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는 ‘긴급심의’ 표결 했지만 정족수 논란 이후 입장 바꿔

야권 위원 “말 바꾼 것이 본인들 잘못을 인정한 것 아닌가”

“민원 없이 심의했다면 그게 더 문제… 정치심의 논란 불가피”

가족과 지인 등을 동원해 ‘민원신청 사주’에 나섰다는 의혹으로 사퇴 요구를 받는 류희림 위원장은 뉴스타파 관련 심의가 ‘단독부의권’에 의한 것으로 “민원과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야권 위원들은 위원장의 주장이 “자의적, 편의적 해석이자 왜곡”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누구의 주장이 사실일까. 해당 민원들이 ‘긴급심의’로 이어진 과정을 돌이켜봤다.

▲ 류희림 방통심의위원장. ⓒ연합뉴스

앞서 지난달 23일 류희림 위원장이 가족과 지인 등을 동원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인용 보도 관련 심의를 요청하는 민원을 넣었다는 신고가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됐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국민권익위원회 신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뉴스타파 인용 보도에 대해 ‘엄중 조치’를 예고한 이후 방통심의위가 KBS, MBC 등에 과징금을 부과하기까지 관련 방송에 대한 민원인은 60여 명, 민원 건수는 160여 건이다. 이 중 지난해 9월4일부터 9월7일까지 제기된 40여 명(100여 건)의 민원이 위원장과 직간접적인 사적 이해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회의록 파헤쳐보니… ‘민원’ 언급하고 ‘표결’ 거친 방통심의위

▲지난해 10월11일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통신심의소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금준경 기자.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9월5일. ‘김만배·신학림’ 뉴스타파 녹취록 인용보도에 대한 ‘긴급심의’ 여부가 방통심의위 방송심의소위원회(방송소위)에서 결정된 날이다. 이날 회의에선 ‘단독 부의’가 언급되지 않은 채 찬성 2, 기권 1 등 표결을 거쳤다.

이날 허연회 위원(국민의힘 추천)은 회의 말미 “의견이 하나 있다”며 “우리 국민들의 관심 사항이나 사회적 이슈 건에 대해선 ‘긴급심의’ 건으로 채택을 해줬으면 좋겠다. 현재로선 후쿠시마 오염수 또는 어제 국회에서 엄청 난리가 나고 언론에서도 굉장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타파 건 등은 지난번에 이태원 (참사) 때처럼 긴급심의 안건으로 상정을 해서 민원이 들어오는 즉시 긴급심의를 해주십사 하는 그런 의견을 낸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11일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통신심의소위원회 회의에서 황성욱 소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황성욱 당시 위원장 직무대행은 이에 “민원 들어온 게 있냐”고 물었고 방통심의위 방송심의국장이 “있다”고 답하자 황 직무대행은 “그러면 기존에 밀려 있는 안건을 진행하면서 시의적절하게 관심사가 있는 것들은 여기서 위원님들끼리 논의하는 것 자체도 하나의 어떤 과정일 수 있다. 그러면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관련한 것과 뉴스타파 관련한 것 민원에 대해서는 긴급 안건으로”라고 말했다.

김유진 위원(문재인 대통령 추천)은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김 위원은 “이태원 참사와 같이 피해자들의 인권 침해 우려 상황 등에 대해 극히 제한적으로 긴급심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은 다른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해 명확한 근거 없이 긴급 심의를 하기 시작하면 방통심의위가 외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긴급심의 기준에 대해선 다른 위원들이 모두 참석한 자리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직무대행은 다시 “긴급심의 요건이 어떻게 되나”라고 다시 방송심의국장에 물었고 “관례를 보면 소위원회 위원님들 간의 논의를 거쳐서 결정하셨다”는 답이 왔다. 이후 황성욱 직무대행이 두 명(허연회·황성욱) 과반수로 긴급 안건을 상정하려 하자, 김유진 위원은 “2대 1로 표결할 의사가 없다”며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황성욱 직무대행은 김 위원의 퇴장을 기권으로 처리했다. 그렇게 뉴스타파 녹취록 인용보도에 대한 긴급심의가 시작됐다.

긴급심의에 벌어진 정족수 논란, 이때도 ‘단독부의’는 없었다

▲ ‘소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 4조 갈무리.

이날 의결엔 예기치 못한 ‘정족수 논란’이 벌어지게 된다. 본래 5명으로 구성된 방송소위가 이광복 부위원장(국회의장 추천)이 해촉되고 옥시찬 위원(문재인 대통령 추천)이 개인 사유로 빠지면서 지난해 9월5일자 방송소위가 황성욱·허연회·김유진 위원만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2인 다수결로 뉴스타파 긴급심의가 결정된 가운데 결원 상황에선 소위원회 의결을 ‘전체합의’로 해야 한다는 쪽(야권)과 ‘다수결’도 괜찮다(여권)는 쪽이 대립했다. 윤성옥 위원(더불어민주당 추천)은 지난해 9월8일 열린 임시회의에서 “저는 긴급심의 못한다고 본다. 위원회가 가진 합의제 정신에 어긋나고 운영규칙 4조 2항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야권 위원들 주장의 근거인 ‘전원찬성’이 명시된 ‘소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 4조 2항에 따르면, 5인 미만으로 구성된 소위원회의 회의는 재적위원 3분의2 이상의 출석으로 개의하고, 출석위원 전원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명시돼 있다. 반면 ‘4조 1항’엔 “소위원회의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 출석으로 개의하고,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 2021년 12월 28차 방송소위 회의록 갈무리.

2021년엔 당시처럼 결원이 발생했을 때 ‘전원찬성’으로 안건을 처리한 바 있다. 그러나 방통심의위는 지난해 9월12일 운영규칙 ‘4조 2항’이 아닌, ‘4조 1항’이 적용된다는 해석을 내놓으며 여권의 손을 들었다. 야권 위원들은 4조 1항을 따라도 ‘개의 정족수’가 미달한다는 입장이다.

방통심의위는 “최초 5인으로 구성된 소위원회가 이후 일시적으로 소속 위원의 궐위가 발생하더라도, 소위원회 위원 정수를 변경하는 절차 등을 거치는 특별한 사정이 없었다면 위원회 구성은 동일한 형태를 유지하므로 ‘4조 1항’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이때도 위원장 ‘단독 부의’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때 심의는 단독부의였다” 입장 바꾼 여권 위원… 이유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현판.

그러다 지난해 10월31일 방송소위에서 황성욱 위원은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제 입장을 말씀 드리려 한다”며 “방심위 기본규칙에 보면 위원장은 단독으로 의안을 제의할 수 있다. (중략) 당시 위원장 직무대행 및 소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던 제가 안건 상정 권한에 따라 상정을 하려고 한 것이다. 거기에 관례상 위원님들의 의견을 청취한 것으로 저는 법적 평가를 하고 있다. 그래서 ‘해당 사항은 의결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이 제 입장”이라고 입장을 바꾼다.

11월13일 전체회의에서도 황성욱 위원은 “우리 규칙에 보면 안건 상정은 위원장과 재적 위원 3분의 1 이상 위원에 권한이 있다. 당시 제가 직무대행으로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건 상정에 대한 법적 평가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 첨언을 하자면 당시 방송심의국장이 약간 착오를 일으켜 (긴급심의 상정이) 의결 사항인 것처럼 말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긴급심의 상정이) 의결 사항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11월13일은 KBS, MBC, YTN, JTBC에 뉴스타파 녹취록 인용을 이유로 ‘과징금’ 중징계를 의결한 날이다. 윤성옥 심의위원은 4일 통화에서 “위원장 직무대행 권한으로 단독 부의하는 절차였다면 그 절차에 맞게 진행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정족수 논란이 생기자 법적 대응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말을 바꾼 것이 본인들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 2022년 3월6일자 뉴스타파 보도 화면 갈무리.

실제 ‘단독 부의’로 심의가 이뤄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김유진 심의위원은 “단독 부의는 안건이 올라오지 않은 상태에서 민원이 있든 없든 직권으로 상정하는 거다. 그게 불가능하지 않다”면서도 “보통은 민원이 들어오거나 사무처 모니터링을 기반으로 심의를 한다. 위원이 (심의를) 내가 하고 싶다고 부의해버리면 편파심의, 정치심의 논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유진 위원은 “단독 부의로 민원을 근거로 하지 않았다면 더 문제다. 과거 통신소위를 맡았을 때 청소년 인권 관련 올리고 싶던 안건이 있었는데 민원 없이 위원이 안건 제의할 경우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실무진 만류로 상정하지 못했다. 그만큼 위원이 직접 안건을 상정하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방송소위 규칙에는 위원장이 안건을 단독 부의할 수 있다는 조항도 없다. 류희림 위원장과 황성욱 직무대행의 단독 부의 주장 근거는 방통심의위 기본규칙에 해당한다. 김유진·옥시찬 위원은 지난 3일 기자 간담회를 열고 “9월5일 뉴스타파 인용 보도에 대한 긴급심의 결정의 절차상 하자(정족수 논란)가 드러나자 뒤늦게 전체회의에 관한 규정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기본규칙’ 제7조(위원회 회의 등)를 끌어와 ‘위원장 대행의 단독부의권’을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위원회 운영과 결정에 대한 자의적, 편의적 해석과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방통심의위 측은 4일 미디어오늘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소위원회 안건상정은 기본규칙에 근거해 제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위원회 출범 이후 위원장 ‘단독 부의’로 긴급심의를 상정한 적이 있냐는 질문엔 “해당 사안은 별도 집계하지 않아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답했다. 지난해 9월5일 긴급심의 관련해선 “황성욱 위원이 지난해 10월31일 방송소위에서 발언한 바와 같이 방통심의위 기본규칙에 따라 위원장 직무대행 안건 상정 권한에 따라 상정한 것”이라고 했다.

* 이글은 2024년 01월 05일(금) 미디어오늘 박재령, 윤유경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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