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에서 수신료를 분리하는 방안을 찬반에 부친 대통령실의 국민참여토론이 어뷰징(중복투표) 논란 속에 마무리된 가운데 언론계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실의 수신료 쟁점화를 “여론조작극”으로 규정했다.

앞서 대통령실은 지난달 9일부터 한 달 간 국민제안 홈페이지의 국민참여토론 게시판에 ‘TV수신료 징수방식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수렴을 진행했다. 대통령실은 수신료와 전기요금을 통합 또는 분리징수 하는 방식의 장단점을 설명하면서 홈페이지에 로그인한 이들이 ‘추천’ 또는 ‘비추천’,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여러 SNS 계정을 이용한 중복 로그인이 가능한 사실이 알려지며 신뢰성, 조작 가능성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글엔 지난 9일까지 5만6226건의 추천과 2025건의 비추천, 6만3886건의 댓글이 달렸다.

언론노조는 이날 “국민제안 절차는 공론장을 열고자 함이 아니라 한 편의 여론 조작극이었다”며 “윤석열 대통령실이 국민제안으로 운을 띄우자 집권 여당은 당원협의회 의장들에게 국민제안에 적극 참여할 것을 요청했고, 보수족벌 언론들은 기사와 칼럼을 동원해 국민제안에 참여한 국민의 대다수가 수신료 분리 징수에 동의했다며 여론몰이에 나섰다. 보수 유튜버들까지 영상에 ‘수신료 갈취 악법’과 같은 선정적인 제목들을 달며 이에 가담하고 있다”고 했다.

▲ 4월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의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언론노조는 “미디어 업계와 학계 전문가들은 공영방송의 재원 구조만큼은 정치적 이해에 휘말려서는 안 되며, 합당한 정책적 고민과 공론화 절차 없이 온라인 조사를 근거로 추진되어서도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와 집권 여당은) 노골적으로 자행하는 방송 장악 시도를 중단하라. 방송장악 획책하는 여론조작 시도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하라. 천년만년 집권할 것처럼 권력의 단맛에 취해 멋대로 휘두르는 언론통제, 방송장악의 칼춤은 결국 당신들 스스로를 벨 것”이라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국민제안’이라고 하더니 한 사람이 들어가서 수십 번씩 추천을 누르고 여론을 조작해도 무방비 상태인 시스템에서 여론을 듣겠다고 한다”며 “조작된 여론으로 ‘수신료 폐지를 지지하니까 수신료 폐지하자’는 식으로 정책을 할 것이면, 지지율 30%짜리 대통령은 무슨 근거로 더 통치를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윤 위원장은 “현재 감사원은 공영방송 장악을 위해서 공영방송 경영진을 이 잡듯 뒤지고 있는 감사를 몇 달씩 이어가고 있다. 이번 여론조작 시도에서 드러났듯이 감사원이 감사해야 할 대상은 여론조작이라도 서슴지 않는, 그렇게 해서라도 방송을 장악하고 말겠다는 대통령실의 어처구니 없는 업무 수행”이라고 주장했다.

▲ 4월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의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강성원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이번 국민제안은 권력의 정점에서부터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언론을 길들이려 한다는 점, 그 수단과 절차에 있어서도 매우 왜곡된 절차로 비상식적이고 객관적이지 않은 여론몰이를 통해 여론을 조작하여 했다는 점, 그리고 지난 30년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뤄진 우리 사회의 질서를 파괴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반헌법적”이라고 주장했다.

강 본부장은 “공영방송 수신료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서 법적인 근거를 인정받은 우리 사회의 공동의 인식에 기반한 자산이고 가치”라고 강조하는 한편 “수십억 수십조 적자를 내는 한전(한국전력)에서 수신료 통합징수를 통해 수백억 수익을 내고 있음에도 수익 구조를 포기하는 것은 과연 국민 정서에 온당한 것인가. 수신료 분리징수 시스템을 다시 재편하는 사회적 비용은 또 누가 감당해야 하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KBS본부는 대통령실의 수신료 관련 정책 지침이 나올 5월9일까지 국민감사 청구를 비롯해 국민제안의 오류를 따질 방안을 강구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지역 공영방송, 신문·통신사 노조 관계자들도 입을 모아 대통령실을 비판했다. 송지연 TBS지부장은 “TBS는 국민의힘 서울시의회가 발의한 TBS 지원 폐지 조례안이 통과되면서 안정적인 출자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고 서울 시민을 위해 방송을 만들던 시민참여 프로그램은 모두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며 “헌법재판소는 이미 수신료의 법적 성격을 특별부담금으로 판시함으로써 법률적 지위를 확보해줬다. 그럼에도 수신료 분리징수 문제가 매번 반복되는 이유는 바로 공영방송을 무너뜨려 그들의 입맛에 맞는 언론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전국신문통신노조협의회 의장인 조성은 국민일보지부장은 “공영방송 책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는 시장 논리로 제공할 수 없는 정보, 다수가 아니라 소수가 필요로 하는 정보와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며 “IPTV와 OTT 얘기를 하면서 수신료 분리 징수를 운운하는 건 ‘말 앞에 수레를 놓는’ 어처구니 없는 논리이다. 이들이 이렇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것은 공영방송을 장악해 입맛에 맞는 보도와 방송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 하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 4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KBS 소수 노조인 KBS노동조합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KBS노동조합

한편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보수 성향 언론 단체들이 김의철 KBS 사장 퇴진을 요구했다. 지난 5일 “현 경영진이 교체되면 굳이 수신료 분리징수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여권 요구라는 성명을 냈던 KBS노동조합은 이날 30여개 언론시민단체들과 합동 기자회견을 가졌다고 밝혔다.

KBS노동조합은 성명에서 “수신료분리징수에 대한 행정적 절차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일단 추진되면 되돌리기 힘들다. 이제 남은 방법은 김의철 사장이 지금이라도 당장 ‘완전 퇴출’되는 길 뿐”이라며 “김의철 사장 퇴진운동을 더욱 격렬하게 펼치고 새로운 KBS의 대안을 제시해 수신료분리징수에 찬성한 국민의 마음을 돌리려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이글은 2023년 04월 10일(월)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