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장관, 사실상 ‘백기투항’ 요구…지휘 불응 징계는 힘들 듯

입력 : 2020.07.08 21:15 수정 : 2020.07.08 23:13

추미애, 윤석열 독립수사본부 건의안 ‘즉각 거절’

“바른길 두고 돌아가지 않겠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8일 오전 한 사찰 경내에 있는 자신의 뒷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무수한 고민을 거듭해도 바른길을 두고 돌아가지 않는 것에 생각이 미칠 뿐입니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를 이행하라고 재차 촉구했다. 추미애 장관 페이스북 캡처

윤, 검·언유착 수사 이성윤 배제…서울고검장 투입 건의
장관 뜻 받으면서 자신 뜻도 피력…추·윤 갈등 ‘도돌이표’

“모든 지휘 수용” “특임검사 말바꿈” 검찰 내서도 의견 갈려

윤석열 검찰총장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에 ‘총장 지휘권’은 포기하면서도 자신의 의사는 포함한 절충안을 내놨다. 대검과 갈등을 빚어온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 새로운 인물을 수혈하고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사실상 수사에서 배제시켰다. 법무부는 “장관의 지시를 문언대로 이행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며 윤 총장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 총장은 추 장관의 지휘 중 가장 논란이 됐던 ‘총장 지휘권 배제’ 부분을 수용했다. 윤 총장은 자신이 빠지는 대신 김영대 서울고검장(사법연수원 22기)을 특정해 ‘수사본부’를 별도로 만들어 지휘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김 고검장은 기존에도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압수수색·구속영장 청구 등 수사 정보보고를 받은 선상에 있었다. 윤 총장은 자신이 제안하는 ‘독립적 수사본부’에는 기존의 검·언 유착 사건을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포함된다고도 언급했다. 이에 대해 중간간부 ㄱ검사는 “기존 수사팀을 유지하라는 장관의 뜻을 존중하면서도 총장의 뜻도 함께 넣은 것”이라며 “모든 지휘를 전부 받아들였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고위간부 ㄴ검사는 “특수본은 역대 삼성과 최순실 사건 때 단 두 차례 구성됐을 만큼 총장 입장에선 최고 단계의 수사팀을 제안한 것”이라고 했다.

대신 윤 총장의 입장은 그간 대립해온 이성윤 지검장은 배제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고검장이 수사본부장을 맡는 상황에서 지검장이 본부장 밑으로 들어가는 사례는 흔치 않다는 게 검찰 내 중론이다. 당초 추 장관이 수사지휘를 하면서 ‘독립성을 보장하라’고 한 수사팀에는 이 지검장이 포함됐다.

검찰 내에서는 수사본부 설치안은 사실상 추 장관이 기존에 반대했던 특임검사안과 유사하다는 해석도 나왔다. 중간간부 ㄷ검사는 “기존 수사팀이 포함되더라도 특임검사안의 말바꿈에 불과하다”며 “총장이 곧 퇴임을 앞둔 김 고검장을 방패막이 삼으려 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검·언 유착’ 사건 수사 실무를 이끄는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전날 검찰 내부망을 통해 “주요 증거를 확보해 실체적 진실에 상당 부분 접근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수사가 상당히 진척됐음을 시사했다. 추 장관도 이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이날 윤 총장이 건의를 한 지 약 1시간40분 만에 입장을 내고 “수사팀의 교체, 변경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문언대로 장관 지시를 이행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며 사실상 윤 총장의 건의를 거절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수사팀에 새로운 피를 수혈한다는 대목은) 수사주체의 변경과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 장관이 윤 총장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놓고 검찰 내 해석이 갈린다. ㄱ검사는 “윤 총장을 내보내려는 목적이라면 추 장관도 (여론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ㄷ검사는 “상급자 지시에 하급자가 협상 자세를 보인 것”이라며 공직기강을 확립하는 차원에서 추 장관이 강경 조치를 내놓았을 수 있다고 봤다. 윤 총장에게 사실상 백기투항을 요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윤 총장은 다시 의견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윤 총장의 입장 표명이 ‘건의’ 형식이란 점에서 추 장관이 이를 ‘지휘 불응’으로 보고 징계에 착수하긴 어려워 보인다. 고위간부 ㄹ검사는 “김 고검장은 한동훈 검사장과 연이 없고 검사장 승진을 앞둔 사람들과 다르다는 점에서 수사를 잘 지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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