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듣기 어렵지만 내 어렸을 때는 동네 어른들이 누군가를 ‘화냥년’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가끔 들었다.
행실이 바르지 못한 여자를 뜻하는 비속어였다.
어른 여자들끼리 싸우면서도 서로를 ‘화냥년’이라고 부르며 싸우는 경우가 있었다.
아주 나쁜말인 줄 알았다.
조금 커서 그 어원을 알아보니 슬픈 사연이 담겨져 있었다.
조선시대 때 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됐을 때 여염집 처녀들은 물론 사대부집 처자들도 청나라로 대거 끌려갔다.
이렇게 끌려갔다가 일정 기간 후에 돌아 온 여성들을 고향에 돌아 온 여성, 즉 ‘환향녀’로 불렀는데 이 환향녀가 화냥년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어떤 사대부들은 자신의 처가 돌아오자 집안에 들이기를 거부하고 이혼을 허락해 달라는 상소까지 올렸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궁여지책으로 경향 각지에 회절강을 지정해 거기서 몸을 씻으면 정조를 훼절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는 궁여지책까지 내 놓았으나 ‘환향녀’에 대한 모욕과 멸시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흔적이 수 백년이 흐를 때까지 화냥년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타결지었다는 소식을 듣고 퍼뜩 떠오른 것이 환향녀를 모질게 대접한 조선 사대부들의 철면피같은 무책임과 뻔뻔함이었다.
조선 여성들을 청나라에 끌려가게 만든 것은 사대부들의 무능이었다.
일제 시대 때 위안부, 즉 일본군 성노예를 만든 것은 나라를 팔아 먹은, 일본에 적극적으로 부역한, 당시의 사대부라 할 수있는 친일파놈들이었다.
그러므로 사대부들이 환향녀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않은 것처럼, 친일파놈들이 일본군 성노예에 대해 책임을 느낄 리 없었다.
그리고 그 후예들이, 즉 일본군 장교의 딸과 비행기까지 헌납한 악질 친일파의 아들이 각각 대통령과 여당 대표로 있는 정부가 환장한 것처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도 묻지 않고 이 문제를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매듭지었다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이들에게 일본군 성노예에 대한 역사적 책무 의식도,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도, 나라 위신에 대한 고려도 없기 때문에 나타난 당연한 결과다.
어디선가 박근혜 정부가 미국을 통해 일본에 압력을 넣어 이번 성과를 얻었다는 기사를 읽고 포복절도할 뻔 했다.
대미 종속외교의 처참한 결과물에 대해 완전히 거꾸로 된 해석이기 때문이다.
큰일이다. 사대하는 대상이 중국에서 일본, 미국으로 바뀌어 왔을 뿐, 자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라도 팔아먹는 DNA가 이 나라 지배층의 잠재의식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이 나라에서는 또 환향녀가 낳은 자식을 호로자식이라 비하했다고 한다.
호로자식이 욕이라면 친일파 자식들이야말로 호로자식들이 아니겠나.

* 2015년 11월 23일(월)부터 [국민라디오] 강기석의 생각 하나가 주중 매일 오전 9시 방송됩니다. 아래 플레이버튼을 누르시면 방송 다시 듣기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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