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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대 참사조선일보 대해부 4권 - 3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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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1.1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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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정부는 사학 분규 등 학원문제에 강경 대응으로 일관했다. 문교장관 정원식이 맨 앞장에 섰다. 그 와중에 부산 동의대가 ‘입시부정’ 의혹으로 학내 분규에 휩싸였다. 총학생회는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3월부터 점거 농성 시위를 계속했다. 학생들은 5월 1일 가두시위를 벌이다가 학교 앞 가야파출소에 화염병을 던졌다. 경찰은 카빈총으로 24발의 공포탄을 발사했고 시위 학생 중 한 명을 붙잡았다.

이튿날 학생들은 공포탄 발사를 항의하는 학내 시위를 벌이고 교문 밖으로 진출했다가, 교문 근처에서 의경 5명을 붙잡아 학교 도서관으로 끌고 갔다. 3백여 명의 학생들은 심야농성을 벌이면서 연행된 학생들과 의경들을 교환하자고 제안했는데 경찰은 3일 새벽 7백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강제 진압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원인 모를 불이 일어나 7명의 경찰이 불에 타거나 도서관 건물에서 떨어져 숨졌다. 이른바 ‘5·3 부산 동의대 사건’이다.

조선일보는 5월 4일자 1면 머리기사(「비상조치 검토」)로 그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1면을 비롯해 6개 면에  관련 기사를 실었다.

1면:「비상조치 검토 / 폭력 근절 안 되면 발동 불가피 / 노 대통령 특별 담화 발표」「화염병 방화 경관 6명 사망 / 부산 동의대서 학생에 납치된 경관 구하려다」
2면: 「경악 비통 긴박한 관·정가, 동의대 참극 정부·4당 움직임」
3면: 「“살인행위 화염병 없애야”, 경찰 집단사망 충격 ‘동의대 사건 사태’ 각계의 소리」
4면:「미 언론 동의대 사건 주요 뉴스 보도, 워싱턴포스트 “한국 정부 내 우파  발언권 강화”」
17면:「“입시부정” 교수 폭로가 발단, 동의대 학내 분규의 전말」
19면:「“책임은 경찰 측에” 동의대 학생총회」

특히 조선일보는 그 사건에 관한 사설(「이렇게 나갈 수는 없다」)을 이례적으로 1면에 내보냈다.

(…)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나갈 수 없다. (…) 파출소를 불태우고 총기를 탈취하고 마침내는 공권력의 집행자인 경찰관을 소사시키는 지경에까지 세상은 와 있다. (…) 우리는 더 이상 나라를 과격 폭력의 난무장이자 혼미와 무질서의 사냥터로 방치할 수만은 없다는 절실한 요청이다. (…) 그것은 폭력집단이지 ‘학생’이 아니다 (…) 우리는 절대로 진보나 사회주의 또는 혁신의 이념을 배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북한을 지지하며 폭력 무장투쟁을 호언하고 계급혁명과 혁명독재를 주장하는 극좌의 언동은 민주적인 혁신과 엄격히 구별돼야 한다. (…) 모험주의적 극좌파의 이러한 징후들은 필연적으로 정반대쪽의 엄청난 반발을 잉태시킬 것이며, 더 한심한 것은 정부도 여당도 야당들도. 그리고 지도적인 인사들과 지식인들도 이러한 위국에 대해 이렇다 할 단안이나 처방을 제시하지 못한 채 세월을 허비해 왔다는 사실이다. (…) 우선 지식인들을 비롯한 모든 침묵하는 다수파가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가 개탄하는 것은 그러한 민주화를 위한 평화적인 투쟁을 마다하고 혁명을 위한 폭력투쟁을 호언하는 소수의 목소리이며, 그 소수를 다수가 견제하지 못하는 작금의 추세인 것이다.

이 사설 첫 머리에서 “더 이상 왜 원인은 따지지 않고 결과만 시비하느냐는 상투적인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경찰관들이 먼저 과잉진압을 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극을 받아 그렇게 되었다는 말도 이제는 진부하다”고 밝혔지만 왜 원인을 따지는 것이 상투적이고, 경찰의 과잉진압이 자극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진부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논리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 사건은 경찰이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풀 수 있었는데도 ‘공안정국’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본보기 삼아 강경 진압으로 일관해 불필요한 희생을 초래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재판 과정에서 강하게 제기되었다. 수사 과정에서는 경찰의 고문과 폭행, 조작 의혹까지 제기됐다.

조선일보는 ‘불쌍한 경찰’, ‘희생자 경찰’ 이미지 띠우기에 나섰다. 5월 5일자 ‘기자수첩’(「치안본부장의 눈물」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경찰 창설 이래 비(非)교전 상태에서 발생한 최악의 참사로 일컬어지는 동의대 사태를 겪은 지 만 하루가 지난 4일 아침 (…) 직원들은 침묵 속에 삼삼오오 동료의 영정 앞에 줄을 이어 분향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오전 10시 조종석 전임 본부장의 이임식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 주인공들의 이름을 차례로 불러 나가던 그는 끝내 북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국가 비상조치 없이 치안이 유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라”는 당부로 이임사의 끝을 맺었다.

조선일보는 5월 7일자에도 1면에 「“폭력 없는 세상서 고이 잠드소서” / 순직한 ‘6인의 경찰혼’ 오늘 경찰장 / 오전 11시 1분간 묵념」, 2면에 「“폭력 못 막으면 민주화 후퇴” /  노 대통령 치안본부서 순국경관 분향」, 15면에 「순직·부상 경찰관 돕기 성금 “밀물”, 어제도 2억6천여만 원 답지」라는 기사를 실었다.

동의대 사건 직후부터 학내 분규는 전국적으로 진정 국면에 들어갔다. 검찰은 중형을 구형하고 피고인들은 “사건 진상 은폐”를 주장하며 출정 거부를 하고 학부모들이 강제 호송을 저지하기 위해 구치소 앞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으나 10월 24일 1명이 무기징역, 5명이 징역 15~10년 등 36명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동의대 사건 관련자들은 2002년 4월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에 의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됐다. 위원회의 찬성 의견 측은 “동의대 사건 관련자들에게 방화치사상 등 유죄가 선고되기는 했지만 살인의 고의가 없었고, 중대 결과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없었으며, 통상의 시위 방식에 따라 화염병을 사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음이 인정돼, 발생한 결과가 중대하다는 것만으로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부인할 사유는 못 된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가 가만 있을 리 없다. 2002년 5월 1일자 사설 「경찰의 죽음은 무슨 ‘인정’ 받았나」를 통해 “목적만 정당하면 잘못된 과정쯤은 얼마든지 파묻힐 수 있다는 것인가”라고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또 한참 뒤인 7월 12일 자 11면에, 1980년대 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의 주역 문부식이 “심의위원회가 화재 진상 규명을 하기에 앞서 이 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것은 성급했다”고 비판한 인터뷰 기사를 싣고,  그 말을 지지하는 사설까지 써 집요하게 반대의 입장을 보였다.

문부식은 인터뷰에서 “동의대 사건 관련자들은 민주화운동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경찰관 7명이 죽은 것과 관련하여 사법적 처벌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의대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진실 규명을 위해 명예회복 신청을 했다지만, 죽은 경찰관들을 배려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사설(「한 지식인의 치열한 자기 성찰」)을 통해 문부식의 ‘용기’를 찬양했다.

(…) 80년대 반미운동의 선구적 사건을 주도해 한때 운동권에서 ‘영웅’으로 간주됐던 문부식 씨는 사건 발생 후 자신의 행동이 과연 옳았던 것인지를 묻고 또 물었다고 했다.
그 결과 “우리 안의 폭력부터 성찰해야 국가 폭력도 비판할 수 있다”는 성찰적 비판론에 도달했다. 문부식 씨의 참 용기가 돋보이는 것은 바로 그 대목이다. 남과의 싸움보다 자신과의 싸움이 더 어렵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독선적 비판론이 큰 세를 이루고 있다. 자기만 옳다고 확신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선민(選民) 의식과 메시아 의식이 그것이다. 문 씨는 바로 이 독선적 비판론에 조용한, 그러나 분명한 “아니오”를 던진 것이다.
그는 또한 어떤 이념이나 가치도 생명에 우선할 수 없다는, 절절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세계관을 펼쳐보였다. “우리 행동으로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데 책임을 느껴 부산 미문화원 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보상 신청을 할 수 없었다” 등의 발언에서는 40대에 이른 그의 성숙이 묻어난다.
젊은 날의 상처를 딛고 어렵사리 정신적 홀로 서기에 나선 한 지식인의 성숙한 용기에 갈채를 보낸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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