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통령 기사에선 대통령 만큼이나 ‘익명의 관계자’가 자주 등장한다. 수백 개 매체의 기자들이 비슷한 기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생산하는 환경에서 기사 질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새롭지 않다. 국내 대통령 보도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왜 발생하고 있을까. 좋은저널리즘연구회 소속 11명의 언론학자들이 펴낸 ‘한국의 대통령 보도’를 살펴봤다.

한국 대통령 보도의 형식적 특징은 짧고, 단순한 구조로 요약된다. 김지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 김창숙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교수, 이나연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분석에 따르면 조선일보 대통령 기사의 73.1%, 한겨레 대통령 기사의 64.1%가 스트레이트 유형이다. 반면 뉴욕타임스 대통령 기사 중 스트레이트 비중은 23.0%에 그쳤다. 대통령 기사의 평균 길이는 조선일보(13.18개)와 한겨레(12.41개)에 비해 뉴욕타임스(23.32개)가 10개 문장 이상 길다. 한국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대통령, 미국 조지 부시·버락 오바마·도널드 트럼프·조 바이든 대통령 집권기 기사를 분석한 내용이다.

정파성이 강하다고 여겨지는 조선일보·한겨레이지만 대통령 기사에선 주로 논조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특징도 확인된다. 대통령 기사를 긍정, 부정, 중립, 태도없음 등의 논조별로 분류하자 조선일보 기사의 95.3%, 한겨레 기사의 91.3%가 ‘태도 없음’에 해당됐다. 부정적 기사는 조선일보 4.0%, 한겨레 8.4%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 역시 태도없음 비중이 가장 높지만 그 비율은 70.6% 수준으로 두 매체보다 낮고, 부정적 기사는 24.1%로 나타났다.

대통령 기사 취재원, 전문가·협회장 편중된 국내 신문

대통령 기사 한 건당 평균 취재원은 조선일보 2.61명, 한겨레 2.35명, 뉴욕타임스는 7.85명이다. 국내 신문들은 더 적은 취재원을 활용하면서도 취재원 다양성,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일보 대통령 기사의 주요 취재원 분포 (상위 10위권까지 표기, 나머지는 '기타') 그래픽=안혜나 기자

▲한겨레 대통령 기사의 주요 취재원 분포 (상위 10위권까지 표기, 나머지는 '기타') 그래픽=안혜나 기자

조선일보의 상위 10대 취재원은 미상(27.7%), 청와대 관계자(24.0%), 대통령(11.9%), 행정부(6.3%), 정당(5.4%), 국회의원(4.1%), 각료·공직자(3.8%), 교수(2.4%), 타국 각료·공직자(2.0%), 타국 대통령·일반시민(각 1.9%) 순이다. 한겨레의 경우 미상(30.2%), 청와대 관계자(28.0%), 대통령(12.5%), 국회의원(6.1%), 정당(4.8%), 행정부(3.3%), 각료·공직자(2.9%), 정치평론가 등 전문가(2.3%), 타국 대통령(1.9%), 교수(1.5%) 순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의 주요 취재원은 상대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인다. 이 매체의 상위 10대 취재원은 백악관 관계자(15.7%), 국회의원(11.8%), 미상(10.1%), 대통령(8.4%), 각료·공직자(7.4%), 행정부(7.3%), 기타(7.0%), 언론매체(6.1%), 정치평론가 등 전문가(5.6%), 전직 정치인(3.7%) 등이다.

여기서 ‘전문가’로 인용된 취재원의 면면을 살펴보니 특정 취재원 편중 문제가 더 확연히 나타났다.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일반 전문가, 기관·협회·센터장, 연구기관 관계자 등 상위 3개 취재원이 전체 취재원의 과반(조선일보 50%, 한겨레 76.9%)에 달했다. 31개 전문가 유형 중 조선일보는 9개, 한겨레는 8개, 뉴욕타임스는 29개 유형의 전문가를 활용했다.

▲뉴욕타임스 대통령 기사의 주요 취재원 분포 (상위 10위권까지 표시, 원 자료에서 '기타'는 미분류로, 나머지는 '기타'로 표기) 그래픽=안혜나 기자

전문성보다 대통령 일정 따라 움직이는 기자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기사를 쓰는 사람, 기사가 작성되는 환경을 떼어놓고 볼 수 없다. 이재경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YSJ원장)가 조선일보와 뉴욕타임스의 지난해 4~6월 대통령 관련 기자·기사를 분석한 결과, 조선일보에선 3명의 기자가 244건을 뉴욕타임스에선 6명의 기자가 110건의 기사를 썼다. 기자 한 명당 조선일보는 하루 1건, 뉴욕타임스는 0.3건 기사를 생산했다. 뉴욕타임스는 경력이 많은 기자들의 기사량이 많은 반면, 조선일보는 팀장 지휘를 받는 젊은 기자들이 더 많은 기사를 써냈다.

개별 기자의 영역이 불분명한 조선일보와 달리 뉴욕타임스 기자들은 각자의 영역을 분명하게 구분해 밝히고 있다. 피터 베이커(Peter Baker)는 전체 백악관 보도를 지휘하는 팀장, 마이클 쉬어(Michael Shear)는 국내 정책, 데이비드 생어(David Sanger)는 국가안보, 짐 탱커슬리(Jim Tankersley)는 경제, 졸란 카노영스(Zolan Kanno-Youngs)는 국내정책과 극단주의자 문제, 케이티 로저스(Katie Rogers)는 백악관 관련 생활과 영부인, 문화적 의제, 국내 정책 담당이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피터 베이커(Peter Baker) 기자 프로필. 사진=뉴욕타임스 홈페이지

한국 대통령실 소통, 양·질·투명성 미흡

모호한 영역 구분과 전문성 결여의 문제는 기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애리조나주립대 월터크롱카이트 저널리즘스쿨 문영은 연구원은 양국 소통 조직의 업무와 운영이 확연히 다르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한국 대변인과 홍보수석은 언론 대응 면에서 사실상 차이가 없다. 비정기적으로 기자들을 찾아 브리핑을 하거나 큰 현안 구분 없이 기자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식이다. 주요 고위직은 물론 담당 실무자들의 정보는 비공개가 원칙이기에 ‘비공식 외곽 취재’가 성행하게 된다.

백악관은 대변인이 행정부로부터 공식 답변을 받고 시책 배경을 설명하는 등의 단기적 대응을, 홍보수석은 장기적 커뮤니케이션을 집중적으로 수행한다. 브리핑은 철저히 정례화돼있고, 모든 실무자의 이름과 직책이 공개돼 있어 담당자를 찾기 수월하다.

▲백악관 홈페이지에는 매년 국회에 보고하는 전체 직원의 이름과 임금, 담당 업무 등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사진=백악관 홈페이지

▲대통령실 홈페이지에선 비서관급 이상 참모진의 직함과 명단만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2023년 2월1일자 대통령실 수석실별 업무 및 비서관 이상 직위자 명단 파일 갈무리

브리핑의 질적 차이도 뚜렷하다. 일례로 지난해 7월 윤석열 대통령의 한·인도네시아 정상회담 관련 대변인 브리핑은 평균적으로 3분간 준비한 입장을 읽는 식이었다. 비슷한 시기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순방 대변인 브리핑은 평균 51분, 최대 83분간 진행됐다. 평균 19명, 최대 31명 기자들이 참여한 질의응답이 포함된 시간이다. 관련 영상은 편집 없이 전체 공개됐다.

권위적 대통령실 시스템, 기자들 덕에 유지

폐쇄적인 대통령실에서 충돌보다 순응을 택한 기자들이 이런 관행을 굳어지게 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완수 동서대 방송영상학과 교수는 10명의 전현직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을 면담해 대통령실 취재 관행을 △형식적 대통령 기자회견 △받아쓰기 하는 풀 기자 △‘얼굴 없는 전화’가 유일한 취재 수단 △개인적 인맥을 통한 비공식적 취재 △‘꾸미’(기자들의 취재 모임)를 통한 은밀한 공동 취재 △대통령실의 질서와 권위에 대한 맹목적 준수 등으로 분류했다.

“대통령실의 보이지 않는 권위를 인정”하는 태도는 취재·보도의 관행, 기사의 내용에도 영향을 미치는 양상이다. 문재인정부 청와대를 출입한 뉴스통신사 B기자는 “매일 마주치는 얼굴 때문에 출입처가 불편해 하는 내용을 보도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문 정부 청와대와 윤 정부 대통령실을 모두 겪은 경제지 K기자는 “대통령실 기자들은 회사의 지시를 받아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을 비판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신문 기자, 문화일보 논설위원 출신인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왼쪽)과 MBC 기자 및 MBN 앵커 출신으로 과거 청와대 부대변인, 국회의원 등을 지낸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 ⓒ연합뉴스

기자들의 순응적 태도는 대통령실이 구체적 설명 없이 특정 시점까지 보도를 유예하는 ‘엠바고’를 남발하고, 민감하지 않은 현안에 대해서도 ‘익명 관계자발’ 발언을 일삼는 문제를 관례로 유지시키고 있다. 아울러 언론사들이 대통령실 출입기자를 ‘기념행사 축전·축사’ 등을 비롯한 민원창구로 활용하는 구조가 담당 기자에게 압박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기자들을 직접 인터뷰한 이완수 교수는 10일 통화에서 “청와대·대통령실 출입기자들 문제는 수십 년간 비슷한 패턴이 유지돼왔다. 최근 미디어가 디지털화되면서 취재 분량이 많아지다보니 혼자 취재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느끼는 것 같다. 기자들끼리 담합해 협력 체제로 가는 것이 뚜렷한 변화이면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국가적 문제에 대해 탐사보도를 한다든지 제도·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단합해 보도하는 건 의미가 있지만 일상적으로 정보를 공동수집하고 보도할지 말지 판단하는 것은 저널리즘 행위에서 이탈돼 있다”고 지적했다.

▲2022년 11월1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출근길에 기자들과 출근길 질의응답(도어스테핑)을 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뒷모습(가운데)과, 질의 내용을 듣거나 받아적고 있는 출입기자들 모습.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서는 자리를 높이기 위한 단상까지 설치했지만 이날 출입기자의 질문이 무례했다는 이유 등을 들어 질의응답을 기약 없이 중단했다. 현재 이곳엔 기자실과 대통령실 청사 출입구를 가로막는 벽이 설치됐다. 사진=대통령실

이번 연구를 이끈 이재경 교수는 “역대 퇴임 대통령들의 불행은 제대로 된 대통령 보도가 존재하지 않는 한국 언론의 현실과 밀접하게 관계돼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성역 없는 비판적 보도’가 이뤄졌다면 폐쇄적 국정 운영과 권력남용, 나아가 국가적 불행을 일정 부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다. 취재진과 통화에서도 그는 “좌파, 우파 등의 정파지 논쟁” “기레기니 폴리널리스트니 하는 비난” 뒤에 ‘시스템’의 문제가 묻혔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저널리즘을 다룬 연구이다보니 매체들이 잘 안 쳐다보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딜레마”라며 “(연구 내용을) 주로 기자들이 보면 좋겠다. 언론을 바꾸려면 에디터, 경영하시는 분들도 보고 시스템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의 이야기가 다 옳지 않을 거고 현장을 다 반영하지 못했겠지만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 이야기를 시작해야 실마리가 풀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글은 2023년 02월 10일(금)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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