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의 첫해인 올해 언론 지형도에 가장 큰 변화는 ‘신뢰하는 언론 매체’ 1위에 유튜브가 꼽힌 사실이다. 더구나 2020년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 100년을 맞은 해였기에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의 충격은 더 컸다. 기실 신문 창간 100년의 의미는 가볍지 않다. 평가를 불문하고 한 신문사가 100년 동안 존재했다는 역사적 무게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 기업 가운데도 한국 사회에서 설립 100년을 맞은 경우는 드물기에 더욱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도 각각 창간 100돌 축사를 보내 의미를 부여했고, 두 신문사는 지면에 비중 있게 편집했다.

▲출처 :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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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5일, 창간 100돌을 먼저 맞은 조선일보는 ‘진실의 수호자’를 자부하며 창간 기념일을 앞뒤로 기획 기사들을 내보냈다. 100주년 사설 제목 그대로 “100년 전 그 춥고 바람 불던 날처럼, 작아도 결코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겠다”며 ‘민족의 등불’을 자임했다. 과거 창간 기념 사설과 달리 나름대로 성찰도 담았다. “암흑기에 민족의 표현 기관으로서 일제 강압과 신문 발행 사이에서 고뇌했던 흔적”은 “오점으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도 100돌 기념 사설에서 “100년 전 청년의 꿈으로 다시 ‘젊은 100년’ 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사설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일제 말 강제 폐간을 앞둔 시기, 조선총독부의 집요한 압박으로 저들의 요구가 반영된 지면이 제작된 것은 100년 동아일보의 아픔”이라며 “정중히 사과”한 문장이다. 조선일보와 견주어 사과 표명이 한층 또렷했다.​

하지만 현업 언론인 단체, 특히 전국언론노동조합의 반응은 서늘했다. 조선일보가 100년을 맞은 바로 그날에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시민행동’은 사옥 앞에서 맹렬히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신체제에서 자유언론실천운동에 나섰다가 해고된 기자들의 조직인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는 창간 100돌을 맞은 동아일보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군사독재의 억압 아래 민중이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독재자에게 찬양과 아부를 일삼은 행적을 추궁하며 반성과 사죄가 마땅하다고 비판했다. 두 신문의 창간 100주년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 현상을 2020년의 한국인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가을에 발표된 언론사 신뢰도 조사에서 헤아릴 수 있다.

▲출처 : 시사IN

시사IN이 9월에 발표한 ‘2020년 대한민국 신뢰도 조사 실시’에서 한국인이 가장 신뢰하는 언론 매체는 유튜브(13.0%)와 네이버(11.4%)였다. 더구나 두 매체의 신뢰도가 30대 이하에서 더 높게 나타나 ‘유튜브 시대’는 적어도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학생들 사이에선 신뢰도가 더 가파르게 올라 25.3%에 이르렀다. 유튜브와 네이버에 이은 신뢰도는 KBS(8.5%), JTBC(5.7%), MBC(5.0%), YTN(4.6%), TV조선(4.5%), 다음(4.1%), 조선일보(3.7%), SBS(2.5%) 순이다. 10위권 밖 순위는 한겨레, 채널A, TBS, 구글, 연합뉴스, MBN으로 나타났다(표본오차 95%, 신뢰 기준에서 ±3.1%p). 더 눈여겨볼 대목은 엄밀하게 말해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 매체’에 한국인이 답한 1위는 유튜브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없다/모름/무응답’ 비율이 17.8%로 유튜브 응답보다도 크게 앞섰다. 그만큼 신뢰하는 언론매체가 없다는 사실을 뜻한다. 전통적인 언론매체와 달리 사실을 확인하는 내부 기제도 없거니와 기본적으로 정파성이 강한 유튜브가 ‘신뢰받는 매체’ 1위인 착잡한 현실을 감안하면 2020년 한국인은 ‘총체적 언론 불신 시대’를 살고 있다고 진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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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사IN

100주년을 앞두고 ‘진실의 수호자’임을 부각한 조선일보에 불신이 높은 현상도 흥미롭다. 시사IN 조사에서 ‘가장 불신하는 언론 매체 두 가지’를 묻는 문항에 1위와 2위가 조선일보(22.8%)와 TV조선(8.5%)이었다. 물론 신문 매체로 국한하면 조금 결이 다른 대목도 있다. “우리나라 신문 매체 중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 하나를 꼽아달라는 질의에서는 조선일보가 15.2% 응답을 받아 1위였고 한겨레가 13.1%로 2위였다. 다만, 이 설문에서도 유의할 대목은 신뢰하는 신문 매체를 묻는 질문에 무응답자의 비율이다. 2015년만 해도 무응답자가 25%였지만 올해 조사에서는 45%에 이르렀다. 신문에 대한 불신이 빠르게 높아가고 있는 셈이다.​

기실 신문의 불신은 자초한 측면이 크다. 2020년 내내 창궐한 코로나19 사태에서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신문들은 문재인 정부를 지나치게 몰아세워 정파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그 결과 지난 4월 총선에서 ‘민주당 압승’이라는 역풍을 불러오기도 했다. 신문을 보면 현 정부가 방역에 실패한 것 같지만 세계적으로 ‘방역 모범국가’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무릇 권력 감시는 언론의 주요 기능 가운데 하나이지만, 사실과 다른 보도와 논평을 쏟아낼 때 오히려 거부감을 일으킬뿐더러 정작 정당한 권력 감시조차 외면받게 된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출처 : 시사IN

‘언론 불신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더 큰 문제는 상황을 바로잡아야 할 공영방송 또한 불신받는데 있다. 시사IN의 ‘가장 불신하는 언론 매체’ 문항에서 조선일보와 TV조선 바로 다음은 KBS, MBC였다. 두 공영방송에는 전 정부에서 공정언론을 위해 싸웠던 방송인들이 사장으로 취임했지만 ‘친정부 편향’이라는 눈총을 받고 있다. 이를테면 두 공영방송이 ‘조국-추미애와 검찰’ 사이에 벌어지는 공방에서 균형 있는 보도를 했다고 보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2020년 언론불신 시대는 일상에서도 나타난다. 한쪽에는 현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기레기’로 단정하는 지지 세력이 있고, 다른 쪽에는 ‘무조건 반대’하는 매체의 애독자들이 있다. 두 흐름 모두 언론매체 불신으로 이어졌다. 정파성이 강한 유튜브가 가장 신뢰받는 매체에 오른 현상은 그 두 흐름에 속한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총체적 언론불신 시대를 벗어날 길은 없는 걸까. 2021년 새해에 우리가 갈라진 공론장을 살려내지 못하면 민주주의 성숙은 어림없는 일이다. ‘레거시 언론’으로 명명되고 있는 ‘정통 언론’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 없는 까닭이다. 신문과 방송, 특히 공영방송의 성찰과 건투를 기대한다. 언론 관련 모든 단체들이 저널리즘 살리기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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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언론 사람> 12월호에 실린 글로 필자의 허락을 얻어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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