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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중국 의식해 한반도 점령군 사령관 하지 중장으로 교체[연재] 고승우의 ‘미국의 한반도 개입 151년’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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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4.1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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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태평양 전쟁 이후 한반도에 대해 연합국과 협의해 식탁통치를 실시한 뒤 적절한 절차를 거쳐 독립하게 만든다는 원칙을 세우고 포츠담, 카이로 회담 등에서 영국, 중국, 소련 등과 그런 식의 합의를 했다.

미국은 일본이 붕괴 또는 항복한 이후의 한반도 점령정책을 1942년부터 미 국무부 등 연방정부 차원에서 논의 결정되고 태평양전쟁 종전이 임박하면서 그것이 ‘미 대통령 – 미 전쟁부 – 미 합동참모본부 – 맥아더’라는 지휘계통을 통해 미군에게 통고되어 집행되었다.

미국이 일본에 원폭 두 발을 터뜨려 일본의 항복이 임박한 상황에서 오키나와와 필리핀에 주둔 중이던 미 야전군 10군은 한반도 점령 명령을 받았다. 10군은 동시에 사령관으로 중국에 주둔해 있던 미군 사령관 조셉 스틸웰 대장이 임명되면서 서울로 이동하기 위해 분주히 서둘렀다.주1)

스틸웰 대장은 동아시아에서 일본군과 싸우던 도중 장개석과 다투다가 1944년 10월 오키나와로 전출되어 미 야전군 10군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태평양전쟁 종전 당시 일본군 공격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했는데 그의 휘하에는 2개 보병 사단과 존 하지 준장이 지휘하는 전투 및 지원부대인 24(XXIV) 군단이 있었다. 하지 중장은 오키나와를 수비하기 위해 후방에 주둔 중이었다.주2)

스틸웰 대장의 일급참모 프랭크 메르릴 준장은 1945년 8월 11일, 미 야전군 10군은 일본본토에 대한 점령 작전이 시작된 ‘B-DAY’이후 27일째 되는 날 한반도를 점령하기 위한 작전을 개시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때는 미국이 8월 6일 히로시마시에 이어 8월 9일 나가사키시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려 일본의 항복이 임박한 시점이었다.


아시아를 잘 아는 스틸웰 대장, ‘그들이 내 목을 다시 잘랐다’며 분노

1945년 9월 8일 서태평양 Solomon 제도 최대의 섬인 부겐빌에서 일본군이 호주군에게 항복하는 장면. [사진출처 - 위키미디어]

8월 13일 스틸웰 장군이 맥아더와 협의하기 위해 마닐라를 방문한 뒤 가벼운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그가 병실에 있는 동안 미 야전군 10군 사령부는 한반도 점령 계획이 수정되었다는 통고를 받았다. 스틸웰 대장 대신 하지 중장이 한반도 점령미군 사령관으로 교체된 것이다.

스틸웰 대장은 아시아를 잘 아는 군인이었지만 하지 중장은 태평양 전선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려서 무공훈장을 받은 야전 전투 사령관으로 일본 점거에서 해방된 아시아 국가의 행정을 지도할 특별한 능력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한반도 점령 사령관이 교체된 이유는 확실치 않다.

맥아더는 스틸웰 대장에게 워싱턴에서 통보된 교체 이유를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장개석 총통이 스틸웰 대장이 지휘하는 미군이 중국 해안에 상륙한다는 소문을 듣고 트루먼 대통령에게 불평했으며 트루먼 대통령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개석 총통에게 다짐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한반도를 일본 해안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어서 맥아더는 스틸웰 대장을 한반도 점령군 사령관에서 제외시키기로 결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스틸웰 대장은 자신의 일기장에 “그들이 내 목을 다시 잘랐다. 왜 그들은 나를 지지하기는커녕 내몰려 하는가?”라고 썼다.주3)

미국이 한반도 점령군 지휘관을 교체한 결정은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하지 중장은 미 군정청(USAMGIK ;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사령관을 맡은 1945년 9월 8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복잡하고 폭발력이 강했던 한반도 상황에 무감각했고 그가 개입하기 전에 이미 복잡했던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정들을 내놓았다.주4)


미 정부 결정, 독립 열망 강했던 한반도 현지 사정 완전 배제

당시 미국의 한반도 점령정책은 1905년 가스라-테프트 밀약을 의식하고 연합국과의 마찰 회피, 소련의 견제나 미국의 국익만을 주로 고려해 만들어진 것으로 문제가 많았다. 맥아더 본인이 공산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해 일본 점령 정책에서도 이런 점이 중요하게 반영되었고 하지 중장도 이를 철저하게 추종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일본에 식민지로 강점되어 독립 열망이 강했던 한반도 현지의 특수 사정 등은 완전 배제된 미 연방정부의 결정이어서 미 군정청이 군정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맥아더가 미 정부로부터 명령받은 일본 항복직후 전후 처리 정책은 일본과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를 구분치 않은 채 동일한 내용이었다. 만약 하지 중장이 스틸웰 대장처럼 아시아 사정에 해박한 인물이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큰 부분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미국 일부 전문가들도 하지 중장 교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스틸웰 대장이 한반도 점령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그는 암에 걸린 상태였고 일년 후 사망했지만 그가 한반도에 갔을 경우 하지 중장보다 더 매끈하게 통치했을 가능성을 전면 부인키 어렵다.

하지 중장의 한반도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나 경험 부족은 그가 자신의 재량권 범위 안에서 결정을 내릴 때 분단 한반도의 정치적 대치상태를 심화시키거나 심지어 한반도 전쟁을 야기한 원인의 하나로 지적되기도 한다.

8월 15일 일본 정부가 항복 조건을 받아들였다고 발표하자 24군단 메르릴 준장은 지휘관들에게 ‘8월 15일이 B-DAY가 되었다. 한반도 점령 미군의 이동 준비 작업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맥아더 사령부가 만들었던 일본과 한반도 점령계획 Blacklist에 따르면 누가 점령 지역 어느 곳으로 가는지를 지정하고 목적지에 도착한 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총괄적인 지침을 주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났을 때 이 계획을 실행하는데 필요한 어떤 기본 계획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미, 일본 항복하자 한반도 부대 파견 서두르며 소련 동향 살펴

1945년 1월 영국군이 버마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뒤 파괴된 사원 부근을 순찰하는 장면.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7보병 사단과 그 본부가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었지만 한반도 점령군으로 지정된 다른 부대는 이오지마나 팔라우 군도 남쪽의 아과르, 필리핀 전역의 여러 섬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들 부대는 즉시 출발해서 오키나와로 수송되어야 했고 그 이후 한반도로 이동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함선이동은 매우 중요했고 일본에 대규모 점령군 병력 이동은 최우선 과제였다.

매우 어려운 수송 작전의 책임은 7함대 상륙군의 다니엘 바베이 부제독에게 주어졌다. 그와 그의 참모들은 당시 마닐라에 있었고 그 휘하의 함선들은 서 태평양상에 흩어져 있거나 뉴기니처럼 먼 곳에 있었다.주5)

바베이 부 제독이 자신의 수송 및 전투함을 정리할 동안 제24군단 예하의 제24군수지원사령부(ASCOM ; Army Service Command 24th Corps)는 점령군 지원에 필요한 보급품을 선적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엄청난 보급품이 일본 침공을 위한 준비 작업 과정에서 오키나와에 쌓였다. 이들 보급품의 목적지를 재조정하는 작업은 단 기간 안에 처리해야할 급선무였다. 그러다 보니 혼선이 불가피했다.

맥아더 사령부는 점령군 사령관들에게 ‘보급선이 점령군의 다른 업무를 지원하려던 업무를 변경해야 하기 때문에 점령지에 도착할 보급품이 원래 목적지가 아닌 곳으로 배정되는 일이 발생하지 말도록 경고했다.주6)

24군단은 원래 열대지역에서 겨울이 추운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어서 모든 군인들은 여름 복장을 하고 있었고 동절 장비를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털옷과 난로, 텐트 등을 실은 보급선이 알라스카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 보급선이 항로를 돌려 미군이 한반도에 당도한 직후에 인천에 도착할 수 있었다.주7)

제24군단 예하의 제24군수지원사령부(ASCOM ; Army Service Command 24th Corps)가 군인과 군수품을 인천으로 떠날 군함에 선적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하지 중장은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진행 중인지 살피고 있었다. 그는 소련과 일본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8월 22일까지 소련은 만주를 점령한 상황이었지만 한반도 상황은 모호했다. 맥아더는 한반도 점령이 연합국 4개국 공동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미 전쟁부에 한반도와 관련해 연합국(특히 소련)과 합의한 사항을 알려줄 것을 요청했다.

9월 1일 미 국무·육군·해군 삼부조정위원회(SWNCC)는 맥아더에게 답신을 보내 ‘한반도 점령과 관련해 영국, 중국이나 다른 국가가 의사표명을 하지 않을 경우 미국과 소련군이 담당할 것이다. 한반도 점령과 관련한 국제적 협의조정 문제는 미 국무부가 긴급 사항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주8)

맥아더는 미 국무부의 답신을 받기 전에 하지 중장에게 전문을 보내 ‘제24군단이 케이조(서울) 지역에 당도하기 전 소련군이 먼저 그곳을 점령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라’고 조언했다.

주)

1) Except where otherwise noted, the account of occupation preparations on Okinawa is based on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Army Forces in Korea, 1945-1948, part 1, vol. 1 (Historical Section, Headquarters XXIV Corps, n.d.), pp. 3-73.

2) Tentative Troop List by Type Units for "BLACKLIST" Operations, General Headquarters, United States Army Forces, Pacific, 8 August 1945, in folder "OPD BLACKLIST Ed. 3 to BOLERO," RG 165, Entry 418, Box 1777, NA. For background on General Stilwell's career and his tumultuous relationship with Chiang Kai-shek see Barbara W. Tuchman, Stilwell and The American Experience in China 1911-1945 (New York: Macmillan, 1971).

3) History of USAFIK, p. 10; General Joseph W. Stilwell, Diary, 13 August 1945, Hoover Institution Archives, Stanford, Calif.

4) James I. Matray, "Hodge-Podge: American Occupation Policy in Korea, 1945-1948," Korean Studies, 19(1995), 17-38.

5) 46. Barbey, MacArthur's Amphibious Navy, p. 323; James A. Field, Jr., History of United States Naval Operations: Korea (Washington: Office of Chief of Naval Operations, 1962), p. 15.

6) Reports of General MacArthur, p. 16.

7) History of USAFIK, pp. 343-44.

8) Message, CINCAFPAC to JCS (CM-IN-21116), 22 August 1945; Draft Message, JCS to CINCAFPAC, SWNCC Memorandum, Enclosure A to JCS 1483, "International Agreements as to Occupation of Korea," 24 August 1945; JCS Note by the Secretaries advising that JCS 1483 was approved and the message dispatched on 1 September 1945, all in Combined Civil Affairs Committee (CCAC) folder 014 Korea (8-28-45)* Sec. 1, RG 218, Box 146, 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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