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사생활 폭로만 하면 앞으로도 비호감 대선”

“정치 냉소주의, 미디어 냉소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11월11일 봉하마을을 방문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취재진 앞에서 질문에 답하는 모습. ⓒ연합뉴스

20대 대통령선거가 한 달 남은 가운데, 국내 대선 보도의 가장 큰 문제는 질 낮은 여론조사에 기반한 정치 저널리즘이라는 문제 제기가 등장했다. 언론이 정책 검증에 소홀한 이유는 “장사가 안되기 때문”이라는 직설적 평가도 나왔다.

8일 한국언론진흥재단‧한국언론학회‧제주언론학회 공동 주최로 열린 20대 대선 보도점검 세미나에서 토론자로 나선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여론조사가 한국 정치를 결정하고 있다. 가성비 높은 질 낮은 여론조사가 언론의 취재를 대신하고 있다”며 “여론조사의 한계와 조작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지만 대세화 된 정치커뮤니케이션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정치 저널리즘과 시사 콘텐츠는 유력 정치인의 발언과 행보→논란의 증폭→여론조사→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논의의 증폭과 확산→그에 대한 정치인의 대응→그 대응에 대한 논의의 증폭과 확산→여론조사→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논의의 증폭과 확산이라는 고리를 바탕으로 생성되고 굴러간다.

정준희 겸임교수는 “저널리즘은 여론조사를 조직하고, 비성찰적으로 부수적 정치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낸다. 정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배달되는 여론조사 결과표에 따라 고무되고 좌절하면서 대단히 단기적으로 자신의 발화를 조정한다”면서 “여론조사 공표 기준을 높이거나, 또는 유권자들이 요구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대안적 지표 개발”을 해법으로 내놨다.

▲8일 한국언론진흥재단‧한국언론학회‧제주언론학회 공동 주최로 열린 20대 대선 보도점검 세미나에서 토론자로 나선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의 모습. ⓒ세미나 유튜브 화면 갈무리

그는 또한 “언론에게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중립적 매개자를 더는 기대하기 어렵다. 심층적 논평에도 실패하고 있다. 언론에게 남은 건 스스로 정치행위자가 되거나, 상업적 이득을 얻는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우리 언론의 큰 문제는 편향성보다 심층 담론의 부재, 좋은 보도가 퍼지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역시 토론자로 나선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는 “선거 과정에서 언론은 ‘미래 권력’인 후보에만 집중하고 시민은 외면한다. 유권자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 후보의 입만 쳐다본다. 정책 검증 보도의 실종은 바꿔 말하자면 유권자의 실종이다”라고 지적하며 이 같은 모습이 “권력에만 관심을 갖고 일반 시민은 주변화시키는 언론의 왜곡된 평소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후보 공약이 전달되기는 하지만, 유권자의 눈높이에서 의미를 해설하고 현실성과 타당성을 검증하는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으며 “언론이 선거 국면에서 말하는 ‘검증’은 정책 검증이 아니라 언제나 후보 검증이다. 우리 언론은 후보 경력과 사생활을 검증하는 노하우는 뛰어나지만, 정책 내용을 구체적으로 검증하는 노하우는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어 “언론이 사생활 폭로 보도에만 집중하면 이번 대선뿐 아니라 앞으로도 선거는 계속 ‘비호감 대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박영흠 초빙교수는 “언론이 정책 검증에 소홀한 이유 중 하나는 정책 보도가 장사가 안되기 때문이다. 공들여 정책 검증 기획을 해서 기사를 내보내도 캠프 간 막말 공방을 전하는 질 낮은 포털 기사의 10분의 1도 클릭이 안 나온다”고 전하며 “언론의 주요 소비층이 한국 사회 중요 의제들에 관심을 갖지 않는 한 언론도 이런 이슈를 다루는 데 소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언론이 지나치게 객관주의에 집착하면서 캠페인 전략과 전술에만 주목하고, 정치 엘리트의 이미지 프로모션에 협조하고 있다. 보도자료와 취재원 발언을 검증 없이 기사화하며 기자의 역할은 감시자가 아닌 뉴스전달자로 변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선거를 게임으로 간주하는 언론은 네거티브 캠페인을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어 호감에 따라 후보를 선택하게 한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9월 한국갤럽의 호감도 여론조사 이후 언론은 ‘비호감 대선’이란 표현을 상시적으로 사용하지만 심층적인 원인진단 및 해결 제시 의지는 없고 역량도 부족하다”면서 “정치 냉소주의는 미디어 냉소주의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는 “언론은 문제를 들춰내고 공격하는 게 본업으로, 네거티브는 언론의 속성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원래 충격과 폭로에 끌린다. 진짜 중요한 뉴스는 재미가 없거나 폭발력이 떨어진다. 온라인 뉴스 유통환경은 선정적 이벤트에 강력한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면서 “왜 정책 검증 보도는 없고 네거티브만 중계하느냐는 주장은 그래서 현장의 기자들에게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서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2021년 11월5일부터 지난 1월17일까지 강원일보부터 한라일보까지 10곳의 지역일간지 선거 관련 기사 5927건을 분석한 결과 “후보자가 지역을 방문했을 때 언급한 지역의 공약을 일부 언급하는 부분은 있었지만 정책적 타당성 논의를 찾기는 어려웠다”고 분석한 뒤 “지역 언론은 선대위 구성 과정에서 당내 갈등, 후보의 가족 리스크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지역중심 보도도 여전했다”고 밝혔다.

* 이글은 2022년 02월 08일(화)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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