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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극동전략 핵심-정전협정,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고승우의 한미관계 탐구 (19)] 정전협정 체결과 그 이후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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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5.0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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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은 미국과 소련의 극동전략과 직결되어 있고 한미상호방위조약 등 한미동맹에도 밀접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소련과 중국의 공산주의를 제어할 버팀목으로 일본을 지목해 전후 처리에서 파격적인 혜택을 일본에 제공하는데 그 결정체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었다.

미국의 일본정책은 맥아더를 통해 2차 대전에 대한 일본의 범죄 처벌을 최소한으로 제한해 전범처리, 전후 배상 등에서 파격적인 시혜를 베풀었고 그 과정에서 남한은 중요한 고려대상에서 제외됐다. 미국은 일본 천왕제를 유지하고 전범처벌을 극소화하면서 일제치하에 존재했던 행정기구나 그 인력을 활용해 일본에 대한 군정을 실시했다.

미국은 일본 731 부대가 조선인과 중국인 다수를 포함해 최소 3천 여 명을 생체 실험 대상으로 삼고 중국인 수십 만 명을 세균탄으로 살해했는데도 실험 결과를 미국이 넘겨받는 조건으로 책임을 묻지 않았다. 731 부대 책임자는 일본 천왕의 인척으로 일제에 의해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생체 실험을 강행했다. 미국은 남한에 대해서도 일제 식민지로 보고 일본전후 처리와 동일한 방식으로 군정을 실시했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가 한일 양국의 분쟁 대상이 되도록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주한미군 사령관 3개 사령관 겸직, 한국 주권국 요건 못 갖춰

미국은 정전협정과 관련된 유엔사를 존속시켜 제 2의 6.25가 발생할 경우 1950년과 같은 다국적군을 모집해 한반도로 보낼 중간기지 시스템을 일본 유엔사 후방기지 7곳에 유지하고 있다. 즉 일본의 7 개 항구에 가동 중인 유엔사 후방기지는 함선과 병력의 접안과 수용시설을 갖추고 있고 현재 공해상에서 북한 함정을 검색하는 영국, 독일 군함들의 기착지가 되어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의 군사력을 남한에 배치할 권리를 보장하고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할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엔사와 한미연합사 사령관 등 3개 사령관을 겸직하고 있어 한국에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군사적 돌발 사태에 대비할 체제를 갖추고 있는데 이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군사적 주권이 상실된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주권국가로서 필요하고 충분한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1952년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일본 천왕제 유지와 전범 처리 최소화, 일본의 전쟁범죄 배상 부담을 경감시켜주었다. 이 강화조약 협의 과정에 미국은 가스라-테프트 밀약을 존중한 듯 독도에 대해 일본이 그 영유권을 주장할 근거를 마련해 줘 미래의 한일 전쟁이 발생할 빌미를 제공했다. 미국은 이 강화조약 서명국에서 조차 한국을 배제했고 한국정부는 그에 대해 침묵했다. 오늘날 일본군 성노예, 강제징용 문제 등이 지속되는 근거를 미국에 제공한 셈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협상 과정서 일제 최대 피해국 남북한 배제

미국은 패전국 일본이 신속하게 경제회복을 실시할 수 있도록 그 배상책임을 최대한 가볍게 하는 방식으로 강행하면서 베르사이유 강화조약에서처럼 패전국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응징하는 차원에서 가혹한 배상책임을 지게 하는 방식은 철저히 배제했다. 이 과정에서 남북한이 일제에 의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주체인데도 일본과의 강화조약 체결을 위한 협의단계나 최종 협정 서명국에서 한국을 배제했다(“Participation of the ROK in the Japanese Peace Settlement,” 12 Dec 1949, Box 4, Folder “DRF 163”, Reports Relating to the Far East, 1946-1952, RG 59.).

미국이 남한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추진 과정에서 배제하는 것을 일본도 찬성했다. 결과적으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일본의 경제적 배상 문제는 일제에 의해 피해를 당한 국가들과 일본이 개별적 협상을 통해 추진토록 하는 방식으로 결론이 나면서 일본이 전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룰 토대가 되었다.

한편 미국이 일본과의 강화조약 체결 과정에서 남한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에 대해 이승만은 거의 방관하는 입장이었다. 이승만은 북한과 중국을 군사적으로 제압해야 한다는 맥아더의 주장에 적극 동조하면서 미국과 소련이 정전협정을 추진하는 것에 격렬하게 반대해 반공포로 석방을 강행하고 한국군이 단독으로 북진을 하겠다며 무기를 미국이 공급해 달라는 식의 주장을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계속했다.

이승만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조건으로 정전협정 체결에 동의했다(“Hanmihyŏpyak hyujihwarŭl wuryŏ” [Anxiety about the Armistice Being made a scrap of paper], July 26, 1953. Kyunghyang Daily). 이승만은 그러나 정전협정 규정에 따라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을 위한 협상에 대표단을 보내지 않고 북한과 중국의 재침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정전협정을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승만에 대해서는 남한이 충분한 군비태세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북진통일만을 주장하고 남북 협상을 원천적으로 외면하다가 6.25 전쟁 발발 직후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수원으로 피신할 때 미국 군사고문단에 사전통고도 하지 않았던 점에서 전쟁 초기에 이승만에게 해외망명 정부를 세우라고 권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정전협정 협상과정에서 이승만이 국군으로 단독 북진하겠다고 주장할 때 제거할 계획까지 추진했다(“Han’gukunmyŏngŭi Chungdaegiro [Crucial Crossroad of Korea’s Destiny],” June 27, 1953. Kyunghyang Daily).


이승만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조건으로 정전협정에 동의

이승만은 △자신의 북진통일론을 1960년 실각할 때까지 북진통일을 주장하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미국의 아시아 전략의 출발점이라는 점이었고 남한을 배제한 것이 국제법적 상식에 비춰 설득력이 없는데도 침묵한 것은 외교적 역량이 크게 부족했거나 엄청난 실책이라는 비판을 자초한다. 이승만이 자신의 북진통일 주장에 쏟았던 열정의 몇 십분의 일이라도 샌프란시스코 평화협정에 쏟으면서 국제여론전을 주도했다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판도가 오늘날과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승만은 정전협정 체결 대가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만들 때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즉각 개입하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관철하지 못했고 대신 주한미군의 남한 배치를 ‘권리’로 인정해 주면서 주한미군의 부지, 시설, 주둔 비용까지 부담하는 식의 퍼주기 조약을 만드는데 그쳤다.

오늘날 이승만을 평가할 때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한국의 경제발전이 가능했다며 ‘국부’로 칭송해야한다는 식으로의 견해가 수구세력 등을 통해 제기되는 것이은 가짜뉴스라는 비판을 벗어나기 어렵다. 미국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당시 한국을 서명국에서도 배제해 40 여 년 동안 일제에 의해 전 방위적으로 탄압받고 수탈당한 것에 대한 배상 문제를 원천 배제한 책임이 더 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승만이 한국군만으로 북진통일을 추진한다는 것을 줄기차게 주장한 것 등과 관련해 지난 수 십 년간의 남한 군사전략은 남한 군이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에 대한 대비를 최우선으로 철저히 해오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선제타격 발언을 한 것에 미국이 어떤 식의 판단을 했을까 하는 점은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면담 계획 추진에서 그 윤곽이 드러난다 하겠다. 미국의 한반도 전략을 미국의 동북아, 세계전략의 한 부분으로 보고 한국의 독자적인 군사행동은 철저히 방지한다는 점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70년 된 세계 최장 정전협정, 평화협정으로 전환 해야

올해는 ‘한국전쟁 정전협정 70년’이 된다. 한국전쟁은 정전협정으로 일단 총성이 멈추고 70년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정전협정은 한반도에서 전투 행위를 잠정적으로 중단시켰을 뿐이다. 정전협정은 한반도의 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정치적으로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킬 평화협정을 추진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지만 아직껏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정전협정은 6·25 한국 전쟁이 세계 대전으로 비화되어서는 안 되다는 국제 여론이 높아지면서 그 체결을 위한 노력이 6·25 발발 이후 유엔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 시도 되었다. 1950년 12월14일, 유엔은 정전을 위한 총회결의를 했고 이를 위해 중국과 협상을 시작했다. 중국과의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자 미국은 1951년 6월 야콥 말리크 유엔주재 소련대사를 만나 논의한 뒤 소련에서 먼저 협상을 제안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7월 1일,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김일성과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 펑더화이가 공동으로 휴전협정 동의를 발표한 뒤 2년 가까이 휴전 협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그러다가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159차 휴전회담 본회의에서 유엔군측 수석대표 W.K. 해리슨과 공산군측 대표 남일이 세 통의 휴전협정서와 부속문서에 각각 서명한 뒤 유엔군 총사령관  M.W. 클라크,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 펑더화이가 각각 후방사령부에서 서명했다.

협정서는 5조 63항으로 구성된 전문, 11조 26항의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국문·영문·한문으로 작성되었다. 전문에 의하면 한국에서의 분쟁을 종결시키기 위하여 한반도에서의 전투행위와 모든 무력행동을 완전히 종결시킬 정전을 목적으로 체결되었다. 휴전의 성격은 순전히 군사적인 것으로 6·25전쟁에서의 교전국에게만 해당되었다.

주요 내용은 ①군사분계선을 설치하고, 양측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km씩 후퇴하여 완충지대로서 비무장지대를 설치한다. ②군사정전위원회를 구성하여 휴전협정의 이행을 감시하며, 스웨덴·폴란드·스위스·체코슬로바키아 등 4개국으로 중립국감시위원단을 구성하여 군비증강을 감시·조사하게 한다. ③양측이 억류하고 있던 포로를 송환할 것과 본국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는 중립국송환위원단에 인도하는 것을 결정했다. 이 협정으로 6·25전쟁이 일어난 지 3년 1개월 2일 만에 휴전되었다.

▲ 미 국방부가 작성한 중국군의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사정권을 표시한 자료. 한국 대부분의 지역이 중국군 SRBM의 사정권안에 들어가 있다. SRBM은 사거리가 300km 이상 1,000km 이하로 재래식 탄두는 물론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 사진=위키미디어


미국, 1956년 핵무기 한국 배치 공식화 정전협정 일방적 위배

정전협정 60항은 이 협정 조인 후 3개월 이내에 정치적 협상을 벌여 평화협정을 추진하도록 촉구하고 있어 1954년 4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관련회의가 열렸지만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미국은 이 협정 13항에 규정된 새 무기 도입 금지 규정을 어기고 1956~1957년 남한에 핵무기 배치를 공식화하면서 정전협정을 일방적으로 위배했다. 미국은 정전협정 이후 최초로 이 협정문의 일부를 공식 폐기할 의사를 밝힌 것이다(https://en.wikipedia.org/wiki/Korean_Armistice_Agreement).

한국전에 참전한 유엔군도 대표하는 미군은 1957년 6월21일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유엔군 사령부는 정전협정 13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북측에 통보했다. 미국은 이런 통보를 하기 전에 북한이 이 조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했지만 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미국은 그 다음해인 1958년 1월 단거리 핵미사일과 280mm 핵 발사 대포를 주한미군에 배치하고 이어 1959년 중국과 소련을 사정권 안에 둔 크루즈 핵미사일을 반입했다.

당시 북한은 핵전에 대비하기 위해 군대를 전방에 배치해 미국이 북에 대해 핵무기 사용 시 미군이나 한국군도 동시에 핵 피해를 입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으며 1963년 소련과 중국에 핵무기 개발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남측에서 논란이 된 전방지역의 땅굴도 북한이 핵전에 대비하기 위해 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정전협정과 관련해 남북이나 유엔 등은 1970년대 이래 이런저런 움직임을 보였지만 평화협정 추진 동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남북은 1972년 7·4공동성명과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에서 상호간 불가침을 선언했지만 이는 정식 조약이나 평화조약이 아닌 것으로 북측이 주장하고 있다.

유엔 총회는 1975년 유엔사령부를 해체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이행되지 않았다. 당시 미국은 한미연합사령부를 만들어 미군이 평화협정 체결이후에도 계속 남한에 주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꼼수를 썼다. 1996년 유엔안보리는 의장성명을 통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기 전에 정전협정이 철저히 준수될 것을 강조했다.

북한은 정전협정 무용론을 오래전부터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정전협정을 준수치 않을 것이라고 1994, 1996, 2003, 2006, 2009, 2013년에 최소 6차례 발표했고, 미국이 남한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하면서 실질적인 정전협정이 파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북한과 함께 1994년 군사정전위원회 참가를 중단하고 대표단을 철수시켰다. 그러나 북한은 판문점에서 연락관을 통해 접촉하는 등 정전협정의 일반적 조건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이 2002년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탄한 뒤 북한은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을 실시했고 미국은 2010년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는 불가역적 조치를 취할 경우 평화협정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은 2013년 3월 남북 간의 불가침 협정을 폐기한다고 발표하면서 핵 선제공격을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었다.

한국 전쟁은 승패가 가려지지 않으면서 그 전쟁의 책임이나 보·배상 문제 등은 전면 보류된 상태다. 이 전쟁은 여전히 논란이 많아 앞으로 여러 각도에서 점검되어야 하고 그에 따른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역사적 과제로 방치되어 있다. 특히 국가보안법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전쟁에 대한 다각도의 접근과 해석 등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인명피해가 막대했다는 점이다.

남북한 간에 전쟁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다각도로 노력해야 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북한의 법적 위상이 2중적이라는 사실이 지적되어야 한다. 북한은 남한과 같이 유엔 회원국으로 국제법상으로는 국가인데 반해, 국가보안법과 같은 한국 국내법으로 보면 민간인간의 접촉도 불가능한 반국가 단체일 뿐이다.

이런 이중적인 북한의 법적 위상은 국내에서 평화통일 운동이 친북 운동으로 처벌 또는 탄압 받는 빌미가 되고 있다. 수구보수 정권은 간첩단 사건 조작 등을 통한 공안정국 조성을 통해 민중을 탄압하는 일을 반복했었다. 과거 되풀이 되었던 공안정국에 앞장섰던 정부 기관들은 평화통일 운동을 친북반미로 규정하고 국보법을 앞세워 탄압에 앞장섰지만 민주화된 뒤에도 그에 대한 반성이나 청산은 없었다.

향후 남북한 정세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해지면서 남한의 군사적 자주화, 유엔회원국에 걸 맞는 주권국가의 위상 회복, 평화적 통일노력이 매우 중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고려할 때 공안기관들이 유사한 과오를 반복해서 역사에 오점을 남겨서는 안 될 것이다.


정전협정, 평화협정으로 전환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한반도의 전쟁 방지 장치는 정전협정이 유일하다. 더욱이 정전협정은 껍데기만 남은 상태다. 한반도의 위기는 정전협정을 실효적인 군사, 정치적 협정으로 대체하지 않는 한 해소될 수 없다. 한국은 군의 전시작전지휘권조차 미국에게 계속 행사하도록 맡긴 형편으로, 군사적 자주권 행사를 통한 한반도 당사자다운 홀로서기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6·25전쟁 당시부터 북한에 대해 핵무기 사용을 집중 검토했고 정전이후에도 북에 대한 핵 위협을 그치지 않았다. 미국은 한반도를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전략 주요 지역으로 삼아 90년대 초까지 매년 팀 스피리트 훈련을 통해 핵무기 및 재래식 무기를 동원해 북한을 압박하는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이런 상황에 큰 위협을 느낀 북한은 핵무기 자체 개발을 시작해 결국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할만한 소형 핵무기를 개발해 미 본토까지 위협하게 된 것으로 미국 안보 전문가들도 언급하고 있다. 핵무기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대치와 상호위협의 모습을 볼 때 한반도 평화협정이 진즉 체결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미국이 1958년 핵무기를 한국에 처음 들여온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서다. 이 조약에 따라 미국은 원하는 모든 무기를 한국에 반입할 수 있고 한국은 이를 승인해야 한다. 미국의 무기 반입 의사에 한국은 수용할 뿐 반대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즉 사드의 한국 반입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이 조약에 따르면 사드 문제는 미국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 주한미군에 배치할 수 있고 단지 한국이 한미행정협정, 즉 SOFA에 의해 그 비용을 얼마나 대느냐 하는 것만이 협의사항이 될 뿐이었다.

그런데도 국내 정치권이나 대부분의 언론은 한국이 마치 반대할 권한이나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쉬운 정보만을 양산할 뿐 군사주권이 원천적으로 전무한 한국의 실상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향후 미중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한국이 미국의 대중전략에 동원될 경우 중국이 반발해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 등을 취할 가능성이 크고 미국이 주도하는 정전협정 구도는 더욱 강화되면서 평화협정 전환 가능성은 더욱 멀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 2006년 4월 군산 지역 상공을 비행하는 미공군 F- 16 전투기. 사진=위키미디어


미국 북한 위폐 사건 터뜨려 6자회담 추진 중단시켜

중국이 주도한 6자회담은 관련국들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로드맵까지 만드는 성과를 거뒀지만 실행단계에서 미국의 돌발적 행동 등으로 백지화되었다. 6자회담은 지난 2005년 9·19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국제원자력기구(IAEA)로 복귀하며 한반도 평화협정, 북미 간의 신뢰구축 등을 골자로 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미국이 그 해 10월 북한의 달러 위폐 사건을 터뜨리면서 그 이행이 중단되었다. 외국의 화폐를 위조하는 것은 전쟁 선포와 같은 중대한 도전으로 인식되는 중차대한 범죄행위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까지도 북한이 가짜 달러를 만든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협정이나 비핵화를 거론할 때 북한이 핵무기를 감추거나 비밀리에 제조할 가능성을 검증하기 어렵다는 점을 미국이나 한국 일각에서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한반도의 정전협정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속셈으로 내세우는 비현실적인 주장이라는 비판을 자초한다. 그것은 현대 과학의 발달로 미국과 러시아가 상호 검증 속에 전략 핵무기 감축 협상을 수십 년 간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미국과 러시아는 위성과 항공기, 감시 검증 전문 요원 등을 통해 서로 상대방의 핵무기 감축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검증 기술을 한반도에도 적용하면 되지만 미국은 ‘북한을 믿을 수 없다’는 태도로 현상 유지를 고집하고 한국도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전협정 유지는 미국의 동북아 군사전략 수행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 여부가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은 중국의 목을 겨누는 칼로 비유되고 있다. 미국은 정전협정을 계속 유지하면서 현재와 같은 전략적 이익을 동북아에서 유지, 증대하고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점을 이용해 전작권을 한국군에게 넘긴 뒤에도 유엔사를 통한 남한에 대한 군사적 통제권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한국은 이에 끌려가는 형국이다.

▲ 필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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