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논설위원으로 일할 때이니 1999년, 그러니까 17년 전 어느 날이다.
경향신문 건물은 세워진지 30년이 훌쩍 넘은 아주 낡은 건물이어서 거의 매일 자잘한 공사가 여기저기서 끊이질 않았다.
논설위원실은 그마저도 미로같은 통로를 거쳐야 갈 수 있는 아주 후진 별관 6층에 있었다.

어느 날 오전 논설위원실로 한 늙수구레한 남자가 뛰어 들어와 전화기를 찾더니 다급하게 119를 찾았다.
어안이 벙벙한 채 들어보니 논설위원실 바로 옆에서 작업을 하던 누군가가 고압전선에 감전돼 쓰러진 모양이다.
깜짝 놀란 우리들 몇몇이 후다닥 뛰어 나가보니 공사 도구들로 이리저리 어지러운 공사현장에 한 젊은이가 쓰러져 있었다.
숨을 쉬는지, 심장은 뛰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 인공호흡을 시키든가 뭐든지 해야 할 상황인 것은 분명했지만, 잘 난 척 떠들어대기만 할 줄 알았지 겁만 많고 아는 것은 없는 책상물림들은 그저 “어휴~ 저거 어떡하나, 어떡하나”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10분인가, 20분인가 지나고 머리에 헬멧을 쓴 구조대원들이 도착했다.
몇 가지 응급조치를 취하고는 청년을 실어갔다.
하지만 결국 그 청년은 죽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학비를 벌기 위해 공사장 보조로 처음 나온 가난한 대학생이었다.
무엇이 전기줄이고 무엇이 전화선인지도 구별 못하는 젊은이가 고압전선줄을 잘못 건드려 참변을 당한 것이다.

청년의 죽음을 접하고 벼라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우리 중 누군가가 인공호흡법이라도 좀 배웠더라면, 엎어지면 코 닳을 바로 옆에 강북삼성병원이 있는데 누군가가 청년을 업고 뛰었더라면...
좀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청년이)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덜 위험한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어제 안철수 대표가 구의역 사고를 두고 했다는 바로 그 코멘트다.
우리 사회 전체의 보편적 안전과, 가난할수록 죽음에 더 많이 노출되는 불평등에 관한 문제의식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안철수가 정치 지도자라면 몰라도, 평범한 장삼이사의 애도를 표현한 것이라면 그를 비판할 생각도, 자격도 없다)

언론사가 직접 관련된 사건 사고는 잘 보도되지 않는다.
그 청년의 불행하고도 불운한 사고사 역시 어떤 언론에도 단 한 줄 보도되지 않았다.
만일 그 때 우리 신문부터라도 그 사건을 감추려하지 말고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집중 보도했더라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안전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청년을 살리지도 못하고, 청년의 죽음을 값지게도 못했다는 죄의식이 어제 오늘 더 심한 고통으로 되살아난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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