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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대 총선-판문점에서 불어온 ‘북풍’조선일보 대해부 4권 - 4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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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2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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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2월 6일 민자당은 당무회의를 열고 ‘세계화’를 완성하겠다며 당 이름을 신한국당으로 바꾸기로 의결했다. 뱀이 허물을 벗듯 잇단 실정과 대형사고 등으로 나빠진 당 이미지를 모면해 보려는 궁여지책이었다. 김영삼은 12월 15일 직선 총장 임기를 채 1년도 채우지 않은 서울대 총장 이수성을 총리로 임명했다. 신한국당은 1996년 1월 16일 박찬종을, 22일에는 전 총리 이회창을, 2월 13일에는 역시 전 총리 이홍구를 영입했다. 외부 거물급 인사들을 대거 영입함으로써 4·11 총선에서 기선을 제압하려는 전략이 마무리됐다.

그런데도 사정은 김영삼 정권에 그다지 좋지 않았다. 3월 21일 청와대 제1부속실장 장학로 비리 사건이 터졌다. 장학로는 15대 국회의원 후보 공천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해 달라는 청탁과 경제 관련 공무원 등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는 부탁 등을 받고 3개 중소기업 대표들로부터 1억4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20년 가까이 상도동과 청와대에서 김영삼 집안의 대소사를 챙겨 온 가신 출신이었기에 김영삼에 대한 타격이 컸다. 결국 김영삼은 3월 29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부정부패 척결에 모범을 보여야 할 청와대 비서관이 파렴치한 비리를 저지른 것은 국민들에게 송구스런 일”이라며 국민들에게 사과의 뜻을 표시해야 했다.

그런데 선거 분위기를 일거에 반전시키는 대형 사건이 4월 4일 판문점에서 벌어졌다. 북한이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을 통해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대변인 담화를 발표하면서 “조선 인민군은 정전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의 유지 및 관리와 관련한 임무를 포기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비무장지대 불인정’을 뜻하는 것이었다.

북한군은 이어 4월 5일 기습적으로 대전차 화기와 경기관총으로 무장한 병력 1백10명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북측지역에 투입한 뒤 진지 구축 훈련을 벌였다. 6일과 7일에도 무반동총과 기관총· 박격포 등으로 중무장한 병력 2백~3백여 명을 판문점 북측 지역과 서쪽 지역에 보내 교통호를 파게 하는 등 임시진지 구축 작업을 벌였다. 김영삼은 4월 6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고 “북한이 노골적 도발 위협을 하고 있는 만큼 더욱 철통같은 대북 경계 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했다.

조선일보 4월 7일자 1면 머리기사가 보도한 대로 ‘DMZ 긴장’이 4·11 총선의 막판 쟁점으로 부상했다. 늘 그랬듯이 조선일보가 안보 분위기 띄우기에 앞장섰다. 7일자 통단사설(「이 도발하고 있다 우리 내부는 어떤가」)은 “권위주의 시대에 우리는 ‘안보’의 이름 아래 ‘민주’가 너무 경시당하는 것을 개탄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른바 ‘문민’ 시대인 오늘엔 문민 정파들 간의 별 가치도 없는 정쟁 때문에 ‘안보’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 같아 심히 한심스럽고 불안하다”고 개탄했다.

(…) 작금의 선거판 이전투구에서도 YS, DJ, JP, 민주당, 무소속은 제각기 (북한이 아닌) 상대방을 주적 삼아 세상이야 어찌 되든 ‘너 죽고 나 살자’는 소승적 권력투쟁에만 매달려 있다. (…) 북과 같은 상대방에 대해서는 유약함이나 문약이 아닌, 그들이 감히 도발할 엄두도 못 낼 시퍼런 임전 태세와 기를 보여 주어야만 그나마 전쟁이 억지됨을 알아야 한다. (…) 국민 또한 사즉필생의 각오로 두 눈을 부릅뜨는 국민만이 나라와 가정을 지킬 수 있음을 느껴야 할 때다. 우리의 주적 북한 광신집단의 도발에 대해 결연한 항전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 전쟁은 국력과 군사력만을 기준으로 해서 일어나느냐 않느냐를 예측할 것이 못된다. 권력자가 자신의 주관적 판단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오늘날 북한의 권력층에도 제 정신 아닌 자가 있을 수 있다. (…) 북이 문제를 일으키면 저들의 억지와 생떼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그것을 수습하려던 그간의 설익은 대북정책이 오늘날 이런 상황을 야기했다는 점도 바로 깨달아 선제적이고 능동적인 대북정책으로 전환해야 하겠다.

4월 7일에는 2백30여명으로 추정되는 북한군 중무장 병력이 대·소형 트럭 12대에 분승해 또 다시 판문점 북측 지역에 투입됐다. 북한군은 그 전 이틀 간 구축해 놓은 임시 진지에 60mm 박격포 2문, 82mm 무반동총 1정, 기관총 1정을 또 설치하고 2시간쯤 후 철수했다.

조선일보는 8일자 1면 머리기사(「북, 판문점 3차 무력 시위 / 어제 밤 장병 230명 투입 진지구축 훈련 / 전 지휘관 부대 내 대기령: 국방부 / 북측 지역 진입 2시간 뒤 철수」)로 그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국방장관 이양호가 합참본부에서 전화를 받는 사진, 「‘DMZ 긴장’ 안보리 소집 추진 /미 등 상임이사국과 막후 협의: 정부」「페리 미 국방 15일 방한 / 한미 연합방위력 점검」「주한 미군도 경계 강화〉 등의 기사가 덧붙여져 긴박감을 한층 더 했다. 선거 막판에 느닷없이 불어 온 북풍에 놀란 김대중은 여야 영수회담을 제안하는 등 북풍 차단을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역부족이었다.

같은 날짜 조선일보 1면 한가운데 실린 〈뉴욕타임스〉기사의 제목은 「“북 전쟁 도발 땐 파멸 / 개전 가능성 희박”」인데〉반해 조선일보 등 한국의 언론은 마치 곧 전쟁이 벌어질 것처럼 요란을 떨었다. 2면에는 「합참통제실 상황 종합 지침 하달 / 사안별 ‘위기’-‘긴급조치반’ 소집 / 유엔사와 핫라인 연결 긴밀 협의 / 초긴장 DMZ 비상시 군 대응 체계」, 3면에는 「 단계적 긴장 고조… 치밀한 수순 / 초긴장 DMZ: 북 잇단 시위 속셈 / 투입 1시간씩 늦춰… 병력 수도 의도적 / 정전협정 와해 술책 장기·다양화 조짐」「2백 50개 ‘징후 목록’ 매일 점검: 북한 동향 감시 어떻게 하나 / 지상 30cm 크기 물체 움직임 식별 첩보위성: 휴전선 북방 150km 샅샅이 훑어 항공 정찰」「김 합참의장 벙커서 직접 지휘 / 청와대, 휴일 비상 속 북 동향 추적 / 외무부, 한미 공조 등 대응책 숙의」마치 전쟁 직전의 분위기를 전하는 듯한 기사들이 나왔다.

4월 7일을 끝으로 북한군은 더 이상 특이한 동태를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뚝심’ 있게 ‘북한의 위협’을 밀고 나갔다. 북한 측 동향을 쓸 게 없으니 우리 측 ‘태세’를 주로 쓸 수밖에 없었다. 9일자 1면 머리기사는 「북 도발 땐 현장서 응징 / 군, 지침 시달 “수칙 따라 즉각 조치” / 서해 북방한계선도 포함 / 국지적 교전 상황 가능성: 김 대통령·군 수뇌부 청와대 회의」였다. 주요 기사는 「여야 「북 병력 투입 책임 공방 / “정국 안정 필요” “선거에 악용” 설전: 총선 앞으로 2일」이었다.

3면에는 「북 남침 땐 5단계 ‘5027작전’」이란 큰 제목을 단 전면 해설기사로 「‘징후’ 단계 첫 조치로 미군 2만 증원 / 도발 90일 내 50만명 투입 북진·상륙」이라는 살벌한 전쟁 시나리오를 실었다.

4월 10일자도 마찬가지였다. 1면 머리기사는 “유엔 안보리가 9일(한국시각 10일) 북한의 비무장지대 내 무장병력 투입 등 정전협정 위반문제를 긴급토의 의제로 채택, 공식 논의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2, 4, 5면에도 북한 관련 기사를 가득 실었는데 2면에는 「“어떤 도발에도 철저한 응징 대비를” / 해·공군도 즉각 대응 지시: 3군 이틀째 대책회의」「북 “남 침범 땐 전쟁근원 일소” / 군 차수 김광진 동원-전투훈련 적극 참가 촉구」, 5면에는 「비무장지대 각종 도발 긴급조치 방안 재점검 / 3군 총장, 서해5도·전방비행단·주한미군 방문격려 / 긴박한 3군 움직임〉 등 호전적 기사들이 특히 눈에 띄는 호전적 기사들이 나왔다.

북한은 왜 남한의 총선을 눈앞에 두고 느닷없이 그런 도발행위를 벌였을까?. 조선일보가 4월 9일자 9면(국제면)에 인용한 뉴욕 발 연합뉴스는 <뉴욕타임스〉의 기사 내용을 이렇게 전했다. “한미 관리들은 북한이 정전협정을 우롱함으로써 실제 전쟁을 준비하기보다는 외교적 책략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최근 북한의 무력시위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미끼로 경수로 및 대북 중유공급 협정을 체결한 것과 마찬가지로 기아와 파산 상태의 북한 경제를 도울 수 있는 경제원조를 끌어 들이려고 의도한 것일 수 있다.”

〈뉴욕타임스〉또 유엔사 대변인 짐 콜스가 “연속적인 북한군의 중무장병력 투입 행위는 심각한 정전협정 위반”이라면서 “그러나 특별한 경계를 요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는데 왜 김영삼 정권과 조선일보 등 언론은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가 닥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을까?. 그 대답은 조선일보가 2단 짜리 〈뉴욕타임스〉 기사 뒤에 1단으로 보일락 말락 집어 넣은 1단 짜리 〈워싱턴포스트〉 기사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의 비무장지대 무장병력 투입은 총선을 앞둔 한국에 긴장을 유례없이 고조시키고 있으며, 북한이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8일 보도했다.
포스트는 총선을 앞두고 하락세를 보이던 한국 집권 여당의 지지도가 유권자들이 안보 위기를 느끼면서 다시 반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난 달 중국의 미사일 시위가 리등휘 대만 총통의 선거 압승을 가져다 주었던 것과 같은 현상이 한국에서도 재현될지 모른다고 보도했다.

4·11 총선 결과는 당시 야당인 국민회의가 참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국당은 139석, 국민회의는 79석, 자민련은 50석, 민주당은 15석, 무소속은 16석이었다. 무엇보다 전통적으로 야세가 강했던 서울에서 47석 중 27석을, 경기도에서 38석 중 18석을 획득한 신한국당의 승리라 할 만 했다. 그 결과가 전적으로 판문점에서 불어온 ‘북풍’ 탓이었는지, 느닷없이 ‘북풍’이 왜 불었는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김영삼 정권과 조선일보가 그것을 최대로 활용하려 했다는 사실은 조선일보 지면에 명확한 증거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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