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활식 선배님을 추모하면서

윤선배님, 아니 윤차장님,

짧은 송별의 글을 쓰는데도 자꾸 시야가 흐려집니다. 우리가 50년이 넘도록 차장이라는 직함, 직장을 떠날 때의 당신의 직함을 그대로 부르는 까닭은 그 암담하던 시절에 네 명의 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망설임 없이 30명이 넘는 젊은 방송해직자 그룹에, 언론자유 주창자들 대열에 함께 한, 한분 밖에 없는 직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이 지니고 있는 한 아주 높은 직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후 실로 엄혹한 세월을 살아가면서도 한 번도 초조한 빛, 어두운 빛을 보여 준 적이 없는 분의 직함이기 때문입니다.

윤선배께서는 젊은 나이에 신의주에서 월남하시어 그 고생스런 시기에 고려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춘천교대에서 교수로 재직 중 방송에 뜻을 두고 동아방송에 초빙되었고, 초창기부터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연출자로 이름을 굳히셨습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의 군사정부의 몹쓸 탄압은 그 중년의 티없이 맑은 전문인을 생활전선에서도 몰아내었습니다. 그 시기에 윤선배가 택하신 옳은 선택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는가는 그 후의 그의 삶에서도 역력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당신은 강제 해직 후 여러 자녀들을 데리고 쇠 파이프 장사, 알로에 장사, 꽃가게까지 생소한 삶의 현장을 두루 뛰어 다녔습니다. 끝내는 억울한 감옥살이까지 견디어 내셨습니다. 그러나 일본 주재소에 폭탄까지 던진 항일 투사의 자제로서 당신은 고통과 경직된 이념투사의 표정보다는 따뜻한 인간애의 품성을 더 크게 간직했습니다. 의롭되 위험한 자리에는 한사코 앞장을 섰고 후배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자리는 언제나 도맡아 준비하고 이끌어가는 인생의 대장역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주변과 후배들에게 베푼 그 의연한 사랑의 표현이 당신뿐 아니라, 가족 사모님의 배려도 끔찍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해타산을 넘어 옳고 그름에 분명하게 대처한다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겐 얼마나 힘든 용기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에겐 희생이 따르는 일이니까요. 이제 이 버겨운 세상을 떠나시면서도 조용한 미소를 띠셨으리라 믿습니다.

윤선배님, 아니 윤차장님. 아무쪼록 편히 가세요. 천천히 가시면서 그 우아한 목소리로 오, 대니보이 를 부르면서 가세요. 우리는 그 노래가 끝난 뒤에도 당신을 그리워하며 서 있겠습니다.

부디 안녕히, 평안을 누리세요.

<동아투위 방송후배일동>

*김학천 위원 대표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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