각지에서 성토강연을 할 일 등을 가결하였다.”(같은 책, 128쪽).

「민족적 경륜」에 대한 조선 안팎의 격렬한 비판에 놀란 동아일보는 1월 29일자 사설(「정치적 결사와 운동에 대하여」)을 통해 비굴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의 논조로 ‘해명’에 급급했다.

「‘민족적 경륜」’이라는 연속사설의 필자인 춘원 이광수는 ‘조선의 문호(文豪)’라고 불리던 인물이었다. 1922년 5월 <개벽>에 「민족개조론」을 발표한 바 있는 그는 1923년 5월 ‘객원’으로 동아일보사에 들어갔다. 「민족적 경륜」은 그보다 한 해 전에 단재 신채호가 중국 상해에서,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의 부탁을 받고 작성해서 1923년 1월에 발표한 「조선혁명선언(일명 의열단선언)」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조선혁명선언」의 주요 대목을 보자.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國號)를 없이 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 생존의 필요조건을 다 박탈하였다. (·····)
  강도 일본이 헌병정치·경찰정치를 힘써 행하여 우리 민족이 한 발자국의 행동도 임의로 못하고 언론·출판·결사·집회의 일체 자유가 없어 고통과 울분과 원한이 있어도 벙어리의 가슴이나 만질 뿐이요, 행복과 자유의 세계에는 눈 뜬 소경이 되고 자녀가 나면 ‘일본어를 국어라, 일본글을 국문’이라 하는 노예양성소 학교로 보내고 (·····)
  조선민족의 생존을 유지하자면, 강도 일본을 쫓아내어야 할 것이며, 강도 일본을 쫓아내려면 오직 혁명으로써 할 뿐이며,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일본을 쫓아낼 방법이 없는 바이다. (···)
  금일 혁명으로 말하면 민중이 곧 민중 자기를 위하여 하는 혁명인 고로 ‘민중혁명’이라 ‘직접혁명’이라 칭함이며, 민중 직접의 혁명인 고로 그 비등(沸騰)·팽창의 열도가 숫자상 강약 비교의 관념을 타파하며, 그 결과의 성패가 매양 전쟁학상의 정해진 판단에서 이탈하여 돈 없고 군대 없는 민중으로 백만의 군대와 억만의 부력(富力)을 가진 제왕도 타도하며 외국의 도적들도 쫓아내니, 그러므로 우리 혁명의 제일보는 민중 각오의 요구니라. (안병직 편, 「성토문」, <신채호>, 한길사, 1991, 187~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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