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협주곡 26번 D장조 K.537 〈대관식〉
(피아노 & 지휘 프리드리히 굴다)
▶ https://youtu.be/4kT6iP6Jkt8



〈대관식〉이란 제목에 걸맞게 화려하고 생기발랄합니다. 1790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새 황제 레오폴트 2세의 대관식에서 연주된 것으로 알려져 왔지요. 하지만, 모차르트는 그 행사장에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레오폴트 2세의 수행원 명단에서 제외된 것이지요. 그런데도 모차르트는 황제 일행을 따라서 프랑크푸르트로 갔고, 10월 15일, 대관식 행사장이 아닌 프랑크푸르트 시립극장에서 이 곡을 연주합니다.

그를 아껴주었던 계몽군주 요젭 2세는 터키와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새 황제 레오폴트 2세는 음악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대관식에 굳이 모차르트를 데리고 갈 생각이 없었지요.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결혼〉과 〈돈조반니〉 공연 이후 빈의 귀족들에게 반감을 사서 조리돌림을 당했고 생계가 어려워졌습니다. 이 협주곡은 당시 모차르트의 힘든 처지를 엿보게 해 줍니다. 1788년 2월, 모차르트는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빈 시절 초기처럼 예약연주회를 계획하고 이 곡을 씁니다. 그러나 예약한 사람이 단 한명 뿐이었기 때문에 연주회는 불발로 끝납니다. 이듬해인 1789년 4월, 모차르트는 베를린 여행 중 잠시 머물던 드레스덴에서 이 곡을 초연합니다. 연주는 성공이었지만 그다지 큰 수입을 올리지는 못했지요.

모차르트는 1790년, 새 황제의 대관식 행사장 근처에서 이 곡을 연주했고, 그래서 〈대관식〉이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연주회에 참석한 벤트하임 백작의 여행기에 따르면 이 곡은 “탁월한 장식 효과와 함께 기세좋게 연주됐다”고 합니다. 모차르트는 그 자리에 모인 귀족들을 상대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새 황제를 스토킹하는 희극 배우였을까요, 아니면 빈 귀족의 인정을 받고자 눈물겹게 노력한 비극의 주인공이었을까요? 질문이 꼬리를 물지만 누구도 속시원히 대답할 수 없습니다.

이 곡은 빈 시절 초기 협주곡들처럼 단순하고 간결해서 누구든 쉽게 친해질 수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파트는 현악기만으로도 연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하려는 포석이지요. 오랜 세월 모차르트의 대표적인 피아노협주곡으로 꼽혀 왔지만, 실제로는 모차르트가 대중성을 위해 자기 목소리를 낮춘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악장 라르게토는 부드럽고 사랑스럽지만 다른 협주곡들에 비해서 단순 소박합니다. 3악장 론도의 피아노 파트는 거장다운 카리스마를 느끼게 하지만, 이 또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상식적인 어법으로 작곡했습니다. 하지만,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건 절대 아니지요.

피아노협주곡 27번 Bb장조 K.595
(피아노 마리아 조앙 피레스, 트레버 피녹 지휘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
▶ https://youtu.be/c9gvTKdZhD4




모차르트는 이 곡이 자신의 마지막 피아노협주곡이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요? 천의무봉, 세속을 초탈한 듯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빛납니다. 그의 피아노협주곡 중 ‘백조의 노래’라 할 만한 작품이지요. 관현악과 독주 피아노는 지극히 자연스레 어울리며, 맑은 분위기와 신선한 음색이 교차합니다. 트럼펫과 팀파니가 빠져 있는 오케스트라는 모진 소리를 내지 않으며, 피안을 향한 그리움을 고요한 슬픔으로 노래합니다.

〈대관식〉 협주곡처럼 경제난을 헤쳐 나가기 위해 작곡했지만, 한번 떠난 빈 청중들의 마음은 좀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떠난 해인 1791년 1월 5일 완성했군요. 당시 모차르트가 피아노를 가르쳤던 연인 막달레나 호프데멜을 위해서 쓴 곡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 해 3월 24일 궁정요리사 이그나츠 얀의 집에서 모차르트 자신의 연주로 초연했고, 이게 모차르트가 피아니스트로 등장한 마지막 무대가 됐습니다.

1악장은 천상의 정원을 거니는 느낌이랄까, 때묻지 않은 아름다움이 가득합니다. 김선우 시인은 모차르트 음악이 특별한 영웅의 아우라보다 평범한 인간 속에 반짝이는 슬픔과 기쁨, 고독과 환희를 드넓고 깊게 펼쳐놓는다고 했군요. “모차르트 속에선 어떤 인간도 궁극적으로 보호받는다. 깊은 슬픔 끝에서도 ‘그래, 살자!’라고 마음먹게 만들어주는 음악의 힘, 피르스가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라 평가받는 이유도 이런 인간 이해와 감수성의 결 때문 아닐까.” 시인은 피레스의 모차르트를 ‘숨쉬는 피아노’라고 표현했군요.

생각에 잠겨 맑게 흐르는 2악장의 제2주제(링크 16:54)는 클라리넷 협주곡의 아름다운 아다지오와 닮았습니다. 3악장은 깡충깡충 발랄하게 뛰는 6/8의 알레그로입니다. 귀여운 오누이가 장난치며 뛰노는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겠네요. 이 주제는 그 무렵 작곡한 동요 〈봄을 기다림〉(Sehensucht nach dem Fr?hlinge)에서도 사용했지요. 이 사랑스런 동요는 아픈 사람이 없는 어린이의 세상이 봄이라고 노래하는군요.

동요 〈봄을 기다림〉 K.596
▶ https://youtu.be/Vt7pKT_ZfnA (노래 지씨)

(1절) 아름다운 5월아, 다시 돌아와 수풀을 푸르게 해 주렴.
시냇가에 나가서 작은 제비꽃 피는 걸 보게 해 주렴.
얼마나 제비꽃을 다시 보고 싶었는지! 아름다운 5월아,
얼마나 다시 산책을 나가고 싶었는지!

(2, 3절 생략)

(4절) 무엇보다도 로트헨이 마음 아픈 게 나는 제일 슬퍼.
불쌍한 이 소녀는 꽃이 필 날만 기다리고 있지.
나는 걔가 심심하지 않게 장난감을 갖다줬지만
소용이 없어. 걔는 알을 품은 암탉처럼
조그만 자기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지.

(5절) 아, 바깥이 조금만 더 따뜻하고 푸르렀으면!
아름다운 오월아, 우리 어린이들에게 어서 와 주길
간절히 기도할께. 누구보다도 우리에게 먼저 와 주렴.
제비꽃이 많이많이 피게 해 주고 나이팅게일도
많이 데리고 오렴. 이쁜 뻐꾸기도 데리고 오렴

1791년, 결국 봄이 왔고, 그 봄은 모차르트의 마지막 봄이 되고 말았습니다. 투명한 슬픔과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피아노협주곡 27번은 모차르트의 마지막 피아노협주곡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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