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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비난·방송 파업 불참 언론인의 총선행[ 언론인 출신 총선 출마자 - 미래통합당 ]
  • 관리자
  • 승인 2020.03.1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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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당 집권기 MBC 편파 논란 당사자 신청

“전쟁을 결심해야 전쟁 없다” 선동, 논객도

조선일보 출신, 강효상·강훈·김대현·허용범

언론인 출신 총선후보(예비후보 포함)들이 언론인 시절 어떤 기사와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 살폈다. 몇몇 후보는 특종으로 정치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 또 몇몇 후보는 오래전 언론사를 퇴사하고 정치권으로 옮겼다. 미디어오늘은 잘 알려진 정치이력보다는 과거 그들이 직접 쓴 기사로 후보들을 평가했다. 아직 경선이 진행중이라 후보가 모두 확정된 상황은 아니다. <편집자주>

광주 운동권 출신 MBC 기자 심재철

심재철 통합당 경기 안양시 동안을 후보는 1958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사범대를 나왔다. 1980년 5월15일 ‘서울역 회군’을 결정할 때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다. 1985년 잠시 영어교사로 일하다 MBC에 입사해 10년간 기자로 일했다. 1988년 MBC 노조 설립을 주도해 초대 전임자를 맡았다. 1995년 12월 신한국당 부대변인으로 정계 입문해 2000년 16대 총선부터 안양 동안에서 내리 5선을 지냈고 이번에 6선에 도전한다.

심재철 기자는 국제, 스포츠, 사건사고, 교육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취재했고 사회윤리를 다루는 보도도 했다. 1990년 6월 “폭력배 날뛰는 인력시장”에서 폭력행태를 비판했고, 같은 달 “여자들만 손님으로 받는 호스트바 잠입취재”, 1991년 11월 “전국 매춘 여성 65만, 이중 필로폰 흡입학생 상당수” 등을 보도했다. 그러나 대안 보다는 선정성을 앞세웠다는 지적도 있다. 1991년 4월10일 “일부 대학 등록금 인상 문제로 진통 겪어” 등 리포트에선 등록금 인상을 둘러싼 학생과 대학의 갈등을 조명했다.

▲ (서울=연합뉴스) 이남기 기자 = 국회 광주 특위는 중단됐던 광주 민주화 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를 재개하고 심재철 전 서울대 학생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문동환 특위 위원장 앞에서 선서하고 있다. 1988.11.30


2008년 1월 ‘이명박 특검법’ 저지 몸싸움에 뛰어들어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누가 지팡이 들고 있나 했다. 아주 잘했다”고 심 후보를 칭찬했다. 2012년 당내에서 반값등록금 주장이 나오자 “세금 낭비”라고 비판했고, 2014년 국회 본회의장에서 누드사진 검색 장면이 언론에 공개됐다.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 시절 특수활동비로 6억원을 받아간 사실이 드러났고, 지난해 4월 검찰은 정부의 미공개 예산자료를 심 후보가 무단 유출했다며 기소유예 처분했다.

한편 같은 단과대를 나온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종친으로 둘 다 운동권 출신이다. MBC 기자 때 1993년 올림픽대로에서 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워싱턴 특파원 허용범 4번째 도전

허용범 통합당 서울 동대문갑 후보는 1964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일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미국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8월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해 워싱턴 특파원을 하던 중 2007년 6월 박근혜 대선캠프 공보특보로 합류했다. 2008년 한나라당 후보로 경북 안동, 2012년과 2016년 새누리당 후보로 서울 동대문갑에 출마했지만 각각 낙선했다. 국회 대변인과 국회 도서관장을 역임했다.

허 후보는 조선일보 논조와 비교할 때 합리적 논조를 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야당인 한나라당(현 통합당)을 비판하기도 했다. 정치부 기자 땐 2003년 6월 기자수첩 “한나라 ‘엄포 정치’”에서 한나라당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를 공식 검토하자 “심사숙고해 책임질 당론을 정하고 한번 결정했으면 실천하는 게 거대 야당의 도리”라고 했다.

2004년 논설위원 땐 칼럼에서 “이제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는 게 현실임을 인정하며 선의의 경쟁을 할 때”라며 “(정치권에서) 낡고 철 지난 이념의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의 부자연스런 모습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계진출 때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19년 넘게 조선일보 기자로 청춘을 바쳤다”며 “새 도전을 하고 싶었다”고 이유를 밝혔고 회사와 조선일보 후배에 부담이 갈까 걱정하기도 했다.

박근혜 캠프를 선택한 이유로는 정치부 기자 때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가 이끈 ‘한국미래연합’당을 담당해 인연이 있고 개인적으로 지지한다고 했다. 실제 허 후보는 2002년 2월 이수성 전 국무총리가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 같은 사람이 내 마음에 든다”며 “마음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한 부분을 인용해 보도했다.


조선일보의 얼굴 강효상

강효상 통합당 서울 중구·성동갑 예비후보는 1961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대건고, 서울법대, 아메리칸대학교 국제법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86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1997년 워싱턴 특파원, 경제·산업·사회부장, 경영기획실장, 조선비즈 대표를 거쳐 2011년 TV조선 보도본부장, 2013년 조선일보 편집국장 등 요직을 거쳤다. 언론 불모지였던 헌법재판소와 감사원을 처음으로 본격 취재했고, 2001년 당시 조선일보 역대 최다(22회) 특종상 수상자로 기록됐다.

강 예비후보는 기자 시절 생각을 국회에서 실현하려 한 정치인이다. 2010년 편집국 부국장 시절 “위험한 ‘부자감세’ 논쟁”이란 칼럼에서 “가장 효과적인 감세 대상이 누구일지 너무 자명하다”며 “바로 큰 기업과 자산가(부자)들”이라고 했다. 2016년 비례대표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된 강 예비후보는 ‘부자감세’라며 상정하지 못한 골프장 입장시 개별소비세 폐지법안을 발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꾸준했다. 2007년 사회부장 시절 칼럼에서 “대통령이란 높은 권좌에 올라앉아 힘없는 대학을 짓밟고, 기자들 멱살을 잡고, 헌법기관을 조롱하고, 야당 지도자들에게 침을 뱉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비판했다.

▲ 강효상 미래통합당 의원. 사진=김도연 기자.


강 예비후보는 박근혜와 최서원(최순실)이 경제적 동반자라면 노무현과 안희정도 마찬가지라고 말했고, 당 대변인이던 2017년 9월 “노 전 대통령 서거 과정과 함께 600만 달러 뇌물수수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논란에 불을 붙였다.

그는 2013년 2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편집국장으로 있으며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2013년 9월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 혼외자 보도를 주도해 낙마하는데 일조했고, 국정원 댓글 공작 수사까지 방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4월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에게 “보내주신 음악회 티켓을 잘 받았다”는 감사문자를 보낸 사실이 드러나 ‘권언유착’이란 비판을 받았다. 편집국장 이후 논설위원으로 있다가 새누리당 후보 마감 당일에 사표를 내 언론윤리을 훼손했다는 지적이 있다.

강 예비후보는 지난해 5월 한미 정상간 통화 내용을 공개했는데 검찰이 이를 외교기밀누설 혐의로 기소해 현재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기자 때 “이념 탈피” 주문한 박대출 국회선 “월북하라”

통합당 박대출 후보는 진주갑에 단수 공천됐다. 그는 1988~2012년까지 서울신문 기자였다. 사회부, 산업부, 정치부를 거쳤고 정치부장, 공공정책부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2003년 언론이 갑자기 현대차를 깎아내리며 도요타 띄우기에 나섰다. 박대출 기자는 8월27일 ‘자동차 신화 급브레이크’ 기사에서 “지난 21일부터 25일까지 한국의 자동차 담당 기자들을 일본 본사로 초청했다. 렉서스 고객 초청 자선골프대회, 드라이빙 스쿨 운영 등 다양한 서비스도 내놓고 있다”고 썼다. 도요타가 한국의 경제부 기자들을 대거 일본 본사로 초청해 이런저런 행사를 열어줬다는 고백이었다.

2007년 미디어오늘은 ‘삼성 비자금 특검’에 대한 주요 언론사 정치부장의 견해를 들었다. 당시 박대출 정치부장은 “너무 정치적으로 접근해 특검법이 정치적 법안이 된 것 같다. 법안이 담고 있는 수사 내용도 너무 광범위하다”고 밝혔다. 그는 특검 대상을 언론까지 확대하는 데 반대했다.

▲ 박대출 의원. ⓒ민중의 소리


그가 쓴 정치 칼럼은 보수 색채가 있지만 원론적 주장을 하거나 보수정당 내 소장파의 비판에 주목하는 경향이었다. 논설위원 때인 2010년 정두언 의원이 여권 지도부와 대립하자 “그의 처신을 반조직 행태로만 보는 이들이 진원지”라고 지적했다. 홍준표 의원의 당을 향한 비판에는 “맞는 말도 많다. 한나라당이 귀담아 듣고, 실천하면 약이 될 수도 있다”고 썼다.

당시 그의 칼럼과 국회 진출 뒤 행보는 대비되기도 했다. 그는 2005년 데스크칼럼에서 “새해에는 이념·색깔 논쟁을 탈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랬던 그는 2013년 국회에서 민주당 진성준 의원에게 “종북 말고 월북하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박대출 기자는 자신의 칼럼에서 1993년 영국의회 연수 경험을 언급하며 “의원들이 논쟁을 벌였다. 수시로 소란했다. 부스로이드 의장이 필요하면 나섰다. ‘오더(order)’란 말을 한두번 외쳤다. 의석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우리 국회는 어떤가. 의장의 주의에도 아랑곳없다”고 썼다. 국회의원이 된 그는 상임위 의장격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과 수시로 대립한다.

그는 국회 과방위에 오래 몸담았고 간사도 지냈다. 실제 과방위 야당 어젠다를 주도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의 좌파정권 방송장악 피해자지원 특별위원회 위원장, KBS의 헌법파괴 저지 및 수신료 분리 징수 특별위원회 위원장 등 언론 관련 직도 맡았다. 본인 명의로 공영방송 관련 이슈에 비판 논평도 자주 낸다.


박종진 시사토크서 울고 웃고

통합당 인천서구을 박종진 후보는 MBN 기자 출신이다. MBN에서 사회부, 경제부 등을 출입했다. 종편 출범 후 채널A에서 경제부장 겸 종합뉴스 메인앵커를 지냈다.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를 통해 이름을 알리며 이영돈 PD와 함께 채널A의 간판 진행자가 됐다. 2012년 ‘쾌도난마’에서 고승덕 전 의원에게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 살포 사건을 인터뷰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 폭로로 박희태 국회의장이 사퇴했다.

패널의 논란이 되는 발언을 방치하거나 주관적 멘트를 섞는 그의 진행은 호불호가 갈렸다. 박종진 앵커가 진행했던 채널A 쾌도난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제재를 15차례 이상 받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 결과에 따르면 사드배치에 따른 주민 반발을 북한과 엮기도 했다. 박종진 앵커는 성주 군민들이 사드배치에 반발하는 장면이 나오자 “이 화면 보면 김정은이 좋아하겠네. 그렇죠? 김정은이 좋아하고. 중국 공산당 관리도 좋아하고. 지금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분열하고”라고 말했다.

채널A를 떠나 프리랜서 신분으로 TV조선에서 ‘박종진의 라이브쇼’를 진행했다. ‘라이브쇼’에서 도중 패널에게 성매매 특별법 도입 이전에 성매매를 한 적 있냐고 집요하게 물어 논란이 됐다. 바른정당(새로운보수당)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미래통합당과 합당하면서 미래통합당 공천을 받았다.


황헌 100분토론 편파진행 논란

통합당 경북 영주문경예천 황헌 후보자는 MBC 기자 출신이다. 1984년에 MBC에 입사한 후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부 등을 거쳤고 2003년 파리 특파원을 지냈다. 이후 논설위원을 거쳐 2012년 보도국장에 임명됐다.

1990년 모스크바 특별 취재반 소속으로 고르바초프의 정적 옐친을 단독 인터뷰했다. 2010년 논설위원 때 경제 논평을 주로 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동 번영을 위한 ‘상생 생태계’를 짜라고 말했다”며 대통령 주문을 전하는 듯한 논평도 썼다. 종편 출범 땐 “왜 종편이 필요한지, 도입되면 어떤 점이 좋은지를 이제라도 정부는 백지 상태에서 짚어봐야 한다”고 했다.

황헌 후보자는 라디오 ‘뉴스의 광장’, ‘100분 토론’ 등을 진행하며 편향 지적을 받았다. ‘100분토론’ 한미FTA토론 당시 진행자임에도 최재천 변호사(한미FTA 반대측 패널)의 말에 먼저 반박해 논란이 됐다. 그는 보도국장 때 MBC 파업 참여자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이행한 혐의도 받았다. 그는 언론노조가 선정한 ‘언론 부역자’에 이름을 올렸다.


최대현 선거 전날 편파멘트 논란

최대현 파주을 예비후보는 PSB(KNN), 강원민방을 거쳐 2002년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2012년 공정방송 파업에 참여했으나 중단하고 김세의 전 기자와 함께 제3노조를 만들었다. 그는 지난 2018년 5월 해고됐다. 해고 사유는 ‘아나운서 블랙리스트 작성 및 보고’, ‘시차 근무 유용’, ‘선거공정성 의무 위반’ 등이다. 현재 해고무효 확인 소송이 진행 중이다.

2017년 대선 전날 방송 말미에 “프랑스 대선에서 통합을 외친 마크롱이 당선됐다. 우리나라 대선에서는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패륜집단이라며 편 가르기까지 나오고 있다. 선택은 국민 여러분의 몫이다. 내일 소중한 한 표 행사해 달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MBC 재직 때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 김세의 전 MBC기자와 함께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피켓 옆에서 사진을 찍어 논란이 됐다.

해고 이후 정규재 전 한국경제 주필이 만든 인터넷 언론 ‘팬앤드마이크’에서 정계 진출 직전까지 앵커 및 방송제작부장으로 활동했다.


배현진 최장수 뉴스데스크 앵커

통합당 배현진 후보는 서울 송파을에 단수 추천을 받아 출마한다. 그는 2008년 MBC에 입사했다. 2011년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친근한 이미지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2012년 공정방송 파업에 참여했다 100일만에 제작에 복귀하고 노조를 탈퇴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이후 배현진 앵커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공영방송의 간판이 됐다. 2010년부터 6년 8개월 동안 ‘뉴스데스크’를 진행해 최장수 앵커 기록을 세웠다.

최승호 전 MBC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구체제에서 MBC뉴스는 대단히 문제가 많았다. 국민을 배반하고, 공영방송으로서 역할을 져버린, 국민을 오도한 뉴스였다. 그 뉴스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라며 배현진 후보를 비판했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그를 영입하며 ‘방송장악의 피해자’라고 불렀다.


안병길 인싸 자신감이 화 불러

통합당 부산 서·동구 출마를 노리는 안병길 예비후보는 1962년 경남 진주 출신으로 진주고와 부산대를 나와 1987년 부산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정치부장, 편집국장을 거쳐 4년간 사장을 지내다 2018년 노조와 갈등 끝에 물러났다. 신문사의 핵심 부서는 다 거친 셈이다.

중앙지는 정치부가 핵심부서지만 지역지는 사회부가 핵심이다. 안 후보는 초년 기자시절 꽤 오랫동안 사회부 기자를 거쳐 사회부장까지 지냈다.

4년차 안 기자는 1990년 12월에 쓴 ‘택시기사 가스 중독’ 기사로 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LPG 연료를 쓰는 택시는 당시엔 배관 문제로 가스 누출이 빈번했다. 안 기자는 운전석으로 스며 든 가스에 중독돼 전신마비된 택시기사를 찾아 보도했다.

2018년 안병길 부산일보 사장의 아내는 6·13 지방선거 때 자유한국당 공천을 받아 시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언론사 사장 부인이 선거에 나선 것도 입길에 올랐는데 안 사장은 지인들에게 아내의 출마 사실을 알리는 문자도 보냈다. 노조가 퇴진 투쟁에 나서고 노조 지부장이 단식에 들어가자 사퇴했다.

부적절한 처신으로 도마에 올랐지만 안 사장은 부산일보 사옥에 있던 윤전기와 발송시설을 드러내 죽어있던 1층 공간에 편의시설을 입주시켜 수익을 내는 등 경영은 잘 했다. 부산 장전동에 있던 윤전공장을 이전하고 그 터에 시행사로 참여해 아파트를 지어 수익을 내기도 했다. 부산일보 내부에선 경영에서 얻은 자신감이 과욕을 불렀다고 안 사장을 평가했다.


이진숙 취재욕심 많던 종군기자는

통합당 대구 동갑에 나선 이진숙 예비후보는 1961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1980년 대구 신명여고를 나와 경북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잠시 중학교 영어교사를 했다. 1985년 외국어대 동시통역대학원에 입학해 1986년 MBC 기자가 됐다.
MBC에서 처음 사회부에 배속됐다가 문화부로 옮긴 걸 ‘물 먹었다’고 표현할만큼 현장 취재 욕심이 많았다. 국제부를 거쳐 1990년 다시 사회부 사건기자로 일했다. 1991년 초 걸프 전쟁 때 이라크에 가 종군기자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이진숙 기자는 1991년 5월18일 강경대 장례식 때 연세대 맞은편 철길 위에서 이정순씨의 분신 투신 현장을 취재했다. 나흘 뒤 홍콩 신문 ‘사우차이나 모닝포스트’는 당시 현장에선 “불을 끄는 이가 아무도 없었고 오히려 불을 끄려는 자신을 방해했다”고 썼다. 브루스 체스만이란 프리랜서 기자의 기사였다. 석간 중앙일보는 이를 받아 보도하면서 운동권의 비도덕성을 맹렬히 비난했다. 때마침 유서 대필 조작사건과 김지하의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조선일보 기고까지 겹쳐 학생운동은 궁지에 몰렸다.

▲이진숙 MBC 기자.


이 기자는 언론노조 기관지 ‘언론노보’에 “체스만의 말과 달리 여러 청년이 웃옷을 벗어 불 끄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바로잡는 기고를 했다. 이 기자는 한국 말에 서투른 체스만 기자가 흥분한 학생들 행동에 착각을 일으켰다고 했다. 사진기자회도 분신 직후 2~3초부터 5분까지 시간 순으로 사진을 배열해 체스만의 착각을 재확인했다.

이 기자는 연국 연수 중에 쓴 일기에 ‘방송독립’을 철저히 지켜 명성을 쌓은 BBC 채널4에 깊고 넓은 경외심을 느낀다고 했다. BBC4는 종일 뉴스와 시사를 내보내는 라디오 방송이다. 화면 없는 라디오의 단점을 역이용해 소련 경제학과와 미국 교수, 영국 외무부 관료를 동시에 불러내 라디오 토론도 시켰다. 그토록 방송독립을 갈망했던 이 기자는 세월호 참사 때 MBC 보도본부장이었다. 그 때 MBC는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냈다.


홍지만 SBS 앵커하다 정치로 직행

통합당 경북 고령성주칠곡 후보에 도전한 홍지만 전 의원은 대구 출신의 SBS 앵커였다. 그는 1968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대구 동덕초와 대륜중, 덕원고를 나온 뒤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SBS가 기자가 됐다. 그는 사회부, 기동취재부, 국제부를 거쳐 참여정부 때 경제부 기자를 맡았다. 2002년부터 2년간 SBS ‘8뉴스’ 주말 메인앵커를 했고, 2004년 10월부터는 아침종합뉴스 ‘출발! 모닝와이드’ 앵커로도 활동했다. 2007년 대선 개표 방송도 진행했다. 2008년 1월 퇴사할 때까지 아침뉴스 앵커를 계속했다. 그러다 휴가를 내고 결심했다. 한나라당에 입당해 정계 진출에 도전했다. 만 40살 때였다. 그해 4월 18대 총선에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 달서갑에 출마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으로 같은 지역구에 재도전해 당선됐다.

그는 기자 시절 KAL기 괌 추락, 아프간 전쟁을 취재했고, 앵커로 대중에게 얼굴을 많이 알렸다. 그러나 여당 국회의원 출마 직전까지 앵커를 맡아 폴리널리스트라는 비판을 받았다. 2008년 총선 때부터 ‘폴리널리스트’라는 표현은 생겼다. 당시 KBS 출신 박선규, 안형환, SBS 출신 신성범, 홍지만, 유정현, MBN 출신 박종진 등의 한나라당행이 줄을 이었다. 현직 기자나 앵커가 최소한의 냉각기도 거치지 않고 정치로 직행한다는 뜻이다. 그는 2014년 ‘폴리널리스트’라는 책도 썼다. 출판사는 저자를 두고 “직업의 자유가 존재하는 대한민국에서 해당 전문 분야의 인재들이 정계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서 마냥 비판의 눈으로만 지켜볼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책에서 ‘저널리스트는 준 정치인’이라고도 했다.


강훈, 국정원 댓글 사건 취재

통합당 경북 포항북구 예비후보 강훈 전 기자는 지난 1월까지 조선일보 논설위원이었다. 그는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특히 사건팀과 법조 취재를 오래했다. 조선일보로 옮긴 뒤에도 상당부분 법조팀에서 취재했다. 강 전 기자는 1969년 경북 포항 출생으로, 포항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조선일보에서도 줄곧 법조기자로 있다 잠시 경제부로 옮겼지만 기획취재부 차장을 거쳐 박근혜정부 초중반까지는 법조팀장(사회부 차장)을 맡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TV조선 탐사보도부장을 지낸 뒤 다시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 돌아왔다. 출마 사퇴시한에 맞춰 지난 1월 퇴사하고, 자유한국당에 들어가 총선을 노린다.

그는 조선일보에서 박근혜 정부 초기 최대 쟁점이었던 국정원 댓글 대선개입 보도에 뛰어들었다. 강 전 기자는 조선일보 2013년 6월14일자 1면 머리기사 ‘국정원 직원들 인터넷 댓글 1760개… 검찰이 선거개입 적용한 건 67개/문재인 안철수 직접 비판은 각각 3건’을 썼다. 국정원 직원들의 문제되는 댓글 활동이 실제 얼마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기사다. 1760건 가운데 1700건은 종북비판이나 신변잡기에 불과하다고 치부했다. 그 기사에 딸린 짤막한 해설기사에서 조선일보의 다른 기자는 “원 전 원장의 대선개입 혐의를 입증하기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황교안 법무장관과 일부 공안 검사들의 판단”이라고 썼다. 이 기사로 강 전 기자는 사내 특종상도 받았다. 하지만 댓글활동을 지시한 원세훈 국정원장은 정치개입을 금지한 국정원법 위반 뿐 아니라 공직선거법 위반도 모두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김진 “3일만 참으면 전쟁 이긴다”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통합당 서울 중구 성동갑 지역구에 강효상 의원과 함께 경선을 치른다. 강 의원이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이라 김 전 위원과 경쟁이 조선일보-중앙일보 경쟁처럼 비춰진다. 김진 전 위원은 1959년 강원 원주 출생으로 장훈고와 경희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코리아타임스에 입사했다. 2년 뒤 중앙일보 편집부로 옮겨 이듬해부터 정치부 기자, 워싱턴특파원, 정치전문기자, 논설위원을 지냈다. 2006~2016년까지 10년간 논설위원을 하면서 극단적인 글로 주목을 받았다. 김 전 위원은 2010년 4월9일 천안함 사건 직후 ‘전쟁을 결심해야 전쟁이 없다’에서 “대통령은 국민적 고뇌와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고 전쟁론을 폈다. 그해 5월20일 칼럼에선 “국민이 3일만 참으면 전쟁에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연평도 포격 직후인 같은해 11월29일자 칼럼에서 김 전 위원은 “확전에 벌벌 떠는 건 패배주의”라며 “전면전이 일어나도 국민이 견뎌주면 승리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2년 9월17일에는 “천국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민혁명당 사건 피해자들이 막걸리 한 잔씩 걸치며 서로 화해 했을 것”이라고도 썼다. 그는 2014년 7월 이른바 ‘정윤회 문건’ 폭로 때 정윤회씨를 인터뷰했다. 정씨는 “2007년 비서실장을 그만둔 이래 나는 7년간 야인”이라며 실세라는 게 억울하다고 했다. 김 전 위원은 당시 여권 내 개혁목소리도 비판했다. 그는 2015년 7월1일 칼럼에서 경제민주화를 추구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퇴진을 촉구했다.


대우 갑질 비판했던 박용찬 기자는

통합당 박용찬 후보는 서울 영등포을에 공천돼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MBC에 1991년 입사해 사회부, 보도제작부, 정치부를 거쳐 뉴욕 특파원, 사회2부장을 지냈다. MBC ‘뉴스데스크’ 앵커로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

초년 기자 때 그는 사회부에서 유의미한 보도를 적지 않게 했다. 1993년 ‘카메라 출동’에서 대우가 형편없는 직조기를 고성능 첨단기계라고 속여 중소섬유업체에 팔아 도산 위기에 처한 점을 보도했다. 같은 해 ‘청림건영 고의 부도’ 수사가 지지부진한 점을 취재한 일을 계기로 경찰이 적극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다만 그는 1996년 한총련 사태 땐 경찰의 진압이 더욱 강경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0여 명의 학생들은 뒷문으로 빠져 나갔다”며 “지방에서 올라온 수천여 명의 학생들이 연세대학 안으로 들어간 것을 용인한 결과”라고 했다.

기획취재부장 시절 그는 반값 등록금, KBS 도청 의혹 등 사회 현안 기사를 축소 누락하거나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7년 시사제작국장 시절 대선후보 검증에서 사드 배치를 두고 “국가 존망이 걸린 문제”라고 발언해 불공정 시비를 불렀다. 그는 현재 미래통합당 대변인을 맡고 있다.


이종훈 부산 지역뉴스 전달

부산 수영 출마를 준비하는 통합당 이종훈 예비후보는 부산MBC에서 보도제작부장, 보도국장, 기획심의부 심의위원 등을 지냈다. 인터뷰 프로그램 ‘리얼토크 만나봅시다’ 진행을 맡기도 했다.

이종훈 예비후보는 오랜 기간 지역 뉴스를 전했다. 2008년 기획보도를 통해 부산 도시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정확한
수요분석보다는 탁상에서 선긋 고 개발하는 방식으로 계속 진행되다보니 오류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태풍 매미 이후 기획보도를 통해 마구잡이식 해안매립이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김범수 태극기 부대와 함께

경기 용인 정에 단수공천된 통합당 김범수 후보는 보수 격주간지 미래한국 대표이사와 발행인을 역임했다. 미래한국은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제기하는 등 태극기 집회와 유사한 성향이다.

그는 기명칼럼에서 문재인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언론통제, 경제지표 퇴행 등을 언급하며 차베스를 문재인 대통령과 빗댔다. 그밖에도 “무덤에서 소환돼 친문으로 부활한 좀비들과 아직 무덤으로 들어가지 못한 구시대 보수의 좀비들이 진보와 보수를 과잉대표하고 있다”고 지적하는가 하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자유 주권자를 파시즘의 노예화 하려는가” 등 거친 표현을 썼다.

자신이 대표를 지낸 미래한국은 지난해 12월 김 후보를 인터뷰하면서 “아이비리그 출신 북한인권운동가”라고 치켜세웠다. 미래한국은 “‘김범수 싱크탱크’ 출범 코로나 사태 긴급 논의, 4대 대응 방안 발표” 등 김 후보 홍보기사를 쓰고 있다.


주간지 출신 정치신인 김대현 

김대현 통합당 강원 원주을 예비후보는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진광고와 숭실대 사학과를 나와 동국대에서 언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김대천 전 강원도의원 동생으로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서 16년간 기자생활을 했고, 지난해 원주을 당협위원장과 당대표 특별보좌역을 맡으며 정치에 발을 내딛은 신인이다.

김 예비후보는 기자 때 정치기사를 많이 썼다. 2014년 7월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서청원, 김무성 등 유력 출마자를 분석한 기사를 썼고, 같은 해 8월 “친박들 ‘정윤회는 없다’”란 기사에서 일본 산케이 신문이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씨 행적을 문제삼고 정씨 접촉 의혹을 제기하자 친박 정치인들 입장을 담아 반박기사를 썼다.

그는 OBS 대주주 영안모자그룹을 취재해 한국 노동자가 미국·독일보다 임금을 더 받는데도 근무일수가 적다거나 강성노조 때문에 제조기업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기사도 썼다. 또 노무현 정부가 경인민방 선정에 개입해 부작용을 낳았다고 의혹을 보도하기도 했다. 2012년 “KBS·MBC·YTN을 어떻게 할 것인가”란 기사에서 국가권력의 방송장악은 외면한채 오히려 언론사 노조가 권력에 개입한다고 보도했다.


경찰·대기업 거친 정치신인 김원성

김원성 통합당 부산 북강서을 후보자는 1975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남중·고, 경찰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2018년부터 CJ ENM 전략기획국장을 맡았다. 김 후보자는 경찰청 정보국에서 KTX 승무원 노조 문제 등을 담당했고, 해양경찰청 정보분석실장 등 경찰로 13년 근무했다. 2012년 CJ그룹에 입사해 8년 정도 일하다 2019년 12월 미래를향한전진4.0을 창당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현재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으로 있다.

[관련기사 : [언론인 출신 총선 출마자 -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윤영찬 등 정치부 기자 인맥 정치로 연결 ]

* 이글은 2020년 03월 12일(목) 미디어오늘 정치사회팀의 기사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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