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 향한 '파렴치한' '정신적 문제 있다' 인터뷰 … 모욕 아냐

독립적으로 활동할 때는 공인도 인격 침해 호소 가능

언론중재위원회가 지난 3일 ‘2021년도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를 발간했다. 언론관련 민사판결 188건이 분석 대상이다. 소개된 주요 사건들을 보면 의견표명, 사실적시, 공인 인정 등 언론을 둘러싼 판결의 주요 기준들을 확인할 수 있다. 미디어오늘이 직접 5건의 주요 판결을 추렸다.

의견표명, 사실적시 … 구분 기준은?

언론관련 소송에 있어 의견표명과 사실적시의 차이는 크다. 사실적시의 경우 증거에 의해 진위를 가릴 수 있다고 판단된다. 의견표명은 그러한 부분에서 사실적시보다 운신의 폭이 넓다. 단순 비평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언론사들은 대체로 ‘의견표명’을 주장하고, 원고는 ‘사실적시’를 주장한다. 재판부는 의견표명과 사실적시를 어떻게 구분하고 있을까.

▲ 2020년 1월 21일자 서울경제 기사

서울경제는 2020년 1월 ‘자녀교육에 ‘아빠찬스’ 쓴 문석균’ 기사를 보도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아들 문석균씨가 알력을 이용해 자녀의 전입과 학생회장 선거에 이용했다는 것이다. 이에 문씨는 허위사실이라며 명예훼손을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지방법원은 원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혜를 받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보도된 내용이 객관적 사실이고 ‘아빠찬스’라는 단어가 ‘사실적시’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아빠찬스’의 뜻이 반드시 분명하다고는 볼 수 없고, 부모의 지위나 영향력을 활용하여 부정한 이익을 얻는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며 “이 부분 내용은 사실의 적시라기보다는 일종의 비평이나 의견표명으로 볼 여지도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맥락이 중요했다. 재판부는 다른 사건에서는 ‘사실적시’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기사 내 어조와 수식어구 및 문맥, 사회적 상황 등의 ‘맥락’ 고려한 결과였다.

인터넷매체 에큐메니안의 2020년 6월 기사에 대해 모 교수는 같은해 8월 기사삭제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직원에 대한 갑질’ 등의 표현이 문제가 됐다.

해당 사건을 재판했던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보도가 객관적 사실에 부합한다고 본 것이다. 다만, 에큐메니안의 주장처럼 ‘갑질’ 등의 표현이 단순 의견표명이라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아빠찬스’가 단순 의견표명이라고 판단했던 앞 사건과 판단이 달라진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가 기사에서 ‘상식 이하의 일을 자행’하였다는 문구를 사용하며 단정적인 어조로 보도하였고, 함께 사용된 수식어구 및 문맥, 사회적 상황 등을 고려하면 이는 단순한 의견표명이라고 볼 수 없다”며 “진위를 가릴 수 있는 사실관계에 관한 주장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맥락에 따라 ‘아빠찬스’, ‘갑질’ 등의 표현이 의견표명이 될 수도, 사실적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공인 ‘파렴치한’ 보도 … 비난 여지 있다면 모욕 아냐

공적인물에 대해선 강도 높은 비판이 정당화된다. 공공의 일을 수행하고, 국민 봉사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판결 사례들도 공적 인물은 언론의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9년 6월 중원신문 기사에선 시의원에 대해 “다수의 주민을 고소, 고발한 파렴치한 인간이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는 시민의 말을 인용한다. 원고는 이것이 ‘모욕’이라고 주장했다. 시민의 말을 빌리는 것처럼 표현해 원고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 중원신문 기사 갈무리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공적인물의 도덕성, 청렴성 관련 보도는 ‘모욕’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설령 이 사건 각 기사의 일부 내용이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 공적 관심 사안을 그 내용으로 하거나 시의원으로서 공적 존재인 원고에 대한 도덕성이나 청렴성에 대한 내용이고, 이는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된다”며 “원고의 행위에 비난의 여지가 있고, 공적 존재인 원고의 행위에 대한 문제제기 과정에서 일부 과장이나 비유적 표현은 언론자유의 한계를 벗어나 모욕이라고 볼 수 없다”고 적었다.

글로벌이코노믹 기사 관련 소송에서도 공인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잘 드러난다. 2020년 글로벌이코노믹은 2월 기사에서 공기업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낙하산 인사 일자리용 사업’을 편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원고는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역시 원고 주장을 기각했다. 주요 이유는 ‘공적 책임’이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론의 장에 나선 전면적 공적 인물의 경우에는 비판을 감수해야 하고, 그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해명과 재반박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며 “공공기관에게는 감시와 비판이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독립적으로 활동할 때는 공법인도 인격권 침해 호소 가능

하지만 일부 판결에선 공적단체도 명예훼손 및 모욕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사경제주체로 활동하는 경우나 국가로부터 독립된 고유 업무를 수행할 때다.

피치원미디어는 2018년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특정 회사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결함이 있는 슈퍼컴퓨터를 부정하게 구입했다는 것이다. KISTI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관의 공적 연구기관이다. KISTI가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자 피치원미디어는 원고가 공법인으로서 인격권 침해를 주장할 수 없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KISTI의 명예훼손을 인정했다. 서울고등법원은 KISTI의 슈퍼컴퓨터 도입은 사경제주체로서 활동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슈퍼컴퓨터 도입 사업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적절히 수행했는지 여부는 KISTI의 ‘외부적’ 명예이므로 모욕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원고가 청구한 정정보도도 일부 인용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법인인이나 이에 준하는 지위를 가진 자라 하더라도 공무를 수행하거나 고권적 행위를 하는 경우가 아닌 사경제 주체로서 활동하는 경우나 조직법상 국가로부터 독립한 고유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는 기본권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 이글은 2022년 08월 14일(일)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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