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거사위 ‘한명숙 사건’ 언급 없었다

입력 : 2020.05.25 20:55 수정 : 2020.05.25 21:03

재조사 논의 대상에 안 올려
“당시 유죄 문제제기 없었고
정치적 사건은 제외 분위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2013년 9월1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최근 정치권에서 ‘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 사건 재조사·재심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검찰의 잘못을 밝혀내는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활동 당시 이 사건을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유죄 판결을 뒤집을 만한 의혹이나 새로운 증거가 없어 논의 대상에 오르지 않았다.

한 전 총리는 건설업자 한만호씨에게 9억원을 받은 혐의로 2015년 8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한 전 총리는 “검찰의 정치공작 수사”라며 혐의를 부인했고, 한씨도 “돈을 주지 않았다”며 진술을 번복했지만 법원이 인정하지 않았다. 최근 뉴스타파는 “검찰의 회유·협박에 허위 진술했다”는 내용의 한씨 ‘옥중 비망록’을 공개했다. 이 노트는 당시 재판에도 증거로 제출됐다. 한씨는 2018년 사망했다.

25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 과거사위에서는 한 전 총리 사건에 대한 언급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한씨의 비망록에 대한 논의도 없었다. 과거사위 관계자 ㄱ씨는 “한 전 총리 사건은 법무부와 위원들 모두 조사 안건으로 추천하지 않았다”며 “유죄 판결이 난 사건은 재심할 만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검찰 수사나 증거가 잘못됐다는 문제제기가 없었다”고 밝혔다. 다른 과거사위 관계자 ㄴ씨는 “당시는 비망록의 존재가 언론에 나오지 않아 몰랐다. 다시 조사해달라는 추천도 없었다”고 말했다.

과거사위는 문재인 정부의 제1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 권고에 따라 마련됐다. 변호사, 교수, 언론인, 법무부 법무실장 등 위원 9명으로 구성됐고, 5명이 진보성향 변호사단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이었다.

과거사위는 2017년 1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활동하며 검찰권 남용이나 인권침해 의혹이 있는 과거사 사건 17건을 조사했다. 조사 대상은 ‘무죄 사건’ 중심이었다.

조사 사건 17건 중 재심 등에서 무죄가 확정돼 검찰 수사에 의혹이 생긴 사건이 15건이었다. 유죄 판결 사건을 조사한 경우는 사회적으로 의혹 제기가 많았던 ‘용산참사’와 ‘낙동강변 2인조 살인’ 등 두 건뿐이었다.

정치적 논란을 꺼렸던 과거사위 분위기도 한 전 총리 사건을 조사하지 않은 배경으로 보인다. ㄴ씨는 “논의 자체가 안 됐지만 논의됐더라도 너무 정치적 사건이라 조사 대상으로 선정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위원들 사이에 ‘논란의 소지가 있는 정치적 사건은 다루지 않는다’는 묵시적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재판에 제출된 비망록이 아닌 명백히 새로운 증거·증인이 나타나면 재심이 열릴 수 있다고 본다. 검찰권 남용 의혹에 대해 법무부가 진상조사하거나 출범 예정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수사할 가능성도 있다.

뉴스타파는 이날 한씨가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당시 동료 죄수 ㄷ씨를 인터뷰해 “검찰이 죄수 ㄷ씨, 김모씨, 최모씨를 불러 한씨의 법정 증언을 탄핵하기 위한 진술 연습을 시켰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ㄷ씨는 “검찰에 협조하지 않자 아들과 조카를 별건으로 소환조사해 압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재판에서 검찰은 ㄷ씨를 제외한 김씨와 최씨만 증인으로 신청했다.

검찰 수사팀은 입장문을 내고 “ㄷ씨는 사기·횡령 등 혐의로 한 전 총리 재판 당시부터 현재까지 장기 수감 중이다. 당시에도 진술이 과장되고 황당해 신뢰할 수 없어 증인 신청하지 않았다. 김씨와 최씨의 증언도 한씨의 진술 번복에 대한 진술일 뿐 한 전 총리의 유무죄 판단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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