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십자가 - 자유언론실천재단

옛날 십자가는 사상검열의 도구였다.

심문관 앞에서 십자가를 밟고 넘어가면 죽음을 면했고 십자가 밟기를 거부하면 죽음을 면치 못했다,

천안함 사건이 그렇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안함 사건은 우리 시대의 십자가였다.

천안함 사건을 천안함 폭침이라고 하면 정상국민으로 받아 들여졌고, 폭침이라고 단정짓기를 거부하면 비국민으로 손가락질 받았다. 심하면 종북좌빨로 몰리기도 했다.

선거 때마다 후보 간 토론에서 ‘폭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 이슈를 단골로 끄집어내 상대를 몰아부쳤다.

어떤 이는 굴복했고 어떤 이는 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요령있게 상대의 공격을 피해야 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야당 추천 후보로 올랐던 한 법률가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확신하느냐는 여당 의원의 질문을 받고 “정부 발표대로 북한의 소행이라고 나도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다만 자신이 법률가임을 강조한 뒤 “제가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확신’이라고 표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가 끝내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천안함 좌초설''을 제기하며, 정부가 천안함 사고 원인을 조작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기소됐던 신상철 씨가 어제 재판 시작 5년6개월 만에 결국 유죄를 선고받았다.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신 씨에게 적용된 형법은 명예훼손죄이지만 결국은 자유민주주의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에 다시 한 번 족쇄를 채운 판결이다.

비록 집행을 유예하기는 했지만 8개월 징역형 자체가 유감스러운 이유다.

신상철 씨가 고작 국방장관 등 고위 관계자들을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적시했다고 믿지 않는다.

그는 해군 장교 출신으로써의 경험과 해양 지식 등을 총동원해, 부실하기 짝이 없는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의문을 표시하고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홀로 거짓과 음모에 맞서 싸울 것을 자임했다.

민주시민으로서의 당연한 의무와 권리를 다 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우리 사회의 사법시스템이 아직까지는 그 의미를 직시할 수준에 미치지 못했을 뿐이다.

미국이 월남전에 본격 개입할 명분을 준 통킹만 사건도 미 국방부가 조작한 자해극이었음이 밝혀졌다.

강기훈 씨 유서대필 사건도 24년만에 검찰의 조작극임이 밝혀졌다.

1894년 유태인 장교 드레퓌스가 간첩으로 몰렸을 때 ‘나는 고발한다’는 글을 발표하고 프랑스 군부와 맞섰던 에밀 졸라는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여러모로 그 발걸음이 잠시 멈춘 듯하다.

* 이 글은 ''국민라디오 - 강기석의 생각 하나'' 코너를 통해 라디오 방송됩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