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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왜 1980년 8월 23일자 3면을 지웠을까'전비어천가'의 모델 '인간 전두환' 아카이브 서비스서 제외 …한홍구 "스스로도 부끄러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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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3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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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스=윤수현 기자] “그의 투철한 국가관과 불굴의 의지, 비리를 보고선 잠시도 참지를 못하는 불같은 성품과 책임감, 그러면서도 아랫사람에겐 한없이 자상한 오늘의 ‘지도자적 자질’은 수도(修道)생활보다도 엄격하고 규칙적인 육군사관학교 4년 생활에서 갈고 닦아 더욱 살찌운 것인 듯하다”

“정직함, 정당한 행동만이 통할 뿐 부도덕한 행위는 자그마한 실수도 용서될 수 없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국가관이 투철하고 용기와 책임감이 강하며, 자기에게 가혹하리만큼 엄격한 지휘관으로 성장해 있었고, 몸 바쳐 나라에 충성한다는 것은 그의 신앙이 되어 있었다”

조선일보 1980년 8월 23일 '인간 전두환' 기사 (사진=한겨레 자료사진)

1980년 8월 23일 조선일보 김명규 기자(전 스포츠조선 상무)가 쓴 기사의 일부분이다. 기사의 제목은 <인간 전두환>. 기사에서 ‘그’는 전두환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장이다. 이 기사는 ‘전비어천가’라 불리며 80년대 독재 부역언론의 주요 사례로 쓰인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DB가 없다”는 이유로 아카이브에서 해당 지면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조선일보도 스스로 부끄러움을 아는가”라고 했다.

26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조선동아 100년 어떻게 볼 것인가?> 강연이 열렸다. 강사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다. 한홍구 교수는 “조선·동아의 100년을 평가하기 위해선 그들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홍구 교수는 1970년대까지 동아일보가 조선일보를 앞섰다고 설명했다. 한홍구 교수는 “1970년대 이전 동아일보는 1등 신문이었다. 조선일보는 2등 없는 3등에 불과했다”면서 “조선일보가 동아일보를 따라잡는 계기는 조선일보의 ‘인간 전두환’ 기사”라고 밝혔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사진=미디어스)


한홍구 교수는 “1980년 8월 조선일보는 ‘인간 전두환’이라는 기사를 냈다”면서 “전비어천가의 모델이 된 기사다. ‘아부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 기사였다”고 꼬집었다. 한홍구 교수는 “조선일보 홈페이지에 가면 날짜별 기사보기 서비스가 있다. 그런데 ‘인간 전두환’ 기사만 보이지 않는다”면서 “조선일보에 물어보고 싶다. 조선일보도 스스로 부끄러움을 아는가”라고 말했다.

실제 조선일보는 1945년부터 현재까지 모든 신문 지면을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조선일보는 ‘인간 전두환’ 기사가 나간 80년 8월 23일 3면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당시 전두환 찬양 기사를 쓴 경향신문, 동아일보가 관련 보도를 삭제하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 조선일보 측은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80년 8월 23일 3면 DB가 누락됐다”고 밝혔다.

한홍구 교수는 일제 강점기 조선일보·동아일보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1920년대 조선일보·동아일보는 민족지의 성격을 가졌다. 한홍구 교수의 조부인 한기학은 동아일보 발행인,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한홍구 교수는 “1932년까지는 조선일보의 황금기였다. 젊은 사회주의자들이 기자로 많이 들어오고, 총독부를 비판하는 기사도 있었다”면서 “동아일보는 민족주의자가 모인 신문이었다. 당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지면에는 신채호 선생의 글이 실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한홍구 교수는 “1933년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인수하면서 상황이 변했다”면서 “동아일보는 이광수가 편집국장을 하면서 논조가 이상해졌다. 이들은 ‘천황폐하 만세’와 같은 기사를 보도했다. 방응모는 일본에 기관총을 헌납하고, 김성수도 마찬가지였다”고 비판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일보 기사 (사진=정청래 전 의원 트위터 캡쳐)

다만 한홍구 교수는 조선일보·동아일보의 친일 역사를 두고 현재의 조선·동아를 비판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홍구 교수는 “조선·동아 비판에서 고려할 점이 있다. 해방 후 조선·동아가 복간했을 때 ‘친일신문’이라고 비판한 독립투사는 없었다. 백범 김구는 동아일보 복간 당시 휘호를 보내줬다”면서 “친일문제는 굉장히 미묘하고 아픈 문제다. 그렇지만 1920년대 조선·동아가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홍구 교수는 “지난 100년 역사의 주역이 조선·동아였다면, 새로운 100년이 중요하다. 낡은 것은 정리해야 한다”면서 “조선·중앙·동아를 극복하는 방법은 그들보다 더 강한 대안을 만드는 것이다. 조선·중앙·동아를 비판하는 것도 좋지만, 젊은 대중에게 다가갈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글은 2019년 09월 27일(금) 미디어스 윤수현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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