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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들에게만은 의미있게 기억되고 싶다[광주 통신] 임종수 5ㆍ18기념문화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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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03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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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내 아이들에게 아빠의 젊은 날에 대해 별로 이야기한 게 없었던 것 같다. 갑자기 내가 죽는다면(요즘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내 아이들은 나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할까? 만나서 말하는 것도 멋쩍을 것 같아 틈틈이 글로 남기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 아이들에게만은 의미있는 기억으로 남고 싶을 뿐이다.

1980년 12월 그날 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행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시는 어머님이 형사들에게 연행되는 나를 보시더니 다리를 붙들고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셨다. 멀쩡하게 등교한 아들이 범죄자가 되어 수갑차고 연행되는 모습을 보시고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으셨을 것이다.

경찰 승용차가 출발하는데 뒤를 돌아보니 누님이 슬리퍼만 신고 쫓아오시다가 그만 눈 내리는 아스팔트 위에 넘어져 땅바닥을 두드리며 울부짖는 모습이 차창 뒤로 멀어져갔다. 나는 차안에서 목을 놓아 통곡하고 말았다. 연행하는 형사들도 눈물을 훔치면서 가슴 아파했다.

전남대병원 응급실 수간호사로 재직하던 누님은 이듬해 회한의 한국땅을 벗어나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병원으로 취업해서 떠나갔다.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이국땅 열사의 나라에서 근무하는 누님과 가슴 절절한 편지들을 숱하게 주고 받았다.

모든 애국지사와 열사들은 거사 당일 어떤 심정이었을까. 광주미문화원 방화를 결행하던 12월 9일 새벽에 눈을 뜨니 어머님이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그때만 해도 저들에게 잡히면 죽을 것으로 생각했다. 백주대낮에 시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자들이 무언들 못할 것인가. 더구나 미국 문화원 방화인데 간첩으로 조작하여 죽여버릴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평안하게 주무시는 어머님 얼굴을 뵙자니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아, 살아생전에 마지막 이별이구나...’ 주무시는 어머님께 큰 절을 올렸다.
취직 잘 되는 경영학과에 합격했다고 자랑스러워하셨던 모습과 아들만 취직하면 고생끝이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던 어머니의 미소가 떠올랐다.

2년 6개월후 감옥에서 나오던 날 두부를 건네주시는 어머님의 손결이 너무 거칠어져 마음이 아팠다. 어머님의 명복을 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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