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 후보자 TV토론은 유권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후보들이 활용하는 다양한 미디어 창구와 별개로 가공되지 않은 후보자의 식견을 확인하고자 하는 수요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권자에게 도움이 되고 질적으로 수준 높은 TV토론을 위해 이번 토론의 성과와 한계를 반면교사 삼아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제20대 대통령 후보자들의 TV 토론은 총 여섯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안철수 국민의당, 심상정 정의당 후보 등 4자 토론은 △2월3일 지상파 3사 초청 토론으로 이뤄진 첫 4자 토론 △2월11일 한국기자협회 주최, 종합편성·보도전문 6개사 주관 토론 △2월21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선거방송토론위) 주관 1차 법정토론(MBC 중계) △선거방송토론위 주관 2차 법정토론(SBS 중계) △3월2일 선거방송토론위 주관 3차 법정토론(KBS 중계) 등이다. 군소정당 등 후보 토론은 2월22일 선거방송토론위 주관으로 MBC에서 진행됐다.

토론의 형식은 법정토론 기준으로 ‘시간 총량제’ 토론과 ‘주도권 토론’으로 구성됐다. 시간총량제 토론은 사회자가 공통질문을 던져 각 후보의 대답을 한 번씩 들은 뒤, 후보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6분)을 활용해 질문과 답변을 나누는 형식이다. 주도권 토론 시간엔 각 후보자가 9분 동안 그날 토론의 대주제에 한해 자신이 원하는 상대와 토론을 할 수 있다.

주도권토론은 앞선 19대 대선의 한계를 보완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19대 대선 토론의 경우 두 개의 소주제를 두고, 주제별 공통질문과 자유토론(시간총량제)을 벌이는 방식이었다. 토론 주제의 다변화나 깊이를 보완하고자 별도의 자유토론을 둔 셈이다. 그러나 이는 이는 모든 토론에서 네거티브가 반복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번 대선에서 네거티브 공방이 과열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경우 경제, 정치,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반복됐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으로 지난 2월 25일 서울 마포구 SBS 오라토리움에서 열린 제20대 대선 제2차 초청후보자토론회(정치분야)에서 후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왼쪽부터). ⓒ노컷뉴스

시간총량제 토론의 한계도 드러났다. 지난달 21일 경제분야 토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코로나19 관련 현 정부의 실책과 여당 소속인 이재명 후보의 연관성을 비판해놓고 정작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게 의견을 물은 사례가 일례다.

일부 정당들이 총량제 토론으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철수 후보는 지난달 25일 토론을 진행한 편상욱 SBS 앵커가 안 후보 질문을 받은 윤석열 후보의 답변 차례에 개입해서 심상정 후보에게 답변 기회를 부여했다고 비판했다. 지난 2일 사회분야 토론 직후엔 정의당이 사회자인 박태서 KBS 해설위원을 향해 ‘발언권을 얻지 못한 심 후보가 홀로 발언을 해야 했다’고 공정성 문제를 제기했다. 모두 총량제토론에서의 발언 시간 조율의 문제로 발생한 일들이다.

그러나 사회자의 문제는 오히려 미약한 존재감에 있었다. 각 토론에서 사회자들은 후보자들의 답변과 쟁점을 정리하는 역할은커녕 기계적인 시간 분배에 머물렀다. 선거방송토론위의 토론회 관리규정도 사회자가 공정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토론진행표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식적인 선에서 시간을 조정하거나, 주제와 관련 없는 사안을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사회자 역할일 테지만 이번 토론에선 그런 제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주제별 토론의 취지가 무색해진 요인 중 하나다.

방송계에서는 토론회를 앞두고 벌어진 사건들이 부른 ‘칠링 이펙트’(chilling effect)를 호소하기도 한다. 정치권에서의 압박이 이어지는 환경에서 각 방송사나 사회자가 재량을 발휘하기 어려웠다는 주장이다.

실제 윤석열 후보는 지난해부터 대선 후보 TV토론 필요성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토론 거부’를 해왔다. 지난해 12월 유튜브 채널(삼프로TV)에 출연해 “정책토론은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하거나,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상대(이재명 후보)의 자격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올해 설 연휴 전으로 추진되던 4자 토론도 윤 후보 거부로 늦춰졌다. 기존 2월17일로 추진하던 관훈클럽 초청 4자후보 3차 토론은 윤 후보 불참으로 무산됐다.

▲지난 2일 대선TV토론 장면. 사진=SBS 유튜브 갈무리

국민의힘의 편파시비로 사회자가 교체되는 일도 있었다. 애초 MBC는 MBC ‘100분토론’과 KBS라디오 ‘열린토론’ 진행자인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를 1순위로 추천, SBS는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을 진행하는 주영진 앵커를 1순위로 추천했다. 그런데 1월14일 원일희 국민의힘 선대본 대변인이 “(선거방송토론위가) 정치적으로 매우 편향된 인물을 사회자로 선정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는 논평을 내는 등 노골적인 반대 의사를 보였다.

이에 이튿날 선거방송토론위가 표결로 사회자 가부를 결정하기로 한 과정에서 위원회 내부의 문제제기가 이뤄지기에 이르렀다. 결국 MBC는 박경추 아나운서, SBS는 편상욱 앵커로 사회자를 변경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토론 프로그램 제작진은 “토론이 성사되는 과정부터 문제가 있었다. 윤석열 후보 눈치를 너무 많이 봤다”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회자까지 교체시키는 등 너무 개입을 해서 제작주체로서 방송사들의 역할이 미약해졌다”고 말했다.

▲독일 공영방송 ZDF의 총리 후보자 토론 직후 분석 방송. 사진=ZDF 유튜브

다만 이를 토론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풀어가선 안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선거법에 후보토론을 무조건 하도록 돼 있는 나라는 드물다. 강력한 공직선거법을 근거로 선거방송토론 규정을 만들어놨는데 이를 더 강화하면 더 나빠질 수도 있다”며 “경직된 부분을 효율적으로 풀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1, 2위 후보 등의 직접적 토론을 몇 번, 나머지 후보는 몇 번을 진행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기준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토론 불참을 선언한 경우에는 참여 의사를 밝힌 후보를 우선순위에 두고 토론을 진행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심 교수는 이어 대선 토론 이후 면밀한 분석을 통해 효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선거토론은 경직이 됐든 안 됐든 (투표에) 도움이 됐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의 유권자들은 과거에 비해 토론을 통해 후보의 무책임함 등을 판단할 수 있었을 거라 본다”며 “선거가 끝나면 그 결과를 바탕으로 TV토론 이후 유권자들이 토론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했는지 유권자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TV토론, 실시간이나 방송 직후 팩트체크 도입해야

TV토론과 관련해선 방송사들이 유권자의 판단을 도울 수 있는 보도가 활성화될 필요성도 제기된다. 미국 CNN의 경우 대선 후보 TV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후보자 발언에 대한 사실 여부를 TV토론 중계화면에 표출한 사례가 주목 받았다. 팩트체크 보도의 경우 명확히 거짓인지, 어느 정도가 진실인지 구분해 보도하고 있다.

▲미국 CNN의 대통령 후보 TV토론 검증 보도 갈무리. 사진=CNN 유튜브

독일 공영방송 ZDF는 지난해 총리 후보자 TV토론회 직후에도 1시간 동안 검증 보도를 했다. 이유진 프리랜서 기자(라이프치히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 석사과정)는 ‘신문과 방송’ 기고에서 “(ZDF는) 정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와 시사 유튜버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토론회를 평가했다. 후보 간 의견 충돌이 일어난 영상을 다시 보여주고, 팩트체크도 진행했다”며 “토론회의 승자도 바로 판명 난다. ARD의 대표 뉴스 프로그램 ‘타게스샤우(Tagesschau)’는 토론회 직후 무작위 전화 및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국내 방송사에선 대선 후보들의 발언을 실시간, 또는 뒤이어 검증하는 보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선 후보 발언을 검증하는 기사들이 있지만 후보들 발언이 검증 없이 실시간으로 퍼져나가는 미디어 환경에서 파편화된 팩트체크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토론 중계에서 나아가 해석이 필요하다는 지점은 유권자들의 소비 행태에서도 드러난다. 시사인 기자들이 구독자 대상으로 실시간 팩트체크 자료 제공, 발언 해석 등을 제공한 ‘방구석 정치토크’엔 수백 명의 구독자가 참여했다. 대선 토론을 주제로 한 MBC ‘100분 토론’, 지상파·온라인에서 병행한 KBS ‘더라이브’의 뒷풀이 방송도 호응을 얻었다.

심 교수는 “독일 방송사의 경우 준비를 정말 많이 한다. 토론이 끝나면 예를 들어 보수당, 사회당 입장을 각각 설명할 두 명의 해설위원 등이 나와서 어떤 발언이 잘못됐고, 각 발언은 어떤 의미인지 해설을 한다. 이들은 전 선거 과정을 지켜보는 전문가들”이라면서 “각 방송사들이 이런 보도를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 이글은 2022년 03월 04일(금)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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