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언론장악 9년, 저희 KBS 구성원들에게는 절대로 잊히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이 개막하던 2008년 8월8일. 그날 아침 여의도 KBS 사옥 안으로 사복 차림의 경찰 수백 명이 군사작전을 펼치듯 들이닥쳤습니다. 주된 목표는 당시 본관 3층에서 열리던 KBS 이사회를 저지하려 모여든 직원들을 끌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사회의 안건은 정연주 KBS 사장의 해임 제청 안이었습니다. 이미 본관 3층 회의실 밖 복도와 계단에는 이사회를 막아보려는 직원들과 이를 막는 사내 경비원들과의 몸싸움이 벌어진 터라 실내 온도는 40도를 넘었고 직원들의 몸에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훈련으로 단련된 경찰 병력들은 투입되자마자 직원들은 하나둘씩 질질 밖으로 끌고 가 해산시켰습니다. 아비규환(阿鼻叫喚)! 그날 이렇게 KBS는 1990년 방송민주화 사태 이후 18년 만에 또 다시 정치권력의 주구들에 의해 철저히 유린됐고, 공영방송의 독립과 방송 자유의 깃발은 꺾인 채 퇴행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이후 KBS에는 정권의 낙하산 사장들이 줄지어 내려왔습니다. 이병순-김인규-길환영-조대현 그리고 지금의 고대영까지. 정권의 낙하산들은 KBS를 철저히 청와대와 여당의 선전도구로 바쳤습니다. MB정권 집권 초기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이 말한 것처럼 KBS는 정말 열심히 ‘정부산하기관으로 정부의 통치철학과 기조를 적극적으로 구현’해 왔습니다. 용산철거민을 때려잡는데 앞장서고, 4대강 사업 홍보에 열을 올렸고, G20은 단군 이래 최대의 거국적 행사로 포장했습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뉴스는 뒷전으로 밀렸고, 오보와 망언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습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에도 눈감은 채 청와대 눈치만을 살피다가 결국 국민들에게 ‘니들도 공범’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쫓겨나는 신세가 됐습니다.

공영방송이라 부르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KBS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됐습니다. 하지만 내부 구성원들이 손 놓고 넋이 빠진 채 굴종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무능하고 부패한 노동조합 집행부가 눈치를 볼 때 직원들이 직접 나서 싸웠고(사원행동), 낙하산 사장 임명에 굴복하는 노조를 깨고 나와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라는 투쟁의 중심체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낙하산 사장 퇴진과 공정보도를 위해 2012년 MBC와 함께 100일 가까운 연대파업을 벌였고, 한 때 청와대 하수인 노릇을 하던 사장을 자리에서 쫓아내는 성과도 올렸습니다.

힘겨웠지만 방송에서도 부역 간부들과 싸워가며 천안함의 진실을 쫓았고,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을 파헤치는 프로그램도 관철시켰습니다. 댓글 부대 ‘십알단’도 최초로 보도했고, 부적합한 총리 후보(문창극)도 낙마시키는 쾌거도 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잠시 뿐이었습니다. 청와대는 낙하산 사장을 집요하게 내려 보내며 KBS를 손아귀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 낙하산 부역자들의 뒷배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이 마지막으로 심어놓은 부역자들은 우리가 언제 그랬냐며 버티기에 나섰습니다. 법에서 정한 임기를 보장하라고 뻔뻔스럽게 말합니다.

공영방송의 사장과 이사의 임기는 보장돼야 함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왜 그리고 누구로부터 임기가 보장돼야 하는 것일까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 맞서 방송의 독립과 제작자율을 지키라고 임기를 보장해 준 것 아닌가요? 그랬더니 임기 내내 정권과 자본에 KBS를 갖다 바치고는 쫓겨날 지경에 이르자 이제야 임기 운운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도 제 역할을 못해 쫓겨난 마당에 그 하수인 노릇을 해놓고는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버티는 본새가 뻔뻔하고 교활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희 KBS 새노조는 반드시 박근혜의 하수인 역할을 해왔던 고대영 사장과 이인호 이사장을 자리에서 쫓아낼 것입니다. 이는 많은 여론 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국민의 명령이자 시대적 과제입니다. 하지만 저희 KBS 구성원들의 힘만으로는 조금 힘에 부칠 수 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부역자들을 몰아내려면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합니다. ‘고대영 사장 퇴진, 이인호 이사회 해체’ 현수막으로 여의도 KBS 주변을 뒤덮어 주십시오. 금요일 저녁마다 KBS 앞에 모여서 ‘고대영 사장 퇴진’을 외쳐주십시오. KBS 부역 이사들 앞으로 항의와 사퇴 요구를 끊임없이 보내주십시오.

KBS는 저희 구성원들만의 것이 아닌 전 국민의 것입니다. 이명박과 박근혜에게 빼앗긴 공영방송을 되찾아 주십시오! 매년 6천억 원의 수신료가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주인인 국민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안에서도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총파업을 준비하겠습니다. 이번에 기필코 승리해야 하며,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떠한 투쟁 방법도 마다하지 않고 싸우겠습니다. 찬바람이 불 때쯤이면 쫓겨난 부역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남긴 적폐의 찌꺼기를 어떻게 치우고 어떻게 KBS를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게 할지 국민들과 함께 행복한 고민에 빠지는 날을 꿈꿉니다.

* 이 글은 자유언론실천재단 소식지 2017.7.25.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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