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떠나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먼저 화해를 해야겠소.
그대가 원하는 사람이 되고
그대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하겠소.

나를 보시오, 모든 걸 잊고
그대의 한을 풀러 가겠소.
오직 그대의 이 눈길만 기억하겠소.
아, 신이여, 아름다움에게
그대가 내려 준 이 위대한 힘이여!

- 오페라 〈황제 티토의 자비〉 K.621 중 세스토의 아리아

‘나는 떠나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메조 소프라노 타치야나 트로야노스)
▶ https://youtu.be/1oQQD7EwW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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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우정이 충돌하면 어느 쪽을 택할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오페라 〈황제 티토의 자비〉에서 세스토는 번민 끝에 사랑을 택합니다. 그는 절세미인 비텔리아를 사랑합니다. 비텔리아는 자기가 황제 티토의 부인으로 선택되지 않자 세스토에게 “쿠데타를 일으켜 티토의 자리를 빼앗으면 사랑을 주겠다”고 합니다. 세스토에게 티토는 누구일까요? 평생 친구이자 자기가 보좌해야 하는 황제입니다. 세스토는 번민에 빠집니다. 사랑하는 이를 만족시키려면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러야 하고, 친구과 부하의 도리를 생각하면 사랑하는 이를 외면하게 됩니다. 세스토는 결국 쿠데타를 일으키기로 결심합니다.

비텔리아는 세스토가 자기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마음이 상해 있습니다. 아니, 권력욕의 화신인 그녀는 그냥 화난 척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스토는 쿠데타를 위해 떠나기 직전, 비텔리아에게 화해를 간청합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반역의 죄를 뒤집어 쓸 수도 있지만, 사랑을 위해 살고 사랑을 위해 죽을 뿐, 다른 선택은 세스토에게 없습니다.

세스토의 아리아 ‘나는 떠나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Parto, ma tu ben mio)는 두 사람의 대화이기 때문에 이중창의 성격이 있습니다. 세스토는 메조 소프라노가 부르지요. 남자 역할을 여성이 맡고 있는 셈이지요. 비텔리아는 누가 부를까요? 오케스트라 속의 클라리넷이 바로 비텔리아입니다. 차갑게 얼어붙었던 비텔리아의 마음은 세스토의 진심어린 사과에 어느덧 녹아내립니다. 처음 나오는 클라리넷 소리(링크 00:47)는 세스토의 말에 “그래, 한번 얘기해 봐”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입니다. 세스토의 당당한 호소에 마음이 움직인 비텔리아는 “사실은 나도 이해해, 네 마음을 받아들일게” 다정하게 대답합니다. (1:24) 감정이 격해지고 음악이 빨라집니다. 비텔리아가 부드럽게 세스토의 주위를 돌며 사랑스런 눈빛을 나눕니다. (2:50) 세스토가 나지막히 “나를 봐” 속삭이면 비텔리아가 고개를 들고, 화해가 이뤄졌음을 확인합니다. (4:15) 세스토는 “오직 네 눈길만 기억할 거야” 다짐한 뒤 열광적으로 노래합니다. “아, 신이여, 아름다움에게 그대가 내린 이 위대한 힘이여!” 세스토의 노래와 클라리넷의 빠른 패시지가 기쁨으로 고동치듯 어우러지며 마무리합니다. (5:07)

극한의 갈등이 음악의 힘으로 해소되는 순간입니다. 클라리넷은 사람 목소리를 닮았습니다. 이 아리아의 클라리넷 파트는 아름다운 여성의 관능미와 감정 변화를 사람 목소리보다 더 실감나게 전해 줍니다.

〈황제 티토의 자비〉는 레오폴트 2세의 대관식 기념 공연으로 1791년 9월 프라하에서 초연됐고, 세스토 역은 카스트라토*가 맡았다고 합니다. 오페라에 카스트라토가 등장한 것은 이 작품이 마지막이었지요. 레오폴트 2세는 음악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고, 그의 부인은 이 작품을 지루해 했습니다. 티토 황제가 쿠데타의 주역 세스토를 용서하고 다함께 그의 자비를 찬양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최측근이 쿠데타를 기도하는 스토리 자체가 맘에 안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프랑스 혁명 여파로 유럽의 긴장이 높아지던 상황이었으니까요.

카스트라토 :
거세된 남자 성악가. 17~18세기 이탈리아에서는 노래 잘 하는 소년이 변성기가 되면 거세, 고운 목소리의 어른 성악가로 키우는 일이 많았는데 이들을 카스트라토라고 불렀다. 카스트라토는 여성의 음역을 부르지만 남성의 성량을 갖고 있어서 파리넬리처럼 당시 오페라의 최고 스타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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