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이석기 내란음모’ 잇단 말 바꾸기

최지현 기자

최종수정 2013-09-08 10:56:25

이석기 의원실 압수수색 완료

국정원 수사관들이 3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의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실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물품이 담긴 상자를 옮기고 있다.ⓒ이승빈 기자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수사가 본격 착수됐다. 하지만 이른바 ‘5월 12일 모임’ 녹취록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로 제시됐을 뿐만 아니라, 국정원은 혐의 사실에 대해 ‘말 바꾸기’를 계속 하고 있어 ‘국정원 조작사건’ 의혹이 불거질 전망이다.

내란음모 혐의 → 내란선동 혐의 추가

국정원은 이번 사건에 대한 공식 브리핑을 자제하고 있지만, ‘국정원 관계자’ 또는 ‘공안당국 관계자’ 발로 언론에 혐의 내용을 하나씩 흘리고 있다. 진보당 측은 피의사실 공표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렇게 흘러나온 내용이 어느 순간 바뀐다는 것이다. 수사 유불리에 따라 국정원이 ‘말 바꾸기’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먼저 국정원이 국회에 보고한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요구서에는 ‘내란음모’와 함께 ‘내란선동’ 혐의가 추가 적용돼 의구심을 자아냈다. 이전까지 알려졌던 이 의원에 대한 혐의는 형법상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활동 찬양·동조’ 위반이었다.

국정원이 내란선동 혐의까지 적용한 것은 녹취록만으로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보다 입증이 쉬운 내란선동 혐의를 통해 공소유지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 측이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에 나선 것도 혐의 추가 배경 중 하나로 분석되고 있다.

두 혐의와 관련된 형량은 모두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유기금고로 똑같지만, 내란음모의 경우 목적범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실행계획과 실행능력, 이와 관련한 물증 등을 확보해 목적성이 명확하게 드러나야 혐의 입증이 가능하다. 반면 내란선동은 목적성이 밝혀지지 않더라도 선동 내용이라고 볼만한 발언이나 행위가 있으면 처벌할 수 있다.

진보당 측은 “단순한 당원 모임 강연일 뿐”이라며 “지하조직의 내란음모니 내란선동이니 하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협력자 매수 안 해” → “활동비 지원”

녹취록을 국정원에 제공한 진보당 내부 협력자에 대한 국정원 측의 설명도 계속 바뀌고 있어 의구심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진보당 이상규 의원은 지난 2일 녹취록을 국정원에 제공한 협조자가 국정원으로부터 거액에 매수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국정원이 댓글 조작, 대선불법 개입도 모자라 프락치 공작, 정당사찰을 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협조자는 진보당 당원이며 거액의 도박 빚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국정원 측은 언론을 통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일일이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국정원 측은 협력자에 자금을 지원한 것을 뒤늦게 시인하고 나섰다. 4일 공안당국 관계자는 5일자 ‘서울신문’에 “RO(혁명조직) 내부 협력자에게 활동비 차원의 지원을 했다”면서 “핵심 조직원이 돈 때문에 국정원에 협력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마음이 돌아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구체적인 액수를 밝힐 수는 없지만 활동비 차원의 지원금 정도로 매수설을 주장할 만큼의 거액은 아니다”라며 국정원이 내부 협력자에게 금전적 지원을 한 사실은 있지만, ‘거액’으로 매수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법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재화 변호사는 5일 트위터를 통해 “국정원이 프락치를 매수하여 증거를 수집한 것을 인정했다”며 “따라서 녹취록은 국정원을 대리하여 프락치가 녹음한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제보자 잠적” → “법정 나와 증언”

국정원이 이번 사건을 두고 갑자기 공개수사로 전환한 데 대한 이유도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일보’는 지난 달 31일 공안당국 관계자 말을 빌어 ‘내부 협력자와 1주일 이상 연락이 두절돼 당국이 상황을 심각히 받아들여 공개수사로 불가피하게 전환됐다’고 보도했다. 협력자 잠적이 공개수사 전환의 결정적 계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협력자가 잠적했다는 당초의 설명과 달리, 그가 국정원의 관리 하에 있다는 정황이 잇따라 제기돼 논란이 일었다. ‘경향신문’은 지난 2일 시정당국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제보자가 향후 재판 때 증인으로 법정에 나와 증언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국정원이 협력자와 적어도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있거나 그를 보호하고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더 나아가 공안 당국 관계자는 6일 ‘서울신문’에 “A씨 외에도 핵심 협력자는 최소 1~2명 더 있다”고 새로운 주장을 내놨다.

진보당 홍성규 대변인은 이 같은 ‘국정원의 말 바꾸기’에 대해 최근 국회 브리핑에서 “오락가락 거짓정보로 온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민주주의를 능멸하며 헌정을 유린하는 것은 국정원”이라며 “내란죄 혐의는 그대로 국정원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비판했다.

홍 대변인은 또 “(국정원은) 관련자들의 구속영장과 현역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서에도 기술하지 못한 증거들에 대해 관계자의 입을 빌어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왜 (증거를) 내놓지 못하나”라며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어놓고 공식 브리핑을 진행하라”고 압박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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