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언론 적폐 청산이 시급하다. 북한의 ICBM 발사와 한반도 긴장 상태 고조, 국회에서의 여야 갈등으로 인한 개혁 입법 차질 등으로 촛불 혁명의 열기가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 특히 공영언론의 역할은 너무 중요하다. 그러나 공영언론에서는 여전히 이명박근혜 정권 시절의 냉전, 대결적 논리와 민주화에 역행하는 수구적 보도 논평이 넘쳐난다.

공영언론 적폐는 언론 내부의 문제라는 것으로 정리된 지 오래다. 제 4부인 언론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고려할 때 적폐청산은 공영 언론구성원들이 달성해야 할 지상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KBS, MBC, 연합뉴스 구성원들의 90% 이상이 사장과 이사회 퇴진을 요구하는데도 청산 대상들은 파렴치하게 임기를 채우겠다는 막가파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촛불혁명의 요구가 현실 정치 등에 실천되어 적폐가 청산되고 개혁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공영언론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KBS, MBC, 연합뉴스 구성원들은 적폐청산과 언론 정상화에 대한 막중한 책무를 지니고 있지만 청산작업과 활동은 여전히 미흡하다. 공영언론 구성원들은 전체 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상황을 직시하고 역사적 책무를 이행해야 한다.

언론민주화 운동은 해방이후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시대 상황에 따라 언론운동과 그에 대한 보복 등은 형식과 내용이 차이가 있는 바 군부독재 시절과 오늘날은 매우 다르다. 군부독재 시절 정치권력과 언론의 내부 부역자에게 도전한 결과는 정치적 보복과 어용 사법당국의 부당 판결, 불법해직, 부당 징계로 치닫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촛불 혁명이 성공한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사법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정치적 보복은 상상할 수도 없다. 언론사 내부에서의 인사, 징계 등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 등 몇 분야를 제외하고는 민주화의 공간이 확장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언론의 정상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더 강해지면서 현업 언론인들이 고민도 커지고 있는 듯하다.

언론민주화 운동을 이유로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박해를 당한 언론인들의 고통과 아픔은 가혹하고 참혹하며 그 후유증은 지금도 지독한 것으로 비춰진다. 그것은 과거 언론 선배들이 당했던 것과 비교하거나 상대평가를 할 대상이 아니고 절대평가가 정당하다. 하지만 시대 상황은 다 특성이 있기 마련이어서 옛 어른들이 한 말씀, 즉 ‘물이 흐는 속도를 알려면 일단 물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겨 볼 필요는 있다.

이런 점을 깊이 고려할 때 해방이후 가장 강력한 언론운동으로 평가되는 80년 신군부에 대한 언론인 저항의 경우를 참고할 필요는 크다고 본다.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는 KBS, MBC, 연합뉴스 등 공영언론 구성원들이 눈앞의 언론적폐 청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자료를 중심으로 광주항쟁 당시 투쟁 상황을 소개하고자 한다.

신군부는 1979년 12?12사태를 통해 유혈 군사반란을 일으켜 국가권력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후 1980년 3월 언론대책반을 통해 K-공작 계획을 입안하고, 언론계 인사들의 성향을 분석(양호, 협조희망, 적극, 경계, 소극 및 3김에 대한 지지성향)하여 언론사주 및 언론사 간부들과 면담을 추진하여 신군부에 협조하도록 회유했다. 언론에 대한 정권의 공작과 탄압은 박정희 정권 내내 지속된 일상사였고 그것이 신군부에 의해 반복되었다.

전두환은 계엄사 검열단을 통해 여론 조작, 정상적인 보도 금지 등을 자행하면서 정권 찬탈을 기도했으며 그런 과정에서 언론사에 대한 치밀한 공작을 전개했다. 당시 언론사 내부는 유신 잔당 언론인과 언론민주화를 주장하는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거기에다가 신군부의 사주를 받은 기관원들이 무상출입하면서 언론민주화를 주장하는 세력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했다. 당시는 언론사 뿐 아니라 전체 사회가 신군부의 살기등등한 공포정치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언론계는 신군부의 조치에 대항하여 1980년 2월 20일 경향신문을 시작으로 각 언론사 별로 1980년 5월 20일까지 ‘언론검열 철폐와 언론자유실천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언론자유 회복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고, 한국기자협회는 1980년 5.월 16일 검열거부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5월 20일부터 검열을 거부하는 제작거부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신군부는 대학가와 시민사회 등의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자 5 ·17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광주에서 대학생과 양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전국 대부분의 주요 언론사의 언론인들은 각 사별로 토론을 거쳐 기자협회가 결정한 대로 5월 20일부터 검열, 제작 거부 투쟁에 돌입했다. 이에 대해 신군부 두목 전두환은 주요 언론사 사장단을 소집해 포고령 10호를 명분으로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는 기자들을 유언비어 유포 및 내란 음모 등의 혐의로 구속?해직시키겠다는 방침 등을 통보하면서 공갈협박을 했다.

당시 주요 언론사들은 광주 지역으로 특파원을 파견해 신군부의 살인 만행을 상세히 파악했지만 신군부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광주시민을 폭도로 보도하도록 지시하면서 보도를 통제했다. 신군부는 기자들이 계속 검열, 제작거부를 하자 일부 언론사 앞에 장갑차를 배치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공포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신군부가 광주에서 저지르는 야만적 폭력에 대한 소식을 속속 접하면서 저항하는 언론인들은 심각한 위협을 느꼈고 특히 광주항쟁이 신군부에 의해 진압된 이후 어떤 형태의 보복이 올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언론사 내에서 철야농성 등을 통해 서로를 격려하면서 투쟁을 지속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 경영층의 집요한 반대 책동이 벌어진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언론인 투쟁은 광주가 함락된 27일까지 지속됐다.

그 이후 신군부는 1980년 8월을 전후해 보안사 요원들을 통해 해직언론인 대상자를 선정하면서 A(국시부정자), B(제작거부), C(단순 제작 거부 등)로 구분한 후 이를 문화공보부가 언론사의 자율결의 형식으로 집행하도록 하여 933명 이상의 언론인을 해직하도록 하였다. 또한 해직된 언론인의 취업을 제한하거나 불허하고, 해직언론인의 동향을 파악하여 동향 내용에 따라 A, B, C, D 등급으로 구분해 수시로 등급을 조정했다.

이상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전국 대부분의 언론사 기자들은 1980년 5월 20일부터 27일까지 신군부의 광주학살을 보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검열 및 제작 거부를 벌였다. 광주항쟁 발생 후 이틀 뒤부터 항쟁기간 내내 전국 주요 언론사 기자들은 검열 및 제작 거부에 돌입해 신군부의 민간인 학살에 항의했다. 광주항쟁기간 동안 신군부에 저항한 세력은 광주일원의 시민들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언론인들이 유일했다.

1980년 언론인 투쟁에 대한 강제해직이 신군부의 불법행위라는 것은 1988년 국회 청문회 및 1997년 전두환, 노태우 등의 내란음모 사건 조사과정에서 그 사실관계가 일부분 밝혀졌고, 대법원이 이를 내란죄의 일부로 판단했다. 또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2007년 10월 1980년 언론사 통폐합 및 언론인 강제해직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결과를 발표해 그 전모가 밝혀졌다.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2006년 80년 언론인 투쟁이 시작된 날인 5월 20일을 기자의 날로 선포했는데 이는 80년 언론인 투쟁이 한국 언론 민주화 운동사에 가장 큰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언론이 당면한 문제 해결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언론사 내부의 동력으로 적폐청산을 달성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촛불혁명이후 적폐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부분은 언론, 경찰, 검찰, 군부 등이 손꼽히는데 중요한 것은 전체 사회와 정부는 적폐청산을 시대적 과업으로 결론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의 경우 현업 언론인의 결단에 의해 적폐 청산의 일자가 당겨지리라고 확신한다. 80년 신군부가 언론에 자행한 전 방위적인 탄압과 보복은 오늘날 상상할 수도 없고 발생할 수도 없다. 민주화에 따른 언론의 헌법적 가치와 의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이미 굳게 뿌리내린 상태다. 공영언론인 여러분이 제 4부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힘을 모아 눈앞의 적폐를 청산할 것을 간절히 당부 드린다.

2017년 7월 31일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공동대표 고승우, 김준범, 유숙열, 현이섭(가나다순)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