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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필화 사건과 경향신문 폐간동아일보 대해부 2권 - 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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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1.17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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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4월 30일 이승만 정부는 경향신문을 폐간했다. 경향신문은 1946년 10월 6일 천주교 서울교구(교구장 노기남 주교)가 창간한 신문으로서 폐간당하던 때 겨우 ‘13세’였지만 영향력은 막강했다. 당시 20만부를 발행하던 경향신문은 동아일보(35만부)에 이어 일간신문들 가운데 2위를 달리고 있었다. 3위는 한국일보(16만부), 4위는 조선일보(10만부)였다(동아일보사, <민족과 더불어 80년: 동아일보 1920~2000>, 동아일보사 발행, 2000, 335
쪽).


경향신문, 이승만 독재에 정면 도전

창간 직후부터 중도적 노선을 걷던 경향신문은 이승만의 독재정치가 갈수록 심해지자 비판적 논조를 강화하면서 반독재적 기사와 논설을 싣기 시작했다. 특히 천주교 신자인 장면이 부통령으로 취임한 지 한 달쯤 지난 1956년 9월 28일 저격을 당한 사건은 경향신문이 더욱 강력한 논조로 치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 장면은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을 하고 연단을 내려오다가 김상붕이 쏜 총탄에 왼손을 관통당했다. 김상붕의 배후는 민주당원 최훈으로 밝혀졌다. 치안국장 김종원은 이 사실을 근거로 장면 피격 사건을 ‘민주당의 내분’으로 몰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경찰 하급 간부들은 물론이고 내무부장관 이익흥과 치안국장 김종원까지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1960년 4월 혁명 뒤에 밝혀진 진상을 보면, 이 사건의 주모자들은 자유당 총무부장 임흥순, 내무부장관 이익흥, 치안국장 김종원이었다. 81세의 고령인 이승만이 ‘유고’를 당하면 자동적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될 부통령 장면을 제거하려고 이기붕의 측근이 꾸민 암살 음모였던 것이다. 경향신문이 ‘장 부통령 피격 사건’의 진상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적해서 보도했음은 물론이다.

경향을 비롯한 일부 신문의 비판적 보도와 논평에 극심한 반감을 보이던 이승만 정권은 1956년에 ‘국정보호임시조치법’을 제정해서 ‘허위보도’를 규제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57년에는 또 가칭 언론단속법 제정을 시도했다가 이것 역시 실패한 데 이어 4월부터 논의된 협상선거법에서 드디어 언론규제 조항을 삽입하게 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언론계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나 1958년 초까지 규탄 언론인대회가 열리는 등 여론의 비판이 들끓었다. 그럼에도 협상선거법은 끝내 관철되고 말았으며, 1958년 11월에는 언론 통제를 강화하는 보안법 제정을 강행하여 보안법 파동을 빚었다( <고쳐 쓴 한국현대사>, 277쪽).


경향의 무기명 칼럼 ‘여적’ 필화 사건

이승만 정권에 대한 경향신문의 가장 강력한 도전은 1959년 2월 4일자 지면에 나타났다. 단평(短評) ‘여적’에 실린 무기명 칼럼이 “선거제를 부정하고 폭동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그 이튿날 경향신문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었다. 이 사건은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최대의 언론 탄압이었다. 역사적 기록으로 남게 된 그날 <여적>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허멘스 교수(미국 노트르담대학교 교수-인용자)의 「다수의 폭정」이란 글이 본보 석간에 연재(번역돼 실림)되고 있거니와, 동 씨의 논거에 의하면 ‘다수의 폭정’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학설을 보는 한국의 다수당은 아전인수로 해석하려고 들 것 같으나 자세히 보면 동 씨의 주장 속에는 하나의 커다란 전제조건이 있다.
  그것은 즉 “인민이 성숙되어 있어서 자기 스스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요, 바꾸어 말하면 “어제는 다수당을 지지하며 그에게 권력을 준 투표자도 내일은 그것을 버리고 그를 소수자로 전락시킬지도 모르며, 당파에 속하지 않은 투표자도 만일 부정행위가 있다고 생각하면 재빨리 다수당을 소수당으로 떨어뜨릴 것”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처럼 투표자가 자유로이 자기 의사를 행사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 만일 투표자가 어떤 권력에 눌려서 그 의사를 맘대로 행사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허멘스 교수의 다수결 원칙은 근거가 와붕(瓦崩)되고 마는 것이다. 인민이 ‘성숙’되지 못하고 그 미성숙 사태를 이용하여 가장된 다수가 출현된다면 그것을 두말없이 ‘폭정’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 이런 논점은 허멘스 씨의 견지에서 본다면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할 터이지.
  그렇기 때문에 동 씨는 ‘질서 있는 다수당’이라든가 ‘진정한 다수의 지배’라는 용어를 쓰고 있으니 다시 말하면 가장된 다수의 폭정은 실상인즉 틀림없는 ‘소수의 폭정’이라고 단정할 것 아닌가. 한국의 현실을 논하자면 다수결의 원칙이 ‘관용’ ‘아량’ ‘설득’에 기초한다는 정치학적 논리가 문제가 아닌 것이요, 선거가 올바로 되느냐 못 되느냐의 원시적 요건부터 따져야 할 것이다.
  물론 ‘진정한 다수’라는 것이 선거로만 표시되는 것은 아니다. 선거가 진정 다수결정에 무능력할 때는 결론으로는 또 한 가지 폭력에 의한 진정 다수 결정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 것이요, 그것을 가리켜 혁명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된 다수라는 것은 조만간 진정한 다수로 전환되는 것이 역사의 원칙일 것이니 오늘날 한국의 위기의 본질을 대국적으로 파악하는 출발점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인민의 성숙’ ‘가장된 다수의 폭정은 소수의 폭정’ ‘한 가지 폭력에 의한 진정한 다수결정은 혁명’ 같은 내용은 한 해 앞으로 다가온 정부통령선거에서 자유당이 다시 부정을 저지를 경우 ‘인민’이 떨쳐 일어날 것이라는 경고임이
분명했다.


동아일보, ‘여적 필화 사건’을 크게 보도

동아일보는 2월 18일자 3면 머리에 경향신문 필화 사건을 크게 보도했다.

  ‘여적’ 필자의 구속영장 신청 / 검찰서 자진 철회 / 법원서 검토하려는 순간 / 경향 필화 사건, 국회 개회 때문인 듯 /

  ‘경향신문의 필화 사건’의 ‘여적’ 집필자 주요한 씨에 대한 ‘내란 선동 및 선전’ 혐의의 구속영장을 법원에 신청하였던 서울지검에서는 18일 오전 9시 반 돌연 법원이 동 구속영장의 발부에 대한 검토를 막 시작하려는 순간에 이를 자진 ‘철회’하였다.
  17일 오후 동 구속영장이 검찰을 경유하여 법원에 신청되자 법원 측에서는 송영규 판사가 ‘소명자료’를 검토하면서 발부 직전 법원장에게 사전 보고를 하려고 하였으나 이날 밤 늦도록 보고할 기회가 없어 결국 발부 여부의 결정을 18일로 미루었던 것이며 이날 아침 9시 반경 지법 원장실에서 임 원장을 비롯하여 김 수석부장판사 및 장 형사제1부장과 송 판사 등이 모여 구속영장 신청서에 기재된 혐의 내용 등을 정식으로 검토하려다가 검찰이 “신청을 철회한다”고 통고해옴으로써 법원의 결정 없이 이 구속영장 신청 건은 백지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런데 검찰이 주 씨를 구속할 필요가 있다 해서 영장을 신청하였던 것을 돌연 철회한 데 대한 구체적인 이유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주 씨가 국회의원 신분이기 때문에 동 씨를 구속하려면 헌법 49조에 의하여 회기 중에는 사전 국회 본회의에서의 구속 동의를 받아야 하는 만큼 이날(18일) 개회된 국회에의 동의 요청에 대한 수속절차의 미비로 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기사와 같은 날짜 동아일보 1면에는 「주요한 씨의 필화 사건을 재론함」이라는 사설이 올랐다.

  허멘스 교수의 「다수의 폭정」이란 논문의 요지를 경향신문 고십 <여적>란에서 소개하고 “한국의 현실을 논하자면, 다수결의 원칙이 관용 아량 설득에 기초한다는 정치학적 논리가 문제가 아닌 것이요, 선거가 올바로 되느냐 못 되느냐의 원시적 요건부터 따져야 할 것이다. 물론 진정한 다수라는 것이 선거로만 표시되는 것은 아니다. 선거가 진정 다수 결정에 무능력할 때에는 결론으로는 또 한 가지 폭력에 의한 진정 다수 결정이란 것이 있을 수 있는 것이요, 그것을 가리켜 혁명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된 다수라는 것은 조만간 진정한 다수로 전환되는 것이 역사의 원칙일 것이니, 오늘날 한국의 위기의 본질을 대국적으로 파악하는 출발점이 여기 있지 않을까”라고 평한, 지난 4일자 주요한 씨의 글에 대하여 경찰·검찰 당국에서는 수일 후 형법 제90조 제2항에 이른바 ‘내란 및 내란 목적의 살인’ 선동 내지 선전죄의 혐의를 걸고, 경향신문사의 편집국장을 소환 심문하는 한편 동 신문사에 대하여, 필자가 누구인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 하여, 수색영장으로써 사설과 <여적>의 원고·‘게라’ 수십 통을 압수해 갔었다.
  그 후에 주 씨는 자신이 동 ‘고십’의 필자임을 자진하여 언명하기에 이르렀고, 또 경찰이 필자 주 씨의 집필 의도를 알아보기 위하여 불원(不遠) 본인을 문초하겠다고 한 데 대하여 주 씨는 지난 11일자 경향신문 지상에 「여적 필자로서의 해명」을 발표한 바 있었다. 동 해명문에 의하면, 허멘스 교수의 결론을 “한국의 현실에 부응시켜 볼 때에,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근본적인 요소가 선거부정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고, 따라서 현재의 정치적 위기가 단순히 국회 파동의 불법·합법 규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대국적으로 파악하려면 공명선거를 어떻게 실현시키는가에서 출발하여야 된다고 <여적>을 통하여 주장해본 것”이라고 하며, “이런 관점에서, 만일에 공명선거가 실시되지 못한다면,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폭력혁명이란 불상사도 생길 가능성이 있으니, 당로자(當路者)들은 차제에 심심 반성하여 공명선거를 실시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건설적인 주지로써” 그 글을 썼다고 해명하였다. (·····)
  위와 같은 주요한 씨의 ‘단평’을 그의 동 ‘해명’과 종합·검토한 결과 과연 형법상의 ‘내란 및 내란 목적의 살인’ 선동 또는 선전죄에 해당하는 것인지를 우리는 단정할 처지에 있지 아니하다. 그것은 요컨대 권한 있는 검찰과 법원의 소관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차제에 다음과 같은 비판을 이 사건에 대하여 가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첫째로 우리는 누구든지, 우리나라 헌법상에 보장된 ‘언론·출판의 자유권’을 행사하여 선거의 부정을 공격하고 공명선거를 촉구할 수 있음은 물론이요, 만일에 폭력선거로써 정권을 잡고자 하거나 잡은 정권을 계속 유지코자 하는 개인 또는 집단이 있다면, 이들에 대하여 ‘주권국민의 양심과 공분으로써’ 충고하거나 경고할 당당한 권리가 있다고 본다. 더구나 국민을 대표한 국회의원이나, 사회의 목탁으로 자처하는 언론인은 그러한 충고 내지 경고를 행할 법률적 또는 사회윤리적 의무가 있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국회의원 치고 그러한 부정을 방관한다면 그는 헌법상의 소임을 포기한 자라고 볼 수밖에 없겠고, 또 언론인 치고 그러한 정필(正筆)을 들지 못한다면 그는 언론인의 자격이 없는 자라고 평할 수밖에 없겠기 때문이다. (·····)
  (···) 권력자가 어떠한 부정과 폭정을 감행하건, 국민은 오직 유유인종(唯唯忍從)해야 한다면, 이는 요컨대 “모든 서민은 모름지기 벌레처럼 무심하게 살아가라”는 말밖에 안 되는 것이 아닌가? (···)
  그러한 견지에서 볼 때에 주 씨의 소론(所論)이, 그 국회의원의 지위에서나 언론인 내지 일반 국민의 지위에서나, 범죄를 구성한다고 해석한다는 것은 인류의 양심과 양식이 허락할 수 있는지 다분히 의문이라 할 수밖에 없다. 


‘미군정법령 88호 위반’으로 경향신문 폐간

  경향신문은 이승만 정권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2월 16일자 3면에 실은「사단장은 기름을 팔아먹고」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강원도 홍천에 있는 육군 모 사단장의 ‘유류 부정 사건’을 폭로했다. 그리고 4월 3일자에는 「간첩 하 모를 체포」라는 1단 기사를 내보냈었다. 당국은 이 기사가 ‘간첩의 공범들이 도주하도록’ 했다는 이유로 기자 어임영과 정달선을 4월 4일 구속했다.

경향신문 4월 15일자 석간 1면에 이승만의 기자회견에 관한 기사(「이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개정을 반대」)가 나오자 정부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면서 적용한 것은 ‘미군정법령 88호’였다.

이승만 정부가 가 4월 30일 경향신문을 폐간시키면서 적용한 미군정법령 88호는 미군정이 남로당 계열의 언론을 탄압하기 위해 특별히 제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미군정이 철수한 지 10년이나 된 시점에 이승만 정부가 그 법령으로 대한민국의 일간지를 폐간했으니 여론이 그렇게 무리하고 위헌적인 결정을 용납할 리가 없었다.

  경향신문 폐간은 국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문화인 33명은 “경향신문 폐간을 군정법령 제88호에 준거하는 것은 독립국가의 위신을 손상하는 수치스런 일”이라고 성토했고, ‘민권수호국민총연맹’이 주최한 ‘언론자유수호 국민대회’는 “경향신문에 대한 정부의 폐간 조처를 즉각 철회하라” “우리는 군정법령 제88호의 무효를 주장한다”라고 선언했다. 주한미국대사 월터 다울링도 5월 1일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 “언론탄압이 언론 과오를 교정하는 방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5월 9일 한국신문편집인협회에서도 임시총회를 개최하여, 미군정법령 제88호는 언론자유를 보장한 우리 헌법에 저촉되므로 이를 즉시 폐지할 것과, 경향신문에 대한 폐간처분을 취소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함과 동시에, 국회에 군정법령 폐기 청원을 제출하였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연구소 엮음, <한국민주화운동사 1>, 2010, 87쪽).


경향 폐간에 대한 동아의 보도와 논평

동아일보는 경향신문이 폐간을 당한 이튿날인 5월 1일자 석간 3면 머리에 「신문 폐간은 가혹하다 / 거리의 여론 / 결여된 관용정신 / 극단의 조치에 무서운 생각까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30일 밤 돌연 경향신문에 대하여 공보실 당국이 ‘폐간’ 조치를 취하자 각계는 커다란 충격을 받고 있는데 이 소식이 알려진 1일 아침 “폐간이란 가혹하다”는 것이 여기저기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입에서 한결같이 나오는 비난의 소리였다. 민주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신문’ 하나가 하룻밤 사이에 없어진 놀라운 사실에 거리의 여론도 가혹하였다. (·····)
  · 은행원 김홍신 씨 담: 민주주의는 ‘관용의 정신’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폐간’ 조치에서 우리는 전혀 이 관용의 정신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극단적인 배타성의 발로라고 본다. ‘보안법’ 문제로 그렇지 않아도 여론이 분분한 이때 경향신문의 폐간은 대내 대외적으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 대학생 황 모 군(S대학) 담: 미국 3대 대통령 제퍼슨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 법적 효력에 의문이 있는 군정법령을 적용하였다는 것도 말이 아니거니와 사형선고와 같은 ‘폐간 조치’를 단번에 내린 것은 민주공보행정에 있어 일대 오점이 아닐 수 없다.

동아일보는 5월 2일자 조간 1면 사설(「왜 신문을 폐간시켰는가」)을 통해 이승만 정부의 극한적 언론탄압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정부는 동업(同業) 경향신문에 대해 폐간 조치를 취했다. 공보실 당국이 동 신문사에 보낸 발행허가 취소 통지서에 의하면, 경향신문은 금년 정초부터 지금까지 보도 및 논평 양면에 걸쳐서 법에 저촉되는 다섯 가지 과오를 범했는데 “국가의 안전과 보다 참된 언론계의 발전을 위하여 군정법령 제88호에 의거해서 부득이 폐간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정부의 이와 같은 조치는 법 이론상 그리고 언론정책상 심히 유감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에 관한 우리의 견해를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로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조치가 과연 합법적인가 하는 점이다. 정부 당국은 이 폐간 조치가 군정법령 제88호(아마도 그 4조 다항)에 의거해서 행해진 것이라고 하지만, 이 군정법령이 과연 효력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가  중대한 의문이다. 왜냐하면 이 군정법령은 주한미대사 다울링 씨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미군정이 1946년 당시 한국의 국내 치안을 위협하던 공산 파괴선전을 막으려는 데 그 의도가 있었던 것이지, 민주적인 자유언론을 탄압·단속하기 위해 제정되었던 것이 아닐 뿐더러, 건국 후에는 언론자유의 보장을 규정한 헌법의 조항 및 정신에 분명히 어긋나는 것이어서 그 효력을 주장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가로되, 입법부나 행정부가 동 법령의 폐기를 정식으로 결정 공포한 것이 아니니 아직도 그 효력을 주장할 수 있다고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의 최고법이요, 모든 입법과 법 운용의 기본을 이루는 헌법의 조문에 명백히 어긋나는 일개 군정법령이 아직도 살아 있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적인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은 이론상 성립되지 아니한다.
  또 백보를 양보하여 이 군정법령이 아직도 효력을 주장할 수 있어, 그 4조 다항에 의거하여 신문이 법령에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정부가 그 발행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하더라도 법령의 위반 여부는 재판의 확정을 기다려서 결정하는 것이지 검찰이 입건을 하였다는 것만을 가지고서 법령 위반이라 하여 폐간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둘째로 신문에 대한 폐간 조치는 당해(當該) 신문의 사멸을 의미하고, 자연인으로 말한다면 사형 집행이라 할 것인데, 허위보도에 의한 법의 저촉을 이유로 정부가 그 업체에 대해서 이와 같은 극형을 가할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형벌에 있어서의 연대책임이 아니라, ‘개별책임의 원리’는 신문 경영에 있어서도 엄격히 적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어떤 기사 작성이나 논평 집필에 있어서 법률상 과오를 범했다고 하면 집필자 본인이나, 그를 직접 감독하는 위치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해서 법적 책임을 추구하면 되는 것이요, 그 이상 더 나가서 업체 그 자체에 대해서 형벌책임을 부하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신문의 과오에 대해서 자연인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뿐 아니라, 그 신문사마저 폐쇄시키고 만다는 것은 중세기적인 연좌제 사상의 부활이요 발로라 할 것인데, 이러한 연좌제 사상은 자신이 전혀 관여치 않은 일에 대해서 형벌 책임을 지게 되는 점이 자유와 책임의 기본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
  셋째로 정부가 언론 탄압을 하는 것이 언론의 과오를 시정할 수 있는 방법이며 또 언론정책상 옳은 일이냐가 문제이다. 정부는 물론 공격에 대해서 자신의 안전을 방어하고 비판에 대해서 자신을 변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방어와 변명은 어디까지나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해져야 한다. (···)
  언론자유에 겁을 먹는 정부는 벌써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정부요, 언론 탄압을 자행하는 정부는 공명정대한 방법을 가지고서는 정권을 담당할 만한 자신을 상실한 정부인 것이다. 게다가 언론 탄압을 가지고, 언론의 과오 시정을 촉구해 본 예는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니 언론의 과오는 자유로운 경쟁과 언론인 자신의 자각을 통해서만 시정될 수 있다는 이치를 잊어 서는 안 된다. 이상 소론(所論)은 정부의 금번 처사가 심히 유감스러움을 입증하는 것이니 우리는 정부 당국이 하루속히 그 과오를 자각하여 천선(遷善)의 길을 밟아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동아일보의 사설이 지적한대로 경향신문을 폐간시키는 데 적용한 미군정 당시의 법령은 ‘점령군’이 정권을 대한민국 정부에 인계하고 떠나던 시점에 효력을 상실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은 점령군의 법령을 ‘자주독립국가’의 언론사에 ‘적용’함으로써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경향신문은 정부의 결정이 부당하다는 판단 아래 정부 측을 상대로 발행 허가 취소처분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냈다. 6월 26일 서울고법 특별1부 재판장 홍일원은 용감하게도 경향신문에 승소 결정을 내렸다. 자유당 정권은 홍일원에 대한 보복에 들어갔다. 그의 동생과 처가 식구 등 친인척들이 하던 회사와 공장에 세무서원들이 들이닥쳐 장부를 모두 압수해 가고 대대적인 세무사찰이 시작되었다. 
  정부는 경향신문 승소 결정이 내려진 지 불과 몇 시간 뒤인 오후 6시 예정에 없던 국무회의를 긴급 소집해 “법원의 결정에 따라 발행허가 취소처분을 철회하는 대신 신문의 발행을 무기정지 처분한다”는 기상천외한 대응책을 발표했다. 경향신문은 이에 불복하여 또 한 차례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냈으나 이는 다른 재판부에 배당돼 ‘이유 없다’며 기각됐다. <한국현대사산책-1950년대편 3권>, 249~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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