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역사적 방북의 동행자인 고 문익환, 정경모, 유원호 선생을 한 자리에 모시기 위한 이장식이 박용길 장로 10주기인 25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정경모 선생 묘역 앞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989년 역사적 방북의 동행자인 고 문익환, 정경모, 유원호 선생이 25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묘역 양지바른 터에 함께 모셔졌다.

봄길 박용길 장로의 10주기인 25일 오전 진행된 이장식을 통해 지난 4월 2일 먼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던 정경모 선생 묘역 옆으로 유원호 선생과 안순심 여사, 문익환 목사와 박용길 장로가 자리를 옮겨와 함께 거처하게 된 것.

지난해 2월 16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별세한 정경모 선생은 2월 19일 그리던 고국에 51년만에 돌아와 4월 2일 모란공원 입구에서 가까운 양지바른 너른 터에 자리를 잡았다.

이날 정경모 선생 묘역 건너편, 좁고 볕이 잘 들지 않던 곳에 누워 있던 문익환·박용길 장로가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고,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던 유원호·안순심 여사도 이날 새로운 안식처로 이사했다.

앞서, 문익환 목사는 1994년 1월 18일 타계해 모란공원에 먼저 잠들었고, 부인 박용길 장로는 2011년 9월 25일 운명해 문 목사 곁에 묻혔다.

유원호 선생은 2019년 10월 27일 돌아가신 후 국가유공자로 장례를 치렀는데 실정법 위반자라는 이유로 호국원 안장이 거부되어 그해 1월 5일 앞서 운명한 부인 안순심 여사와 더불어 그동안 벽제 납골당에 있었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추도사에서 세분이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결행한 민족화해와 평화통일 대업이 다시 시작되어 편안하게 잠드실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경모 선생 귀국과 유해 봉환은 물론 문익환·정경모·유원호 선생을 함께 나란히 모시는 일을 가장 먼저 제안한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이날 추도사에서 "문익환 목사님, 정경모 선생님, 유원호 선생님께서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결행하셨던 민족화해와 평화통일 과업이 다시 시작되어 새로운 안식처에서 편안하게 잠드실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4.2남북공동성명 23주년에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전면적인 대화 분위기로 전환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익환 목사의 3남인 배우 문성근씨는 "세 분에게 1989년 방북은 일생의 절정이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유원호 선생같은 경우에는 늘 정치투쟁에 앞장섰던 분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결단이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을지 잘 안다. 그래서 당연히 방북 이전과 이후의 삶이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하면서, 고단함과 고통을 같이 견딘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을 전했다.

문성근씨는 "자주없이는 성취되지 않을 민주와 통일을 위해 올해도 내년에도 같이 노력하자는 다짐의 자리가 되도록 하자"며, 더 넓어진 묘역 앞에서 예배도 하고 봄 가을 소풍도 오시라고 권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번 이장에 대해 오래전부터 제안하고 이끌어 준 이부영 이사장에게도 각별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몽양 여운형 선생 추모사업 관계로 정경모선생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던 이부영 선생님이 기회될 때마다 저에게 생전에 정경모 선생을 고국에 모시자고 이야기를 해 주셨다. 같이 노력을 했지만 번번히 실패해서 모시지 못했다. 돌아가신 후에는 정말 죄송했고 유해라도 모시자는 의논이 있었다. 그리고 그김에 세분을 같이 모시자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이게 역사를 사는 방법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크게 배웠다"고 말했다.

방북 당시 평양 봉수교회에서 문 목사가 부활절 예배를 하면서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요.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다'라는 유명한 설교를 한 것은 다 알고 있는데 '이는 자주없이는 이루어낼 수 없다'는 한 문장이 더 있었다는 건 알려지지 않았다고 특별히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주없이는 성취되지 않을 민주와 통일을 위해 올해도 내년에도 같이 노력하자는 다짐의 자리가 되도록 하자"며 "건너 편보다 10배 쯤 장소도 넓어졌으니까, 교회에서는 야외예배, 대학 민주동문회는 야유회, 대안학교는 봄가을 소풍장소로 두루 활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통일의 씨앗들, 여기 함께 묻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유원호 선생 막내아들(오른쪽) 유혁씨와 가족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경모 선생 조카 정진영씨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문익환 목사, 박용길 장로 가족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유원호 선생의 막내아들인 유혁씨를 비롯한 가족들은 "큰산인 문익환 목사님과 정경모 선생님을 보필하고 방북하신 것은 아버님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영광의 순간이었을 것이고 지금 세분이 함께 계신 것도 큰 행복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장을 위해 힘써준 분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정경모 선생의 조카 정진영씨는 "여기 묻힌 통일의 씨앗들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지길 기원한다. 이분들을 이곳에 함께 계실 수 있도록 수고해 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김상근 목사는 이날 '늦봄들의 안수예식'이라는 제목의 말씀에서 문익환·정경모·유원호 선생을 '늦봄들'과 '모세'로 호칭, 비유하여 "오늘 이 예식은 늦봄들이 우리에게 안수하여 늦봄들을 이어내는 예식이다. 우리가 모세의 여호수아이다. 우리가 늦봄들의 여호수아이다"라고 분단을 탈출해 통일로 이어가려는 정신으로 남아있는 이들에게 이어져 있음을 강조했다.

김상근 목사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평화의나무합창단 추모노래 공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이장식은 (사)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와 유원호, 정경모 선생 가족들이 주관하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모란공원사람들이 후원했다.

(사)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송경용 신부가 사회를 맡아 진행하고 유원규 한빛교회 원로목사가 기도했으며, 문익환 평전을 지은 김형수 시인은 추도시 '비문'을 낭송했다.

평화의나무합창단이 '향수'와 '상록수'를 추모곡으로 불러주었고 문익환 목사가 작사한 찬송가 '어두운 마음에 잠겨'를 모두 불렀다. 

서우영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는 내년 4월2일 남북공동성명 23주년을 맞아 새로 단장한 묘역에서 4.2평화선언 기념과 공동묘역 공개 및 추모행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1994년 문익환 목사 별세 이후 사용되던 묘역은 빈터로 새로 조성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왼쪽부터 유원호, 안순심, 문익환, 박용길. 1993년 유원호 선생 석방 후 경주 여행 당시 모습. [통일뉴스 자료사진]

1989년 3월27일 평양을 방문한 남측 재야 인사들. 왼쪽부터 정경모 선생, 문익환 목사, 김일성 주석, 황석영 작가, 유원호 선생. [통일뉴스 자료사진]

* 이글은 2021년 09월 26일(일) 통일뉴스 이승현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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