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찢지 마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한 폭발적 호응은 구성원들이 제각각의 이유로 안녕들 하지 못한 우리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이제 “안녕들 하십니까” 운동 참여자는 대학생만이 아니라 중·고등학생, 중·노년층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국외 교민·유학생들도 합류하고 있다. 대자보라는 ‘고전적’ 소통수단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2008년 봄여름을 뜨겁게 달군 촛불집회를 생각나게 하지만 제기되는 이슈의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촛불을 넘어선다. 그만큼 우리들을 안녕치 못하게 만드는 정치·경제·사회적 이유들이 널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칼럼니스트 엄기호씨는 며칠 전 “서로의 안녕을 묻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통해 나와 무관하던 남은 나와 연결된 ‘너’가 된다”고 썼다. 그의 분석대로 우리는 이 움직임을 매우 의미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매사가 그렇듯 삐딱한 시선이 고개를 드는 것은 이 움직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몇몇 신문은 고려대에 붙은 대자보의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한 지엽적 오류를 문제 삼아 이 대자보 열풍을 일방적으로 깎아내리는 등의 기사를 쓰기도 했다.

더욱 극단적인 것은 자유로운 의견을 적은 대자보를 찢어버리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7일 경남대 게시판에는 전날 붙여진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안녕합니다”란 글이 붙었다고 한다. 경남 김해 인제대 도서관에는 학생들이 붙여놓은 대자보들을 누군가가 찢어낸 뒤 박근혜 대통령 동정 등 신문기사를 복사해 붙여놓았다. 일부 고교에서는 허가받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대자보를 철거했다. 이런 사례는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일들은 자기와 다른 생각을 경청하거나 최소한 표현할 권리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편협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18세기 사상가 볼테르를 다시 인용하게 된다. 그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하지만, 누군가 당신의 말할 자유를 탄압한다면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라며 톨레랑스(관용)의 정신을 강조했다. 한데 안녕하냐고 안부를 묻고 고민을 나누는 것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라면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나. 내용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대자보를 찢어버리는 행위가 횡행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안녕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증거 아닌가. 며칠 전 한 “안녕들 하십니까” 집회에 참석한 여학생은 이런 문구가 든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라서 안녕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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