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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문화진흥회의 온전한 독립을 위한 제언이사장직에서 물러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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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1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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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기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이 15일 이사장직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 이 이사장은 '사퇴글'에서 청와대와 정치권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가 '법과 규정을 넘어선 관행'으로 방문진 이사를 선임하는 등 문화방송과 방문진의  독립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 편집자주

저는 오늘 이사회를 끝으로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직에서 물러납니다. 지난해 11월2일 갑작스럽게 이사장직을 맡아 방문진의 독립과 MBC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저의 부덕과 능력의 부족함으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동안 방문진 임원들과 사무처 및 MBC 임직원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성원과 사랑을 받았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올해로 설립 30년이 되는 방문진은 한 때 방송독립의 상징이었고 희망이었습니다. 물론 오욕과 굴절의 역사도 있었습니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권체제에서 방문진은 공영방송 MBC를 ‘국민의 공적’으로 만든 ‘구조 악’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촛불혁명과 민주정부 수립에 힘입어 방문진이 거듭나고, MBC의 적폐청산과 개혁의 단초를 마련하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입니다.

방문진을 둘러싼 정치권 분위기도 과거에 비해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MBC의 새 경영진 구성 과정에서 권부의 입김이나 노골적인 압력은 사라졌습니다. 이는 방송독립에 대한 시청자들의 열망이 뜨거웠고, 그에 부응한 방문진의 의지가 강고했으며,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비롯한 권부와 정치권의 인식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시점에서 공영방송 MBC의 공적 책임 실현과 경영의 관리·감독자로서, 30년 전 특별법으로 설립된 방문진이 당시의 창립정신인 정치적 독립을 온전히 이루었느냐는 물음에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방문진과 MBC를 둘러싼 정치권의 태도에는 과거의 타성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사 및 이사장 선임방식 - 법과 규정을 넘어선 관행

우선, 방문진의 이사 선임 방식은 아직도 법과 규정이 아닌 과거의 관행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방문진법과 정관에 “방문진 이사는 방송에 관한 전문성 및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한다”고 적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그 동안 방문진 이사의 인선은 실질적으로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이 주도해왔고 정작 임명권자인 방통위는 임명에 필요한 요식행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법과 실제가 괴리되어 있는 이러한 모습은 법이 부여한 권한과 책임의 소재를 모호하게 하고, 방문진의 고질적 문제인 정파성을 증폭시키며, 궁극적으로 방문진과 MBC의 정치적 독립에 장애요소로 작용해 왔습니다.

방문진 이사장의 결정 방식 또한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방문진법에 방문진 이사장은 이사회에서 호선하게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을 앞세워 청와대가 낙점해 왔고 이사회는 그 요식절차를 수행해왔습니다. 지난 1월 초 여성 원로가 방문진 이사로 임명되면서 방통위의 한 상임위원이 “이사장은 여권 이사 중에 연장자가 하는 것이 오랜 관행이었다”는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방문진의 일부 이사는 유사한 내용을 언론에 전달했습니다. ‘연장자 관행’을 확인하고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방통위의 무리한 조치에 대한 시민사회의 지적이 있었고 방통위가 ‘연장자론’을 철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일부 이사는 불평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연장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풍양속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법과 규정을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법과 규정이 관행에 묻혀 무력화된 근본 원인은 방통위와 정치권에 있지만, 방문진도 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저 또한 책임을 통감합니다. 이사장 호선이 있었던 지난 11월 2일을 전후해 방통위로부터 제게 “이사장 직무대행체제로 가라”거나 “추후 이사장 후보를 물색 중이다”는 등의 언질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알았다”고 했고, 이후 1월 초 여성 원로가 보궐이사로 임명되었을 때 “이사들과 상의 하겠다”고 했는데, 이것이 “이사장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른바 ‘약속 논란’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법을 벗어난 관행의 문제에 소홀히 했던 때문입니다. 심각한 것은 일부 언론까지도 법과 관행에 대한 이러한 논란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완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방문진 일각의 선을 넘은 일탈

지난 1월 중순, 저는 이사장으로서 이 ‘약속 논란’을 수습하기 위해 몇몇 이사들과 상의했고 MBC 계열사와 자회사 임원 선임이 마무리되는 대로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원로 이사도 그 뜻을 존중해주었고 방통위는 성급하게 할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를 둘러싼 악의적인 소문은 이후에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사장이 자리욕심 때문에 이사장직을 놓지 않고 있다”, “MBC 계열사의 임원 선임을 이사장이 좌지우지한다”는 등의 악성 루머가 돌았습니다. 건강이 나빠져 1월 말에 이사직 사의를 표한 원로 이사의 ‘순수한 충정’은 ‘이사장직을 두고 불거진 갈등’으로 매도되었습니다. 표결을 통해 적법하게 이사회에서 선임된 사무처장 내정자를 놓고 “이사장이 ‘적폐이사에 기대어’ 무리하게 사무처장 임명을 강행했다”는 악의적인 소문이 확산됐고, 이는 급기야 여당 국회의원의 서면질의를 통해 ‘이사장의 리더십’을 묻는 정치적 압박으로 이어졌습니다.

방문진 이사회 일각에서 벌어진 이러한 일탈행위는 이사 상호 간의 신뢰를 깨뜨리고 개인의 인권마저도 내팽개친, 청산해야 할 적폐의 모습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한 때 “임기까지 자리를 지키겠다”고 했던 것은 이러한 방문진의 오염된 현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풍토가 방문진과 정치권에 남아있는 한, 방송의 독립과 개혁은 기대난망이라는 생각입니다. 저 자신 또한 이런 상황에 대처하지 못한데 대해 성찰하고 있습니다.

방문진의 정치적 독립과 MBC 정상화의 완성을 위하여

결국 핵심은 방문진의 정치적 독립입니다. 그것은 정파와 이념의 벽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완성됩니다. 방문진 이사는 정파와 이념이 아닌 법과 상식과 개인의 사회적 양심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방문진은 진영에 입각한 논의를 단절해야 합니다.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뜻이 맞는 이사들 간의 긴밀한 논의는 때때로 불가피한 일이지만 그것이 정파와 이념의 진영논의로 일상화되어서는 안 되며 이사 상호 간의 허심탄회한 논의로 발전해가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편의적으로 사용해왔던 여권이사, 야권이사 등의 호칭도 자제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호칭 사용은 진영 논쟁을 부추기고 상식과 양심에 입각한 이사들의 발언마저도 정파적 해석과 미묘한 오해를 불러일으켜 왔습니다. 그러한 노력들이 쌓일 때 방문진은 진영에서 벗어나고 마침내 정권으로부터 온전한 독립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 연말 MBC는 새로 선임된 최승호 사장을 중심으로 9년 동안 쌓였던 적폐청산과 붕괴된 조직 복원에 나섰습니다. 파업현장과 유배지에서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며 싸웠던 노동조합도 MBC개혁의 한 축으로 중심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무한경쟁의 방송환경 속에서 공영방송 MBC 앞에 놓여있는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구성원들의 화합과 단결은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책임 있는 자리에서 개인의 영달과 이익만을 추수했던 적폐인사들은 확실하게 청산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파업현장에 함께 하지는 못했어도 진정으로 MBC 재건에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부여되어야 합니다. 개혁의 과정에서 무고한 개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었는지 세심한 배려도 필요합니다.

MBC는 한국사회의 중요한 공기이며 그 주인은 국민입니다. MBC가 진정한 의미의 국민의 방송이 될 수 있도록 노와 사가 때로는 상호 견제하고 때로는 의기투합하면서 건강한 MBC의 미래를 함께 건설해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 또한 법에 정해진 임기 동안 방문진 이사로서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2018년 3월 15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이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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