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의 사소한 에피소드

신영복 선생은 감옥에서 사람보는 눈을 키웠다고 말씀하셨다.

출소하고 난 후 그 사람보는 능력을 자주 사용한 것이 지하철 탈 때였다고 한다.

누가 어디서 내릴 건지 정확히 짚어 낼 수 있었기 때문에 꼭 앉고 싶으면 언제든 앉을 수 있으셨다는 것이다.

곧 내릴 사람 앞에 서 있으면 되니까.

그 정도 경지에 가려면 매우 종합적인 판단력을 길러야 함은 물론이다.

사람의 인상과 옷차림, 소지품, 그리고 각 전철역의 사회 문화적 특성은 물론이고 현재 시간에 이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유에 대해서까지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선생께서 딱 한 번 실패한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인천에 강의가 있어서 영등포역에서 전철을 탔다.

평소 잘 앉으려 하지 않는 선생이 그날만은 너무 피곤하고 먼 길이어서 신도림역에서 내릴 사람을 골라 그 앞에 서 계셨단다.

그 사람이 정확히 신도림역에서 일어서기는 했는데 그만 그 옆에 앉아있던 젊은 여성이 냉큼 빈자리로 옮겨 앉고서는 자기 앞에 서 있던 친구를 자기 앉았던 자리에 앉히더라는 거다.

그런 경우까지는 예상치 못한 선생은 낭패를 면치 못했다.

선생은 이런 에피소드를 선생의 저서 ‘강의’ 에서 맹자 곡속장을 풀이하면서 소개하신다.

맹자의 사단 중 하나인 수오지심, 즉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인간관계가 지속적일 때 형성되는 감정이다.

자본주의 상품 사회는 인간관계가 황폐화되고, 서로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타자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지하철의 그런 난감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말씀이다.

아무래도 마지막 작별 인사를 드려야겠기에 멀디 먼 성공회대 가는 길이다.

선생의 그 많은 주옥같은 말씀 중에서 하필 이런 사소한 에피소드가 떠 오른 건 내가 지하철을 타고 가기 때문인가.

선생의 사상은 넓고 깊을 뿐 아니라 따뜻하다.

선생은 “모든 존재는 고립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 놓여 있는 것이며,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로소 정체성을 갖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존재론이 아니라 관계론으로 인간 사회를 보셨다.

사람과 사건,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 것이다.

우리 시대의 큰 스승 한 분이 영원히 가셨지만

그의 깨달음과 가르침은 책으로 온전히 남았다.

내가 ‘강의’는 여러 번 탐독했는데 아직 선생의 마지막 저서 ‘담론’을 읽지 못했다.

내일 나가는 길에는 서점에 들러야겠다.

* 이 글은 ''국민라디오 - 강기석의 생각 하나'' 코너를 통해 라디오 방송됩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