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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관계 150년 미 국익 추구 과정-호혜관계로 정상화해야[고승우의 한미관계 탐구 (41)] 고승우의 ‘미국의 한반도 개입 151년’ (최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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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9.25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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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과 미사일과 관련, 미국은 세계핵전략 차원에서 대응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한미는 한목소리로 ‘북한의 핵공격 시 북정권이 붕괴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북한의 핵에 대응한다는 차원이라 하지만 한반도 핵전쟁은 한민족 전멸의 가능성도 우려해야 할 판인데 정치권에 의해 도입된 최악의 의제가 남한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미국의 군사적인 세계전략은 미국 안보이익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고 세계 여타 지역은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이나 하위개념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가 자칫 미국의 중러의 대치국면에서 희생양이 될 가능성도 우려되고 있다. 미국이 20세기 초 가스라-테프트 밀약을 통해 일본과 제국주의적 암거래를 통해 한반도를 흥정수단으로 삼았던 행태는 오늘날에도 변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절대 악으로,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한반도 핵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윤석열 정권의 확고한 입장이다. 이와 함께 윤 정부는 공산전체주의, 반국가 단체 등을 앞세운 매카시즘을 강조하면서 이념, 동맹이 민족에 우선한다는 정치 슬로건을 통해 대북 적대감, 공포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남한에 대해 전술핵공격 가능성을 공언하고 있다.

북한 핵에 대한 대응 방법으로 자체 핵무기 개발, 미국 전술핵무기 배치 등만이 주로 거론되다가 한국 정부는 한미일 군사 협력강화를 추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맹렬히 추진 중이다. 아직 결말이 난 것은 아지만 한미일의 결속은 북중러의 대치를 유발해 동북아의 신냉전 도래가 우려된다는 국내외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러나 기회만 있으면 해외 순방에 나서 미국을 대신하거나 앞장서서 중국, 러시아 비판에 앞장서면서 두 나라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에 대해 헌신적으로, 때로는 굴욕적이라는 비아냥거림에도 불구하고 올 인하는 행태가 지속되면서 한국은 무엇을 챙겼느냐 하는 질문이 나오고 있다. 주권국 간의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거래로 보이지 않는 장면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9월20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군사적 주권 없는 한국 대통령의 국제무대 큰소리, 지구촌이 비웃어

최근 한미관계는 미 대통령이 기회만 있으면 윤 대통령이 한미일 군사관계 증진에 기여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 이는 한국의 군사적 주권이 미국의 통제 하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이 경제력 세계 10위권, 군사력 6위권의 위상인데도 주한미군사령관이 3개의 사령관 모자를 쓰고 다양한 방식으로 군사적 통제 취하는 것에 대해 순종하는 것으로 비춰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전시작전통제권, 유엔사 등을 통해 한국의 국방안보 자주권은 물론 남북한 평화통일 노력을 제약하고 있다. 미국은 특히 2018년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수많은 교류협력 방안을 만들었지만 이의 이행을 저지해 남북관계가 오늘날과 같이 파탄상태로 가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했다.

윤 대통령은 집권 전후 대북 선제타격 등을 주장해 미국이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소동이 벌어진 뒤 미국의 핵우산 정책은 물론 미국의 중국, 러시아 압박전략에 적극 순응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 정부는 중국, 러시아와의 외교군사관계 악화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두 나라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곤욕을 치루고 있다. 윤 정권은 과거 미국 소련 간 냉전 시대와 달리 오늘날 국제정세는 군사적 안보와 경제적 안보를 병행해야 할 필요가 크다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미국이 동북아 최빈국인 북한이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고 규정하고 최강의 군사전략을 적용한 한 것은 실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군사적 자주권이 없는 심각한 상황인데도 미국 대신 또는 미국의 앞장을 서는 식으로 세계평화,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을 대단히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미국이 군사적으로 예속된 한국에 대해 국제사회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점은 최근 윤 대통령이 유엔총회 일반토의 두 번째 날인 20일 기조연설에서 북러간 무기 거래는 우크라이나는 물론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도발이라며,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힌데 대한 러시아의 반응에서도 확인된다(rfa 2023년 9월21일).

주한 러시아 대사관은 21일 전날 윤 대통령이 북러간 무기협상에 대해 비난하며, 좌시하지 않겠다고 한 기조연설에 대해 “한러간 협력을 훼손하려는 미국의 선전운동에 가담한 것은 유감스럽다. 윤 대통령이 러시아와 북한 간 국방 협력에 대해 근거 없고 선동적인 주장을 했다. 한국의 반러 정책이 한러 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이 세계평화를 위해 국제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외국이 그렇듯이 군사적 주권을 확립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촌은 한국이 아무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내놓아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미국이 자국법으로 세계를 통제하고 우방국 정부 도감청도 서슴치 않는 심각한 자국중심주의에 빠져 있고 철면피한 내로남불 논리의 화신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점을 도외시한 채 미국이 절대선이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허구를 앞세워 열을 올리는 것은 조소의 대상이 될 뿐이다.

외교나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동지, 적은 없다. 단지 국가간 이해다툼은 항상 존재해왔고 국익을 최대한 확보하는 관계는 생략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미국을 대신해 중국과 러시아에 각을 세우고 미국의 무기를 엄청나게 사주고 있으며 북한에 대해서도 같은 민족이지만 철천지원수처럼 대해 미국을 크게 만족시키고 있다. 동맹을 민족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긴 안목으로 볼 때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이승만 등 일부 대통령이 이념을 민족보다 우선시 해 국가보안법과 같이 북한지역 주민 100%를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는 반인륜적이고 몰상식적인 도그마가 21세기에도 횡행하는 것은 큰 비극이다. 70억 인류가 얼굴 모양이 다 다르듯이 이념, 사상에 대해 십인십색이라는 점을 아직도 인식치 못하거나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정치인이 득세한다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국제관계에서 공짜는 없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은 발상의 전환을 해볼 일이다. 한미동맹을 필리핀과 미국처럼 대등한 국가 간의 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이 정답이다. 미군은 필리핀 주둔 시 필리핀 군 기지에 국한해 영구기지는 만들지 못하고 미군은 필리핀 국내법 적용을 받으며 미군 시설은 사후 필리핀 정부에 귀속시킨다는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한미동맹과 비교해 하늘과 땅 차이지만 이게 상식에 부합하는 것이다.

군대는 고려 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처럼 파괴적인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외국군이 한국에서처럼 치외법권적 특권을 누린다는 것은 미국이 이승만을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킬 계획을 세우는 토대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려면 당연히 한국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아 어떤 상황에서도 한국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할 장치가 있어야 한다. 필리핀이 미군 주둔에 대해 취하는 원칙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선제타격을 가할 여건이 한미동맹으로 조성되고 있는 한 남북관계가 정상화되기는 어렵다. 이는 전쟁을 원치 않고 평화통일을 원하는 한국민의 입장에서 사활이 걸린 심각한 문제다. 지금처럼 미국이 한국에 대해 군사적 측면에서 상하 또는 주종관계로 되어 있는 것은 미국에게 상궤에서 벗어난 대북 정책을 남발하는 환경을 조성해준다는 점에서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정상적인 한미동맹은 미국이 합리적인 대북 정책을 수립토록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하겠다. 한미동맹을 국제적 상식에 맞게 정상화하는 것은 미국을 정상적인 국가로 변하게 하면서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한미관계 근현대사, 미국 정부의 한반도 정책 반영 미흡

오늘날의 한미관계는 150 여년의 긴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다. 미국은 19세기 말부터 한 세기 반 동안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에서 주요한 역할을 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강산이 15번 이상 바뀌는 기간 동안에 행해진 미국의 역할을 평가하는 시각은 여러 가지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 미국은 오늘날 한국의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한 주인공인가, 미국은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국가이기주의를 집행해온 것에 불과한 것인가? 한미동맹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이상과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이 제대로 내려져야 미국과 관련한 한반도 미래를 제대로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 간 관계나 역사에 대한 분석은 구체적인 사실관계의 파악이 맨 먼저 해야 할 작업이다. 동시에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가 하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동일한 사실관계를 놓고도 시각에 따라 상반된 해석이나 설명이 나오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기술된 지난 150년간의 한미관계는 주로 한반도를 주 무대로 국한하면서 관련 한미 공직자간의 상호작용 등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 정부의 한반도 정책 등이 간략히 소개되거나 생략되고 한반도 정책을 집행하는 미국의 하급공직자가 부각되는 식의 미흡한 경우가 많았다.

▲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4월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 정부의 정책 최고 결정권자나 그 기구에 초점을 맞춰야 미국 전체의 외교정책이나 그 전략 속에서 한반도 정책이 어떤 비중으로 어떻게 집행되었는지 확인된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었다.

한미관계의 역사는 미국의 극동전략이 추진되는 과정의 일부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런 점에 비춰 두 나라 관계를 분석, 설명했을 때 그 사실관계나 시시비비가 더 명쾌해질 수 있다. 즉 한반도라는 국지적 차원을 벗어나 미국 전체정책을 포괄하는 넓은 시야에서 살펴야 한미관계에 대한 근현대사의 실체가 명쾌하게 확인될 수 있게 된다.

이런 취지가 ‘한미관계 탐구’ 연재를 시작하는 동기가 되었고 주로 미국 중앙정부의 공식 또는 비밀관련 자료나 전문가의 견해 중심으로 두 나라 관계를 살펴보려 했다. 그러나 이번 연재는 한미관계 정밀 분석을 위한 문제제기의 수준에 불과해 앞으로 관련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연구가 기대된다.

미국 정부의 한반도 관련 근현대사 정부 기록물 등에 따르면 20세기 초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후발제국주의 입장에서 국가적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외교정책의 성격을 지녔다. 미국은 다른 서구 열강이나 일본과의 경쟁 관계에서 자기 몫을 챙기는 실리주의를 앞세운 것이다.

동서고금의 세계사를 볼 때 국가 간의 관계는 큰 틀에서 보아 국가이기주의간의 힘겨루기, 줄다리기라고 할 수 있다. 한미관계도 이런 경우라 하겠으나 지난 1백 수십 년간 미국이 취한 한반도 정책은 상식을 지닌 한국인 입장에서는 혀를 내두를 만큼 부정적인 것으로 압축된다.

미국은 침략전쟁 형식으로 조선과의 통상을 강요했고 일제의 한반도 강점에 비밀리에 합의했으며 조선의 독립운동이나 노력은 철저히 외면했다. 그리고 2차 대전 종전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일관되게 미 국익 증진을 위한 한반도 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다. 그런데도 남한에서 미국은 최상의 동맹국으로 대접받고 혈맹의 동지라는 식으로 칭송되고 있다. 미국에 대한 허위의식이 만연해 있다는 비판을 자초하는 부분이다.


미국 조미수교 강요 당시 후발 제국주의 국가, 조선 독립운동 외면

미국의 한반도 개입 150여 년은 1882년 조미 수호통상조약에 따라 이뤄진 조미 수교, 일제의 한반도 침략과 강점기, 해방정국, 6·25전쟁과 종전, 박정희와 전두환의 쿠데타, 오늘날 한미동맹 관계 등에서 확인된다.

미국이 19세기 말 군함으로 위협하면서 조선의 개문을 요구할 때 동방을 침략하는 후발 제국주의 국가에 불과했다. 조선은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지던 세계정세 속에서 약소국의 입장이었으며 미협상을 시작할 당시 미국에게 조선은 청국의 속국으로 비춰졌다.

미국 정부는 조미수교 이후 일본이 동북아의 강자로 군림하면서 조선의 국권을 짓밟고 잠식하는 과정에서 고종황제의 도와달라는 청탁을 거절하는 등 철저하게 방관자의 입장을 고수했다. 서울 주재 일부 미국 외교관은 본국 정부에 일본정부의 대한제국에 대한 야만적인 침략행위에 대해 대처하자는 건의를 하지만 다 묵살 당했다.

미국과 일본은 1905년 가스라-테프트 밀약을 통해 조선과, 필리핀을 각각의 식민지로 삼키는 식의 흉악한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후 일제 강점기 동안 미국 정부는 한민족의 독립운동에 대해 철저히 외면했다. 3.1독립만세 사건의 경우 미 본국 정부는 서울과 동경의 미 외교공관에 ‘조선인들의 독립운동에 미국이 동정적이라는 인상을 주치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는 지시를 내렸을 뿐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이런 점이 최근까지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오늘날 한미관계가 혈맹관계로 표현되는 것에 누를 끼친다고 해서 일부러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미국은 미담의 주인공으로만 묘사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부 언론은 일제강점기 동안 미국 시민이 조선인의 독립운동에 호의적이었다거나 열심히 도왔다는 미담을 소개하면서 미국 정부의 냉정한 대응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러니 국내 일부에서는 미국이 3·1 독립운동 당시 조선에 동정적이었다는 식의 오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 미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원칙 선포가 3.1 독립운동의 자극제가 되었다고 하지만 윌슨은 일본의 눈치를 살피면서 한반도 식민지는 민족자결원칙 적용대상 지역에서 제외시켰었다.


종전 후 미국, 남한 친일 군경세력 친미세력화, 이승만 양민학살 방관

2차 대전 종전이전부터 미국은 동북아에서 소련 등 강대국과의 관계설정이라는 큰 틀 속에서 한반도 전략을 모색하다가 소련이 1945년 8월8일 대일 선전 포고를 하자 그 다음날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했다. 미국이 그 해 8월6일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뒤 이틀 뒤 두 번째 원폭을 투하한 이유는 독일제국을 패전으로 이끈 실질적 주역이었던 소련 견제목적도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련이 파죽지세로 일본 관동군을 격파하며 순식간에 한반도 북부까지 진군했을 때 미군은 일본 본토는 물론 한반도 상륙 채비도 다 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미국이 소련군의 남한 한계선을 북위38도선으로 제안하자 소련이 그것을 수락했는데 이는 미국의 원폭을 의식한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일제가 항복하고 미군이 점령군으로 남한에 진주한 뒤의 해방정국에 대한 국내 학계 등의 한미관계 관련 기술에서는 미군정 사령관 하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하지에 대해 명령권한을 갖고 있던 맥아더 장군, 그 위의 미국 정부에 대한 사실관계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남한에 대한 미군정의 주인공은 하지, 일본 미군정의 주인공은 맥아더였다.

미군 장성은 미 정부의 지휘통솔을 받는 입장이고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를 해임한 것처럼 군은 정치에 하부구조에 불과하다. 이런 점이 한미관계 근현대사에 대입할 경우 더 객관적인 사실 관계가 부각될 수 있다.

미국의 2차 대전이후 한반도 정책은 일본을 소련의 공산주의를 저지하기 위한 교두보로 만든다는 미 중앙정부의 대일본 정책의 한 부분으로 취해졌을 뿐이다. 하지가 이끈 미군이 한반도에 첫발을 디딜 때 한국어 통역을 구하지 못해 일본군 포로가운데 조선인을 데리고 올 정도였다.

미국은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신속한 전후 복구를 지원하는 식의 정책을 맥아더를 시켜 집행하게 했고 그에 따라 남한에서도 친일파가 해방정국 지배세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미국은 남한에 대한 미군정을 통해 미제무기와 경제적 지원을 통해 친일세력을 친미세력으로 양성하고 남한 단독 정부수립을 강행하려 했다. 그런 방향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 이승만 등 친일세력들이 집단학살하는 것을 미국은 수수방관 이상의 행동을 했다.

남한의 미군정은 남한의 경찰과 군을 창설할 때 독립군 출신 등은 배제하고 친일세력을 대거 기용하도록 했으며 미 군사고문단이 남한 군경의 발족에 무기 공급, 훈련과 그 비용 등을 제공하는 등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미국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제주 4·3의 배후에 소련이 개입해있다는 식의 논리를 펴면서 친일세력과 함께 유혈 진압을 강행한 사실 등에 대한 국내에서의 조명은 여전히 소홀했다. 여순사건이 발생하자 미국은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펴 4·3의 진상은 미국의 개입에 대한 과정이 밝혀져야 규명된다는 주장이 최근에야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은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자 군정을 담당했던 미군은 철수했지만 수 백 명의 미 군사고문단이 잔류해 한국군 최고 지휘부부터 대대병력 단위까지 파견 나가 무기 공급, 군비지원 업무 등을 담당토록 했다. 당시 미 군사고문단은 한국군경 지휘관과 같은 사무실에서 마주보며 근무를 하는 형식으로 한국군경을 철저히 ‘미국화’ 하는 방식을 취했다.

▲ 1948년 8월15일 서울 중앙청에서 열린 정부수립 기념일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 이 대통령은 맥아더의 중국 공격 전략을 적극 지지하다가 맥아더가 해임되자 크게 실망해 맥아더 해임을 지지한 영국 등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사진=위키미디어


미국, 중국 적화통일후 발표한 애치슨라인 불구 한국전쟁 유엔 깃발로 참전

미국은 중국이 적화통일 되자 한반도를 미국의 동북아 방어선에서 제외하고 그런 여파 속에 6·25 한국전쟁이 발생하자 종래의 방침을 뒤집고 유엔 깃발을 앞세운 다국적군을 만들어 참전했다. 미군은 중국에서 장개석과 모택동이 내전을 벌일 때 장개석을 적극 지원했으나 1949년 중국이 모택동에게 적화통일 되자 실망한 나머지 극동 방위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하는 애치슨라인을 발표했다.

하지만 6·25 전쟁이 터지자 유엔안보리를 통해 미군이 유엔 깃발을 사용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켜 다국적군을 참전시키는 방식으로 한국지원을 결정했다. 미국의 태도 변화 때문에 남침을 유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미국은 맥아더가 만주의 중국 지역을 핵 공격하자는 주장을 하자 해임시키고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제기된 정전협정 타결에 주력했다. 미국은 소모전 형식의 전투가 계속되자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습을 통해 북한 지역을 철저히 파괴했다. 그 파괴정도는 세계 2차 대전 때보다 심했다.

이승만은 정전협정이 체결되면 남한이 중국군 등에게 괴멸당할 것이라며 국군단독의 북진통일을 주장했고 이에 대해 미국은 이승만 제거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미국은 정전협정을 성사시켰지만 평화협정으로 이어지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보도연맹 등 좌익으로 의심받는 시민들을 전국적으로 무차별 대량 학살했는데 그 현장에는 미 군사고문단이 동참했다. 미 군사고문단은 학살 현장사진을 찍어 본국 정부에 보낸 사실이 있어 미국 정부가 한국전에서 민간인 학살에 대해 동조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자초했다.

미국은 이승만이 1953년 합의된 정전협정 체결 조건으로 제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면서 미군사력의 한국 배치를 권리(right)로 규정하고 조약 내용의 수정보완 조치 없이 그 유효기간을 무제한으로 하는 식의 특권을 챙겼다. 이에 따라 미국은 주한미군이 사용한 미군기지의 환경오염문제 원상회복 등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거나 주한미군 주둔비 협상에서 트럼프의 경우 5배 인상을 주장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불평등한 한미관계는 그물망처럼 뒤얽혀 미국의 기득권을 보장해 주는 형태인데 이를 바로잡는 일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정상화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주한미군은 한국 국토의 효율적 이용 등을 저지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새만금공항 건설을 놓고 전북도 도지사가 국제공항을 추진했지만 군산미군기지 사령관이 반대해 무산되었다. 미국은 이런 특권 속에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주한미군사령관이 행사토록 만들고 남한에 미국 핵무기를 들여놓으면서 한반도를 소련을 견제하는 식의 동북아 전략기지로 이용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추진 시 한국 철저 배제, 배상문제 일본 편들어

미국은 일본과의 평화조약인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을 추진할 때 일본의 식민지 침탈을 장기간 당했던 한국을 철저히 배제하는 방식을 취했다. 한국을 참여시키면 다른 일본 피해국들의 배상문제가 일본에게 부담이 된다는 이유였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배상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한반도 근대화에 크게 기여해 36년간의 일본 강점으로 발생한 손해보다 그 액수가 크다’는 식의 자료를 내놓는 식으로 일본 편을 들었다. 일본의 태평양전쟁  배상을 가볍게 해주기 위해 관련피해국들과 일본의 개별협상형식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승만은 미국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공식적으로 또는 외교루트를 통해 미국에 항의했다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고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아 타결되자 다음해 1월 한반도 해안에서 50~100마일에 이르는 해상에 선을 긋고 '인접 해양에 대한 주권 선언'인 ‘이승만 라인’을 선포했다.

미국은 박정희, 전두환이 한국군을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킬 때 미군사령관이 장악하고 있던 작전통제권 제도를 훼손한 것에 대해 사후에 문제 삼지 않고 이들 정치군인들을 미국에 초청하는 식으로 정권 찬탈을 공인해주었다. 미국은 박정희 정권 때, 미군이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될 경우에도 남한에 계속 주둔할 수 있도록 한미연합사령부를 만들어 그 사령관에 주한미군사령관을 앉혀놓았다.

광주항쟁의 경우 광주 미군기지가 동북아 최대의 핵무기 저장소였기 때문에 미 카터 대통령은 한국군의 진압을 결정해주었다. 정치군인 전두환은 이런 점을 미리 계산하고 광주를 군부 폭거의 장소로 삼지 않았나 하는 점도 추후 점검해 볼 일이다. 미국은 전두환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해 주는 대가로 한반도를 미국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세계 4대 전략지역의 하나로 지정해 매년 팀스피리트 훈련을 통해 핵무기 등을 포함한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벌이면서 소련, 중국, 북한을 압박했다.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종식되었지만 미국은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 유엔사령관을 겸직하도록 하면서 한반도에서 발생할 모든 사태에 대비하는 치밀한 전략을 만들어놓고 북한을 세계 평화의 적으로 지목하면서 미국의 군비증강을 합리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런 과정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이 지속되었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의 결정사항이 이행되지 않으면서 한반도 군사위기는 지속되었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등의 한미동맹을 앞세우고 미국 대통령의 선제타격 권으로 북한을 핵 공격한다는 전략을 수립하는 등 북미관계에서 무력을 앞세운 대북봉쇄와 압박정책을 강화하는  과정이 지속되면서 한국의 군사적 주권은 미국에 종속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미국은 G2로 부상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 4개국 안보협의체 ‘쿼드(Quad)’를 추진해 동북아에서 신냉전을 재연시키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평양, 판문점 남북정사회담에서 타결한 남북협력사업의 실천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항의하고 재발 방지책을 강구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채 임기가 끝났다. 차후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위해서는 미국의 중단 압박을 차단할 사전 조치가 취해졌어야 하는데 문 전 대통령은 그런 책무를 이행치 않은 것이다.

▲201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미중, 대만 충돌 시 성주, 군산 등 주한미군 기지 피격 대상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 북한을 겨냥한 군사전략을 추진하면서 박근혜 정부 시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즉 사드를 경북 상주에 배치하자 중국과 러시아가 그에 대해 군사적 조치를 취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등 강대국들의 충돌이 동북아에서 벌어질 경우 경북 상주가 피격 당할 수 있다는 무서운 현실이지만 이런 점은 국내에서 중요하게 거론되지 않고 있다.

한반도 주민인데 남의 나라의 필요에 의해 자신이 죽고 사는 운명이 결정되는 문제에 침묵한다는 것을 해외에서 어떻게 받아드릴까? 이런 일은 90년대 냉전시대 전후에도 있었다. 군산, 오산미군 기지에 중국 타격용 전략 폭격기가 활주로에서 24시간 대기하자 중국이 수 백기의 미사일을 한국 두 기지를 향해 배치했지만 이런 사실은 국내에서 제대로 보도조차 되지 않았다.

미국은 세계 최빈국의 하나인 북한이 미사일 실험만 해도 세계평화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면서 필요할 경우 북한에 대해 미국 핵무기 등을 사용한 선제타격을 검토하면서도 한국과 사전에 일체 협의하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남한에서만 최소 1천 만 명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태도는 대단히 충격적인 자국이기주의라는 비판을 자초한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이렇다 할 자구책을 내놓거나 미국에 공개적으로 시정책을 요구하는 모습을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2022년 5월 집권한 윤석열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는 반대방향의 대미, 대북 정책 노선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형식의  대북 강경노선을 강조하거나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와 쿼드의 연대를 통한 러시아, 중국과의 대결을 강조하는 취지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미군 사령관이 쥐고 있는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해서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이서 한국의 군사적 자주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인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국제관계는, 관련 국가를 냉정하게 살피고 현재는 물론 중장기적 관점에서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대외정책을 수립하는 식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미일 동맹을 강조할 경우 미국과 일본의 민낯이 어떤 것인가 살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은 속 얼굴은 가스라-테프트 밀약에서 드러난 바 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고약스런 사례가 또 있다. 그것은, 일제가 한국인과 중국인 등이 포함된 최고 1만 여명 이상을 생체실험으로 학살한 731부대의 세균전 실험 자료를 미국이 비밀리에 넘겨받는 조건으로 731부대원들의 천인공노할 전쟁범죄를 면책처리 한 사실이다.

인류사에서 731부대와 같이 조직적으로 잔인무도하게 산 사람 다수를 실험대상으로 삼아 무참하게 학살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든데 미국은 그들의 실험 자료를 대가로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전쟁범죄를 덮어주는 짓을 일본정부와 성사시킨 것이다. 더 나아가 미국은 오늘날에도 세균전 실험을 하고 있는데 주한미군도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731부대의 뿌리가 주한미군에 닿아 있다는 경천동지할 사실을 보면서 미일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면서 한미일 동맹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한미관계 150 여년 미국 국가이기주의가 일방적으로 실천된 과정

이상에서 소개한 한미관계 근현대사는 미국의 자국 중심적 대외정책의 추진 결과였다는 특성으로 점철되어 있고 현재도 그런 상태다. 미국이 1881년 한반도에 공식 외교관계의 첫발을 내디딘 뒤 150여년은 미 국가이기주의가 일방적으로 실천된 과정이었다.

그러나 한미동맹이 미국에게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점이 한미 두 나라 정부에서 지적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현재의 한미관계가 최상이라는 수사가 난무할 뿐이다. 그러면서 오늘날의 한국 발전에는 미국의 기여가 절대적이었다는 식의 시혜관계, 즉 미국이 한국에 많은 것을 베풀었다는 식의 논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미국이 한국 전쟁에 참전해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피를 흘려 한국의 민주주의, 경제발전을 이루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는 식이다. 물론 이런 점이 전무하지는 않지만 두 나라 관계의 일부분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심지어 과장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한미관계는 19세기 말 한반도가 열강의 침략 대상이 된 상황에서 시작되었고 일제에 의한 국권 강탈, 미군정, 6·25전쟁 등의 격동기를 거쳤는데 그런 과정에 미국은 자국 이익 챙기는 행동만을 주로 했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이 한반도나 한민족만을 전적으로 위한 정책이나 인도적 조치, 또는 미국이 희생을 무릅쓴 그런 경우는 정부 간 관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인 개인 차원에서 그런 미담과 같은 사례가 발견된다고 보아야 한다.

모든 국가 간 관계가 그렇듯이 상호 윈윈보다 힘의 논리에 의한 이익 나눠먹기나 일방적 강요와 굴종의 경우가 많다. 한미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한미관계 근현대사 조명이 사실관계를 외면하거나 객관성을 상실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여러 가지로 추정된다. 우선 한미관계를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작업은 친북행위로 불온시 하거나 심지어 국보법으로 처벌하는 살벌한 상황에서 거의 불가능했다고 보아야 한다.

설령 한미관계에 관심이 있다 해도 불평등한, 핵심적인 한미관계를 기본전제로 삼지 않는 관행이 뿌리 깊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 국내 많은 언론사가 특파원을 상주시키지만 한미군사동맹이 필리핀, 일본의 군사동맹에 비해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 모습이라는 점을 언급한 적이 거의 없다. 국내의 통일운동 진영에서 주한미군기지의 환경오염문제를 비판할 때 미군의 나 몰라라 하는 태도의 원인이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상위법인 한미상호방위조약 4라는 점을 지적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런 이유 외에도 살펴야 할 원인의 하나는 구한말이나 일제하의 한미관계에 대한 관련 자료를 구하기 힘들었다는 점도 포함될 것으로 추정된다. 가까운 과거까지는 국내에서는 한반도 역사의 한 주역인 미국 정부의 외교 문서 또는 해제된 비밀 자료 등의 공식자료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 진실에 접근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점은 20세기후반부터 크게 개선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세계 대부분 지역의 자료 검색이 안방에서 가능하다. 노력만하면 많은 자료를 안방에서 접할 수 있어 관련 자료를 취합하면 미국의 한반도 개입 역사가 훤히 드러나게 된다. 그러니 언론, 학계, 정치권, 시민사회에서 열심히 한미관계의 과거와 오늘에 대해 탐구해서 공감대를 확대하면 생산적인 공론의 장이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다.

▲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8월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미국 덕에 한국이 정치, 경제 선진국이 되었다?

한미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할 때 흔히 동원되는 ‘혈맹관계’ 등의 수사가 동원되어 미국 덕분에 오늘날처럼 한국이 정치, 경제 선진국이 되었다는 식의 논리가 제기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이는 정밀한 연구조사가 필요하지만 개략적으로 살필 때 한국적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로 보여 진다.

즉 한국의 정치적 선진화는 4·19혁명, 6월 항쟁, 광주민주화 운동 등을 통해 시민사회가 민주화를 위해 엄청난 투쟁과 희생을 했다는 점, 미국이 적극 지원했던 친일파가 주류였던 기득권층은 한국의 진정한 민주화에 기여했다기보다 민주화된 뒤의 과실을 따먹는 식의 행태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경제선진화의 경우 이승만, 박정희 통치 시절 한국 사회는 정관계와 재계의 부정부패가 심각했다는 점에서 기적과 같은 일로 해외에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주요 천연자원이 거의 나지 않는 한국이 노동력을 밑천으로 한 수출로 부를 축적했는데 정경유착으로 인한 부정부패가 심각한 상황에서도 한국 상품이 국제적으로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지녔던 것이 주요인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노동자의 희생 덕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2022년 6~7월 경남거제시에서 51일 동안 지속된 대우조선해양 파업 사태를 통해 간접 확인된다. 국내 조선업이 선박수주 세계 1위이지만 조선업계가 원청과 하청구조로 되어 있고 노동자 90% 이상이 하청업체 소속으로 생존이 어려울 정도의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를 떠받치는 저임금 하청업체 노동자들과 달리 소수의 거대자본과 기업주들은 선박 수주 세계 1위의 호조건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독식하고 있다.

21세기 한국사회의 자본과 노동의 구조적 모순은 60년대 이후 고도 성장기부터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고질적인 천민자본주의적 병폐라 하겠다.  한국 상품이 세계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로 가능했다고 보아야 하다. 노동자들이 살인적인 작업환경과 저임금 속에서 희생적인 경제활동을 한 것이 한국 경제성장의 가장 큰 추동력이 되었다 할 것이다. 박정희 때부터 시작된 노동자 착취구조는 재벌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부정축재와 정치권에 천문학적인 뇌물제공도 가능케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한미동맹 역사는 미국이 자국 이익 최우선으로 챙긴 과정

미국이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 이른바 안보를 담당하면서 기여했다고 하지만 2차 대전종전이후 미군이 점령군으로 남한에 온 뒤부터 오늘날까지 미국익을 최우선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다. 미국은 2차 대전 종전이후 소련의 극동 진출을 저지하가 위해 남한에 진주했다.

미군정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남한의 자생적인 건국추진 기구를 일체 불허하고 해외 독립운동세력도 개인자격으로 입국토록 했다. 미국은 3년의 군정기간을 통해 남한 내 군경을 주축으로 미국 세력의 확대를 시도했고 유엔을 통한 남한단독정부 수립 강행도 친미정권의 수립이 목적이었다.

미국이 애치슨라인을 선포한 것도 6·25전쟁이 나자 유엔 깃발을 앞세워 남한에 군대를 파견한 것도 미국익이 최우선이고 한민족을 돕는다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미국은 정전협정 뒤 평화협정 타결에 소극적이다가 1950년대 중후반에 냉전이 심화되자 핵무기를 남한에 들여와 소련을 견제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미국은 박정희, 전두환 쿠데타 정권도 미국익을 우선해 그 정통성을 인정해 주면서 평화협정 체결에 대비해 주한미군의 남한 영구주둔을 목표로 한 한미동맹을 강화했다.

오늘날 미국은 주한미군을 대중국 견제용으로 이용하기 위해 사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경북 상주에 배치하고 북한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한국 정부와 협의 없이 북한에 대한 선제 핵타격이 가능한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미국은 대북 핵공격 시 한반도가 쑥대밭이 될 정도로 파괴되는 것이 뻔 한데도 자국의 전략추진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런 태도로 미뤄볼 때 미국이 남한 주민의 생명과 재산이 어떻게 훼손될지에 대해서 관심이나 있는지 극히 의심스럽다. 현재의 한미동맹은 미국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어 미국의 최대의 수혜자인 셈이다. 이런 판이니 미국은 남한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것이라기보다 자국의 전략 추진 과정에서 남한에 신세진 것이 엄청 많아 그에 대한 대가를 남한에 지불해야 마땅하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은 한반도에서 자국의 이익 챙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을 뿐 한국에 특혜를 주거나 정당한 혜택만을 제공하기 위해 미국이 희생한 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한국의 선진화에 기여했다고 하는 것은 미국이나 친미세력이 앞장선 미국홍보, 심리전 차원의 수사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절하가 가능하다. 국가 간의 관계가 원래 국가이기주의의의 추구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한반도 개입 역사는 세계사에서 쉽게 발견되는 그런 약육강식과 같은 사례에 불과했다고 보아야 한다.

국가간 관계가 정상적이려면 상호 대등한 국격과 위상, 잠재력을 지니고 국제법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미국과 한반도의 뒤틀린 볼썽사나운 관계는 어찌 보면 피하기 어려운 역사적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한반도 주인들에 비해 국력과 세계적 영향력이 엄청나게 강했기 때문이다.

지피지기를 한다면 미국은 한반도와의 관계설정에서 자신들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카드를 앞세웠을 뿐이고 이에 대해 한반도 주인공들은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서로 대등하게 주고받는 역사의 과정이 아니었다. 미국은 슈퍼갑, 한반도 주인은 을에 불과했다. 한미관계 최초의 수립 과정부터 그랬고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역사적 과정이 사실관계에 입각해 객관적으로 기술되고 평가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도 심각한 현실의 한 부분이다.

▲ 성조기. 사진=gettyimagesbank


미국은 오늘날 한국에게 여전히 슈퍼갑

오늘날 미국은 한국에게 여전히 슈퍼갑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사령탑을 맡고 있는 유엔사는 몇 년 전 남북한 철도연결사업 관련해 방북하려던 남측 담당자들의 방북을 저지하고 경기도 도청의 도라산 사무실 설치를 불허하는 등의 해괴한 조치를 취해 주목되기도 했다. 정전협정을 관리해야 할 유엔사가 월권을 했다는 비판이 자자했다.

유엔사는 한국 내에서 유엔과 관계없는 ‘유령단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간단치 않다. 유엔사는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를 관장하면서 제2의 한국전쟁 발발 시 1950년에 했던 역할을 반복할 채비를 항상 갖추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과 핵실험 가능성 등에 대한 경고를 발하면서 각종 첨단 정찰기와 전투기 등을 한반도 상공에 파견해 무력시위를 하는 등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또한 한미군사 훈련 등의 동맹관계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에 앞서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의 국력이 경제력 세계 10위권, 군사력 6위라고 하는데 한미동맹의 시스템 속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한국의 군사적 주권이 미국에게 넘어간 심각한 상황이라서 한반도 분단과 관련된 남북문제 등에서는 미국의 소리와 그 모습만 보일 뿐이다. 한국은 미국이 하자는 데로 이끌려 가는 피동적 존재에 불과하다. 미국이 한민족 전멸을 초래할 전쟁을 한반도에서 하겠다고 해도 별다른 목소리를 한국 기득권층은 내지 않는다.

오늘날 한미관계는 혈맹의 관계로 일컬어지면서 한민족의 절반인 북한에 대한 남쪽의 주된 인식은 ‘이념은 민족에 우선 한다’로 압축된다. 남북은 1300여 년 동안 통일된 상태였고 정치사상, 이념은 한시적인 것인데도 남쪽의 국보법은 북한을 궤멸시키는 존재로만 규정하고 있다. 일부 수구세력은 검은 머리 미국인이라 불릴 정도로 친미적이면서 북한에 대한 엄청난 증오를 감추지 않는다.

남한 주민의 상당수가 친미, 반북의 태도를 보이면서 한국 정치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문제는 이들이 지난 150년간 미국의 한반도 관련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모르고 지내는 것을 불편해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역사를 모르거나 역사적 진실에 눈을 감으면 불행한 역사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교훈을 생각할 때 정확한 미국의 역사적 실체와 한반도에서의 족적에 대한 지식이 절실하다.

그러나 국내 어느 역사교과서, 사회 과학서를 살펴도 그런 작업의 결과를 접하기 어렵다. 미국의 실체가 아닌 사실이 기록되거나 진실을 가리거나 감추는 자료로 악용된 사례가 많고 미국의 역사적 사실관계에 접근할 때도 대단히 부실하거나 미흡한 경우가 허다했다. 이런 현실이 미국에 대한 허상이 남한 사회에 뿌리내린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고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되겠다는 판단이 ‘미국의 한반도 개입 151년’ 연재의 동기가 되었다.


‘미국의 한반도 개입 150년’을 사회과학적으로 파악해야

흔히 이해관계가 다른 개인은 물론 집단, 지역, 국가 간의 관계는 힘의 논리가 우선할 경우 불평등하고 비윤리적인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한 여러 부분에서 그런 상관관계가 발견되는 것처럼 한미관계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정의의 천사가 아니듯이 악의 화신이라고 내칠 일도 아니다. 상대를 탓하기 전에 내 탓이요 하는 자세를 지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한국의 20-30대는 여러 부문에서 세계 1등이 되어 지구촌의 박수갈채를 받는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기성세대들이 못했고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다사다난했던 근현대사를 몸으로 겪어야했던 세대는 선진국을 부러워하는 열등감속에 살아왔지만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다. 그들이 보는 세계는 기성세대보다 넓고 깊다. 젊은 세대가 행복한 한반도의 주인공이 되어 자랑스러운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책무다.

오늘날 미중 대치 등의 국제정세 속에서 신냉전이 시작되면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가 격랑에 휘둘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해서 모두가 윈윈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미국의 한반도 개입 151년’을 과학적,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미국을 정확하게 보고 남북문제도 객관적으로, 주체적으로 보는 안목이 현실을 올바로 파악하고 미래를 설계할 기본 전제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역사를 살피는 것은 현재를 올바로 파악하고 미래를 제대로 설계하기 위함이다.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현재를 올바로 보지 못하고 미래 설계 또한 부실해진다. 한미관계의 역사를 똑바로 확인하면 한반도 현실의 교통정리가 가능하고 미래 설계의 윤곽이 뚜렷해진다. 남북분단의 비극을 해결하는 것이 민족의 숙원이고 동북아 평화와 안정의 필수기본 요건이 된다는 점에서 동북아의 주요 변수인 미국과 한반도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도록 방치하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 고승우 민언련 고문·언론사회학 박사의 ‘한미관계 탐구’ 칼럼 최종화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필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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