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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출 수 없는 보수 본색-‘전교조는 안 된다’동아일보 대해부 4권 -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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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2.2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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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정치권에서는 국회를 중심으로 5공 청산 작업이 본격화됐다. 이와 별도로 사회 각계각층에서 억눌려 있던 요구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불만의 주체는 주로 노동자와 농민이었다. 교사들도 그 한 축이었다.


현대중공업 파업 사태

1988년 12월 12일 현대중공업 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갔다. 동아일보는 그 날짜 사회면(15면) 3단 기사로 그 소식을 전했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하면 의외로 작은 보도 비중이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그해 6월 초순부터 회사와 136개 항을 놓고 협상을 벌였으나 보너스 인상과 퇴직금 누진제 등 모두 9개 항에 합의를 보지 못하고 파업에 들어갔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동아일보 지면에는 현중 파업 사태에 관한 보도가 거의 보이지 않다가 해가 바뀐 1월 9일자 사회면 머리에「현대 노조원 습격 20여명 부상 / 새벽 2곳서 구사대 자처 100여명이 무차별 폭행 / 1차 현중 노조 단합대회장 덮쳐 / 2차 해고근로자 사무실도 습격 / 행동대장 등 관련 9명 검거 자수 / 경찰, 범행에 회사 관련 여부 수사」라는 제목의 기사가 등장했다. 회사가 파업 노동자들에게 테러를 가한 것이 분명한데도 동아일보는 제2사회면(14면)에 실은 해설기사의 제목을「회사 조종인가… 노·노 갈등인가」라고 달아 마치 그 사건에이 노·노 갈등의 가능성도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기사는 범행에 동원됐던 각종 버스와 봉고차·승용차 등의 장비와 차안에 실려 있던 간식용 빵과 우유, 야구방망이 및 곡괭이 자루, 횃불 등의 다양하고도 치밀한 준비물을 주동자들이 사전에 발각되지 않고 준비했다는 점, 워키토키를 들고 일제히 마스크와 복면을 한 점과 차량 번호판을 노란색 테이프로 가리라고 지시한 점 등으로 미루어 사전 모의를 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는 점, 무엇보다도 재미동포인 제임스 리라는 배후 인물을 검거했다는 사실을 자세히 보도하면서도 일부 노조 대의원들이 테러에 가담했다는 것만을 두고 ‘노·노 갈등’의 가능성을 크게 부각시켰다.

노사문제를 ‘노·노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은 사측이 일상적으로 애용하는 프레임이다. 극소수 어용 노조원들을 은밀히 동원해 노·노 싸움을 벝이게 해 놓고 언론을 이용해 사태의 본질이 노사쟁의가 아니라 노·노 갈등인 것처럼 둔갑시키는 것이다. 12월 13일자 동아일보 사설(「노사폭력과 공권력」)도 냉큼 그런 프레임을 차용한 것이다.

  폭력과 탈법은 자제되고 지양되어야 한다. (…) 기사년 벽두에 울산에서 자행된 한바탕의 폭력 사태는 (…) 현대라는 기업의 사주와 조종에 의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노노간 갈등의 표출이었는지는 당국의 수사가 밝힐 것이다.(…) 그러나 분별 있는 대다수 국민의 관심은 (…) 그와 같은 폭력을 찾아 올리는 의식과 관행의 깊은 뿌리를 도려내는 일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다. (…)
  노와 사의 쌍방관계에서나 국가와 민의 관계에서나 또는 노와 노의 관계에서 모든 폭력적 사고나 탈법적 관행은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 (…) 둘째 노와 사의 관계에서 이제는 더 이상 상대의 존재를 부인해서는 안 된다는데 인식을 같이 해야 한다. (…) 만의 하나라도 이번 현대그룹 노조에 대한 폭력 사태에 기업이 개입했다면 그것은 반역사적이며 반시대적인 것으로 규탄받아 마땅하며 수시로 변하는 노조의 극한적인 요구나 주장 또한 같은 맥락에서 반성되어야 마땅하다. (…)
  권리란 비록 그것이 법으로 보장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무한으로 추구되기 어려운 것이다. 권리의 실현이란 무한한 갈래의 이해와 충돌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조정 기능은 국가의 몫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그 조정역으로서의 공권력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틀을 깨지 않는 속에서 정당한 노력을 정당한 방법으로 기울인다면 우리에게 개선의 소지가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할 때라 여기는 것이다.

이를테면 현중 테러가 회사 측에 의해 벌어진 것인지 노·노 갈등 때문에 벌어진 것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아무튼 폭력은 나쁜 것이니 서로 자제하지 않으면 공권력이 개입할 것이라는 경고인 셈이다. 테러의 주범이 회사 측이거나 일부 어용 노조원이 가담한 구사대이거나 간에 어쨌든 피해자는 파업 중인 노조가 분명한데도, 사 측을 인정하지 않고 폭력을 쓴다면 공권력이 동원될 것이라고 노조를 겁박하는 기괴한 논리인 것이다.

21일자 15면(사회면) 귀퉁이에 실린「현대 테러 직후 회사 간부식당서 구사대․ 전경 함께 식사」울산 검찰발 기사에서 보듯 테러는 회사 측이 자행한 것이 점차 드러났음에도 현중 파업사태는 점차 노-노 갈등에 의해 폭력사태로 점철되어 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1989년 2월 13일자 사회면에는 “조업 재개 3일째인 13일 1만3천여 명의 근로자들이 출근했으나 조업 반대 근로자 1천여 명이 작업장을 돌며 작업을 방해, 조업이 안 되고 있다”는 3단 기사가 올라와 있다. 3월 14일자 사회면 머리기사 제목은「노사 충돌… 집단폭력… 맞고소… / 지하철 현대중 분규 더욱 악화/ 지하철 “중재 관계없이 16일 파업” / 현대중 부사장 등 폭행 50명 부상」이었다. “현대중 조업 반대 근로자들이 몰려 다니며 회사 임원들과 조업 중인 근로자들을 무차별 폭행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식칼 테러를 포함한 현대중공업 장기 파업 사태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축소와 편파 등 왜곡보도의 극치를 이루었다. 사태가 가라앉은 후 밝혀진 대로 현대중공업 회사 측은 물론 안기부와 문공부까지 나서서 언론사 간부들과 집단 접촉을 벌였고, 현지 취재를 나간 각 신문사 기자들이 회사 측과 경남 도지사로부터까지 거액의 촌지와 향응, 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현대중 파업은 3월 30일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1백9일만에 막을 내렸다. 동아일보는 그 날짜 사설(「‘현대중’의 결말과 교훈」)에서 “노사의 자율협상으로써가 아니라 끝내 공권력의 개입으로 문제를 푼 결말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렇게라도 우선 정상 조업의 길이 트인다면 그 결과를 반길 수밖에 없다는 심정”이라고 밝혔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폭력 타령’을 했다. 

  (…) 그토록 큰 피해를 경험했으면서도 교훈으로 얻는 것이 없다면 1백9일의 파업은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그중 첫째로 폭력이란 노사 모두에게 득될 것이 없다는 이치를 진심으로 마음에 새겨야 한다. 한유동 전무가 주도한 회사 측의 폭력이 없었다면 파업이 그렇게 오래 계속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근로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 그런 유연성을 몸에 익히지 않고서는 모든 분규는 파업에 이르고 끝내는 서로가 옴쭉달싹 못하는 질곡에 빠져 타율 해결의 불명예와 더욱 큰 손해를 불러들일 수밖에 없다.
  셋째, 자율의 원칙은 어떤 경우라도 저버려서는 안 된다. 회사 측이 외부 폭력을 동원했던 것이나 파업 주도 측 근로자들이 재야 학생들의 개입을 뿌리치지 않았던 것이 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냉철하게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노사 모두 자율을 권리로서 소중히 여기지 않고 외부세력의 도움으로 문제를 풀어 보려 한다면 노동운동은 순수성과 바른 틀을 세워갈 수 없으며 문제의 본안을 해결하기보다는 엉뚱한 곳으로 빗나갈 수 있다는 이치를 차제에 깨우쳐야 한다.

  이 사설은 자본과 노동이 가진 힘의 현저한 불균형을 외면하고 양자 간 힘과 권리가 대등하다는 공허한 논리를 들이대면서 일방적으로 현대중공업의 손을 들어 주고 있다. 왜 폭력조직을 동원한 회사와 재야 변호사·학생들의 조력을 받은 노조가 같은 수준에서 비판을 받아야 하는가. 회사는 언론과 공권력의 일방적인 도움도 받지 않았던가.


서울 지하철 파업

현대중공업 파업 사태가 막바지로 치닫던 1989년 3월 또 하나의 대형 노동쟁의가 발생했다. 강력한 조직력을 자랑하는 서울지하철 노조가 3월 16일 파업에 돌입했던 것이다. 동아일보는 파업 하루 전인 15일자 사설(「지하철 다시 한 번 호소한다」)설을 통해 “지하철의 파업은 헌법과 노동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그것은 언제라도 쓸 수 있는 칼이다”라면서도 “권리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권리란 무한 추구가 가능한 가치가 아니라 칼집 속에 들어있는 칼처럼 지닌 사람의 무게를 지켜주는 장식이기도 하다는 점에 눈 돌릴 줄 안다. 꼭 쓸 때가 아닌 경우에 빼어드는 칼은 칼이 아니라 자칫하면 흉기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어렵고 복잡한 얘기이지만 결국은 파업을 하지 말라는 소리다. 

서울지하철 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16일자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는 「지하철 파업 30명 구속 방침 / 농성 2,100명 연행 집행부 7명 사전영장 / 공사 내일 새벽까지 복귀명 령/ 거부 땐 징계위 해직 파면 조치」, 사회면 머리기사는「묶인 시민의 발…출근 대혼란 / 서울지하철 파업… “빨리 정상화됐으면” / 버스정류장 장사진…발만 동동 / 지원차 쏟아져 도심 체증 극심」이었다. 동아일보는 노조에 대한 회사 측의 강경 대응과 시민의 불편만을 강조하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동아일보는 이후에도 17일자 사회면  머리기사(「출근 아수라장 이틀…“이젠 제발” / 지하철 파업 시민들 짜증 훈방 조합원 짝 지어 대책 숙의 / 노조원 등 천명 민주당사 농성 / “구속자 석방 때까지 계속 투쟁”」부터 21일자 사회면 머리기사(「한 칸에 600명 “숨도 못 쉬겠다” / 우리가 주인인데 볼모 삼다니… 시민들 분통 / “배 터져 죽겠어요” 서로 아우성 / 정비 손 달려 대형사고 위험도 / 꼼짝달싹 못해 내릴 곳서 못 내린 여학생 울음」)등 온통 시민 불편에 초점을 맞춘 기사들 일색이었다. 파업의 정당성이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17일 사설(「민주적 ‘노사’를 생각한다」) 역시 “노동자의 권리를 생각해야 한다”면서도 결론은 “파업은 안 된다”였다.

  (…) 우리는 왜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가. 근로자들이 그들의 권익을 제대로 누려본 적이 없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 권익을 되찾아야겠다는 자각이 지금 우리 주변 곳곳의 사업장에서 노사 분규를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노동 민주화운동’ 또는 ‘노조의 민주화운동’은 그렇기에 민권운동 차의 타당성을 지니며 그것을 피해가기 다는 그 운동의 틀을 바람직한 모습으로 유도 정착시키는 일은 우리 모두의 과제다. (…) 그리고 그 일은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해내야 한다. 우리의 상황은 특수하기 때문이다. (…) 우리의 경제 체질은 아직 유약하다. 남미 몇 나라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선진 진입의 문턱에서 좌초할 수도 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배다. (…)
그래서 또 한 번 거듭 생각해 본다. 우선 노사 모두 극단의 선택을 삼가자. 근로자가 권익에 눈 떠 뭉치고 법이 그 권리를 보장하고 있어 언제라도 결행이 가능한 상황에서 파업이란 무서운 무기다. 예리하게 날이 선 칼처럼 깊은 상처를 남긴다. (…) 기업의 생사를 위협하는 무기가 되는 것이다. 날이 선 칼이기엔 이른바 구사 폭력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지 말자. (…)
서울의 지하철도 울산의 현대중공업도 그리고 그밖의 모든 분규 현장에서도 모두가 정상으로 되돌아가기를 지향하자. 지하철은 계속 적자 운영이고 조선업은 모두가 불황으로 역시 적자가 대부분이다. 노사가 몸담고 있는 기업을 살리는 노사관계가 돼야 한다. 노사 당사자 모두가 이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진짜 정상이다.

정당한 파업을 불법 구사대 폭력과 같은 수준에 놓고 노조가 무조건 파업을 중단하는 것만이 정상이라는 주장이다. 말로만 노동자의 권리를 떠들어 대지 그에 대한 실질적 배려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여의도 농민 시위

2월 13일 여의도에서 농민 1만5천여 명이 ‘수세 폐지’ ‘고추 전량 수매’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동아일보 14일자 사회면 머리기사(「농민 1만여 명 폭력시위 / 어제 여의도서 / 검찰 “배후 등 색출 엄벌” / 수세 폐지 등 요구 의사당 진입 기도 / 죽창 앞세워 돌 던지며 돌진 / 기계 전시장 차 6대 등 방화 / 1백여 명 부상 차량 자전거 등 2백여 대 파손」)는 폭력을 강조하는 제목으로 그 사건을 다뤘다.

동아일보가 약자들이 행사하는 폭력에 대해 그 원인을 심각하게 묻지 않고 무조건 “안 된다”고 비난부터 하고 나서는 것은 노동자나 농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2월 15일자 사설(「폭력시위는 안 된다」) 그랬다.

  (…) 우리는 또한 아무리 고귀한 목적이라도 그것을 달성하려는 방법이 그 원칙에 어긋날 때 그 같은 행위는 지탄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 같은 방법으로는 결코 성공적으로 당초의 목적을 성취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더욱 큰 모순과 마찰을 불러온다는 역사적 경험을 알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리의 경혐과 원칙에서 볼 때 13일 여의도 광장에서 벌어졌던 농민들의 시위는 결코 국민적 지지를 받기 어려운 사태로 보인다. (…) 도대체 수세 문제나 고추값 문제 등을 폭력으로 해결하려 든다면 오늘 우리가 당면한 어느 문제를 대화와 타협으로 매듭지을 수 있단 말인가. (…)
  국민적 우려의 핵심은 과격 시위나 폭력 시위가 사회적 긴장과 불안을 초래하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우리가 그토록 배격하고 혐오하는 ‘조직적 폭력’이 또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데 있다. 사회질서 확립 등을 명분으로 하는 조직적 폭력이 우리 주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화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키려는 대의정치를 배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합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민주시민정신에 투철해야 한다.

 

전교조에 대한 뿌리 깊은 적대감

1989년 5월 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탄생했다. 그 전날인 27일자 동아일보는「“강행” “봉쇄”…긴장의 서울 주말/ 어떤 저지 있어도 행사 치러; 교원노조 / 불법 단정…참가자 전원 연행; 경찰」이라는 사회면 머리기사로 한양대에서 치러진 교원노조결성준비위의 전야제 분위기를 긴박하게 전했다. 전교조가 출범한 28일자에서도 동아일보는 사회면 머리기사로 그 소식을 전했다.「교원노조 장소 옮겨 기습 결성 / 한대 봉쇄되자 200여명 연대서 강행 / 천여 명 건대서 저지 규탄대회 / 간부 24명 민주당서 단식농성」외에도 주요 기사로「“주동교사 구속 10명 선” / 민주당사 농성 간부 4명 신병인도 요청」이라는  검찰 발 기사가 실렸다.

5월 29일에는 전교조 관련 기사가 1면에 올랐다.「‘교원노조 마찰’ 확산 기미 / 당국; 불법 규정, 전교조; 시도지부 결성 맞서 / 교사 이견에 학부모 우려 / 교육현장 갈등 심화 예상」이라는 제목이었다. 전교조에 대한 동아일보의 시각은 다음날인 30일자 사설(「교육은 투쟁이 아니다-정치권 차원의 결연한 개혁 의지를 보여라」)에 분명히 나타났다.

  (…) 지난 2월 이후 전교협이 노조 결성을 선언하고 4개월간 이를 추진해오는 과정에서 정부당국이나 일반 국민들이 강한 의구심을 표명했던 것은 우리의 전통적 교사상으로 볼 때 교사들이 일반 근로자들의 경우처럼 노조를 결성하고 쟁의를 벌이는 일이 자라나는 2세들의 교육상 문제가 있다는 점이었다. (…)
  특히 우려되는 것은 교원노조 결성 선언문의 내용이다. 전문에 흐르는 문맥을 보면 교원노조가 교사들의 권익 옹호나 교육환경의 개선을 위한 단체라기보다는 궁극적으로 사회 개혁을 목표로 한 단체하는 인상을 갖기 십상이다. (…) 또한 단체협약 시안을 보면 교과용 도서의 발행을 자유발행체제로 하여 정부의 저술 심의권을 배제하고 있다. 현재의 국정 검인정제도를 부정하고 임의로 발행된 교과서의 채택마저 학교장도 간섭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국가적 교육 목표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
  이 같은 전교조의 극단적이고 투쟁적인 활동 내용이 40만 교직자들의 의견을 얼마나 수렴한 것인지는 자못 의심스럽다. 일부 주동 교사들이 재야나 반정부세력의 주장에 편승한 자의적인 주장이라면 이런 과격한 주장은 시정되어 마땅하다. (…) 온 국민의 우려 속에 탄생한 전교조가 앞으로 어떤 활동과 어떤 진로를 잡아 나갈 것인지는 예측키 어렵다. 다만 일부 교사들이 국민들의 우려를 외면한 채 단체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그동안의 사정에 대해 정부는 물론 온 국민들의 깊은 성찰이 있어야겠다. (…) 다만 오늘의 교육문제가 임기응변이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방편이 되어서는 안 되며 정치권 차원의 결연한 개혁 의지가 앞서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후 교사들의 결연한 의지, 당국의 강경 대응이 맞서 교육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전교조는 법외단체로 머물렀고 교사들에 대한 해고 등 징계가 잇따랐다. 동아일보 6월 27일 사회면에는 「투신 고교생 '격려 편지‘ ’유서‘ 파문」「전교조 관련 딸 해직 비관 아버지 목 매 자살」「전교조 관련 고교생 집단행동 배후관계 내사 나서」등 3건의 전교조 관련 기사가 올랐다.

「투신 고교생…」이라는 기사는 직위해제된 교사의 복직을 요구하며 교내 농성 중 투신자살을 기도한 한 학생이 유서를 남긴 것으로 밝혀져 그 학생의 투신이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그 학생에게 격려편지를 쓴 또 다른 교사의 의도가 모호하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7월 10일자 동아일보에는「냉정과 이성을 호소한다- 교원노조 가입 교사는 시국을 인식토록」이라는 사설이 나왔다.

  (…) 9일 전교조는 예정된 ‘전교조 탄압 저지 및 합법성 쟁취를 위한 범국민대회’를 강행하려 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한강시민공원에서 약식행사를 치르는 데 그치고 말았다. 이날 대회장과 시내 곳곳에서 연행된 교사가 무려 1천8백 명에 이른다 하니 교사들과 경찰의 대결 양상이 얼마나 치열했던 지를 짐작할 수 있다. (…)
  교원노조는 실정법에 위반하는 단체이므로 이를 통한 어떤 투쟁도 그 정당성이나 실익을 얻기 어려운 한계를 지니고 있다. 또한 교원노조가 그 목적이 교원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교육환경 개선 및 ‘참교육’ 실천에 있다면 이를 위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교사로서의 본분이며 지혜일 것이다. 무리한 방법이나 비현실적인 투쟁 목표가 결과적으로 전체 교사들의 사회적 역량을 감소시키고 국민들의 지지를 잃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오늘의 전교조 운동의 위상은 자명한 것이다.
  또한 아직도 우리 사회는 교사를 성직으로 간주하는 뿌리 깊은 전통이 잔존하고 있다. (…) 오늘의 교직자들이 유의해야 할 것은 꼭 교직원노조라야 한다는 아집과 고정관념으로 법질서에 정면 도전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당면의 교육문제인 교육의 민주화·인간화의 길이 무엇인지, 교육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실천하는 방안이 교원노조 결성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다소 횡설수설하는 감은 있으나 교원노조 운동은 현행 법질서에 맞지 않으니 당장 그만 두라는 요구는 확실하다. 동아일보는 7월 17일자 사설(「교원노조 아집을 버리라」)을 통해 어르고 뺨치는 전형적 수법을 보였다.

  (…) 단 몇 달 동안의 교원노조 운동으로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동요, 교직 사회의 분열 등 교육현장의 돌이킬 수 없는 혼란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이 혼란은 교사들이 학생들 앞에 설 때 꼭 지녀야 하는 동양사회의 전통적 교사상의 제일 덕목인 교권의 실추에서 비롯되었다. 교원노조 교사들의 투쟁 목표인 ‘참교육’이나 교사의 권익 옹호가 이 교권을 배제하고는 이룩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전통이요 특징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명심할 일은 그동안 전교협·전교조 운동을 통한 교사들의 집단 요구가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온 국민들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의지를 키웠다는 점이다. 건국 이래 우리 교사들이 얼마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당했는가. 또 우리의 교육현장이 경제 성장과 사회환경에 걸맞지 않는 열악한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았는가. 국가 목표의 최우선 순위로 이 교육환경 개선을 설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등 기본적 인식에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비현실적인 교원노조에 대한 아집이나 국민적인 여망에서 빗나가 있는 민중교육의 환상을 버리고 나라의 백년대계인 교육의 진정한 초석을 놓는 길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는 것이 교사들이 우선적으로 할 일이라는 것이다. 좌우간 노조를 하지 말라는 결론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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