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도 삭제되거나 일부가 사라지는 경우가 있지만 독자들은 알 길이 없다.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 등 취재원의 압박으로 사라지는 기사의 일부가 확인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부탁’을 빙자한 ‘검열’과 ‘내면화’를 동반한 ‘순응’은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소리소문없이 진행되고 있다.

과거엔 달랐다. 군사독재정부 시절 정부 기관원이 신문사로 출근해 기사를 검열하고 보도지침을 내려보냈다. 김주언 전 한국일보 기자가 보도지침 메모 등 근거 자료를 외부에 공개하면서 언론탄압의 실체가 알려졌다. 요즘과 달리 검열의 ‘증거’가 남던 시절이다.

더욱 과거로 가면 ‘벽돌신문’이란 독특한 유물이 있는데 그 자체로 언론탄압의 증거다. 일제가 언론을 검열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기사를 삭제하도록 했는데 이때 신문사는 해당 기사란을 다른 기사로 채워 넣어야 한다. 기사 대신 활자를 뒤집어 인쇄하면 지면에는 글자가 아니라 검은 사각형이 나란히 인쇄된다. 이 모양이 벽돌처럼 생겨서 ‘벽돌신문’으로 불렸다. 벽돌신문은 권력이 기사를 검열하고 있다는 사실과 일제가 기사를 검열한 정도와 양을 보여준다.

최초의 벽돌신문은 1904년 2월24일자 ‘황성신문’에서 나왔다. 황성신문 2면에 실린 ‘별론’이란 기사를 삭제당했다. 전부 삭제는 아니고 일부 활자들이 남았지만 전체 문맥을 파악하긴 어려웠다. 황성신문은 삭제 경위를 같은달 29일 한일의정서 내용을 기사화하면서 밝혔는데 일제가 인쇄 직전에 삭제 명령을 내려 벽돌신문을 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1905년 7월 이후엔 검열을 강화해 벽돌신문이 자주 발행됐다고 한다.

▲ 일제강점기 언론탄압의 흔적인 벽돌신문

제국신문 1906년 3월21일자를 보면 ‘신문을 매일 편집해 활자를 배열할 때 경무고문실에 가서 사전 검열을 거친 뒤 인쇄하는데 일본이 허가하면 그대로 나오고 내지 말라고 하면 부득이 그 구절은 활자를 뒤집었다’며 벽돌신문이 탄생하는 과정이 나온다.

영국인이 발행한 대한매일신보는 1908년 4월26일자 “벽돌신문을 읽는 법”이란 기사에서 벽돌신문 보며 고려할 점 다섯가지를 제시했다. △‘대한’이란 두 글자를 잊지 않을 것 △세계와 세계 속 한국이 어떤 상황인가 생각하고 볼 것 △한국 신문 중 조국정신을 잃지 않은 것이 몇이나 되는가 생각할 것 △삭제된 부분이 조선에 유익한 말일지 해로운 말일지 생각해볼 것 △삭제당할 내용을 보도하려 한 의도는 무엇일지 생각할 것 등이다. 삭제된 기사의 행간과 이면을 시대상과 연결해 생각해보자는 제안이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발행한 ‘해조신문’은 1908년 5월6일 ‘일제의 압박을 당하면서도 붓을 꺾지 않는 것은 속박당하더라도 굴하지 않고 이 자체를 기록한다’는 취지의 논설을 보도하며 신문발행을 격려했다.

권력과 언론의 불편한 관계는 지금도 이어지지만 권력의 부탁과 기사 삭제·수정이 흔적 없이 이뤄지는 현 시국과 대비되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 참고문헌
채백, 애국계몽운동기 일제의 언론통제와 한국언론의 대응 : 노일전쟁부터 강제병합까지를 중심으로

* 이글은 2022년 04월 07일(목)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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