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1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2024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신뢰받고 혁신하는 글로벌 미디어 강국’이라는 부제를 붙였지만 윤석열 대통령에게 신뢰받고 자본을 위해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공문서의 개조식(個條式) 문장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방통위의 올해 업무계획은 반헌법적 검열을 ‘심의 강화’로 포장한 특정 방송사에 대한 표적 심사, 자율규제를 외피를 쓴 정부 개입, 대자본의 미디어 시장 지배력 강화로 요약된다. 그러면서 곳곳에서 세부 정책사업은 서로 충돌하는 모순까지 보이고 있다.
특정 방송사에 대한 표적 심사는 방송의 공정성 심사 강화를 골자로 하는 재허가•재승인제도로 포장되었다. 재허가 점수에 큰 영향을 주는 방송평가 항목 중 공정성•객관성 위반에 대한 감점을 확대하고 공정성 평가항목을 추가 발굴할 뿐만 아니라, 허위•기만•왜곡 방송으로 심의규정을 반복 위반한 경우, 감점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 그것이다. 올해 말로 다가온 KBS1TV와 MBC 재허가 심사에 지금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휘두르는 검열과 협박의 칼날을 더욱 벼리겠다는 의도다. 사실상 윤석열 정권에 대한 비판보도 여부를 재허가-재승인 기준으로 삼겠다는 전면적인 국가 검열 선포다.
뉴스 서비스의 지배적 사업자인 포털에 대해서는 전면적인 정부 개입을 선포했다. 민간 기구인 뉴스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의 각 사별 구성, 평가기준•평가결과 등 운영 내역을 공개하고 심사 탈락자에 대한 재평가 기회를 제공하라는 압박이 그것이다. 윤석열 정권 집권 이후 폭압적인 압력을 가해 민간자율기구인 제평위 운영을 중단시킨 것도 모자라 아예 정부가 감놔라 대추놔라 시시콜콜 포털의 뉴스배열을 통제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최근 방심위가 인터넷 언론까지 심의 대상으로 삼으려다 위헌 시비를 초래했으나, 윤석열 정부는 아랑곳 없이 인터넷 상의 언론보도를 권력의 손아귀에 쥐겠다는 언론통제 욕구를 감추지 않고 있다.
허위조작정보 근절 또한 다르지 않다. 말로만 허위조작정보 정의, 생성•유포 단계별 대책, 포털•플랫폼사의 자율규제 등 책임 강화 및 매크로 부정이용 등 여론 왜곡•조작 행위 금지 등을 포함한 종합대책이라고 했을 뿐, 자율규제 활성화를 위한 가이드라인과 자율규제 활성화 협의체를 방통위가 주도하겠다고 선언했다. 게다가 이를 위한 법 개정에 나서겠다는 단서까지 달았다. 대통령의 검사선배가 수장인 국가기구가 주도하는 규제체제를 ‘자율규제’라고 우격다짐하는 폭력성과 일방주의는 언론표현의 자유에 대한 윤석열 정권의 천박한 인식을 더욱 각인시킬 뿐이다.
방통위는 또한 전국언론노동조합뿐 아니라 인권 및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다수 단체들이 요구했던 정보통신망법 개정 대신 거꾸로 개악하겠다는 오만을 드러냈다. ‘이용자 피해 구제 실효성 제고’라는 제목 아래, 사생활 침해•명예훼손 등 권리침해 정보부터 이용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삭제•임시 조치 대상을 ‘모욕’까지 확대하는 개정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임시조치의 적절성을 검토하기 위해 ‘온라인분쟁조정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한다. 언론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짓밟아 힘있고 돈있는 자들의 심기와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것으로 최근 한국을 독재화 국가로 규정한 국제사회의 냉혹한 평가를 더더욱 추락시킬 것이다.
대자본의 미디어 시장 지배력 강화는 국가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초래한 부실기업 태영과 여타 재벌기업 사주들에게는 여론 지배력 강화의 특혜를, 국민들에게는 언론의 시장 견제 및 감시기능 약화라는 피해로 이어지는 최악의 선택이다. 지난 방통위의 수신료 분리징수 의결처럼 이토록 엄청난 결정을 또 다시 방통위가 시행령 개정으로 강행하겠다는 오만함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여기에 오락프로그램, 수입물 편성 규제 폐지, 외주제작 의무편성 비율 폐지 등 독립제작사와 중소 제작사의 숨통을 끊는 친 대자본 민원 처리까지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다른 업무에서는 상생의 외주제작 환경 조성이라며 ‘방송사-외주사 간 프로그램 계약, 수익분배, 제작과정 등의 가이드라인 이행 점검 및 외주거래 실태조사 강화’를 내걸었다. 상생은 커녕 생존을 위협하는 규제 완화로 도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가.
여기에 더해 방통위는 공영방송 재정과 독립성의 근간인 수신료 제도를 파괴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수신료 대산 정부지원을 뻔뻔하게 입에 올리고 있다. 수신료 제도 파괴로 공영방송을 위기에 빠뜨린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예산 지원이라도 받으려면 알아서 대통령과 정부의 심기를 살피라는 반헌법적 협박을 업무계획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윤석열 정권의 폭력적인 미디어 정책과 언론-표현의 자유 말살을 견제하고 바로 잡아야 할 각 정당의 22대 총선 언론•미디어 공약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국민의 힘은 방심위 패스트트랙 활성화와 ‘무늬만 자율규제’를 뒷받침할 사업자 협력 강화를 통한 가짜뉴스 근절과 대응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물론 공영방송에 대한 공약은 어디에도 없다.
야당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과 녹색정의당, 개혁신당은 사장 임명동의제, 이사 국민추천제, 사장•이사 자격요건 강화 등의 이사회와 사장에 대한 견제 장치를 내놓았지만 수신료 제도 개선을 포함하여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와 법적 지위 확보 등을 위한 큰 틀의 미디어 규제체제에 대한 청사진과 로드맵은 전무하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방통위와 방심위에 대한 공약은 방심위 위원 자격 요건 강화 및 구성 개편(민주당, 녹색정의당), 방송보도 심의 전면 폐지(녹색정의당), 방심위 폐지(개혁신당) 및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 또는 완화와 임시조치 제도 개선 혹은 폐지(민주당, 녹색정의당)에 머물러 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 추락을 멈추려는 야당이라면 지금 방통위가 내놓은 검열과 통제의 정책이 어떻게 입법권을 침해하는지, 직권남용은 아닌지 면밀히 검토하며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2대 총선 정책 제안으로 방송3법의 22대 국회 1호 법안 발의와 방송통신 심의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까지 미디어 규제•진흥체제 전반을 혁신할 ‘국회 미디어개혁특위’를 제안했다. 이토록 노골적인 정부 개입과 특정 방송사에 대한 겁박을 일삼는 방통위를 멈출 방안은 이것뿐이다. 모든 정당은 미디어개혁특위 설치를 미디어 부문 공약의 첫 번째로 내걸어야 할 것이다.
2024년 3월 25일
전국언론노동조합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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