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내 안에 불굴의 인간 의지가 살아 있음을 깨우쳐 준다. 〈에그몬트〉 서곡 또한 그러하다. 고통스런 절규로 시작하는 서주, 비극적 정서와 긴박한 느낌으로 가득한 알레그로, 그리고 당당한 승리의 교향곡…. 이 서곡은 〈운명〉 교향곡보다 한층 농도 짙게 삶의 비극과 승리의 환희를 들려준다. 아무리 삶이 어둡고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다는 의지의 샘물을 이 곡에서 찾을 수 있다.

“내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내 음악을 통해) 자신의 모든 괴로움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베티나 브렌타노는 괴테에게 베토벤을 소개하는 편지에서 베토벤의 천재성을 극찬하며 이 말을 인용했다. 괴테는 아직 베토벤을 잘 알지 못했지만 따뜻한 호감을 표시했다. “베토벤에게 가슴으로 인사를 전하며, 내가 기꺼이 그와 사귀고 싶어 한다고 전해 주시오. (그와 내가) 사상과 느낌을 교환하는 것은 아주 유익한 일이 되겠지요.” 베토벤은 〈에그몬트〉를 작곡하면서 괴테에게 편지를 보냈다. “베티나 브렌타노는 당신이 저를 친절하게 받아주시리라고 했지만, 제가 어찌 감히 그런 환대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곧 저의 〈에그몬트〉를 받게 되실 것입니다. 당신의 평가를 기대합니다. 어떤 비판도 최상의 찬사와 마찬가지로 저와 저의 예술에 도움이 되오니 즐겁게 받아들이겠습니다. - 당신의 숭배자, 루드비히 판 베토벤”

인간 사회의 전통과 제도가 불합리하고 추하더라도 인간 정신은 고결한 빛과 이상을 추구하며, 현실 너머 멀리서 반짝이는 유토피아를 찾아내어 형상화하는 것은 그 시대 예술가들의 공통된 관심사였다. 〈에그몬트〉라는 작품을 통해 그 시대의 가장 탁월한 음악가와 시인의 마음이 연결됐다.

〈에그몬트〉 서곡 Op.84 (로린 마젤 지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https://youtu.be/YsI0yTC7b

자유를 위해 목숨을 던진 16세기 네덜란드의 영웅 에그몬트의 일생은 괴테의 펜 끝에서 희곡이 됐고(1787), 베토벤의 음악으로 빛나는 생명을 얻었다. 1809년말부터 1810년 사이에 작곡했는데,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빈(Wien)이 수난을 당한 직후였다. 베토벤은 상처입은 빈 사람들에게 이 음악으로 용기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베토벤은 아버지 쪽으로 네덜란드의 피를 타고 났는데, 에그몬트 백작이 네덜란드의 영웅이었기에 더욱 각별했을 것이다. 괴테의 희곡에 붙인 ‘부수음악’으로, 서곡 · 소프라노 독창 · 간주곡 · 승리의 교향곡 등 10곡으로 구성돼 있지만, 요즘은 서곡만 자주 연주된다. 이 곡에 표현된 자유를 향한 굳은 의지는 E. T. A 호프만 등 낭만시대 작가들의 찬사를 받았고, 1956년 소련의 압제에 대항하여 봉기한 헝가리 시민들의 집회 때 연주되어 용기를 북돋워 주기도 했다.

괴테는 이 곡을 듣고 감격하여 “탁월한 천재성으로 나의 의도를 잘 살렸다”고 찬양했다.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은 비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지만, 그 숭고한 넋에 승리의 월계관을 씌워주는 것은 후대 예술가의 몫이다. 베토벤이 음악으로 재창조한 괴테의 의도는 이런 의미였을까? 두 사람은 1812년 휴양지 테플리츠에서 만나 시대와 예술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곧 서먹한 사이가 되고 만다. 함께 산책하던 중 루돌프 대공의 행렬과 마주쳤는데, 이 때 괴테는 군중들 틈에 도열하여 예의를 갖췄지만 베토벤은 “우리 둘이 함께 있으면 군주들도 우리의 위대함을 느낄 게 분명하다”며 먼저 인사하기를 거부했다. 이 사건 이후 괴테는 베토벤이 “길들이지 않은 야생마 같다”며 거부감을 표시했고, 베토벤은 세속적인 관습과 제도를 너무 존중하는 괴테의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

두 사람은 기질과 성격이 너무 달라서 지속적인 우정을 나눌 수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에그몬트〉를 통해 자유를 향한 이상을 공유했고, 희곡과 음악의 경계를 뛰어넘어 상대의 높은 예술적 성취를 인정했다. 〈에그몬트〉라는 작품에서 우리는 괴테와 베토벤, 두 사람의 이름을 함께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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