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선거 시대, 기성 언론 무력화되다

빡빡한 기성언론 선거 규제, 유튜브 시대 비대칭성 부각

지나치게 세세한 출연제한 등 규정 풀고, 토론 책무는 조여야

“3개월 이상은 원천적으로 프로그램을 하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입니다.” 배우 이순재가 국회의원 시절 1995년 10월 16일 KBS 뉴스에 출연해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방송위원회가 선거 90일 전 후보자 방송 출연 금지를 결정하면서 파장이 일었다. 출마자로 거론된 이덕화, 최불암 등 배우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 규제는 27년이 지난 현재까지 존속되고 있다. 미국에선 대선 후보자들이 선거 기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한국에선 이 규정이 적용돼 선거 90일 이전부터 출연 자체가 금지된다. 이런 가운데 유튜브가 급성장하면서 후보자들의 유튜브 예능 출연이 몰리는 등 규제 취지가 ‘무력화’되고 있다. 이처럼 뉴미디어가 전면에 부상하면서 미디어를 통한 선거운동의 양상이 달라져 기존의 제도와 충돌하거나 딜레마를 드러내는 상황이다.

‘출연금지 규제’ 유튜브 시대에 무력화

1995년 방송위원회가 90일 전 출연금지 규제를 만든 배경은 미디어를 통해 일방에 유리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당시 유재천 방송위원회 위원은 “드라마 등 연예오락 프로그램도 연속되는 프로그램인 경우 특정인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되어 공정해야 할 선거에서 사전 선거운동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규제’ 필요성을 시사했다.

▲ 1995년 K BS 뉴스 갈무리

이 조항은 ‘과도하다’는 지적에도 엄격하게 집행됐다. 2012년 총선에서 홍준표 당시 후보자가 선거 90일 이전 채널A '개그시대'에 출연해 채널A가 행정지도를 받았다. 2016년 총선 때는 EBS 다큐프라임 ‘결혼의 진화’편 재방송이 선거 기간 방영됐는데 해당 회차에 진선미 후보가 출연해 행정지도를 받은 일도 있다. 문성근 배우가 출연한 영화 ‘부러진 화살’은 그가 출마한 시점에 개봉돼 ‘영화가 좋다’에 소개돼 행정지도를 받기도 했다. 심지어 MBC 드라마 '내딸 금사월'은 극 중 도서관에서 대화하는 주인공들 뒤로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가 나온 시사저널 잡지 표지가 노출돼 출연 효과를 냈다는 이유로 행정지도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2022년 유튜브 예능 출연은 사실상 ‘일방의 선거운동’ 효과를 내지만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다. 실제 후보자들의 SBS ‘집사부일체’ TV조선 ‘와카남’ 등 TV 예능 출연은 지난해 12월 이후 중단됐다. 반면 선거가 한 달 남은 현재 대선 후보들은 유튜브 예능 콘텐츠 '공부왕 찐천재'와 고양이 유튜브 채널 ‘크집사’ 등 출연을 이어가고 있다.

양자토론 방송 금지, 유튜브 중계 받아쓴 기사는 허용?

이번 대선 시기 전례 없는 방송토론의 위기가 드러나기도 했다. 대선 후보자들이 방송사 중계 없는 양자토론을 논의하기도 하고, 주요 대선 후보가 토론을 주관하는 방송사 성향에 문제를 제기하며 협상이 흔들리는 변수도 벌어지고 있다.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정준희의 해시태그’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과거에는 방송이 힘이 있었고, 정치인이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불과 지난, 지지난 선거 때만 해도 남아있었는데 이번에 확 달라졌다”고 했다.

▲ 내딸 금사월'의 한 장면. 2016년 총선 90일 이전 안철수 후보의 출연 효과를 냈다는 이유로 행정지도 권고를 받았다.

이런 가운데 후보자 양자토론에 대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의 해석도 뒷말을 낳았다. 윤석열, 이재명 두 후보가 양자토론을 시도하자 중앙선관위는 TV 중계는 불허한 반면 언론이 아닌 유튜브 중계는 허용했다. 그러면서도 유튜브 중계를 언론이 보도하는 것은 막지 못하는 상황이다.

군소 후보에 대한 토론 봉쇄가 문제가 됐지만 이에 대한 의무를 TV에만 부과하면서 ‘군소 후보가 배제된 토론 금지’ 취지가 퇴색되게 했다. 선관위 입장에선 규제가 가능한 미디어에 조치를 취한 것이지만, 이 역시 유튜브가 성장한 상황에선 비대칭성을 키웠다. 현실성이 높진 않지만 유력 OTT 서비스에서 양대 후보 중계를 할 경우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도 없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선관위의 결정이 법원의 결정 취지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디는 해도 되고, 어디는 안되고 등 매체 자체를 구별하는 것이 문제”라며 “발전된 방향의 논의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꼼수로 유튜브를 이용하는 방식을 허용한 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딴지방송국’ 심의하는데 가세연은 못한다?

딜레마는 인터넷 선거 보도 심의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유튜브 채널을 중심으로 사실상 인터넷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일관된 심의는 하기 힘든 상황이다.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는 김어준 진행자가 사실상 이재명 후보 지지발언을 한 딴지방송국의 콘텐츠를 심의한 결과 ‘공정보도 협조요청’을 결정했다. 딴지일보가 인터넷신문으로 등록돼 있어 이 같은 심의가 가능하다. 펜앤드마이크, 열린공감TV 등 언론사 등록이 된 유튜브 채널들도 같은 심의가 가능하다.

▲ 가로세로연구소 콘텐츠 갈무리

그러나 가로세로연구소처럼 언론사로 등록하지 않은 경우는 심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는 ‘경고문 게재’ 등 강제성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는 언론중재 부문에서도 같은 상황이다. 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유튜브 채널에 대한 조정 신청 문의가 늘어나는 추세인데 ‘법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안내하고 있는 상황이다.

‘알권리’ ‘형평성’ 중점 놓고 전면 재조정 필요

국회 입법조사처는 2020년 3월 ‘유튜브 선거운동의 법적 규제 현황 및 개선 과제’ 보고서를 내고 “저널리즘의 성격을 표방하는 유튜브 매체를 표현의 자유 영역의 사적 매체로 둘 것인지, 아니면 언론의 자유 영역의 공적 매체로 둘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이러한 논의 속에 현행 공직선거법상 유사 언론의 조건 및 자격도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에도 관련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풀 것’과 ‘조일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일 것’은 후보자의 검증 빈도를 늘릴 수 있는 제도 개선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정준희 겸임교수는 “레거시 미디어가 밉고 여전히 맘에 안드는 점이 있더라도 이들이 가진 권위는 누군가는 가져야 한다. (지금은) 미디어 권력공백 상태”라며 “토론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리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정 토론에 참석하지 않은 후보자가 속한 정당에 보조금을 환수하는 등 보다 강력한 규제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풀어야 할 건 지나치게 세세한 규제다. 한국은 선거 시기 언론 보도를 인터넷, 신문, 방송으로 나눠 별도 전담기구에서 심의를 하는 등 선진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언론 심의제도’가 있다. 여기에 방송의 경우 출연 장르, 기한, 방법, 토론 방식, 시간 배분, 여론조사 고지 항목 등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그렇기에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비대칭’ 상황이 더욱 비교될 수밖에 없다.

박건식 MBC 공영미디어국장은 “미국은 SNL을 ‘게이트웨이’라고 부른다. SNL에 출연하지 않고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거다. 미국은 예능 프로의 위력을 이해하고 있다”며 “다른 나라는 다 하고 있는데 한국만 규제해야 할 이유가 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토론 방송은 허용한다고 규정했는데, ‘썰전’은 예능인가 토론인가 기준이 모호한 경우도 많이 생겼다. 후보자들이 아침방송에 나와 육아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예능에도 출연해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는 게 더욱 바람직하다”고 했다.

▲ 사진=Gettyimages

다만 이 문제는 ‘불균형 출연’ 우려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 선거방송심의위 관계자는 “영향력 측면에서는 뉴미디어가 부상한다 해도 레거시 미디어가 갖는 공적 책무를 외면하긴 힘들다. 출연 제한 조항을 풀게 되면 한 후보만 일방적으로 예능에 출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폐지보다는 기간을 줄이거나, 완화하되 ‘균등 출연’을 보장할 수 있는 보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한계는 근본적으로 ‘미디어 법제 미비 상황’과 맞물려 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는 “변화한 상황에서 미디어란 무엇인가에 대한 법적 정의를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방송법이 개정이 안되는 등 이 기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황”이라며 “기본적으로 법에 미디어의 규정을 정하고, 그 다음 느슨하게 풀 대상과 엄격하게 규제할 대상을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 이글은 2022년 02월 09일(수) 미디어오늘 금준경 박서연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