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분열 드러낸 선거…“통합” 외침, 러스트벨트 움직여

국승민 | 오클라호마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2020-11-08 17:00 입력 2020-11-08 20:49 수정

미 대선 표심 분석

2016년 10%P 내 득표차 보인
300개의 격전지 카운티에서
바이든 평균 1.6%P 상승 효과

저학력 백인·보수 유색인종
트럼프 득표력 확대도 확인
핵심 지지층 호소 전략 효과

미국 대선을 앞두고 친구 하나가 필자에게 처음으로 총을 구매했다고 말했다. 총과 아무런 인연이 없던 그 친구는 선거 후 혼란과 폭력이 걱정돼서라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선거일 다음날에 워싱턴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선거 후 혹시 생길 위기에 대항하는 시위가 있을지도 모르니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불안해하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조 바이든 당선자가 유세 내내 강조한 ‘미국의 영혼’이 망가져 가고 있음을 느꼈고, 분열된 미국 정치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바이든의 통합 약속과 도널드 트럼프 의 낮은 인기는 정권교체의 힘이었지만, 선거 결과는 분열된 미국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바이든 당선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분열을 치유’하겠다는 메시지가 주효했는지 바이든 당선자는 격전지에서 우위를 점했다. 바이든은 출마를 선언하며 자신이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의 3개 주요 격전지인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을 되가져오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와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10%포인트 이내 차이를 보인 300개 격전지 카운티에서의 표심은 트럼프가 아닌 바이든에게 평균 1.6%포인트 옮겨갔다. 이들 카운티의 투표율은 평균 8.1%포인트 상승할 정도로 참여 열기가 뜨거웠고, 60% 가까이가 바이든 쪽으로 움직였다. 선거 전 여론조사와 출구조사에서도 중도 유권자들 사이에서 바이든이 30~40%포인트 앞섰다. 중도에서 강점을 보였기 때문에 그는 격전지 10개 주 가운데 7개 주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트럼프는 바이든 당선의 1등 공신이기도 하다. 임기 내내 트럼프 지지층이 전국 50% 이상 다수를 점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임기 내내 일관되게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높았다. 선거 전 마지막 국정 지지도 조사에서도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6%포인트 높았다. 1952년 이후 역대 대통령 중에서 부정평가가 더 높은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개표가 진행 중이지만, 전문가들은 바이든이 전국 득표율에서 5%포인트 앞선 것으로 예측한다. 아무리 미국 대선이 주별 선거인단을 통해 정해진다 하더라도 전국 5~6%포인트 차이를 극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차분한 복기와는 별개로, 지난 3일 선거일 밤 미국 국민과 세계인은 충격을 받았다. 많은 언론에서 언급해온 ‘숨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결집해 2016년처럼 트럼프에게 재선을 안겨줄 듯 보였다.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았던 트럼프 지지자들이 선거날 드러나면서 뿌리 깊은 분열도 확인됐다. 핵심 지지층에게만 호소하는 트럼프식 전략이 성공한 것처럼 보인 것이다. 공화당 우위 카운티의 투표율이 평균 7.5%포인트 상승했다. 이러한 상승세는 민주당 우위 카운티의 평균 7.3%포인트보다 소폭이지만 더 높다. 전통적으로 투표율이 낮았던 백인 저학력 유권자들이 유례없이 투표장으로 향했다. ‘뉴욕 5번가’ 한가운데에서 사람을 총으로 쏴도 지지자를 잃지 않으리라는 그의 농담이 드러낸 자신감은 현실이 됐다.

미완으로 끝난 트럼프 역전극의 또 다른 주인공은 라티노 유권자들로 대표된 유색인종이다. 플로리다와 텍사스 라티노 유권자들이 2016년과 달리 트럼프 지지세로 돌아섰다. 지난여름 라티노 유권자가 예년과 다르다는 민주당 라티노 활동가들의 경고가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약 7만명을 대상으로 한 CES 여론조사에 의하면 라티노 유권자 사이에서 바이든 우위가 24%포인트에 불과했다. 2012년 버락 오바마의 40%포인트 우위보다 대폭 줄었다.

트럼프는 흑인과 무슬림 등에게서도 일부 표를 회복했다. 해석은 분분하지만, 트럼프가 인종차별적 언사에 집중했던 2016년과 달리, 경제 실적과 ‘법과 질서’를 강조한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인종차별 반대시위로 일부 보수적인 유색인종 유권자들이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징후도 있다. UCLA 네이션스케이프 전국 여론조사에 따르면, 6월의 인종차별 반대시위 이후 경찰에 호의적인 일부 유색인종 유권자들 사이에서 5~6%포인트 지지가 올랐다.

미국 내 ‘분열적 리더십’ 확산
향후 바이든 행정부 과제로

앙측 지지층이 모두 결집한 사실을 종합하면, 이번 선거에서 미국의 분열이 드러난다. 바이든이 도시와 교외 지역에서 2016년보다 평균 1.5%포인트 지지세를 추가했다면, 반대로 트럼프는 농촌 지역에서 2016년에 비해 평균 1.7%포인트의 표를 추가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두 개의 다른 미국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바이든과 트럼프 지지 유권자들이 각종 이슈에서 서로 접점을 찾기는 어렵다. 바이든 지지자들은 코로나19와 인종차별이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하고, 트럼프 지지자들은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트럼프 지지자의 76%는 현 미국의 경제 상황이 훌륭하다고 답한 반면, 바이든 지지자의 81%는 나쁘다고 답한다. 인종차별, 오바마케어, 기후변화, 코로나19까지 모두 똑같은 구도다.

필자의 친구들은 선거 전 왜 그렇게 불안해했을까. 트럼프의 분열적 리더십 때문일까. 필자는 전국에서 승자가 5%포인트를 더 득표하고도 핵심 격전지에서 팽팽하게 접전이 벌어질 수 있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제도에 주목한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소수의 지지만으로도 집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중도에 있는 유권자를 덜 필요로 한다. 지리적으로 트럼프 핵심 지지층인 백인 저학력 유권자들의 영향력이 경합주에서 더 큰 것도 한몫한다. 이런 구조를 안고 2010년 이후 공화당은 더 극단화되었고, 전국 단위 선거부터 주 선거까지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의 분열적 리더십이 거의 다시 성공했다는 사실은, 그리고 공화당에 유리한 미국의 선거제도는 통합을 약속한 바이든 행정부 미래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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