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당선을 둘러싼 언론계 일각의 불안감이 ‘피바람’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당선자가 후보자 시절 보여온 언론관이 이를 자극해온 만큼 선제적으로 ‘공영방송 불개입’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

그간 소위 ‘더불어민주당 계열’과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집권 교체기마다 반복된 시나리오는 이렇다.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된 뒤 3개월 뒤, KBS 이사들이 사퇴한 자리에 새로운 여권 추천 이사들이 들어선다. 방송사 안팎의 일부 단체들이 KBS 사장의 경영 부실, 방송의 정치권 편향 등을 문제 삼는다. 새 대통령 취임 6개월 뒤, KBS 이사회의 해임제청안을 대통령이 받아들인다.

위 사례는 실제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2008년 정연주 당시 KBS 사장 해임까지의 주요 과정들이다.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3개월 뒤인 5월 보수성향 시민단체들이 정연주 사장에 대한 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과 검찰이 나서서 정 사장을 조사한 데 이어 8월에 이르러선 KBS 이사회의 제청으로 이 대통령이 정 사장을 해임했다. 주된 해임 사유였던 정 사장 배임 혐의는 2012년 대법원에 의해 무죄로 판결됐다.

▲2008년 8월 8일 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범국민행동(상임운영위원장 성유보)이 오전 9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정문 앞에서 KBS 이사회의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천정배 민주당 언론장악저지대책위원장이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언론노보

정권 교체기의 공영방송 사장 해임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도 이뤄졌다. 2017년 5월 문 대통령이 취임한 뒤 KBS 이사회는 새로운 여권성향 이사가 다수인 구조로 재편됐고 이듬해 1월 KBS 이사회의 해임제청안이 의결돼 문 대통령이 이를 재가했다. 문 대통령 취임으로부터 8개월간 벌어진 일이다. 두 사장들의 과오나 해임제청 사유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새로운 정치세력 집권기에 공영방송 사장 교체가 추진됐다는 점은 같다.

이는 정치적 개입이 관행화한 공영방송 지배구조에서 필연적 수순이었다. 현행법상 KBS 사장은 KBS 이사회가 후보를 선정해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한다. KBS 이사회는 정부여당과 야당 추천이 3대2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11명 이사들 역시 여야 7대4 비율로 구성된다. 법적으로 아무런 근거 없는 정치적 관행일 뿐이지만 어떤 정당이 집권하든 ‘여대야소’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공고했다.

이런 구조에서 1973년에서 2021년까지 정치적 전환기에 KBS 사장이 교체된 사례는 16회, 사장 교체가 새 정부 집권으로부터 8개월도 걸리지 않은 경우가 이 중 7번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영국 BBC는 정치적 전환기 사장 교체가 9회, 8개월 이내 사장 교체는 0회에 불과하고, 일본의 경우도 각각 12회, 2회인 것과 대비된다. 일본은 8개월 이내 이뤄진 2번의 사장 교체가 기존 사장 임기 만료로 인한 것이었다. 이를 분석한 연구(‘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시민참여의 정당성’, 2021, 최선욱)에서 한국 공영방송의 정치척 취약성은 0.78로 일본(0.08), 영국(0)을 웃돌았다. KBS를 비롯해 MBC, EBS와 같은 공영방송사들도 자유롭지 못한 문제다.

▲한국, 영국, 일본의 정치적 변화와 공영방송 경영 최고 책임자 교체. 자료=2021년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시민참여의 정당성’, 최선욱

이런 흑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정치권 개입을 금지하자는 언론·시민사회계 요구가 있었지만 민주당이 집권한 여대야소 정부에서도 이는 이뤄지지 않았다. 윤석열 당선자는 이런 관행을 오히려 법제화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1월 KBS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질문하는기자들Q’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는 ‘시민단체 참여가 아닌 여야가 직접 공영방송 이사를 7대6으로 추천하고 그중에서 3분의2 이상의 찬성으로 공영방송 사장을 선출하는 이른바 특별다수제를 제안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 측근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들어서고 공영방송에 ‘낙하산 사장’이 임명된 이래 MBC의 수많은 언론인들이 일터가 아닌 스케이트장 등으로 발령 됐고, 6명이 해직됐다. KBS에선 대표적 시사프로그램이 폐지됐고 대통령 라디오연설이 편성됐다. YTN 역시 ‘돌발영상’ 등이 폐지되고 6명이 해직되기에 이르렀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청와대의 공영방송 낙하산 논란은 계속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에 개입한 행위는 헌정사상 최초로 방송법 위반에 따른 대법원에서의 유죄 확정 판결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영방송 구성원 다수가 원하는 경영진 교체가 이뤄졌다. KBS와 MBC 사장 선출 과정에 처음 시민참여형 면접, 정책발표회 등이 도입됐다. 그럼에도 ‘정권 교체 후 공영방송 개혁’의 부작용은 여실히 드러났다. 문 대통령 집권 초기였던 2017년 12월 해임된 강규형 전 KBS 이사의 경우 지난해 해임무효소송에서 승소했다. 감사원 감사로 드러난 업무추진비 사용이 품위를 훼손했다는 사유가 해임까지 이르기에는 과도하다는 취지로, 강제적인 이사진 교체의 한계에 과제를 남긴 판결이었다. KBS·MBC는 지난 10년의 과오를 반성한다고 밝히며 이른바 ‘적폐’ 청산 목적의 조직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이뤄진 일부 구성원에 대한 징계나 해고는 또 다른 갈등의 씨앗으로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시기의 공영방송은 어떤 운명에 놓이게 될까. 지난 6일 유세 현장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가 “(더불어민주당이) 강성노조 전위대를 앞세워 못된 짓을 하는데 그 첨병 중의 첨병이 언론노조”라면서 “정치개혁에 앞서 먼저 (언론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한 사례는 언론계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국민의힘이 ‘어떠한 지원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힌 한 단체는 ‘친정권 편파 왜곡 방송인’ 명단을 만들어 공개하고 있다. KBS, MBC 등에 소속된 언론인단체 및 윤석열 캠프 인사가 참여한 ‘20대 대선불공정방송국민감시단(국민감시단)’이 최근 유튜브를 통해 ‘친정권 편파 왜곡 방송인 1차 보고서’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한 것이다. 영상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과 김의철 KBS 사장, 박성제 MBC 사장, 우장균 YTN 사장, 성기홍 연합뉴스TV 사장, 김어준 TBS 라디오 진행자를 비롯해 공영방송사 보도책임자들이 줄줄이 언급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0일 윤 당선자를 향해 “‘진실 왜곡 언론사는 파산’시키겠다는 엄포를 놓고, 자율규제를 공약이라 내놓은 분열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민주당을 옹호하는 강성노조의 전위대로 노동조합을 보는 대통령, 헌법에 따라 결성된 노동조합을 ‘해산시키겠다’는 정당이 집권할 나라가 목전에 있다”면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의 ‘전위대’를 앞세워 다시 공영방송에 피바람을 일으키고, 조중동 언론재벌을 위해 종편 규제를 완화하며, 민영방송을 자본과 사주의 들러리로 보장해 줄 거대 미디어부처의 신설도 머지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같은 날 “차기 윤석열 정부의 언론·미디어 정책에 대한 우려는 결코 기우가 아니다. 이런 우려를 잠재울 사람은 윤석열 당선인, 본인뿐”이라며 “언론을 향한 적개심을 버리고 소통의 정치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국민을 믿고, 국민의 뜻을 따르는’ 길이다. 과거 국민의힘 정권처럼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고, 혐오와 차별에 기대는 낡은 정치로 퇴행한다면 윤석열 정부 역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 경고한 바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주장처럼 이런 우려를 잠재울 수 있는 주체는 윤 당선자 뿐이다. 윤 당선자 스스로도 지난해 12월 관훈초청토론회에서 “영국 BBC, 일본 NHK 같이 국제적으로 공정성과 중립성이 인정된 공영방송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한국정치가 이렇게 됐겠느냐 하는 생각”이라면서 “정권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공영방송을 과연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많다”고 밝힌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후보자 공약집 중 '미디어 개혁' 일부

윤 당선자는 공약집에서도 △모든 조직화된 권력으로부터 언론의 자유 보장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과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 마련 △공영방송의 거버넌스 구조 개선 등을 밝혔다. 이제 두 달 뒤면 대통령 임기를 시작할 윤석열 당선자가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차별화를 두려면 ‘공영방송에 대한 개입은 없다’는 점을 명확히 선언해야 한다. 취임 이후 ‘통합’을 강조하고 있는 윤 당선자의 국정 철학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 이글은 2022년 03월 14일(월)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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