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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대 총선-총체적 부정선거동아일보 대해부 4권 -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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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1.2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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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3월 24일 실시된 제 14대 총선에서 동아일보는 부정선거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선거를 전후해 보수언론 가운데서는 가장 많은 부정선거 관련 기사와 사설을 내보냈던 것이다. 선거일을 20일이나 앞두고 상무 남시욱이 ‘동아시론’에서 칼럼(「6공과 6·29 정신」)을 통해 부정선거를 경고하고 나선 것도, 동아일보가 이번 총선이야말로 가장 부정선거가 횡행할 것이라는 조짐을 읽었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노태우 정권은 3당 합당으로 이루어진 거여·소야의 정치판을 유지하면서 ‘5공 청산’을  마무리 짓고 나서 연말에 벌어질 대통령선거를 유리한 고지에서 치르고 싶었을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온갖 선심공약을 남발했고, 할 수 있는 모든 부정선거 수법을 동원했다.
남시욱의 칼럼 요지는 다음과 같다.

  6공이 내세울 공적은 민주화일 것이다. 북방정책을 6공 정권의 치적으로 말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엄밀하게 보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 6공에 있어서 민주화는 그만큼 중요한 과제다. 6공의 존립 근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그런데 최근 들어, 특히 총선을 앞두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시계 바늘이 거꾸로 도는 듯한 민주화 역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대로 두면 이번 총선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 있을 대통령선거는 어떻게 될지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정호용·권정달·이주일 씨 소동에 이은 김 모 의원 출국, 이 모 전 장관의 사퇴, 5공 실력자였던 허 모 씨의 탄압 주장이 나오더니 전북 어느 지역에서는 일선 경찰서에서 여당후보 지원계획서를 만든 것이 드러났고 요새는 또 구청장·시장·군수들의 주민 접촉을 통한 여당 후보 지원이 말썽이 되고 있다. 문제의 경찰 문서는 총선대책과 방법까지 자세히 적은 내용이다. (…)
더욱 해괴한 것은 현대그룹에 대한 탄압설이다. 현대 측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정부당국이 기업의 목을 조르고 있다고 사장단 명의로 탄원서를 냈다. (…) 대기업인 현대가 거짓말을 한 것인가, 아니면 정부가 허위 발표를 한 것인가. 그러나 그 후의 신문 보도를 보면 현대 측 주장이 완전히 거짓이 아님이 드러나고 있다. (…) 정치와 경제는 분리되어야 하며 특히 관계 당국, 그중에서도 금융당국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
  우리는 지난날의 어두운 경험을 갖고 있다. 권력 유지를 위해 인권을 탄압하고 언론을 유린하고 정적을 핍박하던 그 반민주의 세월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6월 항쟁은 이 때문에 일어났고 6·29 선언은 여기서 나왔으며 그렇게 해서 6공이 탄생하지 않았는가. 만일 6공 정권이 막바지에서 6·29 정신을 망각하고 과거의 폐습으로 돌아간다면 6공은 도대체 어떻게 될 것 인가. 경제가 잘못되어 비판을 받고 있는 판에 민주주의까지 역행한다면 그 결과는 심각해질 것이다.

   
같은 날짜 사설(「정보기관의 선거개입 안 된다」)은 불과 보름 남짓 후에 벌어질 일들을 정확히 예측이라도 한 듯하다. 

  (…) 14대 국회의원 선거는 공식 일정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부터 극한 상황의 분위기를 빚고 있다. 민주당의 김대중 공동대표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대통령과 안기부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여전히 남북관계가 대치 국면을 못 벗어나고 있는 한 안기부와 같은 공안기관의 기능은 중요시된다. 그러나 안기부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그것으로 제한되어야 하며 국내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공안기관이 그 같은 정상 궤도를 벗어났기 때문에 정보정치·작정치를 규탄하는 국민적인 저항이 있어왔고 그 과정에서 비극적인 희생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안기부의 선거 개입이 또 다시 쟁점화 했다. 민주당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민주화 시대를 먹칠하는 반민주적 행위로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진실은 무한정 감춰질 수 없고 이미 공작정치의 사례는 많이 전해지고 있다. 정치적 비리다. 권력기관의 정치적 비리가 불식되지 않으면 공명선거는 원천적으로 보장될 수 없다. 공명선거가 깨질 때 이 나라 민주정치의 앞날은 오직 암울해질 뿐이다. (…)
  그 첫째 과제가 안기부의 선거 개입 중단이며 둘째 과제는 공약 순시의 중지다. 국민은 감시의 눈을 크게 뜨고 있다. 


‘한맥회’ 사건

동아일보 3월 15일자 3면에는「‘합동연설회 이모저모’ / 유세장서 동원학생 출석 점검」이란 큰 제목의 기사가 떴다. 서초을 선거구 유세장에서 “연설회가 끝나자 유세장 곳곳에서는 동원된 대학생들이 모여 출석을 점검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서울 S대 2년 김 모 군은 ‘일당 3만원을 받기로 하고 나왔다’고 실토했다”는 것이다. 부정선거 실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3월 18일자 동아일보에는 노태우 정권을 긴장시키는 ‘단독보도’가 나왔다. 자체 취재로 1면에「민자 대학생 선거운동 조직 / ‘한맥회’ 실체 드러나 / 12개 지단 3천명으로 구성 / 지원부대 역 일당 2만원 씩 / 유세장 2백~5백명씩 동원 / 본사 ‘상황보고서’ 등 문건 입수」라는 기사가 ‘한맥회’를 동원한 집권당의 부정선거를 폭로한 것이다. 이어 22면에서는「“총선·대선서 민자 압승”이 목표 / ‘한맥청년회’ 어떤 단체인가」라는 해설기사로 한맥회의 조직 규모, 구성과 운영 실태 등을 상세히 밝혔다.

동아는 사설과 기자칼럼 등을 통해 집권당에 융단폭격을 퍼부으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18일자 사설(「대학생을 타락시키는 선거」)과 19일자 ‘기자수첩’(「민자당과 한맥회」), 같은 날짜 사설(「위험한 선거 막바지 감시하자」)사설 등이 그런 역할을 했다. 23면(사회면)에는「“돈 장단에 춤추는 젊음 부끄럽다” / “대학생 선거꾼” 자성의 목소리」라는 기획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 3월 18일자가 그렇게 충격적인 폭로를 했는데도 검찰은 “수사를 검토하겠다”는 미온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동아일보는 20일자에「한맥회 수사 안 하나 못 하나 / 검찰 구체 사례 불구 소극 대응 / “선거사범 엄단 말뿐” 비난」(23면),  「점조직 운영… 회원끼리도 몰라 / 실체 드러나는 ‘한맥회’ '내막 / 현금 지급 운동원 등록 않고 '박수부대'로 동원」(22면)이라는기획기사를 실었다. 

같은 날짜 사설(「한맥회를 철저히 수사하라」)은 검찰의 기회주의적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 한맥청년회의 활동은 두 가지 측면에서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첫째, 집권여당인 민자당이 거대한 학생동원조직을 유지, 이 조직원들을 선거법을 위반해 가면서 국회의원 선거운동에 동원했다는 점이다. 둘째, 비슷한 대학생조직을 이용한 국민당 관련자는 즉각 구속되었는데도 민자당의 조직이라는 한맥회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의 수사 태도가 매우 흐릿하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선거법이라는 실정법 위반에 앞서 민자당과 검찰의 도덕성과 공신력이 크게 문제되고 있다. (…)
  일회적이고 개별적인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선거법 위반이 단체적 규모로 행해졌다는 언론 보도를 검찰은 외면할 수는 없다. 선거법의 조직적 위반의 구체적 사례와 증거가 언론을 통해 제시되어 있는데도 수사를 망설여서야 되겠는가. (…) 집권여당의 산하조직 또는 별동조직이라는 이유로 소극적 수사 자세를 견지한다면 그것은 정치권력과 검찰이 야합, 공명선거를 포기하는 것이다. 더구나 한맥청년회가 이번 총선뿐 아니라 대통령선거에 대비해 수만 명 규모로 조직의 확충을 꾀하고 있었다는 보도에 비추어 그런 의문이 더욱 짙어진다. 당장 철저한 수사가 행해져야 한다.

3월 21일자 칼럼 ‘기자의 눈’(「검찰과 ‘여우의 저울’」)도 검찰을 강력히 비판했다. 3월 14일, 일당을 주고 대학생들을 선거운동에 동원하는 행위를 ‘엄단’하겠다고 밝히고  사흘 후인 17일 국민당 간부 1명과 행사 계획대행사 ‘두잇 이벤트’를 운영해온 대학생 2명을 구속까지 한 검찰이 “바로 다음 날인 18일 여당인 민자당의 외곽조직인 ‘한맥청년회’가 일당을 주고 대학생들을 선거운동에 대거 동원한 사실이 구체적인 증거와 함께 본보에 보도되자 태도를 돌변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수사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가 19일에는 “내사 후 위법 사실이 드러나면 법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이는 즉각 수사를 촉구하는 여론의 ‘예봉’을 일단 피해놓고 보자는 시간 끌기 전술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그 후의 검찰 태도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검찰간부는 솔직한 입장을 털어놓기도 했다.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는데 잘못 벌여 놓았다가 선거 결과가 여당에 나쁘게 나오면 여당 쪽에서 검찰에 쏟아질 비난의 화살을 모면할 길이 없습니다. 그럴 경우 관계자들에 대한 문책도 뒤따를 것이고….”
  한맥회에 대한 검찰의 수사 태도와 검찰 내의 분위기를 보면서 아직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요원하다는 느낌이다. 법무장관이나 검찰총장이 누차 밝힌 공명선거 저해 사범에 대한 엄단 천명이 이 사건을 계기로 무력한 헛구호처럼 국민들에게 비추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공정하고 형평 있는 검찰권행사를 국민의 이름으로 새삼 촉구한다.


안기부원 흑색선전물 살포 사건

3월 21일에는 더 큰 사건이 터졌다. 그날 새벽 안기부 직원들이 서울 강남을 선거구에서 야당 후보 홍사덕에 대한 흑색선전물을 뿌리다가 야당 운동원들에게 붙잡힌 것이다. 동아일보는 22일자 15면 머리에「안기부원 ‘흑색선전물’ 살포 / 야 후보 비방 내용/ 사무관 등 4명 붙잡혀 / 우편함 투입 도청기 지녀 / “공작정치 사찰” 의혹 증폭」이라는 제목으로 그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14면에 실린「‘안기부 총선 개입’ 소문이 사실로 / 흑색선전물 돌린 직원 적발 안팎」이라는 해설기사는 안기부원들이 체포된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

  안기부는 13대 총선 전초전 때부터 민자당 공천 희망자에 대한 지역구 지지기반, 계파 별 갈등 요인 분석 작업 등에 개입해 왔으며 정호용 씨 감시, 권정달·정주일(이주일) 씨 출국 등에도 압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관련 당사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또 민자당을 탈당, 경북지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오한구·정창화 의원 등은 안기부 요원들이 자신들의 선거운동을 여러 형태로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안기부의 이 같은 의혹들은 안기부 직원들에 대한 범죄 수사를 안기부가 맡도록 규정하고 있는 국가안전기획부법 등의 규정 때문에 그동안 사실 여부가 규명되지 못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검찰이 이들의 신병을 인수, 직접 수사에 나선 만큼 사건 전말과 상부의 지시 여부, 안기부의 주요 인사 등에 대한 사찰의혹 여부가 명확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흥미있는 기사는 같은 날자 13면 ‘창’에 나온 「경찰 ‘안기부 감싸기’ / ‘뜨거운 감자’에 난처한 표정 못 감춰」였다. 안기부원들을 잡아다 경찰에 인계한 민주당원들과 경찰 간부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 안기부 직원이 민주당 사무실로 연행됐다는 상황보고가 관할 강남서에 접수된 것은 이날 새벽 3시경. 민주당원들이 한 씨 등을 유인물 배포 현장에서 붙잡아 ‘안기부 직원’ 신분증과 이들이 소지하고 있는 유인물 및 수첩 등을 확인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강남서 이팔호 서장은 즉시 긴급간부회를 소집했고 강남서엔 때 아닌 비상이 걸렸다. 한시라도 빨리 한 씨 등의 신병을 인수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강남서 간부들은 왜 하필이면 이 같은 불상사가 자신들의 관할구역에서 터졌는지 원망스럽다는 표정이었다. (…) 그러나 막상 한 씨 등이 경찰에 인계되자 경찰은 사진기자들을 몸으로 밀쳐내며 이들을 재빨리 차에 태워 강남서로 줄달음쳤고 강남서에 도착한지 15분도 안 돼 이 ‘뜨거운 감자’는 검찰의 손으로 넘겨졌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짜 사설(「흑색선전에 속지 말자」)을 통해 대 유권자 캠페인에 나섰다.

  “사기·음해·명예훼손 같이 말로 사람을 해치는 경우는 힘과 흉기로 사람을 해치는 경우보다 더 간교하고 가증스러운 범죄다. 우발적인 경우도 있는 폭행에 비해 흑색선전은 범의와 작위성이 더욱 분명하기 때문이다. (···)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음해공작이 확산되고 있는 현상이 통탄스럽다. 국가기관의 직원이, 그것도 다름 아닌 국가안전기획부 직원이 그 음해공작에 끼어들었다가 잡혔다. 정보정치와 공작선거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 경위와 배후 동기 등을 철저하게 수사해야 하며 엄중히 문책, 처벌해야 한다. (···) 이제 와서 새롭게 폭로되는 비리가 신빙성이 있을 리 없다. 그것은 대부분 반격과 해명의 시간이 모자랄 것을 계산한 음해일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여 국민들은 속지 말아야 한다. 


군 부재자 투표 부정 사건

  선거일 직전에 또 하나의 대형 부정선거 사례가 폭로됐다. 3월 22일 밤 육군 9사단 소속 중위 이지문이 서울 종로5가 공선협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18일부터 20일 사이 자신이 근무하는 부대에서 실시된 부재자투표에서 국군 기무사의 개입으로 공공연한 공개투표 등 광범위한 선거부정행위가 저질러졌다고 고발한 것이다. 동아일보는 23일자 사회면에「“군 공개투표 등 부정” / 육군중위 주장 / 기무사 서신검열기로 조사 / 회견 뒤 수방사서 연행」이라는 제목의 4단 기사로 그 사실을 보도했다.

그 기사 밑에 나온 1단 기사(「허위 가능성 높아 군 수사당국 수사 / 국방부 성명」)는 “윤창로 국방부 대변인은 23일 이지문 중위의 군 부재자투표 부정행위 폭로 사건과 관련, 성명을 발표하고 ‘이 중위가 부정행위를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라 주변 이야기를 중심으로 폭로 내용을 작성한 것 같다’”라고 주장하는 국방부 입장을 전했다.

이 사건에도 동아일보는 비판에 앞장섰다. 1면 고정칼럼 ‘횡설수설’은 “우리는 이번 총선 과정에서도 양심세력과 비양심세력의 대결을 목격하고 있다. 군 일부 부대의 부재자투표에서 국군 기무사의 개입으로 광범위한 선거부정행위가 저질러졌다는 이지문 중위의 폭로를 들으면서 의분에 떨지 않을 수 없다. 군의 정치적 중립과 공명선거를 떠들면서도 이 같은 부정선거를 자행했다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이중성과 파렴치에 분노를 참기 어렵다”고 비분강개했다. 

「군의 선거부정 진상 밝히라는」사설은 “우리는 이 중위의 폭로 내용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아직 알지 못 한다”고 전제한 후 “이 중위의 폭로 내용에 대한 사실 여부는 엄정히 규명해야 한다. 만일 폭로 내용이 사실이라면 총선의 합법성이 무너지는 중대한 국면이 빚어질지도 모른다. 그 결과에 따른 문책도 준엄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사실 여부를 규명하는 데에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군 수사당국 이외에 제삼자적인 위치에 있는 기관이 반드시 참여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방부 등 부정선거 관련 기관들과 안기부 직원 등은 완강히 혐의를 부인했고, 수사는 미적대기만 했다. 선거 당일인 3월 24일자 ‘기자의 눈’( 「검찰수사 ‘버티기’ 변명」)은 그런 사정을 잘 보여준다.

  14대 총선 막바지에 잇따라 터진 ‘한맥회’ 사건이나 안기부 직원의 흑색선전물 살포 사건에 대한 검찰의 설명을 들으면 마치 고장 난 음반을 되풀이해 듣는 착각에 빠진다. 검찰은 ‘한맥회’ 사건에 대해서는 “반드시 수사하겠다” “선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 안기부 직원들의 흑색선전물 살포 사건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 배후는 밝혀진 바 없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이처럼 엄청난 사건들에 대해 검찰이 신속하게 본격적으로 수사를 하지 않고 수사 시늉만 내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는 민자당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는 이들 ‘악재’가 선거 막판에 민자당에 불리하게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고 일단 선거를 치른 후까지 버텨보자는 데서 비롯된 것임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한맥회’ 사건→안기부 직원 구속→군 부재자투표 파문이 꼬리를 물자 민자당 등에서는 “한 지역구 당 수천 표 씩이 떨어져나가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는 “악재들이 언론 등에서 ‘크게’ 다루지 않아 생각보다 큰 파문을 안 일으켜 다행”이라는 안도의 분석을 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
  더욱 놀라운 사실은 검찰의 불공정 또는 형평을 잃은 수사 태도는 몇몇 검찰 고위간부가 스스로의 ‘안위’를 우려한 데서 비롯됐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는 집권 민자당의 참패로 끝났다. 민자당은 전체 237개 선거구 중 116석밖에 얻지 못해 전국구 33석을 합해도 과반수 의석인 150석에 1석이 못 미쳤다. 민주당은 97석, 국민당은 31석을 얻었다. 동아일보는 3월 25일자 사설(「민자당의 패배 / 6공 치적과 3당 통합에 대한 국민의 심판」)에서 선거 결과를 이렇게 평가했다. “14대 총선은 민자당의 3당 합당과 6공 정권의 치적을 심판대 위에 올려놓은 사실상의 국민투표였다. (···) (민자당의 패인은) 단순히 잘못된 공천만이 아니다. 민자당의 특정 인사들을 당선시키기 위해 동원된 추잡한 관권 개입의 사례는 유권자들의 공분을 샀다. 안기부 직원들이 나서 흑색선전의 공작을 폈고 군의 일부에서는 부재자 투표를 공개리에 진행했다는 보도가 터져 나오는가 하면 한맥회라는 대학생 부패화 사태마저 자행하는 등 반민주적 작태를 서슴지 않았다.”

같은 날짜 2면에는「민자 “공천 잘못·악재 겹쳐 패배” / 여야 자체 진단 ‘승인과 패인’」「민자 허탈 민주·국민 희색 /개표 지켜본 각 당 표정」, 26일자 4면에는「여 후보들 “안기부 악재 결정타” / 낙선자의 변」, 21면에는「“안기부만 아니었으면…” / ‘흑색선전’ 파문 낙선 김만제 후보 탄식」등의 기사가 나왔다.

마지못한 부정선거 처리

선거 후에도 동아일보는 3월 26일자에 「선거범죄 엄정하게 척결하라」는 사설을 싣는가 하면,「14대 총선 공명했나」라는 제목을 단 ‘캠페인서 투개표까지’ 시리즈를 시작하는 등 부정선거 수사를 압박했다.

검찰의 선거부정 수사에 대해 동아일보는 다음과 같은 기사들을 잇달아 내보냈다. 「안기부 흑색선전 살포·한맥회 사건 / 검찰 본격 수사키로」(25일 자 23면),「안기부 흑색선전 살포·한맥회 사건 /검찰, 관련자 소환 조사」(26일자 23면),「한맥회 회장 최승혁 씨/  한달 간 1,200만원 입금」(27일자 23면),「‘안기부 흑색선전’ 수사 “제자리”; 검찰 / 한맥회도… 참고인 조사 못해」(27일자 23면),「한맥회 사법처리 할 듯; 검찰 / 안기부 직원 주변 인물 수사 집중」(4월 1일자 23면),「‘안기부 배후’ 심증 굳혀 / 흑색선전 살포 / 민자 지구당 관계자 출두 요구」(2일자 23면),「‘안기부 흑색선전’ 새 증거 확보; 검찰 / 10여명 가담 조직적 개입 가능성」(3일 23면),「‘안기부 흑색선전’ 수 사확대; 검찰/ ‘김동길 씨 비방’ 곧 조사키로」(4일자 23면).

특히 국방부에 맡겨진 군 부재자 부정투표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동아일보의 역할을 돋보이게 했다. 처음에「“이 중위 폭로 내용 허위” / 국방부 자체 조사」(3월 24일자 23면)처럼 완강히 혐의를 부인하던 국방부는「한겨레신문사 발행인 등 고소 / 국방부 명예훼손 혐의」(25일자 23면)라는 기사의 내용처럼 강경한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동아일보가 일련의 사설(「진상조사와 제도 개혁을 / 군 부재자 부정투표의 사실규명 시급하다」:3월 27일자), 「국방부의 책임을 묻는다」:4월 2일자, 「군 선거부정 철저히 밝혀야:4월 15일자」)을 사설을 통해 강하게 공격하자 궁지에 몰렸다.

동아는 사설뿐 아니라 스트레이트기사와 칼럼까지 동원했다.「폭로내용 번복 자술서/ 기무사 요구대로 썼다 /이 중위 변호사에 밝혀」(3월 25일자 23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것일까. 이지문 중위의 ‘군 부재자 투표부정’ 폭로가 있은 다음 민자당의 부재자투표 득표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 군 당국이 의혹을 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3월 26일자 ‘횡설수설’,「부재자투표 “신뢰성 부재”/ 정당 참관인 없고 관리허술 시비 잦아」(같은 날짜 23면),「부재자투표 부정 여부 / 야권서 진상 조사 착수」(27일자 1면) 등으로 본질적인 부분까지 파고들어갔다.

‘공선협’ 등에는 전군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제보가 잇따랐다. 동아일보는 4월 3일자 1면 머리에「군 내부 “정치 중립” 소리 높다 / 육본 참모들 제도적 보장 요구 / “선거 때마다 후유증 시달려 군과 정치고리 끊는 게 시급”」이란 기획성 기사를 올렸다. 4일 국방장관 최세창이 부정선거를 부정하는 기자회견을 하자 1면 머리기사(「군 부재자 투표 재조사 / 군 ‘특별검사’ 도입 촉구 / “부정 부인 발표는 국민 우롱, 대통령 사과- 장관 문책하라」)를 통해 야당의 반응을 대대적으로 전했다. 3면 해설기사 제목은「진상 규명보다 ‘면피’에 초점 / 군 부대 자체 수사 객관성 없어 / 정치성 교육에 대한 오해 못 씻어」였고 사설은「진상을 진상대로 밝혀라」였다. 6일자에는 ‘군투표 의혹’ 조사의 한계」라는 ‘기자의 눈’을 내보냈다.   

동아일보는  ‘기자의 눈’(「군의 재판공개 기피증」), ‘창’(「“12·12 때 근무이탈 부대” / 이 중위 재판 변호인 역공 방청객 박수」) 등으로 이지문의 재판과정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야당과 ‘공선협’ 등 시민단체의 반발과 동아일보의 분전에도 14대 총선에서 드러난 3대 부정 사건은 최소한의 수사와 처벌만 하는 것으로 끝났다. 특히 군 부재자 투표부정의 경우 「“군 투표 ‘조직 부정’ 없었다”; 윤 선관위장 / 이 중위 폭로 내용은 단정 못해」(4월 11일자 2면) 등 선관위장의 윤관의 발뺌까지 등장하면서 이지문에 대한 기소유예와  ‘불명에 제대’ 조치로 막을 내렸다.  5월 6일자 21면에 실린 ‘창’(「이 중위의 ‘불명예 제대’ / 이등병 강등… 부대 문 나서며 눈시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군 부재자투표 부정 사례 폭로로 징계파면된 이지문 중위가 전역한 4일 오후 6시경 육군 9사단 정문 앞. 당초 이 중위가 부대를 나오기로 된 오후 4시 반을 훨씬 넘겨서도 이 중위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이날 오후 3시경부터 정문 앞에서 기다리던 가족들이 초초해 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한 장교가 나타나 “절차상의 문제가 생겨 6일경에나 이 중위를 내보낼 수 있다”고 하자 가족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흥분했다. 가족들은 “바로 어제(3일) 4일 오후면 이 중위가 전역할 테니 마중을 나오라고 통보해 놓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
  이런 신경전도 끝나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저녁 7시 45분경 부대 인사 참모가 불쑥 가족 앞에 나타나 “이 중위는 이미 길 건너편에 있다”고 통보했다. (…) 가족들은 이등병 계급장이 달린 모자를 쓴 이 중위를 부둥켜안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고 위로했다. 이 중위도 아버지 규복 씨(55)에게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중위의 가족 재회 장면을 지켜보던 한 친지는 “양심선언을 했다 해서 이등병으로 강등된 것도 억울한데 군을 떠나는 날까지 이럴 수가 있느냐”며 부대의 처사를 원망하기도 했다. 민간인으로 돌아온 이 중위는 이날 밤 10시경 공선협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외람되지만 군 부재자투표 부정을 폭로하고 불명예 제대하는 장교는 내가 마지막이길 바랍니다. 올 연말 대통령선거 때는 내 자신 시민의 선거 감시 활동에 적극 동참, 이 땅에 올바른 선거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이 밖에도 안기부 직원 흑색선전물 살포 사건은 연루자 4명이 구속된 지 두 달 만인 5월 22일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한맥회 사건은 ‘번개재판’ 끝에 6월 2일 그 단체 회장 최승혁에게 징역 1년, 총단장 박종효에게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는 것으로 흐지부지 끝났다.

동아일보 ‘한맥회’ 보도팀(정치부 최영묵, 수도권부 반병희·이인철·이원재 )은 한국기자협회가 수여하는 ‘이 달의 기자상’ 3월 수상자로 선정됐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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