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가자”는 지인에게 “올해는 갈 마음 없다” 하니까 “광주가 싫어졌느냐”고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싫어할 자격도, 미워할 자격도 내게는 없다.

한겨레에 연재되는 이희호 여사 평전 중 다음의 대목을 읽으며 눈물이 날 뻔 했다.

1987년 9월 8일 이희호와 김대중은 1971년 이후 16년 만에 광주에 갔다.

시민 수만 명이 망월동을 메웠다.

김대중은 5·18 유가족과 부상자들을 끌어안고 통곡했다.

김대중은 이희호와 함께 분향하고 묵념한 뒤 추도사를 읽었다.

“영령들이여! 김대중이가 여기 왔습니다. 꼭 죽게 되었던 내가 하느님과 여러분의 가호로 죽지 않고 살아서 7년 만에 망월동의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김대중은 추도사를 읽는 중에도 몇 번이나 통곡했다.

망월동에 모인 사람들도 함께 울었다.

“그날, 금남로에 타오르던 민족의 함성은 국민이 참다운 나라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역사의 결연한 자기주장이었습니다. 20만 동학군의 죽창이 눈사태처럼 무너진 우금치 고갯마루를 지나, 3·1절의 함성과 6·10만세의 함성, 광주 애국학생의 불타는 외침이 산하에 메아리치던 모진 식민의 세월을 넘어서, 억압과 불의에 항거하여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웠던 4·19와 부마의거의 숭고한 정신으로 이어져 내려온, 민족·민주·민중의 천지를 뒤흔든 함성이었습니다. 광주의 영령들이시여! 여러분은 죽어서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의거는 일월같이 빛나고, 여러분이 흘린 피는 역사와 더불어 영원할 것입니다.”

추도사는 죽은 자들을 거듭 불렀다.

“광주는 민주주의의 본고장이 될 것이며 무등산은 민주와 통일을 밝히는 민족의 영봉이 될 것입니다. 광주 영령 여러분이 잠든 망월동의 이 초라한 공동묘역은 민족의 성지가 될 것입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평화와 자유와 민주의 찬가가 울려 퍼지는 그날, 광주는 구원의 상징으로 영원한 별빛이 되어 민족의 앞길을 인도할 것입니다.”

김대중은 오열 속에 추도사를 끝냈다.

망월동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오월의 노래>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내가 비록 어리석은 자이기는 하나, 지금 광주정신이 통째로 무너졌다고 낙담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일부 호남 지식층이 자랑스럽게 떠들어 대듯 호남이 비로소 세속화됐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원래부터 ‘그 곳에도’ 있었던, 일부 탐욕스럽고 부패하고 교만하고 근시안적인 토호기득권세력이 그동안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자신의 정체를 본격적으로 커밍아웃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호남에서도 본격적인 민주진보개혁세력과 수구기득권세력 간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다만 당분간은 이들이 고개 뻣뻣이 세우고 기고만장한 모습을 볼까 두려워 광주에 가지 않으려는 것일 뿐이다.

여전히 ‘그 곳’에 있는 동지들이 공연히 어깨 움츠리고 풀 죽은 표정을 짓는 것을 볼 자신이 없어 가지 않는 것이다.

그 날, 망월동에 모인 수만의 시민들과 김대중이 목메어 불렀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올해 5.18 기념식에서 제창될지 여부가 행사 이틀 전인 16일에야 결정된다 한다.

설사 제창곡으로 결정된다 한들 그 자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부를 자신이 내게는 없다.

그것이 올해 내가 광주에 가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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