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윤수경 번호 : 217.4 게시일 : 2001/08/14 (화) PM 05:37:57 조회 : 139 ***세끼 밥보다 자유언론이 더 있어야 하는거라면.....*** ------------------------------------------------윤수경(박종만씨 부인) 입김조차 넘나들 수 없게 유리와 철망으로 가로막은 면회실에서 흰 저고리 소매 속에 두 손을 웅크려넣은 그의 상반신과 마주서면 난 언제나 서투른 배우가 된다. 어색하게 자꾸 웃고 괜히 큰 소리로 같은 말을 되물으며 '3분간'을 붙들고 늘어진다. 마침내 우리의 말을 받아적던 교도관이 손목시계를 보며 일어서서 그의 등을 돌려댈 때는 내 촌스러움은 당황을 넘어 막막해진다. 늘 잘 있다고 웃는 그의 얼굴에서나, 바깥일은 모두가 잘 되어간다는 내 목소리 너머로 우리는 그저 살아있다는 것만을 확인할 뿐이다. 세끼 밥보다 '자유언론'이 더 있어야 하는 거라면, 차디찬 감방에 쭈그리고 앉아 꽁보리밥으로 배를 채워도 할 수 없다 치자. 당연한 것이 부당한 것에 내몰리는 세상에서 그런 일쯤이야 어차피 피할 수 없지 않느냐는 명분도 그럴듯하다. 남자가 할 일 많은 세상에 태어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감옥엘 갔기로서니 무어 흠될 게 있으며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위안도 듣기 좋은 말이다. 내가 심고 가꾸면 이 다음 누군가는 그 과실을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그의 지론은 더할 수 없이 훌륭했다. 다 그렇다 치자.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홀어머니 삯바느질 밑에서 동가식서가숙하며 고학하던 그가, 결혼한 지 10년이 다 되도록 집 한 칸 변변히 장만 못하고 이런 말 저런 비난 속에서 4년을 버텼으면 이제 어지간히 지칠 때도 되었다. 개미가 느티나무를 흔드는 꼴이지,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도 유분수지, 그래 어쩌자고 이런 세월을 그렇게 보내느냐고 안타까워하는 말을 들을 때면 나까지 얼마나 민망스러웠던가. 2년 전, 스낵코너에서 수수떡을 부쳐 파는데 기관원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었다. "당신 남편은 직업도 없이 쓸데없는 사람들과 부화뇌동하여 불평불만이나 늘어놓고 다니니 설득을 시키라"고. 또 구치소로 넘어가기 며칠 전에 경찰서로 면회를 갔더니 경찰간부는 우리 둘을 앉혀놓고 간곡한 충고를 해줬다. "아직 젊어서 혈기방장하여 그러지만 감옥 살고 나와봐야 너만 손해다. 투위가 밥 먹여주느냐. 가족과 함께 살 궁리를 하라"고. 맞는 말이다. 투위가 밥 먹여주는 주식회사쯤이었다면 그렇게 부실한 회사는 옛날에 문을 닫았어야 했다. 지금은 '쓸 데 없는' 사람들이기에 그렇게 모일 수 있었고, '부화뇌동'하지 않았더라면 투위는 애초부터 존재할 수도, 지금껏 살아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불평불만' 때문에 쫓겨나고 가난했고 마침내 갇혀있지만 그 '불평' 때문에 그는 나의 제왕(帝王)이 되었다. 차라리 혈기방장할 나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그 나이에도 '부화뇌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런 세상'에 있다는 건 나를 자주 감동시킨다. 그이가 나오면 둘이 손을 잡고 광화문 네거리를 걷고 싶다. 쫓겨나고 끌려가던 그 거리에 서서 내 설움과 가난함을 자랑하며 그 불평불만이 없어질 때까지 더욱 부화뇌동하리라. 그의 손을 잡고 광화문 네거리를 걷고 싶다. 1978.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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