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몽매한 시대에는 가장 큰 악을 행할 때에도 사람들은 아무런 의혹도 품지 않는다”.

몽테스키외는 그의 역작 <법의 정신>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맞는 말이다. 무지몽매한 시대에, 사람들은 대통령 박근혜와 사인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아무런 의혹도 품지 않았다. 문제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악의 행진은 계몽된 시대,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중인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앞서 저질러진 국정농단이 70여대의 차명폰이 말해주듯 은밀하게 진행된 것이었다면, 지금 박근혜를 비롯한 청와대, 정부여당, 변호인단, 친박단체 등이 벌이는 헌정파괴와 법질서 유린은 오히려 노골적이다.

박근혜는 지난해 10월 25일 대국민 사과 후 수없이 말을 바꿔가며 약속을 어겼고, 틈만 나면 거짓과 여론조작을 일삼는 등 버티기로 일관해 왔다. 지난 2월 26일 저녁, 박근혜 변호인단은 탄핵심판 최종변론을 하루 앞두고 박 대통령의 탄핵심판 불출석 입장을 헌법재판소에 전달했다. 이로써 박근혜는 검찰, 특검, 헌재 그 어느 곳에도 출석하지 않게 됐고, 수사에 협조하겠다던 언약은 단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듣도 보도 못한 극우매체와의 기자회견을 통해 여론전을 펼치고 온갖 치졸한 방법으로 법 위에 군림하는 추한 박근혜의 모습만 남게 됐다.

탄핵심판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변호인단은 특별한 정보도 없는 2300여건의 고영태 녹음파일을 법정에서 틀어보자며 시간을 끌었고, 증거로 채택해 달라며 억지를 썼다. 대통령의 헌재 출석 날짜를 임의로 조정하려했고, 출석 시 국회 탄핵소추위원회의 신문이 없게 해달라는 등 법조항에 배치되는 특별한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법리로 말해야 할 변호인들이 법정에서 극우단체의 집회용 태극기를 꺼내들고 시위를 하는가 하면, ‘당뇨’ 운운하며 비상식적 요구를 했다가 거부당하자 “그럴거면 왜 헌법재판관씩이나 하느냐”며 재판관에게 막말과 삿대질까지 해댔다. 한 손을 주머니에 넣는 무례를 범하고, 맘에 안 드는 재판관의 기피신청을 하면서 재판관에게 ‘국회 수석대변인’ 등의 모욕적 언사를 쏟아냈다.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 대통령, 조금은 따뜻하게 봐 달라”는 이동흡 변호인의 감성적 호소도 있었지만 뜬금없고 경박하기 짝이 없다. 우수마발이 벌인 단순 사기행각도 아니고 명색이 이 나라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자가 주변의 사인들과 어울려 나라를 말아먹은 국정농단에 법이 온정을 베풀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의 망발이다. 더구나 그러한 망발이 헌법재판소장의 물망에까지 올랐던 이 나라 최정상의 법률가 입에서 나왔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수준이 얼마나 퇴락해 있는가를 보여준다.

탄핵심판에 대한 박근혜 변호인단의 심판 지연행위와 법정모독은 의뢰인인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나 의리 등으로 단순하게 해석하기 어렵다. 패색이 짙은 탄핵심판 국면에서 승패에 대한 부담이 크게 작용했다 해도 이처럼 몰상식한 태도와 비상식적인 몽니를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누구보다 법을 존중하고 준수해야 할 대리인들이 탄핵반대 집회 현장에 나가 헌재 결정에 불복을 부추기고 내란을 운위하고 있는 것은 매우 의도적이고 조직적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이는 지난 수개월 동안 추위에 떨면서 착잡하고 진중한 마음으로 이 사태를 지켜보았던 촛불시민을 또 한 번 농락하고 유린한 것이다.

그 조직적 움직임은 ‘질서 있는 퇴진’ 카드를 꺼내든 자유한국당의 뻔뻔스런 주장과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 요청에 대한 황교안 직무대행의 침묵에서도 읽혀진다. 자유한국당은 얼마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 면제’를 조건으로 ‘탄핵심판 선고 전 하야’ 카드를 내밀었다가 여론의 호응이 없자, 지난 2월 24일에는 탄핵 인용 시 검찰수사를 조기 대선 이후까지 유보하자고 했고 같은 당의 법사위원들은 아예 탄핵심판 자체를 연기하자고 나섰다. 한 마디로 치졸하고 뻔뻔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국정농단 사태 초기, 광화문 광장의 촛불이 그렇게 ‘대통령 퇴진’을 고고지성으로 외칠 때는 꿈쩍도 않다가 국회가 탄핵소추를 결의하고 헌법재판소로 넘어가 변론이 종결 국면으로 가고 있는 마당에, 한편으로는 박사모와 어버이연합 등을 부추겨 탄핵반대를 유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검찰수사를 회피하고 대통령의 예우를 구걸하는 파렴치한 주장과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은 한 나라의 공당은커녕 시정잡배들의 집단만도 못한 저질스런 모습이다.

이제 이 땅, 이 시대의 화두는 적폐청산이다. 광화문 광장의 촛불은 박근혜 퇴진을 넘어 이 땅에 쌓인 폐기물들을 말끔히 치우자고 외치고 있다. 사회의 양극화, 보편화된 특권의식, 고질화된 불평등, 통제 불능의 재벌, 영혼을 팔아먹은 언론인과 지식인, 환경오염의 주범들, 이런 것들이 청산되어야 할 적폐들이다. 해방이후 70년 넘은 ‘빨갱이 장사’도 이젠 사라져야한다.

“하지만 계몽된 시대에는 가장 큰 선을 행하는 마당에서조차 사람들은 겁을 먹는다. 사람들은 예부터 내려오는 폐해를 감지하며, 그 교정을 이해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위에 교정 자체의 폐해도 알아차린다. 최악을 두려워하여 악을 방치하고, 최선을 의심하여 선을 방치한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 머리말에서 계몽된 시대에 대해 이처럼 우려와 경고를 표명했다.

계몽된 시대, 촛불 민심은 그 악을 감지하고 적폐청산을 외치며 ‘가장 큰 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박근혜를 비롯한 변호인단, 황교안, 자유한국당 등은 탄핵심판 국면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교란함으로써 바로 ‘최선’에 ‘의심’을 불어넣는 청산의 대상들이다. 바로 그 청산의 대상들이 악을 교정하기 위한 ‘대통령 탄핵’을 ‘정치보복’으로 몰아가고 ‘탄핵 불복’을 부추기면서 돈 몇 푼으로 무지몽매한 사람들의 영혼을 사고파는 악행을 조직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장구한 우리 역사 속에서 ‘지금 이 시점의 최선’은 단 한번이라도 ‘청산의 역사’를 일구어내는 일이 되어야 한다. 몽테스키외의 경고대로 ‘최선을 의심하여 선을 방치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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