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蘇塗) 광주 - 자유언론실천재단

나의 호남 사랑은 좀 유별나다.

1989년 1년 동안 나는 언론노조 전임으로 파견나가 기관지 「언론노보」를 만드는 책임자였다.

그 해 5월 조선대학생 이철규가 의문사 했다.

경찰은 그가 경찰의 추격을 받다가 저수지에 실족해 익사했다고 발표했는데 시민들은 그가 경찰에 붙잡혀 고문당하다가 죽은 것이라고 믿었다.

나 역시 그의 시신 사진을 구해 보고는 타살 심증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시신은 시커멓게 변색된 채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언론노보」를 보는 언론사 기자들에게 “도대체 이 사진을 보고도 익사한 시신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호소하는 심정으로 「언론노보」에 사진을 실었다.(사실 신문에 시신 사진은 금기 중 금기라 할 수 있다)

원래 흑백으로 찍는 신문인데 그 날만은 컬러로 찍었다.

그날 오후에 경찰청 출입하는 경향신문 후배에게서 긴급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경찰이 잡으러 갈 것 같으니 당분간 어디로든 피신해 있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었다.

덜컥 겁이 나서 프레스센터 노조 사무실을 나오기는 했는데 사실 갈 곳이 막막했다.

서울에 있으면 안 될 것 같기는 한데 지방에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친한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때 문득 떠오른 곳이 광주였다.

광주에만 가 있으면 누구도 날 잡지 못할 것이라는 약간 터무니없는 생각이 든 것이다.

광주가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소도(蘇塗)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것이었다.

그래 한 열흘 광주에 있으면서 망월동에도 가고 저녁에는 광주MBC 등 노조동지들 만나 술도 마시기도 하면서 잘 지내고 오니 체포소동은 지나 있었다.

그 때 쌓은 정으로 광주는 내 제2의 고향이 됐다.

4년 전 2월 25일을 전후해 도무지 서울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의도’를 피해 친구들과 어울려 몰려 간 곳이 ‘하의도’다.

봉하에는 1월 1일 신년 인사를 간 지 얼마 안 됐고, 5월에도 갈 예정이니 이 참에 김대중 대통령 고향에 가서 서울 공기와 다른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과연 2박3일 동안 김 대통령이 어렸을 때 마셨던 공기를 마시며 충분한 힐링을 하고 왔다.

김 대통령이 올라 다녔을 산에는 ‘양세(兩稅)바위’가 있었다.

내 눈에는 부랄바위로 보이는데, 나라에 뜯기고 지주에게 뜯기는 섬 주민들이 그렇게 이름지었다고 한다.

다음 주 5월 18일에 또 언론계 선배 동료들과 함께 광주에 가서 망월동 참배도 하고 세미나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기분 나빠서 안 갔었다.

사실 지난해에는 제2의 고향을 버려 버릴까? 하는 발칙한 생각도 있었었다.

올해는 잠시라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참회하면서 기분좋게 광주에 갈 것이다.(변덕쟁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 5.18 때는 광주에 가서 시민들과 함께 목이 터져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겠노라고 약속한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내가 그 자리에 가깝게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같은 광주 하늘 아래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부를 것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