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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죽어도 ‘무관심’ 또는 ‘터부시’…이건 언론이 아니다[민언련 논평] 2020년 1월 10일자
  • 관리자
  • 승인 2020.01.13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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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존중 사회”라는 공약을 내세워 비정규직 제로 선언, 주 52시간 노동제 등 정책을 펼쳐온 문재인 정부에서도 노동권은 여전히 탄압과 소외의 대상이다.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가 아무런 안전 조치도 없이 홀로 야간 근무를 하다 컨베이어벨트에 희생된 지 1년이 지났다. 글로벌 기업 삼성은 21세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믿기 힘든 노골적인 노조 파괴 공작을 벌였다가 임직원이 실형을 받았다. 정부가 추진한 노동 공약은 죄다 후퇴했고 국회는 어렵사리 제정된 ‘김용균법’에서 고 김용균 씨를 지워버렸다. 이런 현실의 배경에는 문재인 정부의 무기력과 경제 권력의 횡포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 원인은 언론이다.

노동자의 노동을 통해 인류 사회는 발전해왔고 우리들의 삶은 풍요로워졌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일상은 누군가의 땀으로 이루어진 노동에 빚졌다. 그러기에 그들이 존중받으며 노동할 수 있는 권리는 세상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다. 그러나 주류 언론은 경제 발전의 이면에 숨겨진 피 흘리는 노동권을 무시하고 국민의 노동권 행사를 경멸하듯 죄악시하고 있다. 자본 권력에 편에 서서, 작업장 안전사고로만 1년에 수백 명이 숨진다는 사실을, 한국 마사회의 부조리에 못 이겨 기수와 말 관리사들이 잇따라 세상을 등지는 현실을 은폐하고 있다.


부조리 고발하고 떠난 기수,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왜 알려주지 않는가

지난해 11월 29일, 한국 마사회 소속으로 부산경마공원에서 일하던 문중원 기수가 마사회의 횡포와 부조리를 고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격렬한 경마 시합의 이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을 타는 기수가 어떤 지위에 있고 어떤 처우를 받는지, 어째서 기수가 세상을 등졌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런 걸 보도하고 세상에 알려 더 이상 목숨이 희생되는 일을 막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그러나 대형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철저히 침묵했다. 11월 29일부터 1월 2일까지, TV조선‧채널A의 저녁종합뉴스와 중앙일보 지면은 아예 관련 보도를 내지 않았다. 서울경제와 한국경제, 동아일보는 고작 1건을 보도했는데 그마저도 고 문중원 기수가 폭로한 부조리가 아니라, 마사회가 “기수 사망 사고 뒤 내놓은 개선안”을 내놨다는 내용이다. 그 개선안은 유족에게 통보도 하지 않고 동의도 받지 않은 ‘상금 제도 개편안’에 불과했다. 서울경제와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아예 문중원 기수의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고 ‘기수 사망 사고’로만 언급했다. 이렇게 주류 언론은 고 문중원 기수의 이름과 고인이 목숨을 걸고 밝힌 부조리를 숨겼다.

신문사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한겨레

서울경제

한국경제

보도건수

11건

1건

1건

0건

2건

5건

1건

1건

방송사

KBS

MBC

SBS

JTBC

TV조선

채널A

MBN

YTN

보도건수

4건

7건

2건

3건

0건

0건

1건

4건

△ 고 문중원 씨 사망 사건 관련 신문・방송 보도량(11/29~1/2) ⓒ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과 방송뉴스를 통틀어 사태 초기부터 심층적인 보도를 보인 것은 경향신문뿐이다. 경향신문은 11건의 보도를 통해 마사회 소속인 기수가 역시 마사회 소속인 조교사로부터 업무(기승_경주마를 타고 시합에 나가는 일)를 배정받고 그에 따라 급여를 받는 노동자라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수고용직, 즉 자영업자 취급을 받아 사실상 조교사가 기수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점을 전했다. 이런 기형적 구조로 인해 “(말을) 대충 타라” 등 부당한 지시가 횡행하고 그런 지시를 어기면 말을 못 타게 하는 갑질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는 도박 산업인 경마에도 노동 외주화가 이뤄진 결과다.

과연 이런 내막을 경향신문 등 일부 매체만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럴 리는 없다. 문중원 기수 사망 직후 유족은 물론, 고인이 속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경마기수지부 동료들은 마사회의 사과와 기수의 노동권 및 생존권 보호를 요구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마사회 앞에서 경찰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주류 언론이 이런 현실을 무시하는 사이, 부산경마공원에서만 마사회의 부조리한 구조로 7명이 세상을 등졌으며, 기수들의 산업재해율은 평균치에 50배를 달하고 있다.


노동자가 죽고 세월이 흘러도 보수언론은 ‘침묵’ 또는 ‘노조 탓’

이 뿐만이 아니다. 노동 현장에서 사람이 죽어도 ‘주류 언론’들은 침묵한다. 오히려 별 일 아닌데 왜 기업을 비난하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10일은 고 김용균 씨 1주기였다. 그러나 이날부터 1월 8일까지 거의 한 달이 다 되도록 경향신문이 18건, 한겨레가 15건, 한국일보가 3건 보도했을 뿐이다.

신문사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한겨레

서울경제

한국경제

보도량

18건

0건

0건

1건

3건

15건

0건

0건

△ 고 김용균 씨 사망 1주기 관련 주요 일간지 보도량(12/10~1/8) ⓒ민주언론시민연합

조선일보‧동아일보는 단 1건의 관련 보도도 지면에 내지 않았고 중앙일보는 고작 1건이었다. 서울경제‧한국경제도 보도가 없었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최대 언론사’라는 ‘조중동’과 ‘대형 경제지’들의 현실이다.

고통스러운 10년의 투쟁 끝에 노노사정이 복직을 합의했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도 주류 언론들에게는 배제와 힐난의 대상일 뿐이다. 12월 24일, 쌍용차 기업노조와 사측은 해고자들이 속한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소속 복직 예정자들에게 무기한 무급 휴직을 통보했다. 역사적인 노사 합의를 한순간에 깨뜨린 것이다. 그러나 12월 24일부터 1월 8일까지, 중앙일보‧서울경제‧한국경제는 지면에 관련 보도가 없다. 동아일보는 1단짜리 단신 하나가 전부다.

신문사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한겨레

서울경제

한국경제

보도량

4건

1건

2건

0건

2건

7건

0건

0건

△ 쌍용차 해고자 복직 무기한 연기 관련 주요 일간지 보도량(12/24~1/8) ⓒ민주언론시민연합

조선일보는 예전의 그 악의를 다시 드러냈다. 조선일보는 2건을 보도했는데 제목이 이렇다. <직원들은 상여금 반납하는데…무작정 출근한 뒤 “일 달라”>(1/8), <정권이 복직시켜준 근로자들 적자회사엔 일자리가 없었다>(1/8). 첫 번째 기사의 제목은 1월 7일, 복직 합의대로 출근한 해고 노동자들을 향해 ‘직원들은 상여금도 반납할 만큼 회사가 힘든데 무작정 출근한 해고자들이 잘못했다’는 비난을 담고 있다. 이는 해고 노동자들의 11년 삶을 통째로 부정하고 모욕한 것이다. 해고 노동자들은 지난 10년 간 부당해고에 맞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사측의 탄압, 심지어 사법부의 재판거래로 생계를 잃음은 물론 사회적 낙인이 찍혔다. 그러는 사이 무려 30명의 해고 노동자들이 삶을 포기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겨우 복직 합의를 이끌어냈는데 또 그 약속을 빼앗겨 일터를 또 한 번 잃었다. 이 해고 노동자들의 삶을 현재 일터를 가지고 회사 사정에 따라 상여금을 반납한 다른 직원들과 비교하여 잘잘못을 따지는 것 자체가 부적절할 뿐더러, 의도적으로 노노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다. 케케묵은 ‘노조 와해’의 한 방식이다.

조선일보의 <정권이 복직시켜준 근로자들 적자회사엔 일자리가 없었다>(1/8)는 제목부터 이미 사실관계가 틀렸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정권이 복직시켜준 것이 아니라, 쌍용차 기업노조와 사측, 정부 대표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해고자들이 속한 민주노총 쌍용차지부가 사상 최초로 ‘노노사정 합의’로 복직을 이끌어냈다.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로 반가운 노사 간 합의였으나 조선일보만 이것마저 정치적 공세의 도구로 악용한다. 이것이 조선일보의 민낯이다.


반인륜적 삼성의 ‘노조 파괴’에도 ‘노조 탓’, 대체 누가 유죄판결을 받았는가

삼성그룹의 실세인 미래전략실은 ‘2011년 그룹 노사전략’과 같은 보고서로 “노조설립 사전 차단에 주력”, “노조의 장기 고사 전략” 등 불법적 노조 파괴 계획을 적나라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세우고, “노조 설립 예상 인력 및 동향 파악”과 같은 불법 사찰까지 기획하고 이를 실행했다. 삼성의 비인간적인 노조 파괴로 2013년 최종범 열사, 2014년 염호석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삼성은 염호석 열사의 시신을 빼돌리는 만행까지 저질렀지만 그래도 ‘주류 언론’에게는 모든 것이 ‘노조 탓’이었다.

12월 17일, 처음으로 삼성의 노조 와해 공작에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1월 8일까지, 조선․동아일보는 노조 때문에 삼성이 위기에 직면했다는 취지의 보도 3건만 내놨다.

신문사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한겨레

서울경제

한국경제

보도량

9건

3건

3건

3건

4건

18건

2건

2건

△ 삼성 노조 파괴 유죄 판결 관련 주요 일간지 보도량(12/17~1/8) ⓒ민주언론시민연합

조선일보 <이사회 중심 경영 추진한 삼성, 의장 구속으로 쇼크>(12/18)는 제목에서 노동자들의 목숨이나 기본권보다 ‘삼성이 유죄 판결로 받게 된 쇼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선일보 <삼성 81년 무노조 정책 포기…양대 노총 격전장 되나>(12/19)는 분명 삼성 측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양대 노총의 격전장 될까 우려” “노조의 경영 간섭이 심해지면 미래성장 가능성을 놓칠 위험” “파업이 잇따르면 해외 수주에도 타격이 불가피”라며 삼성의 미래를 노조가 위협하는 것처럼 기사를 썼다.

동아일보 <삼성, 사회가치 변화 맞춰 노사관계 새틀>(12/19) 역시 ‘삼성이 앞으로 잘 할 것’이라는 취지의 제목 아래 “해마다 임금 및 단체협약 관련 갈등이 생기거나 기업 경영 현안과 상관없이 상급단체와 발을 맞추기 위한 노조의 활동이 늘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한국경제 <삼성 침울한 글로벌전략회의 “올해 숙제 내년으로 미룬기분”>(12/18)는 노동권과 생명권을 침해 당한 노동자들의 참상보다 유죄 판결로 ‘침울한 삼성’의 기분을 주로 다루고 있다. 이런 보도들이 만연한 가운데, 독자들은 대체 누가 유죄 판결을 받았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일상화된 언론의 ‘노조 혐오’, ‘진보 언론’이 제 역할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주류 언론’이 노동권을 대하는 일상적, 반사적인 태도다. 주류를 형성하는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노조 혐오’를 뼛속까지 각인하고 있다. 물론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모든 노동 이슈에서 저들보다 훨씬 더 많은 보도량으로 더 깊은 사실관계를 보여주려 애쓰기는 했다.

신문사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한겨레

노동 이슈 보도 비중

20%

13%

12%

6%

13%

26%

노동 이슈 보도량

49건

31건

28건

13건

31건

61건

△ 주요 일간지 노동 이슈 보도 비중 비교(12/16~12/27, 주말 제외) ※출처 : 민주노총 노동 뉴스 모니터

민주노총이 매주 실시하는 ‘노동 뉴스 모니터’에 따르면 앞서 살펴본 노동 관련 이슈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던 12월 16일부터 27일까지 열흘 간(주말 제외) 주요 일간지들의 전체 보도 중 ‘노동 관련 보도’의 비중은 경향신문 20%, 한겨레 26%였다. 이는 조선일보 12%, 동아일보 13%, 중앙일보 6%보다는 높은 수치지만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깊이 있는 내막까지 보여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노조 탓은 하지 않은 한국일보 역시 노동 이슈 보도 비중이 13%에 그쳤다.


언론인은 자신의 노동권을 지킬 자격이 있는가

노동은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친 이슈이자, 국민 모두의 일상이며,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누군가는 노동 현장에서 죽어가고 있고 누군가는 철탑에 올라 농성하고 있다. 그 수많은 노동권 침탈의 현장을 모두 보도할 수는 없어도 국민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목소리를 더 많이 담아줘야 한다.

대부분의 언론, 특히 ‘보수언론’의 탈을 쓴 대형 언론사들은 노동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노동자들이 어째서 싸우고 노조를 하려 하는지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노조는 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무엇이며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탐욕스런 존재일 뿐이다. 그 언론사에 몸담고 있는 언론인들은 자신들도 노동자이면서도 스스로의 정체성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노동적 시각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이들이 만들어낸 허상 때문에 한국 사회는 OECD 중에서 노동에 대한 비호감이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노동과 노동자의 삶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언론은 유튜브와 SNS의 등장으로 생존이 어렵다는 핑계를 대기 전에, 스스로에게 맡겨진 사회적 책무를 다 하고 있는지, 과연 언론인으로서 ‘노동’을 하면서 돈을 벌 자격, 즉 자신의 노동권이라도 지킬 자격이 있는지 자문해보길 바란다.


2020년 1월 10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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