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박학다식한 후배에게서 헬조선의 유래를 들었다.

16세기 말~17세기 초 한반도 남부에서부터 처음으로 이모작이 시작되면서 인구가 배로 늘었다.

우선 먹을 것이 풍부해진데다 식구 수가 곧 노동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장기간의 가뭄이 들었다.

가뭄이 들면 어떻게 되는지 한겨레신문 조홍섭 기자의 칼럼에서 보자. 19세기 말 아시아를 두루 취재하던 영국 언론인 앵거스 해밀턴(1874~1913)이 남긴 견문록 <한국>에 나온 1901년 한반도를 휩쓴 대기근에 대한 상세한 묘사다.

“(...) 나라 전체가 붕괴했다. 내륙지방은 특히 심해 폭도가 들끓는다. 평소 평화롭고 법을 잘 지키던 사람들이 식량을 탈취하기 위해 시골로 몰려갔다. 서울엔 걸인이 넘쳐 밤에 나가기가 위험했다. 서울 인구 20만명 가운데 2만명이 극빈층으로 추락했고 수천명이 굶어 죽었다. 논에 물이 찰랑대야 할 6월 고작 8㎜의 비가 왔다. 논이 말라붙자 사람들은 풀뿌리를 캐러 산으로 갔고, 인육을 먹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1901년은 기록이 남은 한반도 최악의 가뭄이 절정이던 해였다. 조홍섭 기자는 변희룡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를 인용해 한반도에 124년마다 장기적인 큰 가뭄이 발생해 왔다고 했다. 19세기 말이 그랬고 18세기 중후반, 이모작이 시작된 17세기 중반이 그랬을 것이다.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인구수가 급감했다.

그런데도 가뭄이 들면 벼슬아치와 지주의 수탈이 더욱 자심해 졌다.

부자들과 권세 있는 자들만 살아 남았다.

금준미주, 옥반가효가 등장하는 춘향전의 시대였다.

백골징포, 족징, 인징, 황구첨정 등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운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가 나타난 것이 바로 이 때였다.

사람들은 애 낳기를 거부했고 심지어 어떤 농부는 자신의 성기를 잘랐다.

낳은 지 사흘 밖에 안 된 사내아이가 군적에 올랐다며 세금으로 소를 끌어가자 농부가 “이게 모두 아이를 낳게 한 이 놈 잘못”이라며 성기를 잘랐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이 지은 애절양(哀切陽)의 내용이다.

후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OECD 최저 수준인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떠올랐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흙수저 물고 태어난 청춘들이 아이낳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내가 남의 노예노릇할 것이 뻔한 아이를 낳느냐는 항변이란다.

노동자들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고통받고 젊은이들이 그마저도 일자리를 못 얻어 배회하는데, 재벌들만 3세, 4세를 위해 골목상권을 노리고 있다.

고위 공무원들만 철밥통을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은 기회만 있으면 딴 소리만 해대고 있다. 그야말로 혼용무도다.

농경시대의 ‘헬조선’이 산업시대라고 다르랴!

* 이 글은 ''국민라디오 - 강기석의 생각 하나'' 코너를 통해 라디오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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