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화해협력범민족협의회(민화협)가 발행하는 잡지의 제호를 <민족화해>라 한 것은 남북관계에서 민족화해가 가장 중요하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우리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도 화해에서 시작한다. 화해는 공감은 않더라도 최소 이해 정도는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저변에는 거의 맹목적인 북에 대한 증오심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한 공무원의 월북 피살사건에서도 그 점이 드러났다. 물론 북측이 민간인을 사살하고 시신을 훼손한 것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공무원이 불법으로 월북한 행위도 용납될 수 없다. 이 사건은 불안정한 정전체제가 빚어낸 비극이다. 그래서 민화협을 비롯, 정부도 이 불안전한 전쟁상태를 끝내지는 종전선언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이런 구조적이고, 논리적 정황은 따지지 않고 무턱대고 북을 ‘악마화’ 한다. 바로 그것이 민족화해를 가로막는 주범이다. 언론의 이런 보도 태도는 ‘고질적’이다. 1986년 평화의 댐 보도, 최근 북의 잔인한 ‘숙청 · 처형’ 보도가 대표적이다. 이런 보도는 근거 없는 가짜뉴스로 드러났지만 언론은 반성 않고 오보는 반복된다.

최근 민화협에서 실시한 대학생 토론을 보면 북에 대한 ‘악감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바로 언론, 특히 방송임을 알 수 있다. 돌아가신 리영희 교수는 “한국 언론기관(인)의 평화 기피증과 통일 공포증은 거의 절망적”이라고 토로할 정도다. 그 원인으로 리 교수는 “우리나라 신문 방송은 섣부른 국가안보와 국가 지상주의 유일사상 주술에 꼼짝없이 묶여있다”면서 “국가권력이 강요하는 유일사상 선전 선동자의 역할을 스스로 자처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여기서 본질을 봐야 한다. 많은 사람은 이것이 분단이후 권위주의 체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지만 그렇지 않다. 이는 일제의 조선 침략 수단, 즉 일제 잔재로 그 역사는 113년이나 된다. 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행정권을 장악하고,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을 구실로 고종을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시켰다. <대한매일신문> <황성신문> 등이 일제의 이런 행위를 비난하고, 조선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이에 일제는 근대 사법제도를 도입한다는 구실로 제정한 법률 제1호가 신문지법(7.24.), 법률 제2호가 보안법(7.27.)이다. 일제가 사법권 침탈 후 시행한 첫 번째 조지가 말(언론)을 통제하는 신문지법과 정신(사상)을 통제할 보안법을 제정한 것이다. 이는 언론과 사상의 자유는 같은 뿌리였기 때문이다. 일제는 이 법을 통해 반발하는 신문을 폐간하고 의병을 탄압해 1910년 한일병탄에 성공했다. 국내 굴지 언론사주는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에 대한 기사를 호의적으로 쓰지 않겠다’ ‘이념적 색채가 있는 논문, 소설을 쓰지 않겠다’ ‘공산주의 민족주의적 언론 보도를 하지 않겠다’ 등에 서약하고 충실히 따랐다. 심지어 윤봉길 의거를 ‘흉행’으로 표현하며 ‘러시아의 적색 테러’라 요즘으로 치면 종북몰이 보도를 서슴치 않았다.

이런 왜곡된 역사는 광복 후에도 극복되지 않았다. 1945년 10월 9일 미군정은 일제하 시행된 법 중 예비 검속법, 정치범 처벌법, 신사(神社)법 등 6개 법만 폐지하고 신문지법과 보안법은 그대로 존속시켰다. 언론과 사상을 통제한 두 개 법이 해방 후에도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최근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을 벌이면서 보안법 역사를 72년이라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왜곡된 언론과 보안법의 결합은 우리 안에 심각한 이념적 장애를 낳게 했다. 그것이 제주 4·3, 대구 10·1 등 현대사의 비극을 야기했으며 결국 분단의 씨앗이 된다. 그리고 ‘동족상잔’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낳게 했다. 이 ‘혐북’(북을 혐오하는) 문제는 분단 아비투스, 혹은 분단 트라우마로 우리 안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권위주의 시대 정권은 언론기본법과 보안법이 결탁해 정권연장, 정적 살해의 도구로 활용됐다. 이 ‘더러운 일제 잔재’는 민주화 시대에서도 ‘종북몰이’로 발현돼 정치인에게 자기 검열을 강요하고, 정부의 이성적 정책결정을 어렵게 만들었다. 종편의 탄생은 국민에게 끝임 없이 ‘혐북’의 확증편향을 강요해 거의 정신병 수준인 인지 부조화 상태에 빠뜨려 버렸다.

이는 민족의 미래를 저주하는 일종의 ‘주술’이다. 하지만 주술은 현실을 왜곡하고 과학을 부정하는 미신일 뿐이다. 그 미신의 주술이 강요하는 ‘맹북’ 상태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 탈피작업의 시작은 그 엉터리 주술의 기원이 분단이 아닌, 일제 잔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 주술의 밑바탕인 국가보안법은 혈육조차 만날 수 없는 반인륜적이다. 서로 알지도, 만나지도 못하게 하면서 무슨 화해가 가능한가. 남북교류협력법이 국가보안법의 하위 법률쯤으로 인식되는 모순된 현실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요즘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이 벌어지고 민화협도 이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최소한 제7조(찬양 · 고무죄)라도 폐지해야 한다. 그것이 113년 넘게 우리 민족을 옥죈 일제의 DNA를 끊는 길이고, 진정한 민족화해의 시작이다.

* 이글은 <민족화해> 107호 편집인 칼럼으로 필자의 허락을 얻어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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