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김한길 의원의 탈당을 보면서 ‘사쿠라’라는 말이 떠올랐다.
오로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당저당 기웃거리는 정치인을 ‘철새’라 하고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하는 사람을 사쿠라라 한다.
정치공작이 일상적으로 횡행하던 박정희 독재 시절이나 전두환 5공 때 사쿠라가 왕성했다.
그중에서도 두드러진 거물급 사쿠라들을 ‘왕사쿠라’라 불렀다.
아마도 왕사쿠라의 원조는 유진산이 아니었나 싶다.
1904년생인 그는 조병옥 신익희 등과 어울렸던 야당 정치인으로 70년 신민당 총수 자리에까지 올랐는데 그 해 박정희와 여야 영수회담을 한 후 맛이 가기 시작했다.
74년 죽을 때까지 박정희 좋아할 짓만 했다.
유진산으로부터 왕사쿠라계보를 이은 이가 이철승이다.
이철승은 중도통합론을 내세우면서 야당은 정권담당 능력이 없다고 대놓고 떠들고 다녔다.
5공 들어 전두환은 유치송이란 자를 내세워 아예 민한당이란 관제 야당을 만들었다.
민자당 2중대였던 민한당은 85년 정치해금에서 풀려 난 김대중 김영삼 양김이 만든 신민당에 의해 박살이 났다.
그런데 신민당 총재 이민우가 이듬해 양김과는 아무런 상의도 없이 느닷없이 전두환이 내건 내각제를 옹호하고 나선다.
그는 YS의 측근으로 YS 덕분에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총재까지 됐는데도 그랬다.
일단 정치공작의 마수에 걸리면 이성도 마비되고 일단 간이 커지는 모양이다.
그러자 양김을 중심으로 한 70여 명의 신민당 소속 의원들이 집단 탈당해 ‘통일민주당’이라는 새로운 야당을 창당했다.
이때 각목과 쇠파이프 등 흉기로 무장한 폭력배들이 통일민주당 창당대회를 방해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이 바로 ‘용팔이 사건’인데 그 배후에는 신민당 사무총장 이택돈이 있었고 또 그 배후에는 안기부장 장세동이 있었다.
무릇 사쿠라 정치인들이 강조하는 것이 중도통합론이고 그 핵심이 타협과 협력이다.
정치공학적으로 진보 표만 갖고는 이길 수 없으니 중도 표심을 잡아야 한다는 것인데, 실제로 선거에서 이길 생각은 없고 오히려 야당의 패배를 통해 자기 개인의 이득을 꾀하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하기야 지금의 새누리당이 건전한 보수정당이고 조선일보가 건전한 보수신문이라면,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이 진정한 진보정당이라면 안철수 김한길 의원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고 국민의당이 설 자리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새누리당은 수구극우친일친미꼴통정권이며 더민주당이 그나마 보수정당에 가까운 형편 아닌가.
제 정신이라면 “발목 잡는 정당의 이미지를 없애겠다”느니 “낡은 진보”를 탓할 계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내각제는 또 뭔가.
아무래도 사쿠라의 계절이 다시 온 것 같다.

* 2015년 11월 23일(월)부터 [국민라디오] 강기석의 생각 하나가 주중 매일 오전 9시 방송됩니다. 아래 플레이버튼을 클릭하시면 방송 다시 듣기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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